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93화 (193/206)

# 193

193. 외모와 위트

“정말 그거면 돼 ”

김소혜가 물었다.

못 보여줄 것도 없다.

기밀은 기밀인데, 굳이 감출 필요가 있을까 싶은 거다.

“그거면 충분해.”

“투항해라!”

유진의 눈이 김소혜의 어깨너머를 향했다.

그녀의 뒤에서 목을 쥐는 모습이니, 얼굴의 사분의 일만 간신히 내민 셈이다.

“저격이라면 관두지 ”

굳이 말해 시선을 끄는 이유야 뻔했다.

유진의 눈이 사방을 살폈다.

출입구는 하나, 그 흔한 창문 하나 없는 곳이다.

경호 대장은 죽었고, 그 바로 밑 책임자가 인상을 썼다.

“안전하게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

“그건 내 일이니까, 그쪽이 신경 쓸 일이 아니시고.”

“미친놈이군.”

“그건 네 뒤에 선 사람한테나 말해.”

유진은 아직도 전신이 뻐근했다.

잠시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한 육체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럴 틈이 없으니 아쉬울 뿐이다.

무리하면 빠져나가는 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장담은 못 하겠다.

유진은 조력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조력자가 막 도착했다.

“안녕 ”

상대보다 머리 하나는 큰 남자다.

펑!

인사를 건네자마자 미들킥으로 사람 하나를 통째로 날린다.

날아간 사람이 벽에 꽝하고 부딪혀 바닥을 굴렀다.

그 모습을 확인도 하기 전 주먹을 휘두른다.

빡!

“꾸엑!”

거침없는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든다.

“뭐야!”

놀란 책임자가 몸을 돌렸다.

함부로 방아쇠를 당길 수도 없었다.

어떻게 온 건지, 아군 한가운데로 뛰어든 놈이다.

그 짧은 시간에 벌써 열댓 명이 누웠다.

“제압봉 써!”

경호대가 허리춤을 손으로 훑는다.

단단해 보이는 검은 방망이를 꺼낸다.

“어쭈 ”

곰 같은 덩치의 남자, 치용의 손이 뱀처럼 적의 팔을 잡았다.

빠각!

“악!”

팔을 부러뜨리고, 제압봉을 뺏는다.

빠르고, 부드럽다.

뺏은 제압봉이 검은 그림자를 만든다.

빠바바박!

두더지 머리라도 때리는 듯, 신속의 손짓이다.

나타나서 적을 제압하기까지 숨 몇 번 쉴 시간이면 충분했다.

“덤빌래 ”

엉겁결에 책임자 하나만 남았다.

그가 주변을 둘러봤다.

신음을 흘리며 쓰러진 부하들이다.

반은 죽었다.

대답 없이 핸드건에 손을 올리자, 치용의 손에 산탄총이 나타났다.

“덤빌 거면 빨리 덤비고.”

식은땀을 흘리며, 책임자가 양손을 들었다.

“항복.”

피식 웃은 치용이 유진에게 성큼 다가갔다.

“죽였네 ”

“여유가 없었어요.”

유진이 죽인 사람을 보고 묻고, 치용의 눈이 소혜에게 닿았다.

김소혜는 그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겉으로 보기에, 다른 이에게 위압감을 주는 외모와 몸이다.

거기에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모습이니, 그녀로서는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 그 틈에 항복한 이의 무기를 빼앗아 돌아왔다.

“일은 ”

“아직요.”

“아주 신났고만.”

“네 ”

“나쁜 새끼.”

“왜 이러십니까 ”

“그냥, 짜증 나네.”

치용이 소혜에게서 눈을 떼고 유진을 바라봤다.

“일도 안 하고 노느라 신났지.”

“아니요. 막 죽을 뻔하다 살아남았는데요.”

“감옥에서는 어떻게 나왔는데 ”

“반난운이요.”

“아하, 그 양반.”

유진이 소혜를 바라봤다.

“정말 그거면 돼 ”

“네. 줄 거죠.”

