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OP 100 영애-9화 (10/208)

09화.

공작부인 영애는 팔랑이던 부채를 촥 접었다.

“지금 바로 본 셰밍에 가서 영애 드레스부터 맞출 생각인데, 영애는 제게 양보하고 남매의 식사는 다음에 하시죠.”

당연히 비에른이 날 보내 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흘리며 공작부인 영애의 제안을 거절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미소를 머금은 비에른의 얼굴이 이쪽으로 흘러왔다.

“데이지의 의상은 제가 준비할 거라.”

와, 준비해 줄 생각이었어?

이 오라버니 정말……!

감동하려는 찰나 탄식 소리가 엇박자로 겹쳐 왔다.

“아아.”

“음.”

아직 옆에 머물던 영애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작부인 영애도 침음하며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지금 와서 준비한다는 거 보니 샤디올에서 맞추려 했나 보군요.”

샤디올은 뭐야.

샤X도 디X도 아닌 애매한 브랜드명에 미간을 찌푸렸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작명에 엄청난 귀차니즘을 느끼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정말 그곳에서 옷을 구매할 생각이었는지 비에른이 움찔했다.

“첫 데뷔탕트 드레스를 기성복으로 맞춘다니, 이래서 남주…… 남자들은.”

공작부인 영애는 다급히 말을 다듬으며 헛기침을 했다.

“내가 본 셰밍에 주문해 둔 드레스가 몇 벌 있어요. 영애는 나와 체구도 비슷하니까 치수만 조금 다듬으면 될 거예요. 제게 맡겨요.”

비에른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드레스 대금은 말씀해 주시면 바로 전달드리겠습니다.”

“됐어요. 트리비아나 공작 돈 쓰는 게 제 유일한 낙인걸요. 정부한테 쓰게 둘 바에는 길가에 뿌려 버리는 게 낫죠.”

비에른은 남의 가정사에 더 말을 얹지 못하고 입을 달싹이다 내게 시선을 돌렸다.

“……조심히 다녀오고 혹시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아니에요, 지금도 충분해요. 그럼 좀 이따 집에서 뵐게요.”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럼 영애, 우리는 갈까요?”

공작부인 영애와 그 뒤에 선 영애들이 손가락을 말아 동전 모양을 만들었다.

#돈지랄을 뜻하는 그들의 수신호 같았다.

그렇게 나는 봄국 영애들의 가호를 받으며 무사히 데뷔탕트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

제목: 보상으로 ‘서사 치트키’ 받아보신 분?

『24시간 내 2만 5천 자 분량 달성 보상으로 ‘서사 치트키’를 받았어요.

근데 이게 좀 이상한 거 같아요.

S급 사건』

“응? 이거 왜 이래?”

한쪽 눈썹이 절로 쓱 올라갔다.

나는 툭툭 자판을 다시 쳤다.

커뮤에 글을 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문장이 지워졌다.

정확히는 ‘S급 사건’이 지워졌다.

의아함에 눈이 가늘어지는데 시스템 알람이 들렸다.

[‘마왕의 기상’은 접근이 제한된 정보입니다. 유저 간 정보 공유가 차단됩니다.]

[일부 유저에게만 ‘마왕의 기상’ 정보가 해금됩니다.]

[해당 정보에 접근 가능한 유저는 ‘여름국 황제 - 대륙 제2의 검’, ‘가을국 성녀 - 시대의 예언자’, ‘봄국 남작 영애 – 웅크린 집순이’ 입니다.]

‘엇, 이거 비밀이었어?’

[네. 97명의 유저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정보입니다.]

‘카이엘드 공작은 아는 거 같던데?’

[총 10명의 남주 캐릭터만이 ‘마왕의 기상’에 접근 가능합니다.]

그 10명 중 한 사람이 엘런인 모양이구나.

“뭐야. 10명이나 아는 거면 갑자기 바뀐 설정은 아닌가 보네.”

나는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며 안도했다.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사건인가 했는데 마왕이 중간에 깨는 건 원래 내장된 시나리오인 듯하다.

생각해 보니 엘런은 내게 어디서 들은 정보냐고 묻지 않고, 신전에서 들은 거냐고 물었다.

