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0화 (20/241)

#20 트리아지(5)

나는 조진기를 붙잡고 다급히 물었다.

"너, 오늘 실수한 거 없었어?"

"갑자기 웬 시비야?"

조진기의 기분 나쁘다는 듯한 대답이 돌아온다.

"혹시 해서 물어보는 거야."

"야, 나도 실습 다닐 때 에이스 소리 들었어. 내 일은 알아서 하니까 신경 꺼!"

녀석의 표정이 구겨진다.

그야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선배도 아니고 동기가 캐묻는 것이니까.

하지만 조금의 의혹이라도 있다면, 오늘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흉수천자 할 때도 별문제 없었다고?"

"없었다고."

"포스트 엑스레이(post X―ray)는? 시술한 다음 찍었을 거 아니야."

"찍긴 했는데, 아직 확인 안 했……."

"뭐?!"

"아, 새끼. 더럽게 정색하네."

조진기가 인상을 팍 썼다.

곧 짜증 섞인 변명이 이어진다.

"야, 너만 열심히 일한 줄 알아? 네가 교통사고 환자 처리하는 동안 나도 바빴다고! 그 정도는 잠깐 뒤로 미뤄 둘 수 있는 거 아냐?"

"……."

등에 땀이 흐른다.

흉수를 빼낸 후 엑스레이를 확인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아무리 바빠도 그런 걸 소홀히 했다니?

점점 의심이 커진다.

‘잠깐. 혹시 환자가 문제가 생겼다면 간호사들이 놓치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스테이션을 바라보는데…….

하필 간호사들의 인계 시간이다. 서로 인계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점차 의료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지금 빨리 열어 봐."

"뭘?"

"엑스레이 말이야!"

"아 새끼, 더럽게 보채기는. 확인하면 될 거 아냐?"

조진기는 투덜대며 모니터에서 엑스레이를 확인한다.

"어…… 흉수가 그대로 있네? 어쩐지 찔러도 잘 안 나오더니. 다시 한번 해 볼까?"

조진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왼쪽 폐만을 쳐다본다.

하지만 내 시선은 반대쪽 폐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젠장, 이게 뭐야?!

순간,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말했다.

"너 이거 안 보이냐?"

"뭐?"

"지금 물이 차 있는 반대쪽에 기흉이 이만큼 생겼는데?"

"엇?"

곧 조진기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녀석도 엄연히 연국대병원의 인턴이다. 이쯤 되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분명히 치료한 건 왼쪽 폐인데 오른쪽에 기흉이 생겼다?’

곧 내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오른다.

이 자식, 설마…….

"너 혹시 반대쪽 폐 찌른 거 아냐?"

내 물음에 조진기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어붙는다.

<터널 시야 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마치 터널 속에 들어갔을 때처럼, 주변이 온통 깜깜하게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오랜만에 술기를 하게 된 조진기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환자 어딨어?"

나는 다급히 물었다.

만약 조진기가 반대쪽 폐를 찔렀다면 최악의 상황이다.

그나마 멀쩡히 기능하고 있던 한쪽 폐를 찔러서 구멍을 내 버린 것이니,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자…… 잠깐!"

와락!

갑자기 녀석이 내 옷자락을 붙잡는다.

그리고 필사적인 표정으로 말한다.

"선한아, 나 이거 알려지면 진짜 이번 달 인턴 평가 망해."

"뭐?"

"안 그래도 손에 깁스한 것 때문에 그동안 눈칫밥 많이 먹었는데……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안 되겠냐?"

뭐라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조진기가 개미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기흉 작으니까 놔둬도…… 되지 않을까……."

"야 이 미친 새끼야."

내 목소리가 낮아진다.

의사가 되고 나서, 이렇게까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적이 없다.

"웃기지 마. 네 인턴 점수가 문제가 아니라, 너 때문에 환자가 죽는다고!"

움찔―

내가 다그치자, 녀석이 뒷걸음질 친다.

"환자 어딨어? 이거 찍은 지 30분 된 엑스레이야! 환자 어디냐고!"

"A―8구역이야……."

타다닥!

