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7화 (7/241)

#7 인턴 신선한(6)

"비켜요!"

탁탁탁!

흉부외과 의사들이 문을 열고 달려온다.

그들 옆의 커다란 기계가, 한눈에 보기에도 에크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크모(ECMO).

심장이 위태로운 환자들의 ‘마지막 생명줄’이라고 부른다.

인공호흡, 심폐소생술, 심장마사지 등으로 소생 가능성이 없을 때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즉, 현재로서는 시간을 벌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흉부외과 의사 중 한 명이 뛰어와 나에게 물었다.

"시간 얼마나 됐어요?"

"6사이클째니까…… 12분입니다!"

"미리 연락받아서 다행이네."

그들은 신속하게 기계를 환자 옆에 옮겼다.

<흉부외과>.

대학병원의 자부심.

그중에서도 연국대학교 흉부외과는 대한민국 톱클래스로 불린다.

선두에 있던 여자 의사가 말했다.

"양쪽 페모랄(femoral, 대퇴부) 쓸 테니까 물러나세요."

마치 고요한 물처럼, 침착하고 차분한 음색이다.

어수선하게 환자 주위에 몰려 있던 인원들이 움찔하고 뒷걸음질 쳤다.

<흉부외과 송유주>

그녀의 가운 위에 이름이 그렇게 적혀 있었다.

펄럭!

곧 흉부외과의 두 명이 능숙한 솜씨로 드렙(drape, 소독 방포)을 폈다. 마치 즉석에서 수술방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송유주 선생이 마스크와 모자를 쓴 채 말했다.

"에크모 인서션(insertion, 삽입) 시작합니다."

"선배. 컴프레션 중이라 환자 많이 흔들리는데, 괜찮을까요?"

"상관없어."

곧 송유주 선생이 흔들리는 환자의 허벅지에 손을 얹는다.

스윽―

그녀의 신중한 눈길이 환자의 몸을 살핀다.

긴박한 상황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medial side(내측)부터 시작해서 V A N ……. 일단 vein(정맥)부터 잡자."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송유주 선생이 환자의 허벅지에 니들(needle, 바늘)을 찌른다.

푸욱―

아래위로 흔들리는 와중에 혈관을 찾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송유주 선생의 손길은 망설임이 없었다.

얼마 되지 않아 실린지(syringe, 주사기)에 검붉은 피가 올라온다.

주변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울려 퍼졌다.

"와, 역시 유주."

"선배는 손가락에 초음파라도 달렸습니까?"

주위에서 혀를 내두르는데, 정작 본인은 냉정하다.

"헛소리들 말고. 가이드와이어(guidewire)."

"예!"

바로 옆에 있던 의사가 와이어를 준비했다.

뱀처럼 또르르 말려 있던 가이드와이어가 환자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초음파로 심장을 살펴보던 의사가 말했다.

"IVC(하대정맥)에 가이드와이어 들어온 거 보입니다."

"다음, artery(동맥)."

송유주 선생의 침착한 목소리에 따라, 흉부외과의들이 반대쪽에서 다음 바늘을 꽂을 준비를 한다.

‘대단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물이 흐르듯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인턴인 내 눈으로 보기에도, 송유주 선생의 실력과 리더십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환자 반대쪽에 있는 흉부외과의는 상대적으로 초심자인 듯하다.

송유주 선생이 침착히 지시했다.

"안경, 집중해. 옥시저네이션(oxygenation, 산소 공급) 되고 있으니까 동맥은 선홍색일 거야."

"알겠어요, 선배님."

두꺼운 안경을 쓴 반대편의 레지던트가 식은땀을 흘리며 신중히 바늘을 꽂는다.

몇 번 헤매던 그의 손끝에서 선홍색의 밝은 빛깔의 피가 실린지로 차올랐다.

그때 안경 레지던트의 눈이 커졌다.

"어엇, 선배님…… 갑자기 리거지(regurge, 주사기로 피가 빨려 나오는 것) 안 돼요!"

"가만히 있어 봐."

곧이어 송유주 선생이 날카롭게 지시한다.

"인턴들, 컴프레션 스톱!"

우뚝!

송유주 선생의 한마디에, 심폐소생술을 하던 인턴들이 얼음장처럼 멈춘다.

모두의 시선이 반대편의 실린지로 향한다.

"자. 다시 조금씩 움직이면서 실린지 당겨 봐."

"예……."

안경을 쓴 레지던트의 손이 조심스레 움직이고, 곧 다시 선홍색의 밝은 피가 실린지로 차오른다.

"됐어?"

"예."

"그럼 이제 천천히 가이드와이어 밀어 넣어."