엘런은 가을국에 있다는 예언자 영애를 만난 건가?

나는 머리가 띵해져서 자세를 바로 했다.

와, 이게 이렇게 엮여?

영애들에게도 알려 줘야 할 것 같았는데 시스템이 관리하는 정보라니 빠르게 포기했다.

어차피 이미 아는 영애들도 있고.

‘대륙 제2의 검’

‘시대의 예언자’

수식부터 먼치킨 향이 나는 영애들이었다.

‘웅크린 집순이’ 하나 빠져도 별일 없을 듯.

아니 근데 웅크린 집순이가 뭐냐……?

시스템, 나 차별해?

시스템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한껏 삐진 목소리로 S급 사건에 관심을 껐다.

그래, 세상은 먼치킨 언니들보고 구하라고 해. 웅크린 집순이는 토끼 같은 남주 찾고 20억이나 타 갈 테니까.

……어?

섭섭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게 더 좋은 것 같았다.

잠시 일었던 서운함을 접으니 다시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는 협탁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새벽부터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해야 하니 일찍 자야 했다.

본 셰밍의 빽빽한 예약을 비집고 겨우 드레스를 주문했는데, 내일 오전에만 피팅이 가능했다.

#디자이너 여주가 날 위해 시간을 내주신 거니 미룰 수 없었다.

할 게 너무 많네.

내일은 드레스 피팅하고 또 무도회 춤 연습도 해야 하고.

일주일은 바쁠 예정이다.

다음 주면 로판의 꽃, 데뷔탕트 무도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무도회는 남주들이 모이는 장소.

남주가 많을 테니 슬롯을 잔뜩 채워 올 생각이었다.

지금 내 남주 슬롯에는 오직 1명의 남주만 있었다.

엘런 아이스타스 카이엘드.

그놈뿐이다.

스토커 취급을 당하면서 [전]을 채울 생각 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괜찮은 남주 하나만 걸려라.

대충 살다, [결] 찍고 20억 정산받아야지.

히죽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아, 얼른 자야지.”

새벽부터 일어나 씻고, 옷을 피팅할 생각하니 벌써 피곤하다.

아니, 잠깐?

갑자기 소름 돋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 왜 굳이 준비하려 하지? 어차피 예정된 일정이면 타임워프 해도 되지 않아?

될까?

나는 침대에 앉아 조심스레 AI 담당자를 불렀다.

‘AI 담당자님, 무도회로 타임워프 해 주세요.’

안 되면, 뭐. 새벽에 일어나서 준비하면 되지.

***

잠시 눈을 찌푸렸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빛에 눈이 아팠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잡담 소리에 천천히 다시 눈을 떴다.

나는 시야에 담기는 화려한 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샹들리에 불빛에 하얀 대리석 바닥이 반짝이고, 금테를 두른 아치형 유리창과 전면 거울이 벽처럼 홀을 둘러쌌다.

“괜찮아요?”

여자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또 눈이 부셔서 나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원체 빛 반사가 심한 깨끗한 은발을 가졌는데, 보석으로 치장을 한 공작부인 영애, 시에나 트리비아나는 말 그대로 자체 발광하고 있었다.

“술 때문에 그런가 보다. 마시지 마요.”

내 손에는 기다란 샴페인 잔이 들려 있었다.

“아, 아니에요. 제가 타임워프를 써서 어지러워서 그랬어요.”

“아, 어쩐지 계속 말이 없다 싶더니.”

시에나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쪽 벽면을 차지한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거울에는 완벽하게 세팅을 마친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굵은 물결을 넣은 긴 금발이 허리에서 찰랑거리고, 머리칼을 따라 늘어진 은줄이 단정히 뒤로 묶였다.

코르셋이나 파니에를 입지 않아 품이 좁은 하늘색 드레스, 그 위로 수놓아진 은빛 사슴이 샹들리에 빛에 반짝거린다.

미쳤다 이 기능.

그저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최소 6시간은 풀세팅 해야 하는 착장이 완성되어 있었다.

혹시 집에 가서 씻기 귀찮으면 그때도 타임워프 쓰면 되는 거야?

씻고 옷 갈아입은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고 그런 거야?

