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OP 100 영애-19화 (20/208)

19화.

돈 쌓이는 소리에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펼쳐진 삼각관계 상황을 정리하며 돈 모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엘런이 경직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게 무슨 말이지?”

정말로 내가 본인을 위해 희생한다고 믿는 건지 엘런의 목소리에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엘런에게 내장된 착각계가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다.

좋아, 엘런.

그 감정선이야.

나는 다시 엘런을 쳐다보다 시선을 떨구고 고개를 저었다.

“알려고 하지 마세요. 다치실지도 몰라요.”

“그런 건 그대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야. 말해.”

역시 남주다.

그깟 피해 따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엘런은 나를 응시하며 대답을 재촉했다.

미안하지만, 당연히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런 내 태도 또한 메이저일 게 분명하므로.

나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제 일이에요. 더 이상 상관하지 말아 주세요.”

[메이저 에피소드 ‘남주에게 오해를 쌓는 여주의 삽질’이 탐지되었습니다.]

[메이저 에피소드 획득 보상으로 1캐시가 적립됩니다.]

와, 여기 캐시 맛집이네!

근데 잠깐만. 삽질이라니?

오해가 있어야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있어야 카타르시스가 나오는 거지!

참나, 오해가 얼마나 재밌는 건데 네이밍 한번 섭섭하게 짓네.

나는 알뜰히 캐시를 모으며 시스템의 판정을 부지런히 욕했다.

그 뒤로도 몇 번의 대화가 이어졌고 시스템은 계속 내게 캐시를 퍼주었다.

캐시에 눈먼 나는 스토리가 산으로 흘러간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메이저 에피소드를 때려 넣으며 캐시 룰렛을 돌렸다.

그러다 날카로운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레이디 데이지는 절대 탐색대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기사도가 국운보다 중요한가, 엘런 카이엘드?”

“레이디의 목숨을 담보로 얻어야 하는 국운이라면, 기사도가 먼저라 생각되는군요.”

“목숨? 대체 여기서 누가 죽는다고 그래?”

알렉스가 기가 막힌다는 듯 헛숨을 흘렸다. 그러나 엘런은 단호했다.

“레이디 데이지는 말에 거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입을 다무는 걸 보니 목숨이 걸린 위험한 일인 게 분명하죠.”

“너 엘런 맞아? 왜 이렇게 변했어.”

“전하야말로 제가 알던 분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레이디를 협박까지 하시고.”

“미치겠군. 협박 같은 거 안 했다고 몇 번 말 해.”

알렉스는 지친다는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미 엘런은 알렉스를 쓰레기 보듯 쳐다보며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는 독자의 마음으로 팝콘을 찾으며 둘의 싸움을 지켜보다 AI 담당자님에게 물었다.

‘담당자님, 저 캐시 얼마나 적립됐어요?’

[현재 유저의 캐시 잔액은 10캐시입니다.]

[캐시 사용을 위해 상점에 방문하시겠습니까?]

10캐시면 충분하려나?

모자라면 나중에 다시 쌓지 뭐.

나는 이쯤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슬슬 상황을 정리했다.

나오지 않는 눈물을 쥐어짜려 노력했지만, 물 한 방울 고이지 않아 포기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만하세요.”

두 남자의 시선이 이쪽으로 흘러왔다.

“다 제 잘못이에요.”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문지기를 바라봤다.

철컹, 나를 알아본 문지기가 얼른 문을 열어 주었다.

“두 분을 위해 제가 포기할 테니 이제 그만 싸우세요.”

나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뒤돌아 문 안으로 들어갔다.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뱉은 말에 알렉스가 어이없다는 듯 물어왔다.

“대체 뭘 포기한다는 건데?”

다행히 나보다 이 상황에 더 과몰입한 엘런이 대화를 완성하도록 도와줬다.

“아니, 그 무엇도 포기할 필요 없어. 그대의 마음이 가는 대로 해.”

