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192. 말로 하자
“왜 여기 ”
김소혜가 놀라 물었다.
“박사님 ”
허가받지 못한 사람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하물며 죄수는 절대로 올 수 없는 곳이 바로 여기, 1연구팀이 모인 곳이다.
“볼 일이 있어서.”
자신의 연인이었던 남자다.
며칠을 감옥에서 보내 초췌한 얼굴이다.
‘그래도 잘 생겨서 문제네.’
사랑에 빠져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이 남자는 눈을 즐겁게 하는 외모를 가졌다.
“박사님.”
뒤에서 은근히 그를 부르는 목소리다.
수석 연구원 테리스다.
긴 금발을 뒤로 묶은 머릿결을 관리하는 걸 즐기는 남자다.
그리고 자신에게 마음이 있고.
그가 부르는 소리에 소혜는 이미 경호팀을 호출했다는 걸 알았다.
아마추어같이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없다.
조용히 비상벨을 누르고, 천천히 적을 주시한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전부 통일은하정부가 인정하는 상위 1%의 엘리트 연구원이다.
어설픈 반항보다 이들의 목숨이 더 중요했다.
김소혜는 천천히 들어 온 남자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어떻게 나왔어 ”
“문 열고 나왔지.”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 ”
“이런 상황이니까 하는 겁니다. 김소혜 박사님.”
생긋하고 미소를 보인 유진이 앞으로 두 걸음 다가왔다.
그걸 본 연구팀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덩치가 큰 사납게 생긴 남자다.
“꺼져라.”
알르츠, 연구원 중 하나로 취미가 격투기다.
어지간한 경호원은 맨손 박투로 상대하는 남자다.
커다란 등이 시야를 가렸다.
소혜는 머뭇거렸다.
도주 또는 반항, 둘 중의 하나는 택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시간을 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무장한 병력이 오면 이 상황은 정리될 거다.
‘나는 그걸 바라는 걸까 ’
만일 이 남자가 자신에게 살려달라고 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
빌고, 같이 도망가자고, 마지 못 해 그랬다고.
‘하긴 그랬다면 내가 이 남자를 좋아했을 리가 없지.’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이 상황에서 웃으니, 바로 옆에서 테리스가 인상을 쓴다.
금세 표정을 바로 한 김소혜가 입을 열었다.
“죽고 싶지 않다면 투항하세요.”
“음!”
자신의 앞을 막은 알르츠 넘어서 입을 열었다.
그와 함께, 알르츠의 무릎이 허물어졌다.
작은 신음을 흘린 불곰 같은 사내가 쓰러진다.
그 앞에 여전한 미소를 보이는 유진이 있었다.
“그건 제가 할 말이네요.”
“사이키커 ”
염동력을 감지한 소혜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컨트롤러이기도 합니다. 고로 이곳에 있는 모두는 제 인질입니다.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을 시, 전부 죽이겠습니다.”
그의 말에 심장에 작살이 꽂히는 기분이다.
“나도 ”
“당신을 죽일 순 없죠.”
그가 생긋 웃는다.
죽이지 않더라도 방법은 많다.
그렇게 들렸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테리스다.
유진이 그를 노려봤다.
“여자한테는 친절하지만, 남자한테는 아냐. 조심하는 게 좋다.”
딱딱한 유진의 말이다.
소혜로서는 처음 드는 어투다.
‘멋있네.’
항상 카스텔라 같던 남자가 카리스마를 보인다.
소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남자한테 정신을 팔릴 때냐.
테리스 앞을 가로막아 앞으로 나섰다.
“원하는 게 뭔데 ”
“내 마음대로 한다면 당신 손목 잡고 도망가고 싶지만.”
“사설은 집어치워. 거짓말로 날 속여 놓고 이제와서 무슨 헛소리야 ”
“속이지 않았어, 말하지 않은 거지.”
“그게 같은 말이야.”
“난 다르다고 생각하고 싶어. 변명과 핑계로 도망갈 길은 만들어 줘.”
“봐서.”
유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꽝!
그가 들어온 입구에서 폭음이 터졌다.
후드드득!
벽 일부가 깨지고 그림자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유진의 모습도 사라졌다.
쩡!
에너지 파동이 허공에서 일어나 요동쳤다.
“컥!”
그와 함께 순백의 아머를 입은 남자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소혜의 눈썹이 흔들렸다.
‘경호 대장.’
화이트 가드라 불리는 정부의 치안대 핵심 병력이다.
그 중, 연구팀 호위를 맡은 경호 대장이다.
얼굴이 낯이 익었다.
그자가 나타나자마자 쓰러졌다.
유진이 그 앞에서 손을 탁탁 턴다.
훙.
그 모습이 눈에 잡히자마자 그대로 사라진다.
‘어디 ’
눈을 씻고 그를 찾았다.
“여기.”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철컥!
동시에 부서진 벽 뒤로 수십의 경호대가 보인다.
“쏘면 여기, 다 죽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유진이 말했다.
‘잘 싸우는구나.’
“이렇게 재주가 많은 남자인 줄 몰랐네.”
“비밀이 많아서 미안해요.”
“원하는 게 뭔데 ”
소혜의 눈이 경호 대장에게 닿았다.
‘죽었어.’
이 남자, 필요하면 누구라도 죽일 거다.
원하는 걸 일단 들어보자.
그 이후에 판단해도 충분했다.