뭐 이런 사기 기능이 다 있어?

이거 제발 현생에도 있으면 좋겠다.

나는 개발자님들이 하사하신 아름다운 게임 세계를 둘러보며 감격했다.

그러다 퍼뜩 든 생각에 다시 시에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저 여기 오는 동안 챙겨 주신 거예요?”

미안한 마음에 눈꼬리가 내려가는데 시에나가 손을 작게 내저었다.

“아뇨. 영애는 비에른이랑 왔고, 저는 5분 전쯤에 만났어요. 사람들한테 인사시켜 주려는데 말이 없길래 혹시 타임워프인가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죠.”

“근데 제가 타임워프 하는 동안 캐릭터는 어떻게 움직여요? 정신이 나가 있나요?”

말이 좀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적절한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행히 찰떡같이 이해한 시에나가 푸스스 웃으며 입을 열었다.

“타임워프 공백기에는 NPC처럼 움직이거든요. 말수 없고 피곤해 보이긴 하지만 정신 나간 거 크게 티 안 나요.”

그녀의 말에서 빙의 짬이 느껴졌다.

“영애는 여기 들어온 지 얼마나 되셨어요? 캐릭터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저는 빙의한 지 5년 정도 됐고, 캐릭터 나이는 45세예요.”

“45세요?!”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왜 안 늙으세요?”

그녀의 외모는 많이 봐야 20대 중후반. 절대 45세라 추측할 수 없었다.

“다들 히든 남주 때문인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타임라인이 원체 길잖아요? 만약에 히든 남주가 20살인데 제가 45살일 때 만나면 외양이 좀 안 맞으니까, 신체 나이가 들지 않게 세팅된 거 같아요.”

그녀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며 피식 웃었다.

“근데 아리나 영애 말로는 개연성을 신경 쓴 게 아니라 캐릭터 노화를 구현하려면 디자인 비용이 많이 들어서, 안 늙는 설정을 넣은 거 같다더라고요.”

현생 정보는 비밀이라더니 아리나 영애가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거 온 세상이 다 아는 듯했다.

시에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개연성 때문이든 자본주의 때문이든, 난 좋아요.”

인정 인정.

불로불사를 누가 싫어하겠어.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아리나 영애가 저쪽에서 힐긋거리며 우리를 쳐다봤다.

시에나가 눈치 좋게 모여 있는 영애 무리에게 가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아리나가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트리비아나 부인, 오늘도 아름다우시네요. 데이지 영애도 잘 지냈어요?”

곧 다른 영애들도 대화에 끼기 시작했다.

“또 만나네요, 영애.”

그녀들의 손목에 감긴 스마트 워치가 영롱히 반짝였다.

나는 그동안 저 물건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유저를 제외하면 스마트 기기를 볼 수 없다고 한다.

“데이지 영애, 남주 슬롯은 좀 채웠어요?”

카페에서 만났던 봄국 영애들이 이쪽으로 터를 잡고는 소곤소곤 대화를 이어 갔다.

“아뇨. 카이엘드 공작 이후로 한 명도 못 채웠어요.”

“괜찮아요. 여기서 채우면 되죠.”

푸른 머리 영애가 나를 위로하듯 윙크를 해 줬다.

적발 영애가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며 키득거렸다.

“저는 이 게임에서 무도회가 제일 좋아요.”

“저도요.”

청발 영애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이 허락한 안구 쾌감.”

그녀들은 짠, 잔을 부딪치며 홀에 시선을 두었다.

“하, 비주얼 하이(VISUAL- HIGH). 취하네요.”

적발 영애와 청발 영애는 죽이 잘 맞았다.

나도 그녀들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는데 아리나 영애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속삭였다.

“저는 저기 연두색 장발 머리 공작님이 마음에 드네요.”

연둣빛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남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호위 기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청순함을 뽐내는 남자를 보며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저분도 남주일까요?”

“글쎄요. 옷깃을 스쳐 봐야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 텐데. 공작이고 존잘이니까 아마 남주겠죠?”

아리나는 초록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 본인 머리도 초록색이고 저 장발 남자도 연두색 머리고.

나는 시선을 돌리며 다른 남주들도 둘러봤다.

