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화 (1/241)
  • #1 프롤로그

    내가 의사가 된 날, 가락시장에 플래카드가 걸렸다.

    "아부지, 이런 것 좀 걸지 말라니까요."

    "가만있어 봐라. 이럴 때 자식 자랑 실컷 해 보지 언제 해 보겄냐?"

    아버지는 나의 만류를 뿌리치고는 기어코 인쇄 천을 펼쳤다.

    펄~럭.

    펼쳐진 플래카드에는 촌스러운 총천연색의 폰트로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경] 신씨횟집 셋째 아들 신선한 연국대 의사 되다 [축]>

    "이건 도대체 누가 디자인했어요?"

    "네 누나들이지."

    "하여간 센스 하고는……."

    "왜, 센스가 뭐가 어때서? 100미터 바깥에서도 보이게 아주 잘 만들어 놨구만."

    "바로 그게 문제라고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현수막 중앙에는 내 얼굴까지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아무래도 가족들이 오늘 나를 수치사시키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지나가던 시장 아주머니들이 꺄르르 웃는 소리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자고로 경사가 있으면 동네방네 쩌렁쩌렁 알려야 하는 법이지. 우리 집안에서 연국대병원 의사가 나올 줄 누가 상상했겄냐."

    아버지는 웃으며 감격스러운 듯 콧등을 훔쳤다.

    우리 집안은 3대째 장사꾼 집안이고, 아버지는 가락시장에서 30년째 횟집을 하고 있다.

    나처럼 소위 ‘사’ 자가 들어가는 직업이 탄생한 것은 우리 가문에서 아주 예외적인 이벤트다.

    그래서 가족들의 호들갑도 이해가 간다만…… 아무리 그래도 민망한 건 어쩔 수가 없다.

    고작 인턴 합격했다고 현수막 거는 집은 우리밖에 없을 거야.

    "선혜야, 선도야! 이리 와서 이거 거는 것 좀 도와라!"

    아버지가 큰 목소리로 누나들을 부른다.

    아버지는 생선회에 인생을 바친 사람이라 그런지 자식들의 이름도 기가 막히게 지었다.

    첫째 누나 이름 신선혜.

    둘째 누나 이름 신선도.

    막내아들인 내 이름 신선한.

    누가 봐도 장난 같지만 진지하게 지은 이름이란다.

    실제로도 우리 아버지는 신선하지 않은 생선은 절대 팔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30년째 양심적인 장사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식 이름까지 이렇게 지을 필요는 없었을 텐데, 워낙 황소고집인 사람이라 아무도 말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이름으로 얼마나 놀림받았는지는 말해 봤자 입만 아플 것이다.

    나는 나중에 자식 낳으면 예쁜 이름 지어 줘야지.

    "동생. 현수막 어때?"

    "구려."

    "이게, 밤 꼴딱 새워서 만들어 줬더니. 너는 뭘 해 줘도 지랄이냐."

    "기왕이면 좀 멋있게 만들어 주든가. 이건 무슨 관광나이트 전단지 같잖아."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야. 너 쪽팔리라고."

    둘째 누나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나를 괴롭히는 방법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인간답다.

    어릴 때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여자들에 대한 환상의 90퍼센트는 둘째 누나 때문에 깨졌다.

    반면 나머지 10퍼센트 정도를 그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큰누나 덕분일 것이다.

    "축하해, 우리 동생!"

    천사 같은 큰누나가 내 어깨를 주물렀다.

    "너 어릴 때 생각난다. 중학생 때부터 의사, 의사 노래를 부르더니, 이런 날이 결국 오는구나."

    "아직 인턴인데 뭘."

    "그래도 첫걸음이 반이라잖아. 이제 앞으로 승승장구할 날만 남았지!"

    "고마워, 누나."

    "갑자기 엄마 생각난다. 오늘 같은 날에 울 엄마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큰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음이 여린 큰누나는 가끔 급발진하듯이 감성에 빠질 때가 있었다.

    더 우중충한 분위기가 되기 전에 아버지가 검은색 매직을 꺼내며 소리쳤다.

    "에라 기분이다! 오늘 우리 가게 전 품목 50퍼센트 세일이다!"

    "안 돼 아빠! 우리 집 망해!"

    "놔라, 오늘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인께!"

    "언니, 아빠 팔 좀 잡아!"

    기겁한 둘째 누나가 현수막에 글자를 적으려는 아버지를 뜯어말리느라 한동안 소란이 벌어졌다.

