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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100 영애-16화 (17/208)

16화.

심장을 움켜쥐는 황녀 영애님의 치명적인 귀여움에 숨이 떨렸다.

‘다, 담당자님! 저 메시지 보내주세요!’

[메시지가 활성화됩니다.]

[수신자를 설정해 주세요.]

‘저기, 저 황녀 영애님께 보내 주세요.’

[봄국 황녀 ‘라리사 데비 피델리오’에게 메시지를 전송합니다.]

‘아, 아. 첫인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지.’

[전송 완료]

‘아! 아니야! 그거 보내려던 거 아닌데!’

[전송 완료]

메시지 끄는 법을 몰라 당황한 나는 다급하게 황녀 영애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황녀 영애님, 저 아까 커뮤에서 겨울국 황실 대화록 대여 문의했던 뉴비 영애예요.

세상에, 여기서 만나다니 우리는 운명인 게 확실해요.

제가 황녀 영애님 나오는 소설 3번인가 5번 정주행했거든요.

어쩜 제가 상상한 그대로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우신지. 멀리서 뵈어도 황녀 영애님의 빛에 눈이 멀 것 같아요.

게다가 기분 탓인지 이렇게 거리가 먼데도 황녀 영애님의 고소한 우유 향이 느껴지는 것 같…….’

마구 주접을 흘리고 있는데 알람이 들렸다.

[메시지 10건 발송이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지 종료. 집중력 보호를 위해 AI 동기화 메시지는 한 장소당 10건으로 발신 제한됩니다.]

아니! 벌써 10건이나 쓴 거야?

아무래도 생각이 길면 자동 분절되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잠든 줄 알았던 아기 황녀님이 한쪽 눈을 빼꼼히 떴다.

밀가루 반죽처럼 보드랍고 포동포동한 얼굴 사이로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영롱히 반짝였다.

아아, 제발 볼살 한 번만 만져 보게 해 줘.

황녀님 입에 넣고 와랄랄라 물고 빨고 핥고 싶어.

메시지가 차단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주체할 수 없는 주접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혼돈의 주접 속으로 황녀 영애의 메시지가 파고들었다.

[라리사: ㅋㅋㅋㅋㅋㅋㅋ 와, 뉴비 영애 대존예네. 미쳤다 금발벽안? 천사세요?]

[라리사: 지금 영애 뒤로 리베라 합창단 BGM 깔리는 중♬]

황녀님이 아기 천사처럼 말랑말랑한 얼굴로 고인물스러운 주접을 흘리셨다.

그 묘한 괴리감에 나는 움찔했다.

“긴장하지 마.”

내가 황제를 보고 긴장했다 여겼는지 갑자기 황태자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제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와도 좋다는 황제의 허락을 기다리는데, 메시지가 파고들었다.

[라리사: 나 황태자 캐 잡아 온 영애 처음 봐요. 영애 뉴비 맞아요? 2회차 아님?]

[라리사: 황태자 미모 무슨 일이야. 예쁜 것 좀 봐. 꽃 같다. 만개한 장미 같네. 냄새는 어때요? 냄새도 좋을 거 같은데. 킁킁.]

주접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생각해 왔는데, 막강한 경쟁자를 만난 기분이 든다.

[라리사: 그나저나 뉴비 영애 메시지 차단돼서 답장을 못 받으니까 답답하네. 영애 우리 끝나고 밥 먹을래요?]

[라리사: 영애에게 거부권은 없어! 밥 먹고 가랏! > <]

황녀 영애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래, 좀 변태 같으실 수도 있지. 저 순수한 얼굴을 봐. 무엇을 해도 되는 얼굴이야.

이내 황녀 영애는 다시 자는 척 눈을 감았다.

그때, 단상 아래 있던 시종이 접근을 허락했다.

나는 황태자를 따라 단상 아래로 걸어갔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황제한테 어떻게 인사해야 하지?

점차 황제의 얼굴이 가까워지는데 어떻게 인사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영화에서 볼 때는 치마 잡고 고개를 숙였던 것 같은데.

