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라리사: 아까 황제가 황태자는 축제 때도 열심히 일한다고 아들 자랑 엄청 했잖아요.]
[디아나: 그러게요. 가을국 황실은 토벌을 위해 힘쓴다고 한참 생색냈는데, 없어 보이게.]
[라리사: 방금 슬쩍 가을국 황제 얼굴 봤는데 대박이네요. 영애도 슬쩍 봐 봐요. 웃음에서 빡침이 느껴지는데요?]
[디아나: 저는 자주 봐서 별로 놀랍지 않네요. 저 나라는 황제나 황태자나 웃으면서 화내잖아요.]
[라리사: 오, 저는 같이 일한 적이 없어서 몰랐어요! 원래 저러는구나.]
두 황족 영애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머리를 울리는데 알렉스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방금의 대화로 미루어 볼 때 황제가 알렉스에게 일을 맡긴 듯했다. 그러나 알렉스는 예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머리까지 올렸다. 절대 일을 하다가 들른 차림새가 아니었다.
나는 디아나와 라리사의 대화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인사를 건너뛰고 물었다.
“전하, 일 때문에 바쁘시지 않으세요?”
그러자 알렉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대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
순간 당황하는데, 내 생각을 들었는지 라리사가 끼어들었다.
[라리사: 우리 아빠한테 들었다고 해요. 그 김에 우리 아빠랑 같이 정원에서 산책하면서 말 좀 맞추고.]
나는 라리사가 알려 주는 변명을 무시하며 웃어 넘겼다.
“남들이 잘 모르는 걸 아는 게 제 특기잖아요.”
알렉스는 동의하는지 입매를 휘었다. 이럴 때는 뒤에서 불법적인 일을 하는 이미지가 도움이 된다.
좋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넘어갔으니 안도했다.
“근데 바쁜데 왜 여기 오셨어요?”
“이제 안 바쁘거든.”
“벌써 다 끝내셨어요?”
“아니, 대신 일해 줄 사람을 찾았어.”
나는 물끄러미 알렉스를 보다가 그의 주변을 살폈다. 호위 기사도 보좌관도 없이 홀로 온 모양이다.
호위는 알렉스가 가진 이능이 사기 수준이니 없는 게 이해가 갔다. 하지만 연회에 참석한 귀족들의 이름을 귓속말로 알려 주거나 불편한 사람들을 쳐내 줄 보좌관도 없는 건 이상했다.
“혹시 체이스 경에게 떠넘기셨나요?”
“떠남기다니.”
알렉스가 억울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내 일이 곧 그의 일인데.”
진짜 인성.
홀로 일에 파묻혀 있을 불쌍한 금발 보좌관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팠다. 체이스 경에게 감정 이입이 된 탓이다. 몇 달 전의 내 모습이 딱 그와 같았다.
과거를 반추하니 눈이 곱게 떠지지 않았다. 알렉스는 그런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응시했다.
그런데 그 시선이 좀 이상했다.
평소와 달랐다.
웃음기도 없고 짜증도 없다.
깨끗하게 비워진 눈동자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뭐야. 왜 저래.
묘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알렉스가 입을 열었다.
“잘 어울리네.”
“뭐가요?”
알렉스는 대답하는 대신 다시 시선을 들어올렸다.
나는 그의 시선이 머물던 곳을 쳐다봤다. 그러자 드레스의 탑 부분에 붙은 수많은 물망초가 보였다.
“아.”
드레스를 본 모양이다.
다시 고개를 드니 알렉스가 입매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다시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그대가 내가 만든 꽃을 안고 있으면 어떨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알렉스는 장난치듯 눈을 휘며 덧붙였다.
“내 상상력은 아직 많이 부족한 가 봐. 눈앞의 현실이 더 아름다운 걸 보면.”
“전하, 왜 이러세요.”
나는 알렉스답지 않은 느끼한 플러팅에 놀라 주춤했다.
머릿속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났다.
로맨스보다 여주 위주의 서사를 더 좋아하는 여주원탑 황제 여주와 여주부둥 황녀 여주가 비명을 내지른 탓이다.
동요하는 나와 달리 알렉스는 평온한 미소를 지은 채 지나가는 시종에게 잔을 받았다.
저 여유로운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진 기분이 들었다.
유치하지만 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드레스 자락을 쓸며 말했다.
“글쎄요. 전하께서 선물해 주신 꽃도 물론 예쁘지만, 대륙 최고의 양상사의 역작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이 세계관의 신, 시스템의 가호를 받는 여주가 버프로 만든 드레스니까.