“…줄게”

소혜는 기다리지 않고 답했다.

유진이 원한 것.

통일은하정부의 군주, 김보슬의 역사다.

“생활기록부 한 번 훔쳐보기 되게 힘드네.”

유진이 중얼거렸다.

“재밌는 농담이네.”

소혜가 마른 웃음을 보였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통치자는 건강 상태조차 기밀이다.

하물며 통일은하정부, 은하를 통일한 군주의 개인기록이다.

기밀은 기밀이다.

‘그래도 다른 연구에 비하면.’

겨우 기록일뿐이었다.

물론 아무리 위협이 있었어도 이걸 반출한 소혜의 입장은 곤란할 것이다.

소혜의 눈이 유진에게 향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소혜는 피식 웃었다.

쥐가 고양이를 걱정하는 격이다.

그의 눈에 어린 걱정을 읽는 순간, 소혜는 마음을 비웠다.

기왕 하기로 한 일이라면, 빨리 정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

이곳에 오며 세주는 몇 가지 원하는 게 있었다.

우선 얻어야 할 것, 정보다.

가진 무기의 형태, 병력 규모 등등.

그중 가장 중요한 거라면, 역시나 지금 유진이 잠입해서 얻는 정보다.

통일은하정부 김보슬의 생활기록부.

놈의 과거다.

무슨 일을 해왔고,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됐는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유추하는 것, 합리적인 사고방식이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적을 알 기회였고, 놓칠 생각이 없었다.

놈들이 자리를 비웠다는 정보에 세주는 제대로 계획을 세웠다.

잠입, 위장, 암살.

세 박자가 딱딱 들어맞았다.

일순간 도시가 제대로 가동 못 하도록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죽였다.

정보를 얻는 것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유진이라면.

세주는 한 명을 죽이는 걸 가장 큰 목표라 잡았다.

“이 새끼.”

지금 눈앞에서 눈썹을 치켜올린, 여자다.

붉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듯, 위로 솟은 모습이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지금 바람 부니 ’

-사이킥 에너지가 충만해서 일어나는 부가적인 현상으로 판명됨.

염동력을 일으키지도 않았는데, 공기에 파동이 퍼져 바람이 분다.

압력이 어깨를 짓눌렀다.

세주는 어설픈 카운터 모드로는 적에게 생채기 하나 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알지  현 상황에서 승률 0.0001%도 안 돼.

프로비던스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사실이었다.

“잠자리에서만큼이나 살벌하구만.”

“네놈이었니 ”

쥬니퍼의 눈썹이 천천히 내려온다.

화가 가라앉아서 그런 건 아니 듯싶다.

여전히 머리카락이 나부끼고 있다.

세주가 빙그레 웃었다.

매력적으로 보이길 원했다.

혹시 얼굴을 보고 지금 저 분노가 가라앉을지도 몰랐다.

“웃어 ”

퍽!

세주의 고개라 밑으로 내려갔다.

발에서 3cm 정도 앞이다. 시멘트 바닥에 동그란 구멍이 뚫렸다.

‘염동력을 아주 잘 다루네.’

-왜 웃은 거야  설마 미남계 쓸 생각은 아니었지  설마, 그 정도로 미치진 않았을 거야. 우리 형이. 기생오라비 유진도 아니고, 설마. 설마, 아니지

시파, 기계 새끼.

“저기, 말로 할 생각은 없습니까 ”

“그 테러리스트 둘도 네 작품이니  오늘 사람 막 죽어 나간 것도 ”

여기서 대답이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듯 싶다.

-남은 시간 48초.

저 여자 왜 저렇게 말이 빠른 건지.

아직도 48초나 남았다.

“정답.”

농담이라도 건네 볼 참이었다.

얼굴로 안되면 위트다.

파가가가각!

입을 열려던 참, 이번에는 앞쪽에 긴 고랑이 생겼다.

염동력 다루는 능력이 발군이다.

“오냐, 오냐. 내가 눈이 멀어서 장난감을 잘못 골랐구나!”

