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5화 (15/241)

#15 우리 중에 말리그가 있다(6)

‘아, 기억났다!’

소담의 눈이 커졌다.

<반진호>.

생각해 보니, 유명 아이돌 그룹의 멤버 이름과 똑같다.

‘설마하니 그 반진호는 아니겠지?’

소담은 속으로 픽 웃었다.

아무리 연국대병원이 유명하다 해도, 새벽부터 연예인이 응급실에 올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간호사의 말이 이어진다.

"20분 전부터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선생님들 일이 쌓여서 못 봐주고 있는 것 같아요."

"20분이나……."

꽤 긴 시간이다.

아마 환자는 지금쯤 방광이 가득 차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갑자기 소담이의 가슴에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불타오른다.

인턴이 되고 난 뒤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아니, 처음이었다.

그만큼 소담은 어느 때보다 의욕적이고 들떠 있는 상태였다.

"하실 수 있겠어요? 다른 선생님 부를까요?"

"아뇨, 제가 할게요."

소담은 당당히 가슴을 펴며 어사인 버튼을 눌렀다.

왠지 오늘만큼은 실수 없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CIC(Clean Intermittent Catheterization).

요도구멍에 카테터를 삽입하여 소변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술기를 말한다.

요도에 문제가 있거나, 척수신경에 장애가 있어서 소변을 자가 배출하지 못하는 환자는 소변을 주기적으로 빼내 줘야 한다.

안 그러면 방광이 터져 버릴 테니까!

소담은 d―set에 젤리를 짜고 14 Fr. 넬라톤(nelatone, 고무관)과 장갑을 준비하여 환자에게 향했다.

‘B―7 자리니까…… 여기인가.’

촤악!

소담은 커튼을 열었다.

그러자 안쪽에서 끙끙거리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소담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헉…… 진짜 그 반진호잖아?’

모자와 마스크로 가리고 있지만, 딱 봐도 일반인의 외모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세 아이돌.

차세대 월드스타 유망주라고 불리는 카리스마 래퍼, 반진호(Vanzino).

그는 고간을 붙잡고 끙끙대다가 겨우 말했다.

"선생님, 오줌보 터질 거 같아요."

"……."

소담의 머리가 하얘졌다.

소위 말하는 뇌정지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주관식]

평소에 모니터 너머로 보던 아이돌이 소변줄을 넣어 달라고 병원으로 찾아온 기분을 서술하시오. (5점)

‘아이돌 환자라니…… 세상에.’ 물론 선배들에게 들은 적 있다.

연국대병원에 연예인 환자들도 심심찮게 찾아온다는 것을.

주로 인적이 드문 밤중이나 새벽에 응급실로 오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잠시 후, 소담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정신 차려!’

지금 이 순간, 상대는 연예인이 아니라 한 명의 환자일 뿐이니 최선을 다해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

환자는 20세의 남자.

요도협착으로 비뇨기과에서 수술을 받은 병력이 있는 환자이다.

요도협착은 수술 후에도 다시 재발되는 경우가 많기에 이렇게 응급실에 찾아오는 상황이 종종 있다.

‘이번에야말로 환자를 잘 다뤄 봐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소담이 어색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좀 어떠세요?"

"어휴 선생님, 배가 불편해 죽겠어요…… 예전에 수술하고 나서 한동안 괜찮았는데 또 이러네요."

환자는 울상을 지었다.

아무 동행도 없이 혼자 온 것을 보니, 아마 수치심 때문에 남몰래 끙끙대며 응급실로 달려왔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비뇨기 질환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소담은 환자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척 말했다.

"비뇨기과 교수님 출근하시면 내려와서 봐 드릴 거예요. 그 전에 소변이 많이 차서 그것부터 좀 빼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환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당장 오줌보가 터져 죽을 것 같았는데, 드디어 치료를 받을 수 있다니 벌써 숨통이 트이는 모양이었다.

마치 고행길을 걷다가 하늘에서 구원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 표정이다.

소담이 장갑을 끼며 말했다.

"그럼 바지 벗으시고……."

"자, 잠깐만요. 선생님이 해 주신다구요?"

환자가 화들짝 놀랐다.

여자 선생님이 소변을 빼 준다고 하니 순간적으로 당황한 모양이다.

"혹시 불편하시면 다른 선생님 불러 드릴 수도……."

"어, 아뇨. 괜찮습니다!"

환자는 허둥지둥 환자복 바지를 내렸다.

안 그래도 20분이나 기다렸는데, 더 지체하다가는 정말로 방광이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쑥스러움을 신경 쓰기보다는 당장 육체적인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했다.

한편, 소담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번엔 잘할 수 있어.’

CIC.

이론상 너무나도 간단한 처치다.

요도에 얇은 줄 하나만 넣고 소변 통에 연결하면 끝이니, 동맥혈 검사에 비해서는 훨씬 쉽다.