“머릿속 상상보다도 더 아름다운 실체를 만드는 금손을 가지셨거든요.”
나는 알렉스의 능글맞은 장난을 양장사 정보 나눔으로 유익하게 받아쳤다.
알렉스의 눈이 아주 약간 흐려졌다.
오랜만에 알렉스가 나를 미친 사람 보듯 쳐다봤다. 그 시선이 반가워서 웃음이 새나왔다.
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다시 알렉스에게 장난을 쳤다.
“전하께만 특별히 알려 드릴게요. 봄국에 본 셰밍이라는 곳에서 맞췄어요. 나중에 전하도 리안이라는 양장사에게 옷을 지어 보세요.”
“하하.”
알렉스는 어이가 없는지 실소하다 내게 져 주었다.
“그래. 나중에 주소나 알려 줘.”
“얼마든지요. 전하께서 예쁜 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확실히 제 상상보다는 아름다우실 것 같아요.”
“그런 상상을 하다니. 그대의 취향은 참.”
그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젓던 그가 내게 시선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전하.”
나는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 남자를 보고 놀랐다. 그는 황제의 옆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알렉스는 그를 알아봤는지 느슨하게 눈꺼풀을 내렸다. 그는 조용히 남자를 응시하며 말을 기다려 주었다.
“폐하께서 벌써 일을 다 처리하신 건지 물으셨습니다.”
“내일 오전 중으로 완성될 테니 걱정하실 필요 없다고 전하거라.”
그 말에 남자가 입을 달싹였다. 남자는 시선을 틀어 나를 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전하께서 바쁘신 거라면, 레이디 데이지에게 부탁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아니 웃긴 사람들이네?
손님한테 갑자기 일을 시키겠다고?
당황하는 찰나 알렉스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설마.”
알렉스의 시선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황제는 계속 알렉스를 보고 있었기에 두 부자의 시선은 바로 얽히고 말았다.
“폐하께서 타국의 귀빈에게 그런 무례를 범하실 리가.”
비슷하게 생긴 두 부자가 말없이 날카롭게 서로를 응시했다.
그 사이에서 보좌관이 죽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말씀도 하셨습니다. 부디 타국의 레이디가 가을국 황성에서 좋은 기억만 가지고 돌아갈 수 있게 도와…….”
남자는 말끝을 흐렸다. 차가운 금빛 시선이 제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부자의 기 싸움을 전해 들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내 의사는요?
나는 황제가 요구하면 일하는 거 확정이야? 그게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데?
물론, 저 무서운 황제가 시키면 하긴 해야겠지.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람을 면전에 두고 너희끼리 내 일을 결정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아, 황성 플레이 진짜 싫다.
화법, 태도, 생각 그 무엇 하나 나와 맞는 구석이 없다.
내 생각이 메시지로 가는 모양인지 디아나와 라리사도 동의하며 만약에 황제가 억지로 일을 시켜도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본인들이 알아서 커트해 주겠다며.
이것 보라고.
나는 더 이상 황제와 황태자의 대화에 무력하게 희생되는 하급 귀족 영애가 아니란 말이다.
무려, 황제 여주와 황녀 여주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라고!
내게 일을 시키면 당당하게 거부할 생각으로 눈을 부릅뜨고 분위기를 살폈다.
그러나 나는 거절할 기회를 잃었다.
“내가 돌아가지.”
알렉스가 황제의 요구에 수긍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감한 시선으로 계속 제 아버지를 응시하다 내게 고개를 돌렸다.
초승달처럼 유려하게 휘어진 입매로 웃음기 섞인 말이 새어 나왔다.
“아무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네?”
“그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원하시는 걸 얻지 못하실 테니까.”
알 수 없는 말에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움찔했다. 내가 아닌 황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말라니.
그것만큼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말도 없다.
의뭉스러운 말을 던진 알렉스는 미소를 한 번 짓고는 홀을 떠났다.
그런데 몇 걸음 떼던 그가 갑자기 뒤를 돌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오늘 예쁘네.”
그 말에 주변에서 경악한 듯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냈다.
나도 턱이 바닥에 닿을 듯 입이 벌어졌다.
정작 어울리지 않게 겉치레 인사를 한 알렉스는 웃으며 그대로 몸을 돌려 홀을 빠져나갔다.
한차례 수군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번졌다.
내가 가을국 제국민이라도 놀라 뒤집어졌을 일이라 그 소란을 십분 이해했다.
