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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100 영애-107화 (108/208)

107화.

엘런은 일이 급한 듯했지만, 사람을 앞에 두고 일하는 것도 영 민망했는지 책상과 나를 번갈아 보다가 웃으며 서류철을 덮었다.

“다름이 아니라 부탁할 게 있어서 그대를 초대했어.”

부탁?

계좌 얘기를 할 줄 알았는데.

“요즘 가신들이 나를 압박하고 있는데, 도와줬으면 해.”

“들어 보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도와드릴게요.”

엘런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출병을 앞뒀더니 가신들이 혼인 압박을 하고 있어. 가기 전에 식을 올리고 후사를 보거나, 후계자를 양자로 들이길 바라고 있거든.”

가신들은 엘런이 잘못될 경우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그럼 방계 중에서 후계자를 미리 선정해 두고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결혼하고 바로 애가 생긴다 해도 내년에나 태어날 텐데, 1살짜리한테 일을 시킬 수도 없잖아?

이거 그냥 빨리 손주 보고 싶어서 이 기회에 몰아붙이는 친척 어른의 오지랖 아닌가.

카이엘드 설정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엘런은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어린 나이부터 가주로 지냈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가신들이 엘런을 공동 육아한 탓에 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어르신들이 출병을 핑계 삼아 손주(?) 보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거 같은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들었다.

왜 내 도움이 필요한 거지?

엘런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출병을 앞둔 상황에 청혼하는 건 그 레이디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건 그렇죠.”

전쟁터 나가기 전에 결혼이라니, 잘못하면 과부가 될 수도 있잖아.

엘런은 은근히 양심적인 캐릭터였다.

그는 헛기침하며 내 눈치를 보다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가신들의 압박이 너무 거세서 무시할 수도 없어.”

“그렇군요.”

“그래서 청혼을 생각하고 있는 여인이 있으니 그만하라고 했지.”

“아, 그러셨구나.”

“그런데 믿지를 않더군. 누구냐고, 내가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상상 속 여인이냐며 비웃더라고.”

가신들이 정말 편하게 대하네. 그래도 가주인데.

엘런의 인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래서 데이지 양을 초대했어. 내가 여자랑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서.”

“아아, 잘하셨어요.”

엘런은 가신들의 오해가 퍽 억울했던 모양이다.

나는 기꺼이 그의 여사친 1롤을 맡아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뭐.

차명계좌를 압수하겠다는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던지라 이 정도 부탁은 쉽게 느껴졌다.

“그럼, 실례가 안 된다면 그대의 손수건을 받을 수 있을까?”

손수건?

그러고 보니 엘런이 저번에 손수건을 줬었지.

그것도 안 돌려줬었네.

빚졌다는 생각이 들자 그냥 내 손수건을 줘도 되겠다 싶었다.

순순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는데 엘런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달라는 뜻은 아니고. 가신들이 보는 곳에서 줬으면 해.”

엘런은 이 부탁이 민망한지 시선을 피하고 말끝을 얼버무렸다.

얘가 민망해할 줄도 아네?

나는 새나오는 웃음을 참고 그의 부탁을 정확하게 정리했다.

“그러니까 가신들 앞에서 제가 공작님을 열렬히 사모하는 척해 달라는 거죠?”

“열렬히 사모하는 건 아니고, 내가 청혼을 해도 받아들일 여인이 있다는 정도만 보여 줬으면 해.”

그는 한숨을 쉬었다.

“가신들이 매일같이 성에 레이디들을 초대해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자꾸 내 집무실로 들이고 있거든.”

……모르는 사람이 우연히 공작의 집무실로 들어가는 게 말이 되나.

엘런이 왜 모태 솔로인지 알 것 같았다.

이건 양육자들의 잘못이었다.

평생 로맨스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았을 북부 남자들. 나는 그들의 손에서 자란 엘런을 측은하게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갑시다. 공작님, 어디서 드리면 돼요?”

가신들 앞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엘런을 위해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순간 알람 소리가 들렸다.

[메이저 에피소드 ‘남주의 위장 애인이 되어 주는 여주’가 탐지되었습니다.]

[보상으로 1캐시가 적립됩니다.]

이타적인 심성에 감동한 시스템이 캐시를 주었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캐시를 챙긴 나는 기분 좋게 엘런과 집무실을 나왔다.

***

북부의 문화는 참 특이한 것 같다.

나는 기껏해야 가신들이 몰려 있는 회의실이나 정원에서 손수건을 줄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긴…….’

대리석 벽에 도끼와 칼, 활, 창이 가득하다.

