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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100 영애-147화 (148/208)

147화.

어떻게 알았지?

나는 신기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말하면 안 되는 건데……. 그나저나 어떻게 아셨어요?”

“모르는 게 더 어렵지 않나요?”

디아나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나 시에나 외에는 누구한테도 말한 적이 없는데, 이거 아는 게 더 어렵지 않나?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 둘을 쳐다보자 아이시스가 소파에 앉으며 두 손을 제 무릎 위로 모았다. 그녀는 손깍지를 끼고 진지한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영애, 겨울국에서 저랑 만나기 전에 메시지로 봄국 이벤트에 관해 물었던 거 기억나요?”

“네. 기억나요.”

그 당시 나는 타임라인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궁금한 게 많았고, 기분 탓에 성녀는 아는 게 많을 것 같아서 이것저것 물었었다.

“봄국 이벤트에서 상점에 없는 아이템을 선물로 주는지 물었던 것도 기억나요?”

“아아, 네.”

그래, 저런 걸 물었다. 커뮤니티나 AI가 모르는 이상한 현상들. 그러나 그녀는 마왕 동면지 탐사에 대한 질문은 모두 답해 주었지만, 저런 시스템의 괴상한 짓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했다. 그녀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이벤트 1위 보상 아이템으로 ‘S급 남주 관람권’이 나와서 누가 글을 올렸었죠. 이거 상점에 없는 아이템 아니냐고.”

그런 글을 봤던 것 같다. S급 남주 후보가 누구냐고.

아이시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바람에 밀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두 여자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부모님처럼.

아이시스가 힌트를 주듯 말했다.

“영애 나한테 갑자기 시스템한테 환불 요청이 들어온다든지, 시스템 에러가 나면 기억을 지워 버리는지 묻고 그랬는데, 뉴비가 그렇게 겁먹은 거 보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영애가 그 아이템을 탔구나’라고 생각하겠지.”

디아나가 대신 대답했다.

아이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거 같아서 조용히 있었던 거지 저는 바보가 아니랍니다.”

“바보라뇨! 한 번도 영애를 바보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그래요. 다행이에요.”

아이시스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투로 덤덤히 말했다.

“어쨌든 영애가 S급 남주 관람권을 받았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는 소리예요.”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인정한다.

그때는 막 게임을 시작한 때라 많이 미숙했다.

민망해하는 나를 달래듯 아이시스가 긍정적인 이야기를 했다.

“잘된 일이죠. 우리는 누가 S급 남주 후보인지 아니까요. 재앙을 우리 선에서 먼저 해결하고 예언을 알리면, 유저들의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거예요.”

디아나는 아이시스의 말에 동의하듯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세상이 빙결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유저들이 패닉에 빠질 수 있으니까 우리가 먼저 재앙을 막고 예언을 공지합시다.”

플레이 기간이 길어서일까.

혼란스러워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차분한 얼굴로 바로 해결 방법을 찾았다.

그 의연하고 담담한 모습에 뭔가 안심이 됐다.

나는 소파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 찾고 재앙을 막아요.”

“좋아요. 그때 S급 남주 후보가 3명이라고 했었죠?”

“맞아요. 엘런이랑 알렉스 그리고 마족 지대에서 만난 요한이라는 마족이에요.”

두 사람은 심지어 S급 남주 후보가 누군지도 눈치챘었는지, 내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아이시스는 노트북을 켜고 뭔가를 적다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마족 남주는 빼죠. 그건 시스템 버그 같으니까.”

“버그라도 뺄 수는 없지.”

아이시스가 요한을 후보에서 제외하자 디아나가 바로 반박했다.

아이시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마족 지대는 오픈도 안 된 맵인데, 그쪽 남주가 어떻게 사계국 전개를 바꿔.”

나는 내가 끼어들어야 할 타이밍임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얹었다.

“저, 사실 요한이 얼마 전에 사계국으로 와서 제 옆방에 머물고 있어요.”

그러자 서로를 노려보던 디아나와 아이시스가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족이 사계국에 왔다고요?”

“시즌 2 남주가 사계국 플레이 존에 올 수 있어요? 그게 가능해요?”

과몰입 유저와 몰입 거부자다운 상반된 반응이었다.

마족이 사계국에 왔다고 화내는 황제와 시즌 2 캐릭터와 플레이 존을 공유하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 유저.

어느 쪽이든 답하기 어려웠다.

나는 목덜미를 쓸며 내가 아는 대로 설명했다.

“저도 사계국으로 넘어올 줄 몰랐는데 제 의지로 와 줬어요.”

디아나는 묘한 표정을 지었고 아이시스는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였다.

“신기하네……. 그럼, 그 마족 남주도 후보로 넣어야겠네요.”

아이시스는 노트북에 무언가를 적었다. 디아나가 그 화면을 보다 물었다.

“지금 이 세 남주 모두 데이지 영애의 슬롯에 있는 거죠?”

