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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100 영애-198화 (199/208)

198화.

급작스러운 연회 진행이지만 여기에 의문을 품는 캐릭터는 없었다.

성녀 아이시스가 찾아와 내일 연회를 진행해야 한다고 한마디 하자, 연회는 당연히 진행해야 하는 것이 됐기 때문이다.

역시 세뇌 앞에 장사 없다.

어쨌든 그렇다 보니 유저를 제외하고도 황성의 모든 인력이 최선을 다해 연회를 준비했다.

“와, 커뮤니티에서 봤을 때도 감탄했지만 정말 명필이시네요.”

“아, 아니요. 그냥 조금 쓰는 정도예요.”

“겸손하셔라.”

테티스라는 귀부인 영애가 내가 적은 카드를 보고는 나를 칭찬하다 지나갔다.

그녀는 야외 연회장을 꾸미는 일에 자원했다.

짬이 있어서 그런지, 버프 덕분인지 그녀는 순식간에 사람들을 지휘해 테이블을 세팅했다.

내 업무는 그녀가 세팅한 테이블에 네임 카드 적어 두기였다.

아주 쉬운 업무였다.

이런 건 사용인이 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사용인들은 지금 나무 바닥을 뜯고 단상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힘쓰는 일에 자신이 없으니 이걸 하는 게 최선이었다.

‘나랑 잘 맞기도 하고.’

나는 한쪽 테이블에 앉아 잔뜩 쌓인 종이를 집었다. 그리고 테티스가 뽑아 준 명단대로 이름과 소속 국가를 적었다.

오랜만에 버프 알람이 들렸다.

[특성 버프 ‘명필 필사가’ ON]

이제 이 버프도 마지막이구나.

나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카드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79명의 영애들이 파트너와 지인들을 잔뜩 데리고 오는 데다, 겨울국에는 이미 묵고 있는 귀빈들이 많았던 터라 참석자가 엄청 났다.

빨리하지 않으면 연회 전에 끝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한참 카드를 쓰는데 사위가 어두워졌다.

응? 벌써 어두워질 시간이 아닌데?

게다가 연회장은 안젤리카가 불의 이능으로 환하게 조명을 설치해 두어 어두워질 일이 없었다.

찜찜한 마음으로 고개를 드니 거대한 남자가 내 맞은편에서 의자를 빼고 있었다.

엘런이었다.

“공작님이 왜 여기에 계세요?”

“그대가 오지 않으니 내가 올 수밖에 없잖아.”

“네?”

내가 안 가는 거랑 네가 오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자 엘런이 한숨을 쉬듯 웃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질투를 원하면 언제든 해 줄 테니 일부러 이럴 필요 없어.”

“질투고 뭐고 말부터 좀 알아듣게 해 주세요.”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이상한 말 하지 마.

“이렇게 빼지 않아도 바쁜 거 알아줄 테니까…… 그건 나중에 얘기하지.”

그는 오만하게 입매를 기울이며 테이블에 있던 여분의 펜을 집어 들었다.

“아, 제가 할게요. 안 도와주셔도 돼요.”

“손목 아프잖아.”

사람을 환장하게 했다가 편안하게 했다가. 평소 같으면 짜증이 났을 텐데, 이상하게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엘런도 이제 마지막으로 보는 거라 생각하니, 오히려 이 호의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엘런은 서류 작업에 능숙한 사람처럼 금세 집중했다.

나는 사각사각 이름을 적는 엘런을 보다 씁쓸하게 웃었다.

생각해 보면 엘런과 좋은 기억이 많았다. 그에게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저기, 공작님.”

“응?”

그래서 그 말이 쉽게 나왔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필기에 집중하던 엘런이 고개를 들었다.

“뭐가?”

“여러모로요.”

나는 애매하게 말하며 웃었다.

엘런이 그 대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평소처럼 이상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는데,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그게 낯설어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참 시선을 마주하던 엘런이 입을 열려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데이지 양.”