"알겠어요……."

"조금이라도 저항 느껴지면 바로 멈춰야 돼. 힘으로 밀어 넣으면 혈관 망가지고 환자 죽는다."

"으……."

안경 레지던트가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레 와이어를 집어넣는다.

스윽―

다행히 가이드와이어는 문제없이 들어갔고, 지켜보던 의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의 과정은 모두 순탄했다.

"에크모 온(ON)."

"플로우 잘 나옵니다. 리서큘레이션(recirculation, 재순환)도 없는 것 같구요. 좋습니다."

"수고했어."

송유주 선생의 한마디에 모두들 긴장이 풀어진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나 역시 숨을 쉬지도 못할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기에 온몸에서 진이 빠졌다.

‘……살린 건가?’

나는 벽면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03시 22분―

정확히 꿈에서 본 사망 시각과 일치한다.

하지만 김정수 환자는 죽지 않았다. 제2의 심장인 에크모와 연결되어 생명을 연장한 것이다.

이제 원인을 찾아 수술이든 시술이든 문제를 교정하면 된다.

힐끗 옆을 보니, 김뱀은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동공이 흔들린다.

그때 내과 당직 교수가 허겁지겁 도착했다.

"무슨 일이야?"

김뱀이 망설이다 대답한다.

"새벽에 갑자기 V.fib 생겨서 CPR 반복했었고…… 리듬이 돌아오지 않아 TS(흉부외과)에서 에크모 삽입했습니다."

"에크모?"

교수가 놀란 눈으로 흉부외과 의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송유주 선생이 마스크를 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내과에서 미리 연락 줘서 늦지 않았습니다."

"잘했다, 잘했어."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 상황이 정리되고, 의사들은 서로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것은 분명, 꿈에서 본 미래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 * *

목이 바짝바짝 탄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는 보호자 휴게실의 자판기 앞에 서서 주머니를 뒤졌다. 젠장, 꼭 이럴 때 동전이 없다.

"돌겠네."

쿠웅―

차가운 자판기에 이마를 처박고 열을 식혔다.

잠시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내가 본 게 정말로 미래의 일이었다는 거지?

"괜찮아요?"

그때 연서가 다가와 말했다.

"안색이 안 좋은데, 컴프레션 너무 열심히 한 거 아니에요?"

"난 괜찮아. 너는?"

"전 앰부만 짰는데요, 뭘."

그렇게 말하는 연서의 눈빛이 어쩐지 들떠 보인다.

얜 또 왜 이렇게 신났어?

"방금 흉부외과 선배들, 진짜 멋있었죠!"

"아, 어어."

"특히 송유주 선배님! 진짜 카리스마 대박이었어요! 나도 나중에 저 언니처럼 멋있는 의사 되고 싶다!"

마치 아이돌이라도 영접한 것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이다.

연서의 말에 따르면, 송유주 선생은 흉부외과 레지던트 3년 차라고 한다.

실력이 좋고 리더십이 있어서 교수들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다.

3년 전, 모든 과에서 A+ 등급을 받으며 ‘올해의 인턴’으로 등극한 인물이기도 하다.

‘역시, 딱 봐도 대단해 보였어.’

나는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침착하고 자신감 있게 현장을 휘어잡던 모습.

내가 앞으로 인턴 생활을 하며 닮아 가야 할 표본이 있다면 그런 모습이겠지.

"그나저나 도대체 어떻게 알았어요? 김정수 환자 V.fib 재발할 거라는 거."

"그게……."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단순히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모든 디테일들이 맞아떨어졌다.

정말로 꿈에서 미래를 보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냥, 감이었어."

"감이요?"

"응."

"그것참 오빠의 이름만큼 신선한 대답이네. 신선한 씨, 저한테 뭐 숨기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럽게 내 눈을 쳐다본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난처하다.

"어이, 인턴들."

그때 김뱀이 우리의 대화를 끊으며 휴게실로 들어왔다.

"김범수 선생님."

"음료수 안 뽑을 거면 비켜."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종잇장처럼 핼쑥하다.

스트레스로 단시간에 탈수라도 온 걸까?

자신이 담당하던 환자가 방금 죽을 뻔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김뱀은 떨리는 손길로 자판기에 동전을 집어넣다가, 나를 향해 툭 내뱉듯 말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있지."

"예?"

"이번에는 용케 네 말이 맞았다. ICU로 내리고 에크모 팀에 연락한 게 신의 한 수였어."

김뱀이 힘없이 말한다.

그러다가 홱 하고 나를 사납게 노려본다.

"그래도 인턴 주제에 자만하지 마!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니까. 무슨 말인지 알았어?"