‘이 정도 술기도 소화하지 못한다면 의사라고 할 수 없지.’

지금 이 순간, 소담의 머릿속에는 술기를 매뉴얼대로 잘 처리하는 것만 입력되어 있었다.

만에 하나 예외적인 상황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좀 차가울 거예요."

소담은 자신 있게 장갑을 끼고 넬라톤을 꺼내 그 끝에 젤리를 듬뿍 묻힌다.

덥썩―

먼저 왼손으로 환자의 성기를 붙잡는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넬라톤 끝을 잡은 채 요도를 향해 밀어 넣기 시작했다.

쑤욱―

"읏."

환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요도협착이 있는 환자라 그런지, 넬라톤이 원활하게 삽입되지 않는다.

‘잘 안 들어가네.’

소담은 눈을 찡그리며, 성기를 쥐고 있는 왼손을 고쳐 쥐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넬라톤이 더 이상 안 들어가면서 자꾸만 휘어진다.

미끄덩―

젤리를 듬뿍 묻혀서 그런지, 미끌미끌하게 자꾸 성기 주위를 감싸고 돌게 된다.

‘에잇…… 좀 들어가라!’

섬세하지 못한 손길로, 몇 번을 더 반복해서 시도해 본다.

꿈틀―

그때 소담이의 왼손에서 무언가 움직임이 느껴진다.

"환자분, 움직이면 안 돼요."

"그게 제 맘대로 되는 게……."

"조금만 참으세요."

"네, 네!"

소담은 왼손을 더욱 단단히 움켜쥐고 넬라톤을 밀어 넣었다.

그럴 때마다 환자가 숨을 삼키며 속으로 애국가를 열창하고 있다는 것을, 소담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휴, 여기가 고비였나 보네. 협착 부위는 통과한 것 같고…… 이제 배를 눌러서 소변 나오는지 확인해 볼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왼손에서 느껴지는 꿈틀거림이 점점 빠르게 단단해진다.

‘헉…… 뭐지?’

소담의 눈이 커졌다.

"선생님, 자, 잠깐만요."

환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20세 혈기 왕성한 남자인 반진호에게 이것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기가 이렉션(erection, 발기) 되고 만 것이다.

두둥!

‘으악! 깜짝이야!’

소담은 깜짝 놀라서 양손에 힘을 살짝 놓고 말았다.

쏘옥―

그때 성기의 요도로 넬라톤은 거의 다 들어가 버리고, 끝부분만 남아 있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소변이 분수처럼 밀려 나오기 시작한다.

주르르르―

"어어 어어어…… 선생님."

"으아악, 어떡해."

난리 났다.

그야말로 대참사.

소담은 황급히 소변이 샘솟는 곳으로 플라스틱 소변 통을 가져다 댄다.

동시에 넬라톤의 끝부분을 잡으려 손을 내밀지만, 넬라톤은 성기 안으로 미꾸라지처럼 쏙 들어가 버린다!

소담은 당황하며 어찌할 줄을 모른다.

진호 역시 당황하여 소담을 쳐다본다.

"선생님…… 이거 안으로 들어가 버린 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가 그만……."

발기를 해 버려서 죄송하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진호는 귀까지 빨개진 채 말을 잇지 못한다.

"어떡해……."

소담은 울상이 된다.

안타깝게도, 대학 때 공부했던 책에 이런 상황의 매뉴얼은 적혀 있지 않았다.

잠시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 보지만, 20세 진호의 성기는 하늘을 바라본 채로 힘을 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번 들어간 주황색 넬라톤은 방광 속으로 들어가서 꼬여 있는 건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저, 선생님."

"……."

"이거 어떡하죠."

환자와 의사, 둘 다 멘탈이 나간 상태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소담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얼른 비뇨기과에 연락해서 뒷수습을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국대학교 의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넬라톤 대참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화요일 출근길.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황당한 소식을 들었다.

"환자 성기에 뭐가 들어갔다고요?"

"그러니까 넬라톤을 요도에 넣다가…… 어휴, 내 입으론 더 이상 차마 말 못 하겠다."

중원이 형은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CIC 도중에 환자가 발기를 해서 소담이가 실수를 한 모양이다.

"아이고."

나는 얼굴을 쓸었다.

온갖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병원이지만, 이런 해프닝은 상상조차 못 했다.

물론 가장 놀란 것은 환자 본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성기 안으로 의료 도구가 들어간 것이니 얼마나 기겁했을까?

아마 소담이도 깜짝 놀라서 제정신이 아니었겠지.

"그래서, 소담이는요?"

"안 그래도 지금 면담 중이다."

회의실 안쪽을 힐끗 들여다보니, 여봉철 선생이 소담이를 앉혀 놓고 대화를 하고 있다.