보통 귀족들은 홀과 복도에 그림을 걸어 제 미감을 뽐내던데, 카이엘드가는 무기를 자랑스레 걸어 뒀다.

무기들이 왜 복도에 있는지 모르겠고, 왜 이 무기고 근처를 가신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취향 차이인가.

혼란스러운 머릿속으로 발걸음 소리가 들이찼다.

또각또각.

차가운 금속이 소리를 반사해서 그런지 발소리가 홀 안에서 날카롭게 울렸다.

게다가 안 보는 척하면서 기둥에서 날 흘긋대는 사람도, 창가에서 대화를 나누는 척 유리창에 비친 엘런과 나를 뚫어져라 보는 사람들도 신경 쓰였다.

“미안해.”

엘런이 작게 속삭였다.

“뭐가요?”

“내가 여인을 데려온 게 처음이라 신기한 모양이야.”

엘런이 가신들의 시선을 사과했다.

“아, 괜찮아요. 그래도 다들 쳐다보고 있으니 손수건 드릴 타이밍 잡기는 편하겠어요.”

엘런이 대답하는 대신 피식 웃었다.

말이 나온 김에 지금 건네려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엘런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 온 김에 이걸 보여 주고 싶었어.”

그는 벽 한가운데 걸린 거대한 검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투핸디드 소드였다. 엘런의 키만 한 검이었다.

“카이엘드 초대 가주가 마왕을 공격할 때 썼다는 검이지.”

사계국이 마왕을 몰아낸 건국 전쟁을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내 키보다 큰 검을 보며 감탄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대단한 거 같아요. 마왕은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하는데, 마왕을 마족 지대로 몰아냈잖아요.”

엘런이 입매를 기울였다.

“우리도 할 수 있어.”

음, 글쎄. 마왕이 절대자라는 건 시스템의 설정인걸?

뭐 운 좋게 마왕이 급한 일이 생겨서 마족 지대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엘런은 뿌듯하게 미소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이번 출병 때 저 검을 가지고 갈 거야.”

“괜찮으세요? 너무 무거워 보이는데.”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덧붙이자 엘런이 피식 웃었다.

“무게는 문제가 안 돼. 걸리는 건 저주지.”

“저주요?”

“마왕이 검을 붙잡고 저주를 내렸다고 하거든.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지만, 되도록 손을 대지 말라는 선조의 명이 있었어.”

“……그런데 왜 가져가세요.”

“고서에 의하면 마왕의 이능 때문에 얼어붙은 검이 전부 낙엽처럼 부서졌다더군. 오직 카이엘드가의 검만이 그 이능을 버티고 마왕의 힘줄을 잘랐지.”

엘런은 제 선조의 업적이 자랑스러운지 입매를 길게 늘였다.

“이런 보물을 그깟 저주 때문에 썩힐 수는 없잖아.”

당당하게 웃는 엘런을 보던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무시무시한 가정이 머릿속을 파고든 탓이다.

판타지 소설에는 꼭 상징적인 검이 등장했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 검에게 선택받은 남주가 진짜 남주였다.

혹시, 엘런이 S급 남주인가?

초대 가주도 마왕을 죽인 게 아니라 몰아내는 거였으니 마왕을 죽이지 못해도, 쫓아내는 걸로도 재앙 클리어를 인정받는다면 저 검으로 겨울국 황녀를 구할 수 있다는 거잖아.

나는 다시 거대한 검을 쳐다봤다.

‘오……. 설마 이게 바로 떡밥이라는 건가?’

소설에서만 봤지 실물로 떡밥을 눈에 담는 건 처음이라 속이 울렁거렸다.

또 망상이 차오르며 머리가 멋대로 과몰입을 하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정신 차려. 아닐 수도 있잖아. 진정해.

나는 천천히 다시 눈을 떴다.

그러자 멋쩍게 웃고 있는 엘런이 보였다.

“그대가 손수건을 주면 저 검에 매고 갈 생각이야.”

“그렇게 하면 누가 봐도 뭔가 있는 사이처럼 보이겠네요.”

“맞아.”

“음. 제 혼삿길이 막힐까 봐 걱정이지만, 같이 탐사한 의리를 생각해서 도와드릴게요.”

엘런이 갑자기 하하 크게 웃었다.

“그것 참 감사하군.”

그러고는 덧붙였다.

“혼삿길이 막히면 내가 책임지지.”

“그건 좀…….”

“아, 못 들은 거로 해 줘. 나중에 제대로 하지.”

아니야, 제대로 안 해도 돼.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나는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데 마왕이 저주를 내린 건지 어떻게 아세요?”

내가 알기로 카이엘드 초대 가주는 무병장수하다 돌아가셨는데.