패닉에 빠지려는 찰나 AI 담당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실 예법 튜토리얼을 시작할까요?]

예법 튜토리얼?

게임 튜토리얼 같은 건가 보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시작해 줘!’

[황실 예법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시스템 창이 스크린처럼 넓어지더니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추었다.

그리고 내 윤곽을 따라 가이드 선이 그려졌다.

노란 가이드 선이 움직이며 인사법을 알려 주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허벅지 중간 부근 치맛자락을 잡고 가이드 선만큼 적당하게 벌립니다.]

나는 스크롤을 쥔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치맛자락을 잡고 노란 가이드 선까지 치맛자락을 펼쳤다.

[GOOD!]

가이드 선에 내 윤곽이 맞춰지자 시스템이 날 칭찬해 줬다.

뭐야 쉽네?

[허리를 뒤로 빼며 살짝 숙인 뒤, 시선은 계단과 바닥 사이의 홈으로 내립니다.]

계단과 바닥 사이에 붉은 화살표가 뿅! 나타났다.

저기에 시선을 두라는 뜻인가 보다.

나는 가이드 선에 맞추어 몸을 적당히 숙이고, 시선을 내렸다.

[GOOD!]

또 시스템의 칭찬 음이 울렸다.

기분이 좋아지는데 시스템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황제가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들며 허리를 바로 세웁니다.]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고개를 들 수도 입을 열 수도 없습니다. 황제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대기합니다.]

[※주의사항: 황제의 심기에 거슬리면 빙의 생활이 꼬일 수 있습니다. 황제에게 #폭군 키워드가 있으면 사형으로 절벽 엔딩을 맞이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절벽 엔딩?’

[[결]을 완성하지 못하고 엔딩을 맞이할 경우 ‘절벽 엔딩’으로 처리됩니다.]

[‘절벽 엔딩’시 조기 완결로 20억 정산이 취소됩니다.]

뭐? 20억을 뺏어 가?

나는 당황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대기하는 건데 뭐.

이걸로 절벽 엔딩을 맞이할 일은 없으니 차분히 황제의 말을 기다렸다.

“알렉스 로이드 필리스.”

대리석 홀을 울리는 웅장한 목소리에 피부가 진동했다.

역시 황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지 목소리에도 위엄이 가득하다.

황태자가 자세를 바로 하는지 벨벳 재킷이 마찰하는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알현을 청한 이유가 무엇이지?”

호랑이가 포효 전 숨을 고르듯 묵직한 울림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저 짧은 말이 뭐라고 나는 긴장했다.

그러나 황태자 알렉스는 전혀 긴장감 없는 태도로 차분히 답했다.

“일전에 말씀드렸던 마왕 토벌 건으로 제안드릴 사항이 있어 찾아뵀습니다.”

“마왕 토벌은 카이엘드 공작가에서 담당하는 거로 아는데. 왜 이에테르가에서 후견하는 레이디를 내 앞에 데려온 건지 여전히 모르겠군. 만나게 해 달라는 청까지는 내 그러려니 했지만 말이야.”

“토벌 전에 마왕 동면지를 찾을 탐색대를 파견할 생각입니다. 레이디 데이지의 도움이 필요해 폐하의 허락을 받고자 함께 찾아뵈었습니다.”

응? 내 도움?

나는 처음 듣는 말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

“불허한다. 이에테르가의 사람을 내 마음대로 보낼 수는 없는 일. 이는 이에테르가의 허락이 필요하다.”

“이에테르가가 충성하는 분은 폐하가 아니신지요. 이에테르가는 폐하의 명이라면 기쁘게 따를 것입니다.”

“겨울국은 황실 근위대도 버티기 힘든 험난한 곳이다. 그런 곳으로 왜 여인을 데려가려는 것인지 황태자의 속을 이해할 수 없군.”

나도 이해가 안 가!

왜 나를 데려가?

나 쓸모도 없다고!

“레이디 데이지는 어릴 적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필사를 해 왔습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겨울국 고서와 마족의 편서 대부분이 레이디 데이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고 하죠.”

억…… 그래서 나 웅크린 집순이였어?