“네. 세 명 다 슬롯에 있어요.”

“혹시 그 세 남주를 슬롯에 추가한 다른 유저도 있나요?”

나는 잠시 고민해 봤다.

엘런도, 알렉스도, 요한도 다른 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보지 못했다.

심지어 엘런과 알렉스는 내게 청혼과 청혼 비슷한 걸 했고, 요한은 세계를 넘어온 뒤로 사실상 나한테 감금된 채 지내고 있다.

생각을 마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닌 것 같아요.”

디아나가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그럼 데이지 영애가 선택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군요.”

“셋 다 벽이 높은 남주들이니까 어쩔 수 없지. 신하를 거쳐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잖아. 하다못해 라리사 영애처럼 가족이 유저면 접근하기 쉬웠을 텐데.”

가만히 침묵하던 디아나는 낮은 목소리로 불쑥 말했다.

“아무래도 그 예언은 데이지 영애가 선택하도록 만드는 게 목적인 것 같아.”

“사실 나도 그 생각 했는데.”

두 여인이 눈을 마주치고는 다시 침묵했다. 아이시스가 먼저 내게 고개를 돌렸다.

“시스템이 영애를 유독 신경 쓰는 것 같아요.”

순간 놀랐다.

시스템이 차별하는 거 나만 아는 줄 알았는데, 누가 봐도 그랬던 모양이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아이시스가 당황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쁜 뜻은 아니고요. 버그 현상이 영애한테는 자주 일어나는데, 전 겨울국에서 마족 지대 마물을 만났을 때 겪은 게 처음이었거든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타임라인이 많이 진행된 상황에 영애가 들어와서 버그가 발생하는 건가 생각도 했는데, 최근에 들어온 뉴비 영애는 멀쩡한 걸 보면 그건 또 아닌 거 같아요.”

말을 마친 아이시스가 디아나를 쳐다봤다. 둘은 서로 시선을 얽다 나를 보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시스템이 방해할 수도 있으니까 신중하게 골라야 해요.”

“어떤 선택을 해도 분명 S급 남주일 거예요.”

아이시스와 디아나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둘은 다시 시선을 마주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디아나가 실소하며 말했다.

“게임이 데이지 영애를 선택한 건데 어떻게 나쁜 결과가 나오겠어?”

“당연히 이놈들은 나쁜 결과를 원하지 이 바보야! 진짜 해피엔딩을 바라면 애초에 ‘재앙’ 요소를 넣었겠냐고.”

“그게 해피엔딩이랑 무슨 상관이야. 해피엔딩 내는 판타지 소설에도 재앙은 나와.”

“그건 재앙을 주인공이 해결하니까 그렇지. 이건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해결할 놈을 선택해야 하는 거잖아.”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모르겠어? 노력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운명이 결정된다고. 가챠! 도박처럼.”

아이시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스템의 세상이니까 그 뽑기 결과도 이놈들이 정하겠지. 심지어 아이템 사용도 막아 놔서 ‘남주 교환권’도 못 쓰고 놈들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잖아!”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아이시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 자식들만 좋은 일이야. 재앙으로 빙결되면 아무도 [결]을 못 칠 텐데, 그러면 누구한테 이득이야? 이놈들한테 이득이라고! 20억을 줄 필요가 없잖아! 헉!”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아이시스가 뺨을 감싸 쥐며 고개를 숙였다.

“이 자식들 애초에 [결] 못 치게 하려고 이런 건가 봐.”

“아, 아이시스 영애 괜찮을 거예요! 제가 잘 고를게요!”

나는 패닉에 빠진 아이시스가 걱정돼서 나도 모르게 저런 말을 중얼거렸다. 해결할 능력도 없고 S급 남주가 누군지 확신도 없으면서 말이다.

디아나는 한숨을 쉬며 아이시스의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아이시스와 눈을 맞추었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아이시스를 달랬다.

“만약 네 말대로 재앙을 발현해서 아무도 [결]을 못 치게 하는 게 목표였다면, 왜 ‘S급 남주 관람권’을 굳이 만들어서 데이지 영애에게 주고 너한테 S급 남주를 빨리 선택하라는 공지를 내렸겠어? 최대한 쉬쉬하다가 끝까지 데이터나 뽑고 우릴 버렸겠지.”

디아나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재앙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디아나는 아이시스의 손을 잡으며 확언했다.

“나는 이것도 게임 요소라고 생각해. 결국 재앙은 해제될 거야.”

S급 남주 후보를 모두 만나 본 나조차 갖지 못한 믿음을 디아나는 가지고 있었다.

아이시스가 진정됐다고 여겼는지, 디아나가 내게 고개를 틀었다. 그녀는 불안함 한 점 담기지 않은 깨끗한 시선으로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데이지 영애도 걱정하지 말아요. 영애가 원하는 대로 선택을 하면, 그 사람이 분명 S급 남주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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