나는 환자를 향해 뛰어갔다.

촤아악!

커튼을 열자 혼자 누워 있는 60대 노인 환자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쇄골 위가 깊게 들어가며 호흡이 굉장히 빠르다.

말을 하기도 힘들 정도로 숨을 가쁘게 쉬며, 손짓과 표정으로 현재 힘든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코에는 산소공급기(nasal O2)가 들어가고 있지만, 산소포화도(saturation)는 53%를 보여 주고 있다.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알람이 울리고 있지만, 응급실이 전쟁 통이라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거였구나!’

꿈에서 보았던 미래.

인턴 실수로 의료소송을 당하는 미래가 눈앞에 현재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산소 주입량을 늘리면서 외쳤다.

"여기 페이셜 마스크(facial mask) O2 준비해 주세요!"

내 커다란 목소리를 들은 간호사가 깜짝 놀라며 멀리서 달려온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조진기는 얼어 버린 채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나는 녀석을 다그쳤다.

"가만있지 말고 여봉철 선생님한테 엑스레이 보여 주고 TS(흉부외과) 컨택해!"

"아, 알았어!"

녀석도 이쯤 되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기에 후다닥 뛰어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환자에게 집중했다.

생각해 보자!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지?

환자는 현재 기흉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기흉(氣胸)이란, 공기가 없어야 하는 가슴 안쪽에 공기가 존재하는 상태를 뜻한다.

폐가 원활하게 다시 숨을 쉴 수 있도록 서둘러 공기를 빼 주는 것이 정답이다.

―바늘 흡인(needle aspiration).

나는 빠르게 결론을 내린 후 외쳤다.

"16G 니들(needle) 가져다주세요!"

"예!"

간호사 선생님이 신속히 움직이고, 곧 내 손에 날카롭고 긴 바늘이 쥐어진다.

멈칫―

나는 바늘을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했다.

……이걸 내가 하는 게 맞나?

어쩌면 나보다 능숙한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환자는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헐떡이고 있다.

연령이 높은 노인인 만큼, 이 상태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래, 해야 돼.’

나는 고민을 멈추었다.

내가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순간에도 환자는 호흡곤란을 호소하고 있다.

의사로서 이걸 가만히 두고 본다는 것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방치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아무리 빨라도 흉부외과에서 오려면 10분은 걸린다. 지금 내 손으로 뭔가를 하지 않으면 늦어!’

스스로의 결심에 확신을 싣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손으로 이 환자의 미래를 바꾸고 싶다.>

두근, 두근―

심장이 거칠게 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충동이 일어난다.

나는 교과서에서 보았던 대로, 유두 상방에서 갈비뼈 윗면으로 날카로운 바늘을 밀어 넣었다.

푸욱!

환자의 가슴에 바늘이 들어간다.

60세 노인의 몸이 움찔하고 경련한다.

‘아직 얕아, 더 깊게…….’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바늘이 끝까지 들어가자, 곧 환자의 몸 안쪽으로부터 바람 새는 소리가 빠져나온다.

슈우욱―

곧 환자의 호흡수가 조금씩 느려지고, 산소포화도가 83까지 회복된다.

그리고 그 순간.

"커헙―"

페이셜 마스크에 가려진 환자의 입에서 급하게 호흡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됐어!’ 일단 환자를 살려 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간호사들은 CPR 상황에 대비하여 e―cart를 가져오고 기도삽관을 준비하고 있다.

그때 등 뒤에서 통화하며 달려오는 여봉철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섭아, 여기 진짜 급하다. 양쪽 체스트 튜브(chest tube) 다 넣어야 될 것 같……."

곧 그가 도착하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말한다.

"신선한이! 지금 뭐 했어?"

여봉철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인턴인 내가 독단적으로 응급처치를 했으니 기겁할 만하다.

"미칬나! 누구 맘대로 응급처치를……."

막 호통을 쏟아 내려던 여봉철은, 곧 내가 한 처치를 살펴본 뒤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일단 SpO2(동맥혈 산소포화도)는 올랐네, 흉부외과에서 금방 내려올 거니까 나와 봐라!"