쥬니퍼의 양손이 공중으로 올라간다.

-남은 시간 36초.

‘장난감이면 날 말하는 건가 ’

-그럼 저 여자가 형이랑 왜 잤을까

‘외모와 위트 ’

-오늘 약 안 먹었어

염병할.

쥬니퍼의 손끝이 앞을 향한 순간, 뒤로 몸을 날렸다.

퍼버버벅!

보이지 않은 무형의 탄환이 바닥을 부순다.

시멘트 조각이 허공으로 튀었다.

남은 시간은 대략 30초가량.

버틸 수 있을까 가늠해 봤다.

무리다, 절대 무리.

통일은하정부에서 분류한 초인 급수에 따르자면, 일반 병사는 9급.

분대장급이 되면 8급.

부사관은 7급.

장교는 6급 이상이다.

그리고 그 이후, 이들의 머리 꼭대기에 앉은 이들은 최소 3급이다.

쥬니퍼는 개인 전투력이 높게 평가받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녀는 치안을 책임지는 여자.

통일은하정부는 군대가 대부분 무력을 담당했기에, 그녀가 상대할 이들은 몇몇 스파이와 반란분자뿐이었다.

그게 아니면, 간신히 살아남은 우주의 소수종족 정도.

그래서 그녀의 공식 등급은 4급 후반.

다른 고위직보다는 약한 편이다.

하지만 지금 세주의 상대로는 차고 넘쳤다.

치용이 에너지를 가속한 능력이 6급이다.

그리고 현재 세주의 상태는 잘 봐줘야 9급 중반.

그녀의 부관, 세주가 머리 써서 죽인 상대가 6급이다.

무기를 숨기고, 적의 방심을 이용해야 간신히 죽일 수 있다.

후아아앙!

첫 일격을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피하라도 한 거다.

뿌득!

어느새 사지에 무협의 압력이 느껴지더니, 허공에 둥둥 뜬 채로 잡혔다.

팔다리를 쭉 뻗은 채다.

“벗길 건 아니지 ”

세주가 수줍게 물었다.

“…너 미쳤구나 ”

-동감이야. 이 와중에 농담이라니. 남은 시간 24초.

“시바, 살았네.”

세주가 읊조렸다.

그와 동시다.

꾸와와왕!

위에서 유탄이 무더기로 쥬니퍼에게 쏟아졌다.

퍼버버버벙!

쥬니퍼가 그걸 보고 위로 고개를 들자, 허공에 얇은 막이 생겨나 유탄이 터졌다.

찌지지지직! 쩌저저정!

폭발을 막은 급조한 배리어가 흔들리며 깨졌다.

“이 새끼, 왜케 늦어 ”

“어이, 형님  생명의 은인에게 너무 하는 거 아냐 ”

훙!

공기를 찢으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다.

인준이었다.

그가 세주의 앞을 막았다.

곧 세주는 사지의 자유를 되찾았다.

쥬니퍼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인준을 노려봤다.

“테러리스트  형님 ”

“내가 동생 삼은 놈이라.”

세주가 당당히 말했다.

“미친 소리.”

인준이 중얼거렸다.

쥬니퍼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두 놈 다, 미쳤구나.”

“칭찬이 과해.”

세주가 말했다.

“어디가 칭찬이야 ”

인준이 인상을 쓰고, 손에 든 기관총을 앞으로 겨눴다.

드르르륵!

광탄이 앞을 가득 채운다.

초당 48발을 나가는 개조 총기다.

양손에 든 기관총을 갈기자, 곧 전면을 채우는 빛의 탄이다.

“끼아아아아!”

쥬니퍼가 기괴한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나가던 광탄이 허공에서 폭사한다.

-노블 에너지 보유량은 높지 않아, 사이키커야.

그거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딱 봐도 염동력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여자다.

하물며 둘이 같이 잠자리를 가질 때도, 옷을 염동력으로 벗겼다.

그때부터 알았다.

인준이 인상을 쓰며 유탄을 재차 쐈다.

슝!

