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201화 (201/206)

# 201

201. 최강의 패

인준은 함선을 타고 떠났다.

유진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는 세주의 부모님 집에서 저녁을 얻어먹었다.

“뭐 안 좋은 일 있었니 ”

어머니가 묻는다.

“아뇨.”

말하고 싶지도 않으며, 자세히 말하자면 가슴이 아프다.

자신 때문에 여자가 죽었다.

그건 유진에게는 상처다.

자신 때문에 죽는 여자는 이제 없어야 했는데.

“밥이나 먹자.”

형님의 아버지가 툭 말을 내뱉는다.

굳이 더 묻지 않고, 얘기를 덮어주시니 그걸로 감사하다.

어머니도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콩자반이 맛있다는 둥, 생선 조림이 입에 딱 맞는다는 둥 시답잖은 얘기가 오갔다.

“너는 여자처럼 생겼으면 바로 며느리 감이다.”

“네 ”

“말도 예쁘게 하고, 얼굴이 어지간한 여자는 찜 쪄 먹겠네.”

‘어머니가 조금 재밌는 분이라고 했던가 ’

“그렇긴 하네.”

‘아버지도 쉽지 않은 분이라고 했던가 ’

유진이 웃음으로 말을 넘겼다.

“혹시 우리 세주, 아니지  아니지 ”

“저 여자 좋아합니다.”

“우리 세주는  아니지  아닐거야.”

어머니.

형님의 짓궂은 성격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아닙니다. 형님도 여자 좋아합니다.”

“얼마나 ”

답이 궁하다.

“그게 수치로 표현이 되나요 ”

“대강 말해 봐. 매일 붙어 다니는 사이라며.”

“네, 무지 친하긴 한데.”

그동안 봐 온 이들과 거쳐 간 이들을 떠올렸다.

강슬, 안나 휴이츠, 팽.

셋을 제외하고 가깝게 지내는 여자가 있었나

“많이는 안 좋아하는 것 같긴 하네요.”

유진은 그 바쁜 사이에도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났다.

하지만 세주는 아니다.

그는 정해진 사람을 제외하곤 만나는 이가 눈에 띄게 적었다.

팽이야, 외계 인류다.

강슬은 좋다고는 하지만 진심이 아니라고 본다.

그럼 안나 휴이츠

둘이 썸이라도 탄다 하기에는 너무 투박한 사이다.

물론 안나는 세주를 원한다.

정작 세주는 모르겠다.

“무슨 문제 있는 건 아니지 ”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막 여자 만날 시기는 아니니까요.”

“이 새끼, 진짜 이거 다 끝나고 색시감 안 데려오기만 해 봐.”

“금발에 파란 눈도 괜찮으신가요 ”

그러니까 외국인도 괜찮냐는 물음이다.

유진의 감으로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강슬보다 안나 휴이츠 쪽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니, 내가 데리고 살 것도 아닌데.”

“하하.”

유진은 웃음을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먹고.

평범한 저녁 식사다.

동료는 목숨 걸고 싸우는 중이다.

물론 유진이 할 일 없이 여기 붙어 있는 건 아니었다.

“속보입니다!”

채널을 돌리던 아버지가 리모컨을 멈췄다.

쉼 없이 떠들던 둘의 입이 멈췄다.

그리고 뚫어져라 TV를 본다.

파르르.

어머니의 손은 어느새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또 다시 침공이 일어났다는 소식입니다. 대규모 침공은 아니나, 경기도 수원 영통시장 한복판에 적의 비행선이 출현했습니다. 현재 군 관계자는 빠른 진압을 위해 현 지역을 소거했으며….”

“우리 세주 저기 있니 ”

“아니요.”

우주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얌전히 답할 순 없다.

기밀이기도 하지만, 걱정할 일을 전할 순 없다.

고작 일곱이서 적의 선봉을 유인하러 갔다고 할 순 없다.

“가봐야 되는 거 아니니 ”

“아뇨. 못 가요.”

“왜 ”

“할 일이 있어서요.”

유진은 얌전히 답하곤 과일을 먹었다.

“너무 걱정마세요. 이제 저런 침공 하나에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서울보다 안산이 더 안전하다는 말에 집도 안산 쉘터에 구한 세주다.