"예."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싸움해 봤자 좋을 게 없으니, 이럴 때는 겸손 모드로 가는 게 최고다.

김뱀은 이온 음료를 뽑고 돌아서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야."

"예?"

"너 마셔."

"……?"

"고생했다."

비척비척.

김뱀은 어색한 발걸음으로 휴게실에서 사라졌고, 연서와 나는 그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뭐냐, 이 뻘쭘한 상황은.

연서가 말한다.

"오빠, 아무래도 점수 딴 거 같은데요."

"그래?"

"저 선배가 생전 남한테 뭘 주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김뱀이 음료수를 줬다는 건 거의 사랑 고백이에요."

몰라. 뭐야 그거.

그딴 거 받고 싶지 않아.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연서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왜요, 잘됐죠! 월말에 내과 평가는 좋게 받겠네!"

연서가 축하한다는 듯 내 등을 팡팡 두드린다.

그런가?

……뭐,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겠지.

오늘은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말자. 그랬다간 머리가 과부하로 터질지도 모르니까.

* * *

같은 시각, 흉부외과 의국.

송유주는 김정수 환자의 EMR(전자의무기록)을 켜고 시술 과정을 기록하고 있었다.

에크모를 삽입했다고 치료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가 치료의 시작이고, 심장의 문제를 찾아서 교정하는 과정까지 꼼꼼한 관리가 필요하다.

타다닥.

그녀의 손이 키보드 위를 바삐 움직인다.

모자와 마스크를 벗은 그녀는 날카롭고 다부진 고양이 같은 인상이다.

"잘 끝냈냐?"

그때 곰처럼 덩치가 커다란 의사가 들어오며 말했다.

마동섭.

송유주와 같은 3년 차 레지던트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거인국과 소인국의 만남처럼 보인다.

"또 막대 사탕? 그러다 이 썩는다."

"폐 썩는 것보단 낫잖아."

"담배 대용이야?"

"2년째 금연 중이시다."

송유주는 막대 사탕을 깨물었다.

인턴 시절 애연가였던 그녀는 흉부외과의가 되면서 담배를 끊었다.

매일같이 폐암 환자들의 폐를 눈으로 보고 있자면 흡연 생각이 싹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끔 입에 뭔가를 물고 싶을 때는 이렇게 군것질이라도 해야 욕구를 참을 수 있는 것이다.

마동섭이 물었다.

"안경은 잘하디? 네 옆에서 에크모 한번 넣어 보겠다고 잔뜩 설레서 따라가던데."

"벌벌 떨더라."

"예쁘게 좀 봐줘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다 그렇게 배우면서 크는 거지."

"난 처음부터 잘했는데?"

"잘났다."

마동섭은 피식 웃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녀는 의국 내에서도 S급으로 소문난 인재다. 가끔 보면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기도 하다.

"하긴 넌 인턴 때부터 뭐든 잘했으니까."

마동섭의 눈빛이 감회에 젖었다.

인턴 시절, 송유주를 서로 데려가려고 모든 과에서 경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랬던 그녀가, 비인기 전공인 흉부외과를 선택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터리였다.

물론 송유주 한 명이 든든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흉부외과는 인력난으로 허덕이는 상황이다.

마동섭이 문득 손뼉을 쳤다.

"아. 그나저나 내과에 희한한 인턴 한 명이 있는데."

"누구?"

"일운대 출신이란다."

"일운대? 그 망한 대학교?"

송유주가 되물었다.

일운대학교는 의료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의대가 폐교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름이 신선한이라고 했던가? 돌아갈 학교도 없어서 그런지, 내과에서도 엄청 열심히 한다더라."

"그렇겠지."

"그런데 재밌는 건, 방금 환자 조치가 그 인턴의 의견이었다는 거야."

"뭐?"

"인턴이 김뱀한테 달려가서 눈 똑바로 뜨고 얘기했단다. Refractory V.fib 예상되니까 에크모 넣어야 된다고."

멈칫.

송유주의 타이핑이 멈췄다.

……인턴 1개월 차면 햇병아리다. 위에서 던져 주는 일만 소화하기도 바쁜 시절이다.

그런데, 뭘 했다고?

심실세동 재발을 예측하고 그 상황에서 에크모를 떠올리는 것은 초짜 인턴이 할 수 있는 판단이 아니다.

"재밌지 않냐? 인턴 주제에."

그렇게 말하는 마동섭의 입가에는 흥미진진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좀처럼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송유주의 입에서도, 막대 사탕 끝이 미묘하게 달싹거리고 있었다.

송유주는 손가락으로 키보드 끝을 톡톡 두드리다 말했다.

"그러게, 인턴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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