고개를 들자 테티스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스케치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이런 식으로 저 기둥을 넝쿨로 감싸고, 저쪽에는 관목들을 배치하고, 테이블 근처에 장미꽃을 가득 심고 싶은데 두 시간 안에 작업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이 정도 작업이면 두 시간이 아니라 며칠은 걸릴 것 같은데요?

왜 당연한 말을 하나 생각하는데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데이지 양은 알렉스 황태자 전하와 친분이 있다면서요. 황태자 전하께 한번 부탁을 드려 줄 수 있어요?”

알렉스한테?

최근 나는 알렉스를 피해 다니고 있었다.

알렉스가 내게 잘못을 한 건 아니었다.

그저 불편했다. 시선이 마주치는 것도, 대화를 하는 것도.

알렉스는 늘 그랬듯 여유롭게 대화를 유도했는데, 나는 대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대답을 망설이는데, 엘런이 끼어들었다.

“내가 대신 부탁을 드려 보지.”

“……전하께서 공작님 말을 들어주실 리 없잖아요.”

알렉스는 이능을 잘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도와줘 봤자 아무 이득 없는 엘런에게 이능을 써 줄 리가.

엘런은 동의하는지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도 시도는 해 볼 수 있잖아. 그대가 불편해하는데 그 정도는 대신 해 줄 수 있어.”

나를 도와 친히 자리표를 만들어 주던 공작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착한 엘런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때 내가 엘런을 남주로 선택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니에요. 제가 다녀올게요.”

“전하께서 그대를 위해서는 이능을 써 줄 거라 믿나 보네.”

엘런은 약간 톤이 달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정말로 나는 그럴 거라고 믿고 있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엘런이 한 손으로 제 이마를 쓸었다.

“그대가 원하는 게 뭔지 아는데, 진짜로 기분이 좋지 않아. 되도록 질투를 유발하려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취소한다.

나는 과거의 내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놈을 남주로 선택했던 거니, 과거의 나야.

나는 엘런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올게요.”

엘런은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불만스러운 듯 좁아진 눈매 사이로 붉은 눈동자가 빛났다.

“카드는 더 안 쓰셔도 돼요. 제가 다녀와서 해 둘게요. 공작님은 공작님의 소중한 시간을 아껴서 쓰세요.”

이제 엘런의 저런 모습을 봐도 약간 짜증이 날 뿐이지, 싫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나도 정상은 아니었다.

***

알렉스가 머무는 성은 누가 봐도 가을국 황족을 위한 성이었다.

사박.

풀을 밟는 소리에 생명력이 가득하다. 그리고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전기가 오르듯 심장이 아릿하게 저렸다.

나는 신록에 휩싸인 성을 보다 손을 말아 쥐었다.

적응되지 않는 긴장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부탁하는 거잖아?

이게 뭐라고 겁을 먹어. 알렉스는 들어줄 텐데.

나는 생각의 흐름을 멈췄다. 너무나 당연하게 알렉스가 내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져야 할 텐데 왜 더 불편해지는지 모르겠다.

“하아, 이게 무슨 마음이냐…….”

나는 시선을 내리고 땅을 보며 걸었다. 한 발 한 발 끊임없이 내딛는 움직임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츰 안정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을 무시하려 노력하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처음이네.”

바로 옆에서 들린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창가에 팔을 기댄 채 몸을 내밀고 있는 알렉스가 보였다. 그는 눈을 휘며 덧붙였다.

“그대가 날 직접 찾아와 주는 거 말이야.”

알렉스는 말을 하다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처음 만났을 때도 이렇게 내 방으로 찾아왔었지.”

“전하, 왜 1층에 계세…….”

말을 잇던 나는 주변을 돌아보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잔디 바닥이 언덕이 되어 나를 3층 창가로 데려다 놓은 탓이다.