알렉스가 예의 바르게 상대의 헤메코를 칭찬하며 돌아가다니.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귓가로 팡파르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연회장의 연주곡이 바뀐 건 아니었다.
잔잔한 배경 음악처럼 흐르는 연주는 그대로인데, 그 위로 천둥 같은 소리가 내리쳤다.
[모든 유저가 [기]-[승] 승격 최소 조건, 최소 글자 수 20만 자를 달성했습니다!]
[2차 중간 평가 순위를 공개합니다. [승] 스테이지를 기준으로 5개의 AI가 평가했습니다.]
2차 랭킹 공개였다.
[라리사: 하, 또 성적표 공개네.]
라리사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디아나: 의미 없는 평가를 뭐 이렇게 요란하게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무감한 디아나의 목소리도 들렸다.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2차 평가였다.
나조차도 심드렁했다.
나는 차가운 물을 홀짝이며 상태창을 쳐다봤다.
[상위 랭킹과 하위 랭킹의 보상과 페널티를 공개합니다.]
이번엔 뭘 또 뺏어 가려고 그러냐.
94위 여주의 플레이가 얼마나 더 가혹해지려나 하는 생각에 상태창을 노려보며 보상과 페널티를 기다렸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글자가 눈앞에 펼쳐졌다.
[공정한 플레이를 위해 보상으로 모든 유저의 커뮤니티 접근권을 복권하며, 페널티로 모든 유저의 아이템 사용을 제한합니다.]
공산주의적 보상과 페널티였다.
[라리사: 아이템 차단?! 아니 이런 게 어디 있어!]
라리사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흘러왔다.
[디아나: 영애, 메시지 끄세요. 이제 동기화 메시지는 10건으로 제한될 거 같으니까.]
상황을 빠르게 판단한 디아나의 조언도 들려왔다.
나도 우선 메시지를 껐다.
머리가 띵했다.
왜 갑자기 합리적이고 공정한 게임이 된 거야.
싫지는 않았다.
늦게 들어온 유저일수록 아이템을 보유할 확률이 낮았고, 아이템은 말 그대로 치트키라 유저의 공평성을 크게 해쳤다.
최근에 경쟁이 심화되면서 유저들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고.
이제 다시 평화로운 커뮤니티로 돌아가려나?
오히려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때, AI가 내게 순위 확인을 권했다.
[유저의 순위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이번엔 좀 올랐겠지?
순위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내 순위가 올랐을 거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였다.
일단 여름국에서 죽을 뻔하면서 나름 스펙터클한 위기를 보여 줬고, 또 몰입감 설문 조사 10점 치트키로 약간의 먼치킨스러운 전개도 펼쳤다.
게다가 여름국 경연까지 참석했다고! 주연급에, 국뽕도 살짝 자극했단 말이지.
지금까지의 글자 수가 모두 포함됐다면, 약간의 돈 지랄 전개도 포함됐을 거다.
60위는 하지 않을까?
나는 자신감 넘치게 웃으며 순위 확인을 요청했다.
[유저의 2차 중간 랭킹은 29위입니다.]
‘……29위?’
무슨 랭킹 상승이 이렇게 가팔라?
나는 입을 벌린 채 상태창을 쳐다봤다.
그리고 곧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아니, 전에는 30위 안이면 보상 줬잖아. 1만 캐시 주고 그랬잖아.
나 29위인데 뭐 안 줘?
하필 나 29위로 시스템 특혜 받는 조건을 갖추자마자 공평해진 거야?
뿌드득.
테이블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잘했으면 보상을 줘야지. 94위 여주가 29위 하려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냐고. 갑자기 왜 보상이랑 페널티를 없애고 아이템을 차단한 거야.
분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마치 매주 낙첨하던 로또에 드디어 당첨됐는데, 사회적 위화감을 척결하기 위해 뿌듯함만 주고 당첨금은 정부가 가져가겠다는 발표를 듣는 기분이었다.
랭킹이 상승했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
……이게 뭔 기분이지.
알 수 없는 허탈함에 잠식된 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AI 리뷰를 확인하시겠습니까?]
AI는 나를 달래고 싶었는지 리뷰 확인을 권했다.
나는 이 폭풍 같은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리뷰 확인에 동의했다.
칭찬 좀 들으면 랭킹 상승 기분이 나겠지.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리뷰를 확인했다.
[AI 1] 별점 9점
드디어 여주가 뭔가를 하네요. 고구마를 먹으며 버틴 보람을 느낀 에피소드였습니다.