동시에 광편 수류탄 다섯 개를 힘껏 던졌다.

유탄이 허공에서 방향을 바꿔, 그가 던진 광편 수류탄에 부딪힌다.

꽈과과과광!

눈 부신 빛이 터지며, 폭발이 일어난다.

인준과는 상극이다.

한쪽은 사출 무기를 주무기로 쓰고, 한쪽은 그 사출 무기를 막아내는 데 특화된 사이키커다.

-회복 완료.

그 틈에 몸에 에너지가 충만하게 차오른다.

우우우우우우웅!

전율이 느껴졌다.

잃어버린 지갑을 하루 밤낮을 되돌아가 찾은 기분이다.

충만한 에너지를 느낌과 동시다.

세주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모드 온 에임 마스터.’

다리에 에너지를 집중해 속도를 높여, 순간 쥬니퍼의 시야에서 벗어난다.

인준을 상대하면서 그녀는 여전히 세주에게 신경을 썼다.

그래서 그가 사라진 걸 금세 알았다.

세주 또한 알았다.

그녀가 자신을 놓치지 않으리라는 걸.

세주는 그녀의 부관을 죽였다.

겨우 9급 에너지 보유량으로.

그 누구라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라는 걸 주지 시켜 준 셈이다.

거기에 군주가 비운 사이 도시에서 분탕질을 친 그다.

결코, 그냥 놔줄 리가 없었다.

철컥.

에너지를 가득 모은 벼락을 든 세주의 모습이 곧 그녀의 뒤에서 나타났다.

인준이 그걸 보고 앞쪽에 다시 유탄을 냅다 쐈다.

그의 유탄은 터지는 순간, 광편을 사방으로 뿜는 특별한 무기다.

그게 수십 발이다.

*

쥬니퍼는 배리어를 거둘 수 없었다.

오른손을 들어 배리어를 펼쳐 전면을 막은 그녀가 뒤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물 형태의 염동력이 에너지를 모으는 세주를 붙잡는다.

놈이 붙잡힌 채로 몸을 뒤틀며 빠져나가려 하지만 쉽게 뿌리칠 수 없었다.

쥬니퍼는 차분히 상황을 파악했고, 합리적인 전투를 펼쳤다.

화력을 뿜어내는 놈을 막고, 세주는 붙잡는다.

‘원거리 암살, 저격수.’

눈앞에서 덤비는 놈보다, 저격수가 더 위험하다.

그녀는 냉정했다.

분노와 별개로, 두 놈 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세주의 예상대로 자신이 책임지는 도시에서 분탕질을 치는 놈 둘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나는 끝.’

붙잡힌 염동력의 끈이 놈의 피부를 파고든다.

그럼에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녀의 눈이 화력을 뿜어대는 테러리스트를 쫓았다.

그가 어느새 자리를 옮겨 머리 위에서 양팔을 모으는 게 보였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그녀는 의문을 해결할 필요가 없었다.

잡아 죽이면 그만이다.

사이킥 에너지를 다시금 끌어올리고 위를 향한다.

전신을 감싼 배리어가 순간 얇아진다.

당연한 일이었다.

에너지의 절대량은 같았고, 그중 수비에 다섯, 공격에 다섯을 쓰던걸.

공격에 여덟을 집중한 순간이다.

머리 위에 뜬 놈이 손을 모은 순간 느껴진 불길한 예감 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테러리스트에게서 엄청난 에너지가 뭉치는 게 느껴졌다.

‘무슨!’

7급 언저리에 있던 놈이 금세 5급, 4급가량의 에너지 출력량을 보인다.

숭.

그 틈에 작은 소음이 그녀의 귀를 스쳤다.

소리를 지르며 위쪽으로 염동력을 발산하려는 그녀다.

주르륵.

쥬니퍼의 동공이 풀린다.

언제인지, 그녀의 관자놀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무너진다.

에너지를 모으던 인준이 힘을 풀고 내려왔다.

그의 눈에 머리에 구멍이 뚫려 이미 죽은 쥬니퍼의 시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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