반쯤 열려 있는 문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함소담, 아무리 놀랐어도 그렇지 치료 도중에 넬라톤을 놓쳐 버리면 우짜노."

"죄송합니다……."

"원래 비뇨기 환자들은 남자 의사들이 치료할 때도…… 그…… 발기되는 경우가 많아. 심지어 내가 할 때도 몇 번…… 아무튼 그런 상황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어야지."

"네……."

소담이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여봉철도 너무 상처받지 않게 최대한 조곤조곤 타이르는 모습이다.

중원이 형이 혀를 쯧쯧 찼다.

"소담이 쟤도 참 안쓰러워. 왜 하필 오늘따라 일찍 출근해서."

"일찍 출근했다고요?"

"그래.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 도와주다가 이 사달이 난 거야."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설마…….

‘내가 북돋아 준 게 오히려 독이 된 건가?’

제기랄,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의료사고를 막으려고 했던 행동이 이런 결과로 이어질 줄이야!

‘미래를 바꾸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구나.’

크나큰 교훈을 얻었다.

어쨌거나 이미 벌어진 일,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래서 환자는요?"

"자연적으로 넬라톤이 배출되지 않아서, 지금 비뇨기과에서 시술로 빼는 중이란다."

"혹시 환자가 이것 때문에 의료소송을……."

"응, 의료소송?"

내 혼잣말에 중원이 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오히려 자기가 의사한테 미안하다고 했다더라. 그런데 너는 근데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신났냐?"

마지막 말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스테이션 한쪽 구석에서 스마트폰에 집중하던 조진가 실실 웃으며 고개를 든다.

"단톡방에 현황 중계하는 중이요."

"넬라톤 사건?"

"크크…… 재밌잖아요. 동기 애들도 다 웃고 난리 났어요. 진짜 역대급 사건이라고."

벌써 신나게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하긴 뒷담쟁이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쯧.’

나는 혀를 찼다.

이제 와서 말려도 소용없다.

어차피 이런 자극적인 사건은 빠르게 소문이 돌게 되어 있으니까.

[연서] : 오빠, 소담 언니 사건 진짜예요? 어떡해 ㅠㅠㅠㅠ

[근욱] : 야 ㅋㅋㅋㅋ 넬라톤 실화냐? 여기까지 벌써 소문이 났다. 근데 진짜 그 반진호 맞음?

안 그래도 내 스마트폰으로도 몇 개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다.

나는 씁쓸히 한숨을 쉬었다.

대체 소담이를 어떻게 해야 연쇄적인 실수의 늪에서 구원할 수 있을까?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진호 환자는 무사히 퇴원했다.

다행히도 성기 안으로 숨어 버린 넬라톤을 방광경을 통해서 빼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혹시 내 성기를 잘라야 하는 거냐, 앞으로 성불구자 되는 거 아니냐고 환자가 울음을 터트리는 해프닝이 한 차례 있었다.

차세대 월드스타, 카리스마 래퍼 반진호의 대성통곡에 모두가 숙연해지고 말았다.

다행히 연국대 비뇨기과의 능숙한 처치로 인해 그런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환자도 소문이 나는 것을 원치 않으니, 이대로 조용히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다.

한편 소담이의 멘탈은 바닥을 뚫었다.

"나는 등신이야."

비상구 계단참에 혼자 쭈그려 앉은 소담이가 중얼거렸다.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소담이의 옆에 앉았다.

소담이는 자괴감에 빠진 채 머리를 헝클이며 중얼거렸다.

"환자가 얼마나 놀랐을까? 갑자기 성기 안으로 의료 도구가 들어가 버렸으니."

"……."

"나는 진짜 의사 하면 안 되는 인간인가 봐……."

그렇게 말하며 점점 더 쭈그러든다.

내가 할 말을 잃고 먼 산을 바라보자, 소담이는 미안한 듯 말한다.

"선한아, 고맙긴 한데…… 나 신경 안 써 줘도 돼."

"어떻게 그러냐."

"아냐 정말 괜찮아. 그냥 인턴 생활 어떻게든 남들 눈에 안 띄게 버티다가 나중에 환자 볼 일 없는 과로 가면 돼."

"아니 그러니까……."

네가 다음번에 실수하면 다 같이 망한다고!

나는 겨우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켰다.

어떻게든 의료소송이라는 최악의 사건만은 피하고 싶다. 환자와 의사 모두를 위해서.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소담이에게 무슨 말을 해 봤자 역효과만 날 것 같다.

"좀 더 같이 있어 줄까, 아니면 혼자 진정시키고 올래?"

"먼저 들어가."

"그래."

나는 소담이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남은 20일간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조금이라도 정보가 더 필요한데…….’

그때, 머릿속에 무언가 중요한 힌트가 떠올랐다.

‘아!’

왜 진작 생각 못 했지?

이미 내가 본 미래에 몇 가지 힌트가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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