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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1화 (21/241)

#21 트리아지(6)

물론 그들은 금방 범인을 알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우리 넷 중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은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너였냐, 조진기?"

"예……."

"이 자식이."

치프 레지던트들의 얼굴이 사나워진다.

그중에는 평소에 조진기와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도 섞여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누구도 조진기를 옹호하지 않았다.

단순히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이다.

"엑스레이 좌우를 헷갈려? 국가고시 통과는 어떻게 했냐?"

"하트(heart, 심장)도 오른쪽에 있다고 하지 왜?"

레지던트들이 윽박지른다.

실제 우리 몸에서 심장은 왼쪽에 위치하지만, X―ray와 CT 모두 좌우가 반대로 되어 있다.

즉 X―ray의 오른쪽이 우리 몸의 왼쪽인 것이다.

물론 우리처럼 갓 의사가 된 인턴들이 헷갈리는 일은 종종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흉수천자와 같은 중요한 술기를 시행할 때, 실수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잘한다, 잘해."

"환자한테 미안한 건 당연한 거고, 흉부외과 앞에서 고개를 못 들겠다. 쪽팔리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씩씩거리는 레지던트들의 화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하다.

대학병원의 각 과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이지만, 종종 겹치는 진료 영역에 대해서 영역 싸움을 하거나 은근히 자존심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레지던트들의 울분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응급의학과에서 벌어진 실수를 흉부외과에서 뒷수습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됐다. 그만해라."

보다 못한 치프 레지던트가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오늘은 넘어가자, 환자도 다행히 무사한 것 같으니까. 대신 나중에 저놈 붙잡고 제대로 교육 좀 시켜!"

"알겠습니다."

"다들 해산해!"

인턴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났다.

그때 여봉철의 말이 덧붙여진다.

"조진기!"

"예…… 예?"

다 끝난 줄 알고 긴장을 풀던 조진기의 몸이 움찔했다.

"니는 깁스 풀었다고 깝치지 말고, 당분간 하던 대로 동의서나 쳐 받아라. 알았나?"

"……예."

조진기가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인다.

이번 일로 선배들에게 단단히 찍히게 된 모습이다.

"그리고 선한이는 잠깐 내 좀 보자."

응?

갑자기 왜 나만?

* * *

철컥―

회의실의 문이 닫힌다.

우리 둘만 남게 되자, 여봉철 선생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선한아, 뭐 하나만 물어보께."

"예."

"대답 잘해라. 니 대답에 따라서 이번 달 평가가 뒤집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분위기를 잡는다.

갑자기 긴장된다.

대체 뭘 물어보려고?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여봉철의 질문을 기다렸다.

"방금 환자한테 흡인법(needle aspiration) 실시한 거, 니가 스스로 내린 판단이가?"

"맞습니다."

"돌았나. 인턴 주제에 누가 니보고 혼자 판단하라대?"

여봉철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험악한 말투는 아니다.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독단적으로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해서……."

"설명해 봐."

"예?"

"상황이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함 설명해 보라고."

이건……?

여봉철이 주는 기회다.

만약 여기서 대답을 잘한다면, 비로소 한 명의 의사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버벅거린다면 엉망진창으로 깨지게 되겠지만.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전에 기흉에 대해서 배울 때, 제때 흡인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레스트(arrest, 심정지)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흉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30분이 넘게 흐른 후였고, 제가 도착했을 때는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53%까지 떨어져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

"게다가 환자는 고령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폐 기능이 약한 노인인 만큼, 한시라도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 생각을 차분하게 전달했다.

여봉철은 복잡한 표정이다.

화를 내고 싶은 것 같기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과연 어떤 말이 이어질까?

"그래, 알았다."

여봉철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짧은 사이에 화가 약간 가라앉은 기색이다.

"잘했다. 다른 사람 실수도 찾아내고 응급조치까지 완벽했어. 나무라기는커녕, 백 번 칭찬해도 모자란 일이지."