부모님이 마른 웃음을 보였다.

부르르.

가만히 앉아 두 분의 불안을 가라앉히던 유진이 진동을 느꼈다.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하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오지 마세요.”

“응  가게 ”

“네. 가야 되겠네요.”

“뭐 타고 가니 ”

따라 나오는 어머니를 향해 손바닥을 보였다.

“나오지 마세요.”

그 말에 묘한 박력이 있었다.

“우리 마누라는 꼬시면 안 돼.”

뒤에서 아버지가 농담을 던지신다.

“설마요.”

유진이 웃고 몸을 돌렸다.

세주의 부모님은 눈치가 빨랐다.

유진이 보통일로 나가는 게 아니라고 느끼신 거다.

그래서 둘은 꼼짝도 안 했다.

밖으로 나가자 시원한 냄새가 났다.

맑은 밤공기다.

“적 침공 오후 23시 21분 경, 대령 정유진 작전 돌입.”

본대에 보고를 끝냈다.

끝나기 무섭게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경보 트랩이었나  폭탄이라도 설치했어야 하지 않나 ”

잘생긴 남자다.

유진만큼은 아니지만, 선이 고운 꽃미남이다.

암회색 전투복을 입은 그는 차분히 유진 앞에 섰다.

그의 뒤로 여덟이 더 있었다.

총 인원 아홉이다.

“누구 ”

손을 앞에 모은 채, 물었다.

“7사단장, 제리 브라코.”

말쑥한 얼굴의 남자가 말했다.

국적이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머리는 짙은 갈색이었고, 눈은 신기하게도 노랗게 빛났다.

“그래. 난 정유진이라고 한다. 통성명이나 하고 있자니 우스운 상황이지만.”

“반세주의 혈육은 그 안인가 ”

“알 필요 없을 거야.”

“둘을 죽이러 왔다. 난 필요 없는 살인은 좋아하지 않아, 아무리 미개한 9은하의 인간이라도 물러나라.”

“너, 거짓말 좋아하는구나 ”

유진이 싱긋 웃었다.

그는 그 말과 함께 손을 뒤로 돌렸고.

그의 부하 중 하나가 옆으로 한 걸음 이동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유진은 주시하고 있었다.

적은 간악하고, 아군을 기만하는 존재다.

유진은 그걸 잊은 적이 없었다.

더구나 자신이 맡은 일은 너무 중요했으니까.

김보슬을 믿지 않은 세주는 정찰 로봇의 존재를 알자마자, 부모님을 걱정했다.

지구에서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봐야 부모 둘 뿐이다.

“관짝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구나.”

제리 브라코는 정말 안타까운 듯 말했고.

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찌이이익.

그리고 자신의 앞쪽에 발끝으로 길게 선을 그었다.

동시에 사이클롭스 아머도 착용했다.

푸른 홀로그램이 그의 전신을 감쌌다.

툭.

임의로 그은 선 앞이다.

“넘어오면 죽는다.”

유진의 말에 제리 브라코는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한참이나 웃은 뒤에야 그가 말했다.

“통일은하정부의 7사단장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구나.”

그는 1급 에너지 컨트롤러, 반세주의 부대원이 이곳에 있는 건 의외지만.

멍청한 짓이다.

7사단은 전쟁을 모른다.

그들이 하는 건 하나 뿐이다.

암살.

전체 인원인 고작 열 명에게 사단이라 칭한다.

미친 소리다.

고작 직할대에 불과해야 정상이지만.

제리 브라코와 휘하 아홉에게 보슬은 친히 7사단을 만들어 줬다.

꼴통 8사단과는 차원이 다른 취급이었다.

소수 정예, 그게 7사단이었다.

모든 사단장 중 대인 전투력 최강.

2사단장 존도 제리에게는 한 수 접어준다.

반세주 본인이어도, 잡아 죽일 수 있는데 그 부대원이라니.

“하룻강아지라는 건 멸종된 줄 알았는데.”

제리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 하룻강아지가 여기 있었다.

물론 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

“최초 교전에서 우리는 대가리를 잡는다.”

싸우기 직전 세주가 한 말이었다.

“안나, 치용, 내가 하나씩, 장왕과 나기주가 한 팀으로.”

기주를 걱정하는 장왕이니 묶는 게 낫다.

