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6화 (6/241)
  • #6 인턴 신선한(5)

    "뭐?"

    예상대로였다.

    나의 말이 끝나자 김뱀의 표정이 뒤틀렸다.

    그는 눈썹을 세우며 말했다.

    "아까 칭찬 좀 해 줬더니, 지금 나 가르치냐?"

    "그게 아니라……."

    "건방지게 감히 레지던트 3년 차에게 훈수를 두는 인턴이 있다? 이건 대체 무슨 경우라고 해석해야 되지?"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옆에 있는 연서도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다.

    고개를 들어 슬쩍 표정을 봤더니, 김뱀은 우리 두 사람을 조용히 노려보고 있다.

    제기랄.

    눈빛으로 사람 잡겠네.

    괜히 나의 오지랖으로 연서까지 끌어들인 건 아닌지 걱정된다.

    "환자들이 의사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니까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 누가 네 멋대로 환자 상태를 판단하랬어?"

    "……."

    "인턴이면 인턴답게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해도 절반은 가는 거야! 알아들어?"

    "예."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렇게 불편한 적막이 한동안 이어진다.

    젠장, 괜히 말했나.

    속으로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 그냥 조용히 숙소로 돌아가자. 내가 무슨 미래를 보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김뱀의 입이 열렸다.

    "신선한이라고 했던가?"

    "예."

    "네 의견을 더 말해 봐."

    "……예?"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건 예상치 못한 반응인데.

    "네 딴에도 나름 생각이 있었겠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김뱀은 내 눈을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진단과 치료는 의사의 기본 소양 아니야? 우리 신선한 의사선생님께서는 아무 대책도 없이 문제 제기를 하시는 분인가?"

    김뱀 특유의 비꼬는 말투가 이어진다.

    "왜, 막상 뱉어 놓고 나니 책임 못 질까 봐 겁나? 말 좀 해 보시죠. 신선한 의 사 선 생 님!"

    마치 독사 한 마리가 몸을 휘어 감는 기분이다.

    에라 모르겠다, 이쯤 되면 물러설 수도 없다.

    나는 똑바로 고개를 들고 말했다.

    "환자에게 에크모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에크모?"

    김뱀은 피식 웃었다.

    인턴 주제에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에크모(ECMO).

    심폐기능을 대신해 주는 체외 보조장치다.

    쉽게 말해 몸 바깥에 심장을 대신해 주는 기계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인턴 주제에 무슨 생각을 하나 했더니…… 일운대 실습 때 에크모 쓰는 거 보기는 했냐? 하긴 뉴스에 많이 나오긴 했지."

    김뱀이 가소롭다는 듯 말한다.

    그의 말대로 에크모는 널리 알려진 치료 수단이다.

    한국에서는 S 모 초거대기업 총수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사용했던 기계로 유명하다.

    2015년에는 메르스(MERS) 사건 때 에크모가 사용되어 기사화된 적도 있다.

    "에크모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야. 그건 극단적인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로 사용하는 거라고."

    "그래도 만일을 대비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뭐?"

    "현재 환자의 건강 상태, 그리고 박출률 35퍼센트라는 컨디션으로 보았을 때 refractory V.fib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

    김뱀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V. fib 발생했다가 돌아와서 잘 있는 환자가 다시 refractory V.fib이 올 것 같다고? 그게 지금 네 의견이야?"

    "예."

    ……젠장, 결국 저질러 버렸다.

    상대는 자존심 강한 레지던트다.

    인턴 주제에 이렇게 나댔으니 대체 무슨 반응이 돌아올까?

    확실한 건, 앞으로 나는 내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는 글렀다는 것이다.

    김뱀은 팔짱을 낀 채 한동안 내 말을 곱씹는 듯했다.

    몇 초 후.

    그의 입이 열렸다.

    "……뭐,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네."

    "……?"

    "의사라면 그 정도 판단력은 있어야지."

    응? 내가 알던 김뱀이 맞나?

    순간 할 말을 잃게 된다.

    나와 연서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김뱀은 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동섭이냐? 오늘 당직이지?"

    그가 상황을 설명한다.

    "다른 게 아니라 우리 과 인턴님께서 아주 귀중한 소견을 주셔서. 혹시 모르니 흉부외과에서 에크모 준비해 달라고 하는데."

    ‘인턴님’이라는 단어를 무척 강조해서 말한다.

    대놓고 면전에서 비아냥거리는 것을 듣고 있자니 괜히 얼굴이 화끈 붉어진다.

    김뱀은 통화를 끝낸 뒤 말했다.

    "흉부외과에 상황 설명해 놨고, 일단 중환자실로 내려놓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우리 인턴님이 하시는 말씀인데 잘 들어야지. 책임도 인턴님이 지실 거고. 안 그래?"

    김뱀이 이죽거리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하여간 끝까지 곱게 말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생각보다 덜 갈구네.’

    나는 김뱀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예상했던 것만큼 화를 내는 표정은 아니었다.

    어쩌면 성격이 뒤틀렸을 뿐, 그렇게까지 악독한 인간은 아닐지도 모른다.

    * * *

    .

    Intensive Care Unit의 약자로 중환자실을 뜻한다.

    이곳에는 일반 병동보다 많은 장비가 있어서 각종 상황에 대처하기 쉽다.

    일반 병동과는 달리, 위중한 환자들도 많고.

    그렇기에 이곳에 흐르는 긴장감은 병원 내에서 가장 밀도가 높다.

    환자의 이송이 끝난 뒤, 김뱀이 말했다.

    "이제 만족하냐?"

    "예."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 내가 너 같은 인턴은 처음 본다."

    "죄송합니다."