여봉철은 조용히 손을 들어 내 어깨를 짚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될 건, 니는 아직 인턴이라는 거다."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타이르듯, 그의 말이 조곤조곤 이어졌다.

"앞으론 절대 스스로 책임 못 질 행동은 하지 마라. 인턴 주제에 겁대가리 없이 혼자 판단하지 말라는 거다. 알았나?"

"예."

"나가 봐."

여봉철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회의실을 나섰다.

그리고 문이 닫히기 전, 여봉철 선생이 말했다.

"니는 이번 달 평가 최고점이다."

"……!"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돌아보았다.

원래 인턴의 점수는 본인에게 알려 주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게다가 최고점?

좀처럼 받기 힘든 평가다.

특별히 코멘트를 달아야 하기 때문에, 귀찮아서라도 주지 않는 점수라고 알고 있다.

게다가 여봉철은 평가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레지던트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점수는 최종적으로 치프 쌤이랑 교수님이 주지만, 내가 코멘트 달면 A+ 받는 데는 문제없을 끼다."

"어……."

"와, 싫나?"

"그게 아니라…… 그런 걸 저한테 얘기해 주셔도 되는 겁니까?"

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여봉철 선생이 시치미를 뚝 떼고 먼 산을 바라보며 말한다.

"내가 뭔 말 했나? 암말도 안 한 것 같은데?"

연기력 보소?

오스카 주연상감이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그에게 장단을 맞추었다.

"저도 못 들은 것 같습니다."

"맞제?"

"예."

"나가 봐."

꾸벅.

나는 고개를 숙인 뒤 회의실 문을 닫았다.

달칵―

"휴우."

회의실을 나왔다.

인턴 2개월 동안, 오늘이 가장 길었던 하루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 온다.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아직도 아드레날린이 진정되지 않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해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국 내 손으로 미래를 바꾼 것이다.

환자가 큰 위험에 처하는 일도 막아 냈고, 보란 듯이 A+ 등급까지 받았다.

그리고 여봉철 선생과 돈독한 관계를 만들었으니 앞으로 인턴 생활을 하는 데 힘이 될 것이다.

‘도대체…….’

나에게 미래를 알려 주는 이 능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끊임없이 도전 과제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미래를 내 손으로 바꾸는 일이, 무척 짜릿하다는 것이다.

* * *

그 이후.

여봉철은 뒷수습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먼저 교수에게 사건의 정황을 이야기하며, 인턴들을 챙기지 못한 자신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물론 보호자들은 황당해했다.

"뭐…… 뭐라구요?"

"우리 아버님한테 뭘 어떻게 했다구요?"

병원 측의 실수로 가족이 위험해질 뻔했으니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환자의 며느리가 의료소송 이야기까지 꺼내며 여봉철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그때, 정작 환자 본인이 가로막았다.

"됐어, 교통사고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잖아."

"아버님, 그래도 그렇지……."

"의사 양반들도 사람인데 실수할 수 있지 뭘 그래. 대신 제 병 좀 잘 치료해 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저희 아버지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마동섭이 듬직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여봉철은 다시 한번 환자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것이 의사를 신뢰해 준 환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물론 보호자들은 여전히 납득하기 힘들어했지만, 이후의 일들은 병원 내 법무팀과 원무과를 통해 원만히 해결되어 갔다.

* * *

"고생했다."

"니가 욕봤지."

"그나저나 EM(응급의학과)에서는 인턴 교육 똑바로 안 하냐?"

"옘병. TS(흉부외과)에서 배워가 오는 인턴들은 을마나 잘하나 보자, 시끼야."

여봉철이 으르렁거리자 마동섭은 피식 웃었다.

EM 여봉철.

TS 마동섭.

두 사람은 예전부터 친했다.

인턴 시절부터 <덩치 브라더스>라고 불리던 사이다.

이제는 서로 다른 과에서 일하고 있지만,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격식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벌컥, 벌컥.