“실버는 잔챙이 정리, 팽은 움직이지 못 하는 무기력한 적을 저격.”

일격에 적을 퍽퍽 죽이는 강력함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무리라면 뒤처리를 맡기면 된다.

에너지 보유량은 형편없지만 다재다능한 팽은 여러모로 쓰기가 좋다.

보통은 서포트, 수송선을 모는 데에만 쓰지만.

지금은 아기의 고사리 손이라도 빌려야 할 형편이다.

시간만 더 있었다면, 사람을 더 뽑아서 병력을 유지했을 거다.

세주는 처음부터 보슬을 믿지 않았다.

그가 기다려준다고 했을 때, 세주는 이게 일분일초를 다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퍽이나 적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겠다.

그는 자신이 판단하고 확신한 일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그가 책임져야 될 사람이 하나였다면 고민은 없었을 거다.

열이었다면 속는 셈치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책임져야 하는 건 인류다.

그러니, 그는 믿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슬의 입에서 나온 말은.

거기에 3개월의 잠입으로 파악한 내용으로 유추한 것도 반쯤은 믿지 않았다.

싸워야할 적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는 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건, 적이 무조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영리해졌네.

‘뭐라는 거야.’

그 판단력에 프로비던스가 감탄하며 말했다.

세주는 스스로를 알았다.

그는 천재가 아니다.

싸우는 것만큼은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리 쓰는 건 아니다.

그는 그 부분을 분할했다.

호필과 본 조르노에게.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수를 떠올리고 대비했다.

그게 이곳에 오기 전 세주가 한 일의 전부였다.

그 준비 중 하나, 스스로의 무력을 높이는 것에 있어 세주는 조금은 만족할 수 있었다.

적어도 적의 머리, 즉 지휘관보다는 상위였으니까.

통일은하정부는 위로 올라갈수록 전투력이 높다.

그 꼭대기에 앉은 이들은 8개 사단의 사단장이다.

정보를 토대로 남은 건, 일곱.

그 중 하나를 치용이 죽였고.

하나는 자신의 저격에 반죽음을 당했다.

여기에 남은 건 둘 뿐이었다.

“말도 안 돼.”

그 중 하나가 안나를 마주한 채 혀를 내둘렀다.

장신혜, 6사단장이다.

세주는 그녀의 스펙을 떠올렸다.

사단장 중 유일하게 2급 에너지 보유자다.

안나 휴이츠는 황금빛 에너지를 불태우며 싸웠다.

번 업 상태다.

그걸로 호각이다.

그 사실 자체에 장신혜는 놀라고 있었다.

“어째서!”

근거리에서 폭발물을 터트리는 재주가 용한 여자다.

하지만 안나에게는 무용했다.

그녀의 전신에서 황금빛이 더 불타오르다가 팍하고 꺼졌다.

이제야 제대로 한다.

세주가 두드려 깨운 초인 중 하나다.

겨우 사단장 하나, 그것도 최약체와 호각이라면 실망이다.

그녀는 치용보다 에너지 보유량이 높았다.

저 황금빛 에너지를 발산하는 노블 패스는 모양부터 다르고, 에너지를 축적하는 속도도 달랐다.

파앙!

꺼진 황금빛이 얼음의 결정처럼 그녀의 전신을 얇게 감싼다.

엷은 황금빛이 은은하게 퍼진다.

치용의 윙 업.

세주의 광체.

안나는 자신의 능력을 다르게 깨웠다.

완벽한 밸런스 형의 격투가.

옷의 형태로 전신을 감싼, 무서운 공격력과 방어력을 겸비한 황금빛의 갑옷이었다.

황금 투의.

골드 아머.

그게 그녀의 커버링 기예다.

퉁!

바닥을 박차고 황금빛 잔상을 남긴다.

쩍!

무기 하나 없이 맨 몸. 그게 안나의 가장 큰 장기다.

미들킥이 상대의 옆구리를 후려친다.

“끄약!”

이상한 비명과 함께 장신혜가 뒤로 날아간다.

안나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수도로 쇄골을 부수고.

우직.

좌측 무릎을 폐 부분에 꽂는다.

배리어는 사출 무기를 막는데 특화 되어있고.