문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황실 근위대 기사들이 보였다.

“저는 장발은 별로라. 아, 입구에 서 계신 기사님. 은발 벽안! 저분 제 취향이세요.”

시에나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 피지컬 미쳤네요. 저 제복핏 좀 봐요.”

그때, 연분홍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청순한 미녀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손목에도 워치가 감겨 있었다.

그녀가 주변에서 서성이자 시에나가 나를 데려가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시에나의 인사에 화답하며 수줍게 웃었다.

“트리비아나 공작부인, 잘 지내셨나요?”

황족을 제외하면 이 무도회의 서열 1위는 트리비아나 공작부인인 듯했다.

모든 귀족이 그녀의 주변에서 눈길이라도 한 번 받으려 안달했다.

그 덕에 그녀의 옆에 딱 붙어 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귀족들과 인사를 나누며 안면을 틀 수 있었다.

왜 데뷔탕트에서 샤프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배려가 무색하지 않도록 갓 사교계에 데뷔한 남작 영애 역할에 과몰입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핑크색 머리의 영애를 보는 순간 그 열정이 모두 증발해 버렸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흑막 공작님을 버리겠습니다.’의 미카엘라 아니세요?”

내 로판 입문작.

내가 로판에 입덕하게 만든 첫 로판 여주.

집착 심한 공작에게서 도망치는 청순한 햇살 여주였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다 초승달처럼 길게 눈매를 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도톰히 접힌 애교살에 그림자를 그려 냈다.

소설 속 묘사처럼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그림자의 잔상이 내 심장을 간질였다.

공작이 눈 뒤집혀서 전 대륙을 수색할 만했다.

“이름은 다르지만, 그 소설은 맞아요. 제 이름은 여기서 로잘린느로 설정됐어요.”

“영애도 이름이 다르시구나. 로잘린느 영애, 아 어떡하죠. 저, 지금 너무 감격해서 말이…….”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굴렀다.

치마가 길어서 다행이었다. 방정맞게 덜덜 떨고 있는 스텝을 들키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가 내 손을 꼭 잡아 줬다.

……심장이 멈출 뻔했다.

“이해해요. 저도 봄국 황녀님 처음 봤을 때 이랬거든요. 영애, 그래도 진정해요.”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녀가 또 치명적인 눈웃음을 짓는 바람에 주접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로잘린느는 정신 못 차리는 내가 안타까운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주었다.

“무도회라 그런지 봄국 영애들이 많이 모이셨네요.”

옆에 있던 아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로잘린느에게 샴페인 잔을 새로 건넸다.

“황녀 영애 빼고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황녀 영애는 왜 안 오세요?”

“황녀 영애는 아직 아이라서요. 영애, 그 소설 아세요? ‘회귀한 김에 아빠를 지키겠습니다.’요.”

“알죠 알죠! 저 그 소설 전권 소장했어요. 엄청 인기 있는 먼치킨 육아물 소설이잖아요.”

“네, 그 황녀님이 봄국 황녀 영애예요.”

턱이 저절로 벌어졌다.

이제야 이 가 정말 인기 소설들을 참고해 빙의 시나리오를 짰다는 게 실감이 났다.

당장 그 아기 황녀님을 만나고 싶어졌다.

황녀님, 이 미천한 제국민을 위해 팬미팅 좀 잡아 주세요.

그때, 아리나 영애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홀을 빙 둘러봤다.

“분명 황녀 영애도 여기 어디 숨어 있을 거 같은데.”

“황녀 영애가 왜 굳이 여기에 숨어드세요? 만약에 숨어 계신다면 어디쯤 숨어 계실까요?”

어떻게든 용안을 훔쳐보겠다는 흑심 가득한 내 물음에 아리나 영애가 입매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황실 무도회 때는 이벤트가 열리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영애들 다 참석해요.”

“이벤트요?”

“네, 시스템이 지갑을 여는 몇 안 되는 날이에요.”

지갑?

뭔가 자본 폭격이 떨어질 것 같은 말에 기대감 어린 눈으로 아리나 영애를 올려 봤다.

아리나 영애의 입술이 부드럽게 휘어지더니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왔다.

“TOP 3까지 레어 아이템을 주거든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