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OP 100 영애-5화 (6/208)

05화.

바로 댓글이 이어 달렸다.

┗ 여긴 귀부인이 사교계에 소개해주는 걸 명예롭게 여기더라. 샤프롱이라고도 하는데 원하면 해줄게 ㅎㅎ 나 작위도 높아 공작부인임!

┗ 쩐다... 공작부인이 이런 누추한 커뮤에...(주섬주섬 레드카펫 펴는 중)

┗ 무슨 소리야 여기 공작 인플레 완전 심한데 ㅋㅋ 봄국 나라 코딱지만 한데 공작이 10명임 ㅋㅋ

┗ 맞앜ㅋㅋㅋ 작위 인플레 내 웃음벨ㅋㅋㅋㅋㅋㅋㅋ

┗ 그 부분 수정해야 할 거 같더라. 진심 몰입 파사삭....

┗ 어쨌든 뉴비 영애의 완벽한 데뷔를 위해 내가 사교계 가이딩 해줄 수 있음!

그저 커뮤에 글 하나 올렸을 뿐인데, 갑자기 데뷔탕트 준비가 끝났다.

그것도 순식간에.

이게 바로 K-커뮤?

품앗이 민족의 정보 나눔은 빠르고 자비로웠다.

┗ 고마워 ㅜㅜ 부탁할게 공작부인 영애 ㅠㅠ

공작부인 영애?

호칭이 오그라들었지만, 폐하 영애도 본지라 그냥 꿋꿋이 쳤다.

┗ ㅇㅇ 사촌한테 트리비아나 공작부인이 샤프롱 해준다고 했다고 말해!

┗ 아니다! 오늘 빙의했으면 개연성이 좀 딸릴 수도 있겠다ㅜㅜ 내일 외출 가능하면 에즈히나 카페 거리로 나와 ㅎㅎ 거기서 우연히 만나서 제안한 거로 서사 쌓자 > <

┗ 헐! 나도 갈래! 거기 맛집 많다며 ^ㅠ^

┗ 오 그러면 봄국 영애들 에즈히나에서 번개 할까?

┗ 좋아!!!!!

나도 얼른 참석하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 아, 뉴비 영애! 커뮤에 팁글 많으니까 [꿀팁] 검색해서 봐봐.

┗ 맞아. 먼저 빙의한 영애들이 AI 담당자한테 받은 Q&A 공유한 거야

……게임 족보까지 있어?

이 커뮤 대체 뭐야.

[꿀팁]을 검색하니 정말 수많은 게시글이 쏟아졌다.

영애들이 AI 담당자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얻어 낸 정보였다.

제목: [꿀팁] 빙의 시점이 다른 이유 알아냄. (+ AI 담당자 피셜) [32]

궁금했던 내용이라 바로 그 게시물을 읽었다.

게임 속에서 시간은 무한대로 흐르지만, 현실에서는 8시간으로 제한된다고 한다.

유저마다 10년 혹은 100년 각기 다른 시간을 보내도 결국 8시간 뒤에 동시에 깨어난다는 소리였다.

꿈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날마다 다른 것처럼.

어떤 날은 어린 시절부터 죽음까지 겪고, 어떤 날은 고작 몇 시간만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전]을 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이제 막 [기]에 진입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까 슬쩍 첫 게시물을 찾아봤는데 무려 50년 전에 작성된 글이었다.

제목: 빙하기 안 겪어본 사람과 겸상 안 합니다. [231]

『내가 첫 글 게시자네.

이 시나리오의 시작점에 내가 빙의한 거군.

그래... 내가 그렇지 뭐... 난 원래 뽑기 운이 항상 이따위였으니까....

짝꿍 뽑기도 맨날 끝 번호 나와서 혼자 앉고, 로또도 숫자 하나 맞춰본 적이 없는데 내게 캐릭터 운이 있을 리가...

근데!

그래도!

빙의 캐릭터까지 이럴 필요 있냐! ㅠㅠ

왜 내가 #생존물 키워드를 넣었을까? 이 미친 취향 ㅜㅜ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세계 덕질하는 거 끊을 거야 ㅠㅠ

하, 지금 대륙은 빙하기야 영애들.

정확히는 겨울국만 꽁꽁 얼어붙었어.