“칼날 중앙부를 보면 긁힌 흔적 있어. 저게 마왕이 새긴 마족의 언어라더군. 아주 지독한 저주를 담은 말이래.”

마족어?

갑자기 튀어나온 나의 전문 분야에 호기심이 들었다.

나는 엘런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마족어 할 줄 아는데. 해석해 드릴까요?”

엘런이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놀란 포인트가 내 생각과 다른 것 같았다.

“안 돼! 읽었다가 저주라도 받으면 어쩌려고.”

내가 마족어를 할 줄 안다는 것보다도, 저주에 걸릴까 봐 놀란 것 같았다.

착해.

사람은 참 착하다니까.

나는 조금 감동했다.

찡한 코끝을 한 번 쓸고 검으로 시선을 틀었다. 버프를 켜면서.

“에이, 몇천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저주가 효력이 있겠어요?”

칼날에 새겨졌다는 글자를 찾는데 엘런이 얼른 내 눈을 손으로 가렸다.

“보지 마.”

그러나 이미 내 눈은 글자를 포착한 뒤였다.

[특성 버프 ‘마족어 해석’ ON]

어둡게 그림자 진 엘런의 손바닥 위로 상태창이 켜졌다.

[--]

버프가 마왕의 무시무시한 저주를 해석했다.

[♡]

‘……♡?’

검에 새겨진 마족어는 하트였다.

저게 뭔 소리야?

내가 본 해석을 믿을 수 없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윽. 간지러우니까 눈 깜빡거리지 마.”

“그냥 손을 떼시면 되잖아요.”

“손 뗄 테니까 절대 읽지 않는다고 약속해.”

“알겠어요.”

어차피 저걸 저주라고 말해 줄 수도 없으니 알겠다고 답했다. 엘런이 천천히 손을 떼어 냈다. 그러자 반투명한 상태창 배경이 더 환해졌다.

그 상태창 위로 뜬 글자도 더 선명히 보인다.

[♡]

……혹시 마왕 #개그물 남주인가?

전에 5개월만 더 자겠다고 잠투정 부린 것도 이상했는데, 전투 중에 남의 칼에 하트를 남기다니 이거 또라이 아닌가?

대체 건국 전쟁 때 몇 살이었길래.

나는 착잡한 눈으로 상태창을 바라봤다.

저걸 두고 인류가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는 거지…….

갑자기 몰려든 피로감에 집에 가고 싶어졌다.

빨리 일이나 끝내고 돌아가자.

나는 손수건을 꺼내고 엘런을 쳐다봤다.

눈치챈 엘런이 내게만 보이도록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까지 속닥거려 온 목소리와 다르게 크고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공작님, 부디 무사하시고 승리하시길 바랄게요.”

그러자 근처에 퍼져 있던 카이엘드가의 가신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엇박자로 밀려왔다.

“헉! 정말이셨어.”

“각하의 망상이신 줄 알았는데!”

“그것 보십시오. 제가 뭐라 했습니까!”

흥분한 얼굴로 제 동료의 팔을 퍽퍽 치는 소리도 들렸다.

엘런은 저 반응이 뿌듯한지 그들을 보다 내게 미소를 지었다. 엘런은 내 말에 화답하듯 말했다.

“고마워. 그대를 위해 꼭 승리하지.”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래. 부디 승리해라.

저런 거한테 지는 건 인류의 망신이다.

나는 시선을 틀어 카이엘드 초대 가주의 검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런데 그때 창가에 있던 가신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각하.”

먼저 엘런에게 묵례한 가신들이 나를 보고도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바로 손수건에 시선을 두며 질문했다.

“레이디, 정말 이것을 저희 각하께 주시는 겁니까?”

“혹시 탐사대 동료로서 의리로 주시는 건가요?”

참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대답을 하려는 찰나, 복도 끝에 있던 가신들도 이쪽으로 몰려와 호들갑을 떨었다.

“이것 보십시오. 깨끗한 손수건입니다. 레이디의 이름도, 각하의 이름도, 하다못해 상징도 없습니다.”

“오오, 확실한 의리의 손수건이군요.”

그들은 대놓고 내 손수건을 분석하며 의견을 주고받다 탄식했다.

“역시 각하의 망상이셨습니다!”

“레이디의 호의를 호감으로 왜곡해서 착각하신 거지요.”

“아하, 이것 참.”

그들은 안타까워하며 차올랐던 흥분을 비워 냈다.

이상한 사람들이긴 한데 판단력이 제법 뛰어났다.

이 손수건 하나만 보고 #착각계를 눈치채다니.