집에서 웅크리고 필사만 한 거야?

당황하는데 황제의 목소리가 고막을 찢으며 들어왔다.

차분하던 특유의 중저음이 아닌 노기 띤 날 선 음성.

“마족의 편서?”

“물론 마족의 기록을 보유하는 건 불법이고, 이를 어긴 자는 교수형에 처하는 게 봄국의 법임을 압니다. 하지만 레이디 데이지에게는 마왕 토벌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안내자입니다.”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누구보다 투철한 준법정신을 가지고 살아온 내가 갑자기 금서를 불법 복제해 퍼트린 범죄자가 되었다.

그걸 교묘하게 이른 황태자는 나를 위하는 척, 내 죄를 사해 달라고 황제에게 부탁하고 있다.

나를 마왕 토벌대, 아니 마왕 탐색대에 넣으려고.

나는 당장 고개를 들고 저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다.

나는 편서를 복제한 적이 없고, 말만 들어도 무서운 마왕 근처에는 가고 싶지도 않다고!

그러나 황제는 고민하듯 흠, 깊이 침음했다.

“탐색대라.”

그는 제 왕좌를 툭툭 손끝으로 건드렸다.

몇 초 뒤 그가 다시 물어왔다.

“토벌대가 겨울국으로 파견될 텐데 굳이 그 전에 탐색대를 보낼 필요가 있을까?”

“예. 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겨울국은 황실 근위대조차 버티기 힘든 험준한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병사들이 헤매게 되면 인적 손실이 막대할 겁니다. 그전에 최소한의 인력으로 마왕 동면지를 찾고, 병력을 모아 한 번에 급습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입니다.”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한다.”

황제가 말끝을 늘이다 다시 제 말을 덧붙였다.

“국가적 재난에 병력의 손실이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굳이 그것을 막기 위해 탐색대를 꾸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1천 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일을 1백 명의 희생자로 줄일 수 있다면, 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부드럽고 나긋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래로 떨어진 내 시야에는 황태자의 손이 담겼다.

주먹을 세게 쥔 탓에 그의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황태자가 그렇게 병사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줄 몰랐는데 말이지.”

“봄국과 여름국의 병사들은 제 관할이 아니니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가을국의 병사는 제 허락 없이 단 한 명도 죽을 수 없습니다.”

그 말에 긴 침묵이 시작됐다.

두 사람이 기 싸움을 하는 것인지, 황제가 고민을 하는 것인지 얼굴이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짜증이 났다.

난 탐색대에 끌려가고 싶지 않다니까?

내 일을 결정하는데 고개를 숙인 채 한 마디도 벙긋하지 못하는 게 화가 났다.

황제와 황태자.

계급 피라미드의 가장 정점에 있는 황족.

그 두 갑의 싸움에 나는 처참하게 을질 당하는 중이었다.

끼어들까 잠시 고민했지만, 병사들의 죽음을 당연시하는 황제의 인성을 보니 저 남주에게 분명 #폭군 키워드가 있을 것 같았다.

절벽 엔딩을 감수하기에는 20억이 너무나 크고 소중했다.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는데 머릿속으로 메시지가 파고들었다.

[라리사: 뉴비 영애, 황태자가 영애를 억지로 끌고 가는 거 같긴 한데. 가끔 #강압적관계 선호하는 영애들이 있어서 먼저 물어봐요.]

황녀 영애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라리사: 영애, 탐색대 들어가서 황태자랑 감금 19금 씬 찍어야 하는데 내가 방해하는 걸까 봐.]

아니에요! 내가 왜 저놈이랑 감금 19금 씬을 찍어요!

그러나 메시지가 차단된 지금 내 생각이 그녀에게 닿을 리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는데 다시 황녀 영애의 메시지가 수신됐다.

[라리사: 탐색대 가기 싫은 거면 내가 도와줄게요. 뉴비 영애.]

먹구름이 드리운 세상에 한 줄기의 빛이 내려오는 것처럼, 황녀 영애의 마지막 메시지가 들려왔다.

[라리사: 내 도움이 필요하면 손에 쥔 당근색 종이를 흔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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