엘런 쟤는 내가 뭘 포기한다고 생각하길래 저러는 거지?

좀 찜찜하기는 했지만, 나는 두 사람이 뭐라 하건 내버려 두고 걸음을 빨리해 공작저 정원으로 들어섰다.

띠링.

분수대를 지날 때쯤, 캐시가 쌓이는 경쾌한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메이저 에피소드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남주와 서브남주를 동시에 떠나는 여주’가 탐지되었습니다.]

[메이저 에피소드 획득 보상으로 1캐시가 적립됩니다.]

좋아. 현질 하러 가자!

***

방으로 돌아온 나는 손목에 찬 워치를 풀었다. 순간 터치가 되는 바람에 화면에 팟, 빛이 돌며 알람창이 떴다.

메시지 43건이 수신됐다는 알람이었다.

전부 라리사 황녀 영애였다.

[라리사: 영애 우리 아빠 남주로 괜찮아요.]

[라리사: 영애 스타일 아니어도 같이 메이저 에피라도 쌓게 밥이나 먹고 가요.]

[라리사: 영애애애애애애.]

[라리사: 뉴비 영애애애애애애.]

[라리사: 아니이이이, 영애 메시지 안 볼 거면 워치 왜 차고 다녀용? ㅇㅅㅇ]

.

.

.

[라리사: 슬슬 걱정되네. 영애애애 집에는 잘 들어갔어요?]

시간을 보니 황궁에서부터 라리사 영애가 계속 내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AI 동기화 메시지는 10건 제한이 있어도, 메신저 앱은 횟수 제한 없이 소통이 가능한가 보네?

[네. 메신저 앱을 통한 소통은 횟수 제한 없이 언제든 가능합니다.]

오, 그랬구나. 다음부터는 워치로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아이템 구매 시, AI 동기화 메시지 연동도 무제한으로 이용이 가능합니다.]

캐시 좀 쌓였다고 AI 담당자님이 그새 아이템을 영업했다.

‘그런 아이템도 있어요?’

[네. 캐시 상점에서 ‘AI 연동 메시지 무제한 이용권’을 구매해 보세요. 1개월에 1캐시로 12개월 약정 시 10캐시로 할인…….]

‘알겠어요. 일단 캐시 상점 좀 둘러보고 올게요.’

[또한 ‘AI 연동 메시지 무제한 이용권’ 구매 시 AI 동기화 메시지를 거리 제한 없이 사용 가능합니다.

기본 AI 메시지 연동은 같은 장소(씬)에 접속한 유저에게만 발송 및 수신이 가능하지만, 아이템 적용 시 장소에 상관없이 발송이 가능…….]

‘아니, 좀 둘러보고 온다고요.’

AI의 끈질긴 영업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정말 나도 나지만 AI도 적잖이 캐시에 진심이었다.

나는 영업 당하기 전에 빨리 캐시 상점에 가 볼 생각으로 노트북을 꺼냈다.

상점에 들어가기 전에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커뮤니티에 상점을 검색하니 역시나 그와 관련된 글이 잔뜩 나왔다.

그런데 그중 내 눈을 사로잡는 게시물이 하나 있었다.

제목: 상점 튜토리얼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32]

『솔직히 는 타임라인 늦게 시작하는 게 이득인 듯.

튜토리얼은 딱 1번밖에 못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영애들은 후회밖에 할 게 없잖아 ㅠㅠ 튜토리얼 팁만 알았어도 ‘남주 교환권’ 획득했을 텐데....

*울 뉴비 영애들은 실수하지 말라는 뜻에서 정보 나눔 합니다*

튜토리얼 하면 아이템 결제까지 시스템이 진행해주는데 이게 인생 마지막 캐시 사치의 기회임.

영애들 꼭! 꼭! 꼭! 아이템 비싼 거 잡아야 함!

난 그냥 메인 배너에 뜬 상품 잡았는데 엄청 후회 중.