“으악! 내려 주…… 아니, 내리지 마세요!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나는 소리를 지으며 벽을 붙잡았다. 굴러떨어질까 봐 겁먹은 채 벽에 달라붙으니 알렉스가 손을 뻗어 왔다.

“그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

“안 돼요!”

“왜?”

“저 바빠요. 전하께 부탁드리고 빨리 돌아가야 해요.”

그 말에 알렉스가 헛웃음을 흘리더니 한쪽 눈을 찌푸렸다.

“데이지,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야?”

그는 불만을 그대로 드러내며 창틀에 머리를 기댔다.

“내가 들어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네.”

나도 그런 내 태도에 불편함을 느꼈던지라 할 말이 없었다.

알렉스는 내 침묵에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한숨을 내쉬더니 말없이 창문을 넘어 나왔다.

“가.”

“어디를요?”

알렉스는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안 좋다는 걸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 웃음이었다.

움찔하자 알렉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능 써 달라고 부탁하러 온 거잖아.”

“……어떻게 아셨어요?”

“이틀 안에 연회를 준비하게 됐는데, 제때 장식을 마치려면 이능이 필요하겠지.”

알렉스는 여상히 말했다.

“머리 좋은 인간이 그대를 나한테 보낼 거라고 생각했어.”

알렉스는 내 표정이 웃겼는지 이번에는 진짜로 웃음을 흘렸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그대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지. 집 지키는 개처럼.”

나는 가만히 알렉스를 쳐다보다 물었다.

“……어떻게 전하는 모르는 게 없으세요?”

“관심을 두면 다 보여. 그대도 알 수 있어.”

“아니에요. 전하가 똑똑해서 그런 거예요.”

그는 피식 웃었다.

웃음 안에 가벼운 한숨이 담겨 있다.

“그래. 그런 거로 해.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다면.”

알렉스는 짧은 말로 대화를 끝내 주었다.

또 폐부를 간질이는 불편한 감각이 밀려왔다.

배려를 받으면 고맙고 편해야 할 텐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 그건 알렉스의 잘못이 아니었고, 굳이 따지자면 내 잘못이었다.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고, 알렉스 또한 조용히 있었다.

어느새 시야가 낮아졌다.

바닥은 움직임을 느끼지도 못한 새 제자리로 돌아갔다.

야외 연회장에 들어서자 테티스가 다가왔다. 그녀는 알렉스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전하, 이곳까지 친히 와 주셔서 영광입니다.”

짧은 인사가 끝나자마자 테티스는 알렉스에게 도면을 보여 주며 제가 생각한 디자인을 설명해 주었다.

알렉스는 으레 짓는 가식적인 미소를 건 채 눈동자를 움직여 테티스가 말한 기둥을 쳐다봤다.

그 순간이었다.

“그럼…… 어!”

땅이 살짝 진동할 정도로 사방에서 한 번에 생명이 움텄다.

“와아.”

“저것 좀 봐!”

홀에 있던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알렉스가 워낙 이능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 그런지, 연회장을 정리하던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랐다.

그의 이능을 자주 본 나조차도 놀랐으니 그들의 반응을 이해했다.

짙은 풀 향과 아찔한 꽃향기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이제 된 건가?”

“아 네! 감사합니다.”

알렉스의 물음에 테티스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바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만족해?”

“네?”

“원하면 더 해 주고.”

나는 한순간에 달라진 정경을 보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뇨. 지금도 완벽한데요.”

그는 거대한 기둥에 감긴 넝쿨 잎사귀 하나를 툭 건드렸다.

나는 왜인지 불만스러워 보이는 알렉스를 보며 입을 달싹였다.

그러다 계속 느끼고 있던 불편한 마음을 결국 입 밖으로 꺼냈다.

“죄송해요.”

“뭐가?”

“전하가 잘해 주시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 건 아니에요. 사실 늘 감사하게 생각했어요. 다만…….”

나는 되도록 알렉스에게는 솔직하게 말하려고 노력해 왔다.