    * * *

    왜 의사가 되고 싶었냐고?

    그건 아마도 10여 년 전, 중학생 때 보았던 어느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백의신>.

    희대의 천재 외과의사.

    아마 대한민국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몸을 바쳐 가며 환자들을 치료하던, 한국 의료계의 혁명가이자 순교자.

    거침없는 말투와 특유의 무덤덤하고 시니컬한 표정 때문에 더욱 인기가 많았다.

    오죽하면 한때 대통령 선거에 나와도 무조건 당선될 거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가 은퇴 전에 남겼던 숱한 어록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이 있었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인터뷰 장면이다.

    ―그럼 교수님께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좋은 외과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게 뭘까요?

    ―제가 아직 좋은 외과의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너무 겸손이 심하신 것 아닌가요? 세계 최고의 미국 메이요 클리닉에서까지 인정받는 ‘신의 손’ 백의신 교수님이신데요.

    ―저도 아직 갈 길이 머니까요. 다만 영미권에서는 예로부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외과의사에게 필요한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그게 뭐죠?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

    "개멋있다……."

    나는 TV를 보며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흐릿한 화면 너머의 백의신은, 언제나처럼 마르고 초췌했지만 두 눈만큼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백의신이 했던 말에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던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방황하던 어린 시절에 한 줄기 빛이 비추어진 기분이었다.

    어느 소설가가 말했던가?

    어둠 속에서 한 번이라도 찬란한 빛을 발견한 사람은, 남은 평생 그 빛을 향해 걸어가게 되어 있다고.

    물론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처음 본 모의고사에서 무려 7등급이 나왔는데, 꿈을 이루기엔 너무나 높은 첫 번째 벽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들아, 미안하지만 우리 집안에 공부 머리는 없단다."

    성적표를 가져온 날,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참 대단히 위로가 되네요.

    "차라리 공부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재능을 살려서 가업을 잇는 건 어떻겄냐? 기억이 날지 모르겠지만 너는 7살 때 이미 우럭을 완벽하게 해체할 수 있었단다."

    아버지는 살아오며 몇 번이나 반복했던 나의 무용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7살 때, 부모님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부엌칼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썰고 있었다고 한다.

    깜짝 놀란 부모님이 기겁을 하며 칼에서 떼어 놓았는데, 도마 위에는 완벽하게 손질된 우럭이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나는 생선 손질뿐만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손으로 하는 건 웬만하면 다 잘했다.

    바느질, 인두질, 칼질 등등…….

    내가 과일이라도 깎으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어쩜 이렇게 동그랗게 깎았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바느질을 하면 마치 새 옷처럼 감쪽같아서, 어릴 때부터 누나들의 옷 수선은 무조건 나의 몫이었다.

    나는 이 재주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해 보고 싶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꿈을 향해 달려 보지도 못하고 포기하게 된다면 평생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아버지, 저는 칼로 생선을 잡는 것도 좋지만 칼로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의사?"

    "예."

    "병원 가면 있는 그 의사?"

    "맞습니다."

    "우리 가문에서 나온 대굴빡으로는 쉽지 않을 터인디……."

    "한 번에 안 되면 여러 번 시도해서라도 무조건 의대에 갈 겁니다. 말리지 마세요."

    나는 강짜를 부렸다.

    황소고집은 우리 아버지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유전이라는 게 참 무섭더라고.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공부하겠다는 자식을 말릴 부모는 없기에, 나는 3수 끝에 간신히 가장 커트라인이 낮은 의과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합격한 뒤 열심히 다녔던 대학교도 지금은 망해서 없어져 버렸지만, 그건 말해 봤자 속만 쓰리니까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 * *

    그날 저녁에는 온 가족이 횟집에 모였다.

    대기업 계열사를 다니고 있는 매형이 내 소주잔을 가득 채워 주며 물었다.

    "처남, 그러면 이제 연국대 의사 되는 거야?"

    "아직 인턴이에요."

    "인턴이면 다 된 거 아냐? 우리 회사는 인턴 3개월 시켜 보고 웬만하면 정직원으로 합격시켜 주는데."

    "대학병원 인턴은 말 그대로 수련 과정이에요. 1년 뒤에는 아마 다른 병원에 있을 확률이 높아요."

    "아, 그래? 일반 회사 인턴이랑은 좀 다르구나."

    "좀 다르죠."

    나는 그렇게 대답한 뒤 고개를 돌려 술을 삼켰다.

    크으…….