곧 여봉철 선생이 나와 손을 바꾼 뒤 간호사에게 외친다.

"쓰리웨이(3―way)랑 50cc 실린지 주이소!"

"여깄습니다!"

"신선한, 중간에서 니가 좀 도와라."

"예!"

여봉철은 50cc 주사기로 환자의 가슴에서 공기를 뽑아내기 시작한다.

슈욱, 슈욱―

두꺼운 팔뚝으로 공기를 뽑아내는 모습은 흡사 공사판에서 펌프질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동안 나는 세 갈래로 만들어진 쓰리웨이 커넥터의 밸브를 90도씩 돌려 가며 작업을 도왔다.

단순한 반복 작업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환자의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는 것이 보인다.

"환자분, 좀 어떠십니까?"

여봉철이 묻는다.

환자는 겨우 숨쉬기가 편해졌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쉰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여편네가 잠시 나갔는데, 숨이 너무 차서 죽는가 싶었소…… 소리도 못 내겠더라고……."

"이제 괜찮으실 겁니다."

여봉철이 환자를 다독인다.

환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치솟는다.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았는데 오히려 숨이 더 쉬기 힘들어졌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하지만 노인은 불평을 하기는커녕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숨이 안 쉬어져서 이래 죽는가 싶었는데 역시 의사 양반들이 봐주니까 훨씬 편하네요…… 감사합니다."

"……."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의사를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는 환자의 앞에서, 차마 우리 쪽의 실수를 고백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진 가운데, 흉부외과에서 덩치가 커다란 의사가 도착했다.

‘이 사람은?’

나는 고개를 힐끗 돌려 그의 가슴에 쓰인 이름을 바라보았다.

<흉부외과 마동섭>

인상이 강한 사람이다.

여봉철 선생이 산도적이라면, 마동섭 선생은 흡사 야생 곰 같다.

둘이 나란히 서니 압박감이 두 배!

만약 흰 가운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움찔하고 겁먹을 정도의 외모다.

"봉철이."

"어, 동섭이 왔나?"

"수고했다! 이제 우리가 알아서 할게."

"면목 없네. 잘 부탁한다."

여봉철과 마동섭이 짧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어깨를 툭 치고, 곧 환자는 흉부외과의 소관으로 넘어갔다.

마동섭 선생이 소독을 하고 흉관삽관을 준비하는 동안, 여봉철이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인턴들, 잠깐 따라온나."

그렇게 말하는 눈초리가 매섭다.

역시, 여봉철 선생의 성격상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아무래도 한바탕 응급실이 뒤집어질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다.

* * *

회의실.

불길한 적막이 감돈다.

우리 인턴 4명을 세워 두고, 여봉철은 벌게진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 머리 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이다.

원래 다혈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평소보다 훨씬 더 화가 난 듯하다.

"우리 응급실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보는 건 처음이다."

"……."

"명색이 연국대 인턴이라는 놈들이, 엑스레이 좌우 정도는 구분해야 할 거 아이가!"

여봉철이 버럭 소리친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분명 우리 4명 중 잘못한 것은 조진기 한 명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변명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다.

"……."

"……."

모두 같은 생각인지, 소담이와 중원이 형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다.

다만 옆에 있는 조진기만 불안한 듯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것이 느껴진다.

"안 그래도 반대쪽 폐에 물이 다 차 있어 기능도 못 하고 있는 환자한테, 멀쩡한 쪽에다가 뉴모(pneumo ― thorax, 기흉) 만들어 놨으니…… 그래 놓고 엑스레이도 제대로 확인 안 해?"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럴수록 조진기의 어깨는 더욱 움츠러든다.

"정신 안 차리나? 환자 죽이고 싶어? 느그들 살인자야 의사야?!"

덜컥!

그때, 몇 명의 레지던트들이 문을 열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에도 짜증이 한가득 섞여 있다.

"아까 쏘라(thoracentesis) 반대편에 한 새끼 있다며?"

"나 참, 어이없네. 도대체 누구 짓이야?!"

일이 점점 커진다.

데굴데굴.

조진기의 눈알 굴리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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