블레이드는 보통 에너지를 모아 방패 형태를 만드는 그립으로 막거나 동일한 블레이드로 막는다.

무기가 발달하면 그걸 막는 기술도 발달하는 법이다.

하지만 안나는 박투를 사용한다.

그녀의 기술은 대인살상 부분에서 최강이었다.

타는 칼조차 막는 황금 갑옷과 그걸 휘두르는 타격기는 환상의 조합이다.

우직! 우직!

복부에 니 킥을 허용한 장신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 했다.

그걸로 명줄이 끊겼다.

안나는 동시에 골드 아머를 풀었다.

엄청 세다.

자신이 키운 이들은 은하 최강을 압도한다.

“내가 사람 하나는 기가 막히게 키우지.”

-저쪽은 아닌데

장왕과 나기주다.

“미친!”

그 상대 5사단장 히로츠키 마시바가 다른 사단장 전부가 죽은 걸 보고 혀를 내두른다.

그는 방패를 불러내는 그립 두 개를 쥐고 전신을 막았는데.

아머도 여간 튼튼해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사이킥 에너지도 통하지 않았으니.

나기주와 장왕으로도 역부족이다.

두두두둥!

양 옆으로 광탄을 한 차례 쏘고, 저 멀리 광편 수류탄을 던진 세주는 굳이 싸움에 끼지 않았다.

이미 끝난 싸움이다.

이겼지만, 이제 도주만이 남았다.

적의 대장이 너 죽고 나 죽자고 덤비면 그것 또한 곤란하다.

그의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

“칙쇼!”

히로츠키가 눈을 돌렸다.

처음 쓰러 진 타오 윙을 향해서였다.

그녀라도 데리고 돌아가야 했다.

짧은 틈에 몸을 빼려던 히로츠키가 미간을 찌푸렸다.

타오 윙의 위다.

[안녕 ]

통일은하에서는 멸종된 또 다른 인류다.

그녀가 간신히 숨만 붙은 타오 윙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당긴다.

둥!

퍽!

뇌수와 피가 튄다.

“빌어먹을!”

히로츠키는 예감했다.

여기가 자신의 무덤이 되리라는 걸.

그리고 그 타이밍에 세주는 외쳤다.

“모두 작전대로!”

첫 번째 작전은 대가리를 깨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도주다.

여기서 이 인원을 다 상대할 순 없다.

이들은 인간이다.

언젠간 지치고, 그 틈에 적의 탄이라도 한 대 맞는다면 거기서 끝장이다.

인간의 육신은 약하니까.

언제까지고 빈틈을 안 보일 순 없다.

그러니 여력이 남을 때 튄다.

“뛰어!”

세주가 외치자, 그를 향해 부대원이 모인다.

실버도 열심히 적들과 드잡이 질을 하다 빠져 나왔다.

그들은 잽싸게 빠져 나왔다.

그 뒤로 적들을 향해 세주가 손을 펼쳤다.

“마지막 선물이나 쳐 먹어라.”

후우우우웅!

허공에 어른 머리통만한 구체가 생긴다.

“장왕! 나기주! 던져!”

염동력이 있는 둘이다.

말없는 둘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적의 중앙으로 날아가는 포탄이다.

아니, 대형 수류탄이다.

꽈과과과과광!

“끄아아아아악!”

“흐아아아아!”

“끼에엑!”

마지막 비명은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폭발은 훌륭했다.

터지는 것과 동시에 세주는 폭음에 편승해서 벼락의 방아쇠를 한 방 당겼다.

검은 벼락이 터지는 대형 광편 수류탄 사이를 빠져나갔고.

그건 그대로 히로츠키의 머리를 터트렸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눈치 채지 못 한 일격이었다.

-그 자식 데려왔으면 편했잖아.

도주하며 프로비던스가 불만을 뱉었다.

‘안 돼.’

자신이 보슬이라면 필히 자신의 부모를 노릴 거다.

정신력을 조금이라도 갉아 먹을 수 있다면 할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는 가장 강한 이를 남겨뒀다.

자신과 함께한 부대원 중, 가장 강해진 이를.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 생떼를 부리는 치용조차도 결국 졌다는 걸 인정한 남자.

정유진.

그가 바로 세주와 버금가는 에너지를 보유한 자이자 그가 가진 최강의 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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