    소주가 유난히 잘 들어간다.

    "쩝…… 그래도 연국대병원이면 대한민국 최고 아니야? 앞으로도 쭉 거기서 일하면 참 좋을 텐데."

    둘째 매형이 아쉽다는 듯 말한다.

    물론 나도 그러고 싶다.

    무엇보다, 연국대병원이라면 나의 롤 모델인 백의신 교수가 있었던 곳 아닌가!

    하지만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방대학교 출신인 내가 1년 뒤에도 연국대병원에서 일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물론 노력은 해 볼 생각이다.

    앞으로 1년, 내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의사로서의 미래가 결정될 테니까.

    "어허 이 사람들, 우리 아들에게 부담 주지 말게!"

    "욕심나서 그러지요. 연국대병원 의사가 처남이라면 살면서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흐흐."

    "예끼 이 사람아. 병원 안 가고 살 생각을 해야지, 의사 덕 볼 생각부터 하는가."

    "쩝…… 그나저나 장인어른, 뭘 그렇게 보물처럼 싸 들고 오십니까?"

    "어, 이거?"

    아버지는 히죽 웃더니 마치 보물 상자라도 여는 것처럼 조심스레 락앤락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장인어른, 이거 참치 눈알 아닙니까?"

    "어허, 자네 눈에는 이게 보통 참치 눈알로 보이는가? 자세히 잘 보게."

    아버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보통 참치 눈알과는 다르게 색깔이 영롱하다.

    덩그러니 분리되어 있는 눈알이 왠지 나를 째려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미식에 관심이 많은 매형들이 대번에 관심을 보였다.

    "황금색이네."

    "희한하네. 어째 이런 색이 다 있대요?"

    "어제 방 씨네 집에 들어온 물건인데, 하도 기가 막혀서 내가 대가리만 따로 챙겨서 얼려 놨지. 좋은 날 우리 아들 줄라고, 흐흐흐흐."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는 한바탕 썰을 풀기 시작한다.

    조선시대 거문도였다던가, 아무튼 어느 섬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늙은 어부는 슬하에 사내자식이 하나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앞을 못 보고 몸이 허약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무언가 보신이 될 만한 걸 먹이고 싶었지만 가난한 탓에 그러지 못하고 끙끙 근심만 깊어질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바닷가에서 황금빛을 보았는데, 그물을 던져 잡아 보니 눈알이 상서롭게 빛나는 물고기였다고 한다.

    어부는 그날 저녁 그 물고기의 눈알을 푹 고아서 아들에게 먹였다.

    그 후 아들은 눈이 맑게 뜨이며 총명해지고, 급기야는 글공부를 스스로 깨우치더니 장원급제 해서 금의환향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 말씀이 늘 그렇듯, 믿거나 말거나다.

    "아빠는 어디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와서는……."

    "황금색이고 뭐고, 그냥 방사능 고기 아니야?"

    누나들이 미심쩍어했다.

    물론 나도 별로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생선 눈알은 자고로 없어서 못 먹는 것이여. 이게 바로 눈알주라는 것이다."

    "으윽."

    나는 아버지가 얼린 생선 눈알을 썰어서 소주잔에 채워 넣는 것을 보고 오만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아버지의 간곡한 성의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눈 딱 감고 마셔 보기로 했다.

    "자, 우리 의사 선생님의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

    나는 어른들과 잔을 부딪친 뒤 소주잔을 기울였다.

    화악―

    독한 소주 향과 비린 생선 향이 동시에 올라오며 코끝이 달구어진다.

    정말 더럽게 맛없었다.

    "사실 저도 처남 주려고 가져온 게 있는데요."

    "처남, 이것도 먹어 봐. 귀한 건데……."

    그때 건강식품 마니아인 매형들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슬금슬금 꺼내기 시작했다.

    첫째 매형은 노루 피를 넣어서 만들었다는 장혈주를.

    둘째 매형은 지리산 기슭에서 자랐다는 태자삼을 꺼냈다.

    아무래도 해괴한 건강식품을 찾아 먹는 건 대한민국 아재들의 종족 특성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어른들이 주는 것이니 거절하기도 뭐해서 넙죽넙죽 다 받아먹었고, 다음 날 배탈 때문에 고생해야 했다.

    아마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그날 이상한 걸 하도 많이 받아먹었더니 뭐가 원인인지는 모르겠다만…….

    하여간 그중 하나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 남들에게 없는 <이상한 능력>이 내게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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