나를 좋아하는 걸 알았기 때문에 헷갈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이 혹시라도 알렉스를 헷갈리게 할까 봐.

망설이던 입술이 벌어지고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전하가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알렉스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으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나는 그에 반응하지 못하고 내 말만 계속 이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생기고. 정말 진심으로 그걸 바라요.”

작별 인사를 건네고 싶던 마음이 다시 한번 이기적으로 튀어나왔다. 지금 알렉스가 이 대화를 이해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멋대로 나는 내가 하고 싶던 말을 내뱉었다. 그동안 배려니, 예의니 물러나 왔던 게 무색하게도.

알렉스가 기둥에 머리를 기대며 미소를 지었다. 느긋하게 내려갔다 올라온 눈동자가 잠시 나를 담았다.

그는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 같았다.

그러나 모른 척해 주기로 했는지 입매를 길게 늘이며 장난으로 받아 주었다.

“그대가 나와 함께 가을국으로 가 주면 난 그렇게 살 수 있는데.”

“그래서 제가 전하께 그런 말을 못 했어요.”

알렉스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로 전하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가능하다면 도와드리고 싶은데…… 그게 전하를 오해하시게 할까 봐.”

여전히 나는 알렉스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최대한 힘을 빼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 전하의 곁에 있겠다는 뜻으로 들릴까 봐 걱정됐어요. 그래서 저를 기다리시게 될까 봐.”

나는 알렉스가 신경 쓰였다. 그래서 잘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과는 분명 다른 감정이었다.

분명 그를 아꼈다. 그가 상처에 발목 잡히지 않고 늘 그래 왔듯이 여유롭고 당당하길 진심으로 바랐다.

언제 어디에서든 행복하길 바랐다.

누구라도 알렉스의 곁에 남아 마모된 그의 빈 공간을 채워 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게 나는 아니었다.

친구로서 혹은 동료로서 그를 도와주고 옆에 있어 줄 수는 있었지만, 알렉스가 내게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그는 내가 그를 사랑해 주길 바랐다.

그런 척하고 그를 속이다 끝낼 수도 있겠지만, 그건 기만이었다.

알렉스는 사람에게 오랜 시간 상처를 받아 왔다. 나마저 그에게 그런 상처를 줄 수는 없었다.

나는 알렉스에게 진실해지고 싶었다.

그를 속이지 않고, 이용하지 않고도 그저 그를 아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길 바랐다.

내가 여길 떠나도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바랐던 친구가 있다는 걸 알길 바랐다.

그러나 그 마음을 전할 말재주가 없었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용기를 냈으나, 지금 이 순간조차도 어떻게 이 마음을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한참 동안 말을 골랐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표현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는 오랫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알렉스는 침묵이 길어질 것을 눈치챘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행복해.”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것처럼 나 또한 그대가 즐겁기를 바라. 나와 있던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어.”

순간 부드러운 손길이 뺨에 내려앉았다.

“나는 그대가 나와 있던 시간을 무서워했던 걸까 봐 그게 두려워.”

대화할 때면 늘 나를 응시한 채 표정을 읽으려 애쓰던 그답지 않게 시선을 내렸다.

알렉스는 내 입술과 제 손끝을 보며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다시는 찾지 않을까 봐.”

“…….”

“그게 견딜 수가 없었지.”

알렉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잠시 일었던 혼란을 모두 지워 낸 여유로운 미소를 걸고.

“……싫지 않았어요.”

반사적으로 답이 나왔다.

“진심이에요. 전하와 지낸 시간이 무서웠던 적도 있지만, 즐거웠던 순간도 있어요.”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폐부를 채운 깨끗한 숨을 삼키고 용기 내 부탁했다.

“그리고 전하가 행복하다면, 저는 앞으로도 전하를 떠올릴 때마다 즐거울 수 있을 거예요.”

알렉스의 행복을 비는 이 순간 머릿속으로 진심이 파고들었다.

‘나는 정말…….’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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