그래도 명필 버프로 이 정도 사이다 줬으면 유저님도 나름 애썼다는 생각이 들고요. 다음 전개도 사이다를 기대하며, 힘내시라고 9점 줍니다.
[AI 2] 별점 10점
여름국 에피라니…….
(취향 저격 전개에 AI 혼절)
황제 영애 분량이 많아서 좋았어요. 여름국에 이민 가서 계속 대리 주접 떨어 주면 최종 평점도 10점 줄게용.
♥데이지 유저 여름국 이민 추진 위원회 모집 중(1/5)♥
[AI 3] 별점 0점
인물이 많아서 정신 사납다고 했었는데 더 많아졌네요……? AI랑 기 싸움 하는 거 너무 별로. 이런 식으로 플레이 하면 망해야죠. 피드백 반영 안 하는 유저는 최악이라 별점 0점 주는 것도 아깝네요.
[AI 4] 별점 10점
남주가 많이 나와서 좋았어요. 여름국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그리고 가을국 황태자가 슬롯 들어와서 만족. 제 최애 많이 나와서 이번엔 10점 드립니다.
[AI 5] 별점 3점
아…… 이 유저 아직도 플레이 하네? 로그아웃 할 줄 알았는데 성실함은 인정. 개근상 개념으로 3점 주긴 하는데 그냥 소재부터 전개까지 싹 다 불호임.
……고득점을 받았는데 왜 마음이 아프지?
나는 찜찜한 마음을 삼키며 상태창을 껐다.
대체 AI 기준으로 1등 하는 영애는 누구실까?
이름 모를 유저에 대한 존경심이 샘솟았다.
일단 확실한 건 AI 2번은 황제 영애한테 무조건 10점을 줄 게 분명했다.
이거 2번 AI는 여름국이고 4번은 가을국이랑 관련 있는 거 같은데.
2번은 디아나가 나와서 좋아하고 4번은 알렉스랑 엮였다고 좋아하는 걸 보니까 AI가 플레이 존 대표로 하나씩 나온 게 아닌가 싶었다.
은근히 자기 플레이 존 유저들 밀어 주는 거 아니겠지?
익숙하게 음모론을 구상하던 나는 그 생각을 거두었다.
아니야, 그럼 내 편 들어 주는 봄국 AI도 있어야지.
그래도 리뷰를 보고 나니 분노가 줄긴 했다. 어쨌든 칭찬이고 점수도 잘 받았으니까.
다만 이상한 지점이 있었다.
웹소설 고인물인 내가 볼 때, 리뷰는 어딘가 어색하고 이상했다. 애매하게 독자들이 단 댓글을 흉내 내는 느낌이랄까.
무엇보다도 AI가 왜 구태여 사람처럼 굴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AI처럼 리뷰를 쓰면 어때서?
아니, 애초에 이 게임에 랭킹이 필요한 건 맞아?
리뷰를 보니 딱히 대중성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사람도 아니면서, 사람을 흉내 낸 주관적인 감상으로 평가하잖아.
랭킹 기준은 메이저 에피소드 판별 같은 빅데이터가 아닌 AI의 주관적인 마음 같았다.
뭐 이렇게 구멍이 많아?
얘네 출시는 가능할까?
고칠 게 너무 많아 보이는데?
나는 망겜의 기운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됐어. 걱정해서 뭐 해. 내가 투자한 게임도 아니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제 커뮤니티도 다시 할 수 있게 됐잖아. 나한텐 좋은 일이지.
방에 돌아가면 커뮤니티부터 들어가야겠다.
몇 초 후 상태창이 모두 사라졌을 때 나는 빈 잔을 다시 테이블에 내려 두었다.
그런데.
와장창.
분명 잔을 살짝 내려 둔 거 같은데, 갑자기 테이블이 기울며 그 위에 있던 식기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
나는 난장판이 된 바닥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꺄악! 이게 무슨 짓이에요?!”
비명 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세상에! 나탈리아 영애 괜찮아요?”
“이거 봄국에서 몇 달 기다려서 받은 드레스라고 하셨잖아요. 어떡해! 치맛단에 에이드 물이 들었어요!”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고함이 들려왔다. 그리고 나탈리아의 젖은 치맛단과 함께 경악을 금치 못하는 영애 무리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가만히 천장으로 시선을 들었다.
……뭐지.
리뷰 좀 의심했다고 시스템이 천벌을 내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