겨울국에서 마왕을 건드려서 영원한 겨울이라는 저주를 받았다는데....

영애들, 이거 뭔가 왕X의 게임 생각나지 않아?

표절 아니야 이거?ㅡㅡ

윈터 이즈 커밍이나, 이터널 윈터 이즈 커밍이나?

내가 현생 나가면 바로 찌른다ㅡㅡ

무튼 더 환장할 소식은 말이지... 내가 마왕의 제물로 결정됐대.

^---------------^

씨X!!ㅠㅠㅠㅠㅠㅠ

내가 겨울국 황녀인데, 미친 마왕 새끼가 날 달라고 했대. 이 새끼 사람 얼려서 전시하는 게 취미라는데 나 환장한다 돌아버려ㅠㅠㅠㅠ

귀족들이 배신때리고 날 마왕한테 넘겼고, 지금 마왕성 와서 유서마냥 커뮤에 글 남기는 중.

하... 어제 내가 들어갈 얼음관 보고 왔는데, 갑갑하다.

AI 담당자는 한 50년쯤 뒤에 저주 풀리면서 내가 깨어나는 극적인 설정이 있다고, 이거면 랭킹 10위권 진입 쌉가능이라고 위로하는데 솔직히 이 색히는 지가 안 들어가서 하는 말임 ㅡㅡ 공감능력 팔아먹은 기계 시키 ㅡㅡ 지금 이불 속에서 컴 하는데도 추워서 얼어 뒈지겠구만ㅠㅠㅠㅠ

겨울국 황제인 오빠는 운 좋게 토껴가지고 봄국인지 여름국인지 짱박혀 있다고 하고, 우리 국민들은 다른 나라로 대피 중이라네.

여긴 재앙 그 자체야 영애들.

후, 50년 뒤에 눈 뜨면 좀 세상이 나아져 있을까?

그때, S급 히든 남주가 마왕 시키 토벌하고 다시 겨울국이 해빙된다고 하는데... 그때는 내가 권력 좀 잡고 이 시간을 모두 보상받을 수 있을까?ㅜㅜ

무튼 영애들 나 너무 외롭고 춥고 무섭다.

우리 곧 만나....

미래에서 기다릴게....』

┗ 영애 혹시, 영애가 그 유명한 겨울국 몰락 황녀?

┗ 미친! 미친! 대미친! 이거 인권유린 아니냐? ㅠㅠ 영애 왜 말이 없어 ㅠㅠ 벌써 얼어버린 거야?

┗ 아니; 나는 겨울국 몰락 황녀라길래 엘사처럼 얼음 쓰고, 간지나게 사는 분인 줄 알았는데; ㅠㅠ 이거 뭐야 무서워ㅠㅠ

┗ 전개도 중요하지만 이거 너무 피폐하지 않냐? ㅠㅠ 이거 소장본 나오면 무조건 #피폐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키워드는 거른다

┗ 진지충이라 미안한데. 빙의할 때 그 키워드 거르는 건 국룰임 ㅇㅇ

┗ 4년 지났는데도 겨울국 영애 답 없는 거 보니까 진짜 얼었나 봐 ㅠㅠ 어떡해

┗ 난 가을국에서 지내는 겨울국 난민이야 ㅠㅠ 울 황녀님 여기서 뵙네ㅠ 나 아버지가 마왕 때문에 돌아가셔서 복수 꿈꾸는 기사 역할이거든ㅠㅠ 영애! 내가 꼭 히든 남주 찾아서 마왕새끼 조져주러 갈게 ㅠㅠㅠㅠ

┗ 응? 영애 잠시만요? 히든 남주는 제가 찾을 건데요?

┗ 헐; 영애 인성 봐; 이 와중에 히든 남주 욕심내는 거야?;;

┗ 당연하지, S급! 히든 남주 내가 먹을 거야> <

┗ 머, @# 먹는다니! 영애 워딩 조심 좀! 19금 워딩 필터링 된다고!

┗ 먹는다는 게 그 뜻이 아니고... 아니, 영애 일상생활 가능함? ㅇㅅㅇ;;

┗ 워워 둘 다 진정하고. 히든 남주 탐내지 마! 히든 남주는 내 꼬야♥

겨울국 황녀 영애 때문에 차올랐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다들 왜 이렇게 히든 남주를 탐내는 거지?