“쓸데없는 말을 할 거면 다른 데서 떠들지 그러나.”

엘런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파란 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각하께서도 이제 현실을 파악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레이디께서 다른 이에게 진심으로 손수건을 건넬 때 상처를 받지 않으시겠죠.”

엘런의 눈썹이 까닥 올라갔다. 그러나 가신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파란 머리 남자의 말에 동의했다.

“새겨들으세요. 나한테는 천 조각을 주고 다른 사람한테는 금사로 수놓은 손수건을 주는 걸 보게 되면 상처를 받게 되거든요.”

“각하, 부지런히 기대를 덜어 내십시오.”

“저희는 각하께서 상처받는 꼴은 못 봅니다!”

갑자기 대화가 격해졌다.

아니, 저 사람들 의외로 자식 교육(?) 잘하는데?

북부의 남자들이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아 엘런을 잘못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에게 잘못은 없어보였다. 그저 엘런이 모솔 유전자를 타고난 듯했다.

그런데 엘런은 가신들의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갑자기 인상을 썼다.

“금사로 수를 놓다니?”

“허허, 각하. 금사로 수를 놓은 손수건이 유행이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까.”

“맞습니다. 제 약혼녀가 만든 것 좀 보십시오.”

“오, 뛰어납니다. 우리 아내의 실력보다는 조금 떨어집니다만.”

이 기회를 틈타 가신들이 제 연인과 아내의 손수건을 자랑했다.

엘런은 말이 없었다.

가만히 침묵하며 가신들의 난장을 지켜보던 엘런이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데이지.”

“네?”

“그대에게 손수건이 몇 장이나 있지?”

뭔 소리야, 이건.

손수건이 몇 개나 있는지 세고 다니는 사람도 있나?

나는 옷도 이제 막 맞춘 사람인데 손수건이 여유 있을 리 없다.

“글쎄요. 세 보지 않았지만 몇 장 없을걸요?”

“그래. 오늘 내로 새 걸 보내 줄 테니 그 몇 장은 버려.”

“예? 왜요?”

이건 또 뭔 소린데.

그러나 엘런은 대답하는 대신 미소를 지었다.

“처음이야.”

뭐가 대체.

너 혼자 생각하지 말고 나도 이해할 수 있게 대화 좀 제대로 해 줘.

“이런 자극을 받는 게 낯설지만 싫지 않군.”

엘런은 저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표정이 이상했다.

나는 엘런의 그 이상한 생각이 궁금하지 않아서 그냥 쟤는 또 왜 저러나 하는 마음으로 홀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에테르가 저택에 방문한 카이엘드가 가신들을 보고 나서야 그때 엘런의 생각을 꼬치꼬치 캐물었어야 한다는 후회를 했다.

“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 세상에 이건 마담 르몽드의 작품일 거예요. 구하기 힘들다고 하던데 어쩜!”

예쁜 드레스에 약한 웬디가 예쁜 손수건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응접실 테이블에 놓인 금빛 상자를 보다 시선을 들었다.

“공작님께서 데이지 양이 가진 모든 손수건을 회수해 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손수건을 대신 전하라고 하셨고요.”

가신들은 뿌듯한 얼굴로 상자와 나를 번갈아 봤다.

상자에는 같은 디자인이 하나도 없는 화려한 손수건이 백 장이나 담겨 있었다.

수놓을 틈 없이 화려한 무늬가 가득한 손수건이었다.

“아가씨! 저는 올라가서 저희 손수건을 챙겨 올게요.”

웬디는 내가 당연히 허락할 거라 여겼는지 눈을 반짝이며 저렇게 말했다.

“아니, 내일 얘기하자. 지금 옷장을 어떻게 다 뒤져.”

“네? 아가씨 손수건은 다섯 장밖에 없는걸요?”

그렇구나. 나는 손수건이 다섯 장밖에 없구나.

넌 어떻게 그런 걸 외우고 다니는 거니.

평소에 내 복장과 아이템에 불만이 많았는지 웬디는 내 옷장 속 물건들을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신난 웬디를 보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상자에 수북하게 쌓인 손수건을 쳐다봤다.

엘런이 #집착남 키워드값을 하는구나.

내가 손수건에 수를 놓아서 다른 사람에게 줄까 봐 걱정된 건지, 엘런은 아무 무늬 없는 내 손수건을 모두 가져갔다. 화려한 손수건 백 장을 선물하면서.

나는 카이엘드가 가신들을 돌려보내고 금빛 상자 뚜껑을 닫았다.

“이거 장사해도 되겠네.”

이래저래 쉽지 않은 남주들과 엮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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