휴게실 벤치에 걸터앉은 여봉철이 얼음 잔에 담긴 커피를 들이켰다.

"크…… 하여간 이번 달에는 인턴들 때문에 별일을 다 겪는다. 저번에 소담이 넬라톤 사건도 그렇고. 오늘 사건도 그렇고."

"그래도 환자 무사한 게 얼마나 다행이냐?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의료소송 감이었을걸?"

"맞나?"

"만약 환자가 저대로 몇 분만 더 있었으면 어레스트(arrest, 심정지)까지 왔을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가족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거야. 큰 실수가 벌어진 것치고는 그나마 선방한 거라고."

"하긴……."

여봉철은 얼음을 으득으득 씹으며 상황을 되새겼다.

생각해 보니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신선한이 환자를 발견하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리고, 적절한 흡인으로 환자를 응급치료 하지 않았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인턴 신선한.

처음에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가장 쓸 만한 놈이었던 것이다.

‘EM 레지던트로 오면 쓸 만할 것 같은데…… 나중에 슬슬 함 꼬셔 볼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마동섭이 말했다.

"그나저나 봉철이 감이 살아 있더만."

"뭔 소리고?"

"응급으로 니들 어스피레이션(needle aspiration)을 했던 게 아주 좋은 판단이었다고. 역시 응급의학과 에이스 여봉철답다."

"아, 그거?"

여봉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한 거 아이다."

"응?"

"우리 과 인턴이 했다."

"인턴이?"

마동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과 2개월 차인 신입 의사가 뭘 했다고?

"에이. 거짓말하지 마라. 인턴이 어떻게……."

마동섭은 말을 멈추고 문득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설마…….

"혹시 그 인턴 이름이 신선한인가 하는 놈이야?"

"우째 알았노?"

"허."

마동섭은 턱을 쓸었다.

누군가 했더니, 그 이름을 한 달 만에 다시 듣게 될 줄이야.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놀랍다.

"신선한이라…… 저번 달 PCI 환자 때도 그렇고, 보통 놈이 아니네."

"무슨 말이고?"

"있어, 그런 게."

마동섭은 말을 아꼈다.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

두 번까지는 요행이라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쩌면 흉부외과 송유주 이후로 전설적인 인턴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그 인턴, 얼마나 쓸 만할지 점점 더 궁금해지네. 나중에 TS로 오라고 꼬셔 볼까?’

마동섭은 혼자 생각하며 씩 웃었다.

그렇게 같은 자리에 앉아, 서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두 사람이었다.

"에효. 그건 그거고."

여봉철은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벌어진 일의 뒷수습은 자신이 해야 했다.

앞에서 인턴들을 다그치더라도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

그것이 그의 성격이었다.

조진기가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을 어떻게 수습하나 고민하고 있을 그때.

휴게실로 누군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여 선생님, 여기 계셨어요?"

"무슨 일 있습니까?"

여봉철의 눈이 커졌다.

휴게실에 나타난 것은 응급실 간호사 파트장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제가 고자질을 하려는 건 아닌데, 선생님도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예?"

"인턴 조진기 선생님 관한 얘기인데요, 아까 지나가던 우리 간호사가 우연히 들었다는데……."

간호사 파트장이 다가와, 귓속말로 여봉철에게 짧게 속삭였다.

잠시 후.

이야기를 듣고 난 여봉철의 머리가 분노로 달아올랐다.

"이 새끼가……."

빠직!

이마에 힘줄이 돋는다.

조진기의 실수를 커버해 주고 싶은 마음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곧 그의 머릿속은 조진기를 어떻게 족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와드득!

여봉철은 커피 잔을 찌그러트려 휴지통에 넣은 뒤 일어섰다.

"동섭아. 먼저 가 보께."

"왜, 바쁜 일 있어?"

"족칠 놈이 하나 있어가."

여봉철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이 모든 일을 제대로 마무리 지으려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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