나는 눈을 찌푸린 채 히든 남주를 검색해 봤다.

제목: 히든 남주 찾기 vs 내 취향 남주랑 임출육 찍기 [238]

겨울국 황녀의 글 못지않게 댓글 수가 폭발했다.

나는 그 게시글을 클릭했다.

『내 주변 영애들은 다 랭킹에 관심 없던데 간간이 히든 남주 애타게 찾는 게시글이 보이네.

랭킹 신경 끄고 내 취향 남주 찾아서 [결] 치는 게 낫지 않아?

그래서 하는 밸런스 게임!^0^

히든 남주 찾고 랭킹 1위 찍기 VS 내 취향 남주랑 해피엔딩 치기

+ 비혼, 딩크 영애들 취향 반영해서 임출육 > 해피엔딩으로 수정함 ㅇㅇ』

┗ 11 이거 밸붕 같은데?

┗ 2 애초에 랭킹 신경 안 쓰면 내 취향 남주 고르는 게 낫지. 난 안경 남주 지뢰인데, 안경 쓴 히든남주 고르느니 그냥 내 스타일로 잘생긴 남주랑 백년해로 할래~

의견이 갈리긴 했지만 대부분 1번을 골랐다.

┗ 랭킹 경쟁이랑 히든 남주는 좀 다른 결인 듯. 확신도 없는데 랭킹 올리려 노력하는 건 비효율적이지만, 히든 남주는 딱 한 번 뽑기만 잘하면 되잖아 갓- 챠-★

┗ ㅇㅇ 랭킹은 수험이고 히든 남주는 로또지

┗ ㅇㅈ 불로소득은 못 참지

영애들의 댓글을 보고 있으니 왜 히든 남주가 특별한지 확 와닿았다.

그들은 랭킹이나 남주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오래 지녀 온 신념에 자극을 받았을 뿐.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

그렇다. 히든 남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생에서 추구해 온 가치관을 반영하는 존재였다.

걸어 다니는 당첨 로또.

공돈이 생기는 건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거다.

게다가.

┗ 솔직히 S급이면 얼굴도 얼마나 존잘이겠어? 능력치 안 봐도 뻔함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까지.

“흠. 남주라…….”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빙의한 지 아직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런지 남주 선택이 꼭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떤 남주를 만나게 될까?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데이지. 잠시 들어가도 될까?”

비에른이었다.

나는 후다닥 사과 박스를 숨기고 숨을 골랐다.

“자나?”

“아뇨. 들어오셔도 돼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비에른이 들어왔다.

그가 창가에 있는 소파에 앉길래 나도 그쪽으로 가 착석했다.

“후견 절차가 끝나서 설명해 주려고 들렀어. 내일 일이 생겨서 새벽에 나가야 하거든.”

그는 들고 온 양피지 서류를 테이블에 올려 두며 말했다.

“품위 유지비는 월 10골드로 책정됐는데, 황도 물가를 생각하면 빠듯할 거야. 추가로 필요한 돈이 있으면 여기 적어서 쓰면 돼. 인장도 찍어 뒀으니 은행 가서 원하는 만큼 인출해.”

나는 테이블에 올려진 백지 수표를 말없이 바라봤다.

누구에게나 돈 얘기는 불편한 주제인데, 별거 아닌 양 처리하는 공작님의 재력에 감동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외출할 땐, 하레네에게 말하면 돼. 마차를 내줄 거야.”

그가 외출 얘기를 꺼내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아! 저 혹시 내일 에즈히나 거리에 나가 봐도 될까요?”

비에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황도에 왔으니 가 보고 싶은 데가 많겠지. 내일 아침에 하레네에게 말해 둘 테니 돈은 잘 챙겨 가도록.”

“네!”

너무 큰 소리로 대답해서 민망했지만,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저 수려한 눈매를 둥글게 휠 뿐이었다.

곧 특유의 정갈한 표정을 되찾은 비에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잘 자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오라버니도 좋은 꿈 꾸세요.”

그런데 방을 나가려던 비에른이 갑자기 뒤를 돌더니 입매를 부드럽게 휘었다.

“그러고 보니 환영한다는 말을 제대로 못 했네. 내 집에 온 걸 환영해,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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