내가 산 게 뭔지 알아?

AI 커뮤니티 연동권...ㅎ

대형 상태창으로 커뮤니티 하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긴 해. 근데 1캐시짜리 아이템 선택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현타 오더라^^

영애들 배너 아래 보면 필터 모양 있는데, 그거 누르면 전체 아이템 정렬할 수 있거든?

인기 순, 신상품 순, 가격 높은 순, 가격 낮은 순.

이렇게 네 가지야.

당연히 어떤 필터를 기준으로 상품을 정렬해야 할까?

바로 가. 격. 높. 은. 순!

(별표 다섯 개 치자★)

인기순은 가성비 측면도 고려되니까, 무조건 가격 높은 순으로 봐!

레어 아이템은 대부분 품절이라 구매하기 힘들겠지만, 운 좋으면 재입고됐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무. 조. 건 가격 높은 순으로 보자.

솔직히 레어템의 가치는 가격과 비례하잖아?^^』

┗ 아, 내가 이걸 보고 튜토리얼을 해야 했는데.... 후회남주도 아니고 내가 왜 구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ㅠㅠ

┗나는 ‘메시지 무제한 이용권’ 출시했을 때 튜토리얼 해서 그거 샀잖아 ㅋㅋㅋ 딱 한 달 즐겁게 게임했다 8ㅅ8

┗ 시스템 진짜 간사한 게 가이드 라인에 필터 가려지게 해 뒀잖아. 지들이 홍보하는 아이템 사게 하려고 ㅡㅡ

┗ 공짜인데 뭘 그렇게 아쉬워하냐 영애들 ㅉㅉ 그냥 감사하게 써~

┗ 엥? 솔직히 영애도 이 팁 알았으면 레어템 샀을 거잖아?

┗ 아이고~ 할미 때는 말이에요~ 레어템이 없었어요~ ‘남주 교환권’, ‘30분 회귀권’ 다 나 타임라인 시작하고 10년쯤 뒤에 들어왔단 말이지요~

┗ 헐... 울 할모니 영애... 힘들게 게임하셨구나... 토닥토닥ㅜ.ㅜ

영애들 말처럼 이 게임은 늦게 시작할수록 이득인 것 같았다.

나는 영애들이 올려 준 고마운 팁을 정독한 뒤 상점 튜토리얼을 준비했다.

‘담당자님, 캐시 상점 열어 주세요.’

[캐시 상점을 오픈합니다.]

상태창이 켜지자 인터넷 쇼핑몰처럼 여러 상품이 상태창 안에 들이찼다.

맨 위에 검색창이 있고, 그 아래는 롤링 되는 기다란 대배너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신상품’, ‘AI MD 추천템’, ‘후기 좋은 상품’들이 한 칸씩 자리를 차지했다.

모르고 보면 홍보 중인 아이템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때, 상점 창 위로 불투명한 검은 막이 입혀지더니 하얀 글씨가 올라왔다.

[캐시 상점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캐시 상점 첫 방문 시 ‘상점 튜토리얼’이 진행됩니다.]

[‘상점 튜토리얼’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상점 튜토리얼인가 보다.

나는 눈으로 필터 표시를 찾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바로 시작해 줘.”

[상점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검색창 아래로 굵은 가이드 라인이 생기더니, 반짝반짝 점멸하기 시작했다.

[구매를 원하는 아이템을 선택해 주세요.]

영애들 말처럼 그 굵은 선은 교묘하게 필터 아이콘을 가렸다.

나는 가뿐히 가이드 라인을 무시하고 필터 아이콘을 손으로 터치했다.

높은 가격순 정렬이랬지?

높은 가격순 정렬을 선택하자, 배너들이 사라지고 모든 아이템이 일렬로 정렬됐다.

나는 가장 상단에 있는 아이템 ‘남주 교환권’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뭐, 뭐? 1만? 1만 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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