    "하여간 네 이름 석 자는 내가 딱 기억한다. 신선한."

    김뱀은 끝까지 이죽거리며 나를 갈군 뒤 사라졌다.

    그제서야 숨통이 트인 듯, 연서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오빠, 진짜 간도 크네요."

    "왜."

    "우리 선배님들 중 3대 빌런한테 눈 똑바로 마주치고 대꾸하는 인턴 처음 봤어요."

    "빌런?"

    처음 듣는 얘기다.

    무슨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악당들도 아니고.

    연서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병원 내에서 악명이 높은 인물들이 있는 모양이다.

    특히 김뱀은 대학 시절부터 후배들에게 까칠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연국대 출신이 아닌 나로서는 그저 생소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도 좀 멋있었어요."

    "멋있긴 뭐가."

    "아까 테스트할 때도 대답 잘했잖아요. 그리고 의사로서 자기 의견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도."

    연서는 히죽 웃었다.

    그래, 그런가 보다.

    나도 내가 뭔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질러 놓고 나니 속은 후련하네.

    "이제 그만 가요."

    "조금만 더 보자."

    "예?"

    "환자 조금만 더 지켜보고 갈게."

    연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렇게까지 걱정하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꿈에서 본 환자라서 신경 쓰인다고?

    만약 그랬다간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의혹이 해결되지 않았다.

    "죄송한데, 조금만 더 있다 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중환자실 주치의와 간호사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잠시 의자를 빼서 앉았다.

    연서도 하는 수 없다는 듯 의자를 준비한다.

    "너는 왜 남아?"

    "오빠가 안 가니까 나도 왠지 불안해서요."

    "들어가서 자."

    "싫어요. 저도 의사인데, 제 병동 환자가 어떻게 되는지 끝까지 봐야죠! 안 그래요, 신선한 의 사 선 생 님?"

    김뱀의 말투와 손동작을 따라 하며, 연서는 요지부동 자리를 지킨다.

    얘도 한 고집 하네.

    나는 별말 없이 환자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 * *

    삐익, 삐익.

    규칙적인 심박 리듬이 이어진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3시를 지나고 있다.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복잡하다.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든다.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만약 꿈의 내용대로라면…….’

    이제 곧 김정수 환자의 두 번째 CPR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럴 만한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괜한 걱정이었을까?

    하긴 그렇지.

    예지력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할 리가 없잖아?

    만약 존재한다 해도 그게 나한테 하루아침에 생길 리도 없고.

    ‘말도 안 되는 망상이야.’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퍼억!

    연서가 내 어깨로 돌진하며 맹렬히 이마를 부딪쳤다.

    ……아프다.

    연서가 두개골이 참 튼튼하구나.

    한참 긴장 중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맥이 풀린다.

    연서는 황급히 입술을 쓱쓱 닦더니 민망하게 말한다.

    "저 졸았어요?"

    "어."

    "……침 흘린 거 아니죠?"

    "침은 안 흘렸는데, 내 어깨뼈가 부러진 것 같아."

    "아 씨, 안 그래도 민망한데 놀리지 마요."

    연서가 눈을 흘긴다.

    나는 피식 웃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피곤하지? 이만 돌아가서 자자."

    "환자 더 본다면서요?"

    "이제 됐어, 충분히 본 것 같아. 아무래도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

    그렇게 연서에게 말하는 순간.

    삐이이익―――!

    "V.fib이에요!"

    간호사가 황급히 외쳤다.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놀라 시계를 쳐다보았다.

    꿈에서 보았던 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CPR!"

    곧 중환자실에 다시 한번 CPR 방송이 울려 퍼졌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움직였다.

    "연서야, 네가 앰부 짜 줘!"

    "알았어요!"

    나는 가운을 벗어 집어던진 뒤 환자의 몸 위로 올라탔다.

    젠장, 역시 꿈의 내용이 사실이었단 말이야?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머릿속은 터질 듯이 복잡했지만 몸은 머뭇거릴 새가 없었다.

    하나, 둘, 셋!

    열심히 가슴을 압박한다.

    타다닥!

    그때 중환자실 당직의가 부리나케 달려온다.

    "뭐야!"

    "V. fib입니다!"

    "이런 씨…… 손 바꿔!"

    어느새 다시 달려온 김뱀이 창백해진 얼굴로 나와 손을 바꿔 환자 위로 올라탄다.

    하나, 둘, 셋!

    곧 중환자실은 난장판이 된다.

    인턴들이 번갈아 가며 손을 바꿔 올라타고, 익숙한 대사가 재현된다.

    "앰부(ambu) 쥐어짜!"

    "오투(O2) 풀(full)로 틀어 주세요!"

    "인턴들 정신 안 차려?!"

    제기랄…….

    이 장면, 어디선가 본 것 같다.

    꿈에서 보았던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턴 컴프레션 잠깐 멈춰 봐!

    "리듬체크 합니다, 계속 V. fib입니다. 200줄(J) 차지!"

    "숔(shock)!!!"

    꽝!

    환자의 가슴에 전기충격이 들어간다.

    하지만 상황은 절망적이다.

    심장 리듬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상태가 호전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환자의 얼굴빛이 갈수록 잿빛으로 변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안 되겠다.

    모든 상황이 똑같다.

    이대로라면 사망이다.

    꿈에서 봤던 상황과 결국 달라질 것이 없는 것이다.

    결국 이게 한계인가?

    내 힘으로는 미래를 바꿀 수 없었던 것일까?

    나는 분한 마음에 이를 악물었다.

    그때, 어디선가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켜요!"

    탁탁탁!

    고개를 돌리자 몇 명의 의사들이 커다란 기계를 끌고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

    바로 흉부외과 의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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