유진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걸 왜 ’
“요새 우리 에너지 컨트롤러 육체 진화 연구 중인데 그런 건 관심 없니 ”
“별로.”
유진이 배시시 웃는다.
저 웃는 얼굴, 정말 미워하기 힘들다.
*
“이게 무슨 도깨비 노름이니 ”
쥬니퍼가 중얼거렸다.
테러리스트를 쫓던 그녀는 닭 쫓던 개가 됐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간다.
물론 빠져나간 두 놈을 두고 도깨비 노름이라 칭한 건 아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도시 내, 주요 인사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수도 방위 사령부가 털렸습니다.”
“싸구려 말투 쓸래 ”
“시정 하겠습니다!”
부관이라고 하나 있는 놈이 품위가 떨어진다.
쥬니퍼의 인상이 구겨졌다.
“어떤 새끼야!”
히스테리를 부리지 않으면 모를까, 터지면 폭탄이다.
그녀의 별명은 시한폭탄, 동시에 히스테리 폭탄이란 별명도 함께다.
터지면 끝, 그게 그녀를 칭하는 말이었다.
“찾아!”
“넵!”
못 찾으면 자신이 죽게 생겼다.
부관이 부리나케 발을 놀렸다.
*
“룰루랄라.”
-신나
‘나쁘진 않네.’
에너지를 쓰면 감지 장치에 걸린다.
그는 철저히 자신을 숨겼다.
반란운이란 이름으로 한 번 숨고, 에너지를 봉인해서 두 번 숨었다.
고층 빌딩 옥상에서 유유히 리스트에 줄을 쭉 그었다.
예의 만들었던 그 리스트다.
이제 다섯 남았다.
철컥!
팅!
볼트액션 타입의 침묵을 꺼내든 세주가 유유히 스코프를 조정했다.
‘32배.’
스코프에 눈을 대자, 목표물이 보인다.
작은 키에 중절모를 눌러 쓴 남자다.
퉁!
작은 소음이 전부다.
반동을 완력으로 잡고 총구를 내린다.
스코프 너머, 방금 보였던 남자가 쓰러진다.
다시 리스트에 이름을 지운다.
단순노동이다.
하지만 벌써 3개월이나 성질 죽이고, 참았더니 욕구 불만이다.
총구를 당기니, 속이 시원하다.
‘나 변탠가 ’
-…그걸 이제 알았어
물을 놈한테 물었어야 했다.
다시 총구를 돌리던 참이다.
바삭.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세주는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빠각!
세주가 누웠던 옥상 바닥이 깨졌다.
그 위로 두꺼운 워커를 신은 이가 보였다.
“빙고. 찾았다.”
쥬니퍼의 부관이었다.
세주도 눈에 익은 얼굴이다.
“반난운 ”
부관도 그를 잘 알았다.
‘쟤 능력 좋네 ’
-그러게.
잘 찾는다.
에너지도 숨기고, 광탄도 에너지 탄을 쓴 것도 아니었다.
특별히 준비한 금속탄에 화약을 쓴 탄이다.
섬유 배리어를 뚫을 정도의 힘과 사람을 죽일 정도의 탄환.
완벽한 위장이었다.
‘내 연기가 문제였나 ’
-아니, 형은 타고난 사기꾼이었어.
이게 칭찬이야 욕이야.
‘칭찬인지 욕인지 하나만 해.’
-시…, 욕해도 돼
‘하지 마, 이 미친 기계 새끼야.’
“너 뭐냐 ”
쥬니퍼의 부관이 묻는다.
“지나가던 잘생긴 남자. 인기가 너무 많아 곤란하기도 하고.”
“미친놈.”
“그렇게 부르기도 하더라.”
쾅!
바닥을 박찬 부관의 모습이 흐려진다.
에너지를 꽁꽁 묶어 놓은 몸이다.
동시에 반응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져, 고작 저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반사적으로 침묵을 들어 휘둘렀다.
펑!
바로 코앞에서 화염이 일어나 눈 앞을 가렸다.
침묵을 버리고 다시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우와, 두 번이나 피해 고작 저급 에너지 컨트롤러가 ”
“누구보고 저급이래.”
‘야, 풀어.’
-어, 하고 있어.
에너지를 묶어 놓는 일이 쉬운 작업일 리 없었다.
동시에 해제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했다.
‘빨리!’
꽝!
다시 놈이 땅을 박찬다.
식은땀이 흘렀다.
‘무기!’
급히 양손에 에너지 블레이드를 꺼냈다.
자체 에너지 플랜트를 달아 둔 놈이다.
스스승!
두 개의 그립을 쥐고 십자로 앞을 막았다.
꽝!
간신히 막아내자 놈의 무기가 보였다.
화염에 휩싸인 주먹이다.
붕 하고 몸이 중력을 배반하고 뒤로 날아간다.
낙법을 써 뒤로 굴렀다.
팔 겉가죽이 찢겼다.
지금 운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평소의 천분의 일도 안 된다.
불편했다.
-4분 30초 소요 예정.
이 새끼, 여유 부리는 거 보소.
‘미친 거 아니지 ’
-지극히 정상이고, 처음부터 이 계획 반대했소만
“염병!”
욕을 내뱉고, 세주가 자세를 바로 했다.
“기네스북에 기록 해주마. 내 주먹을 세 번이나 피해 ”
화르륵.
말과 함께 놈의 주먹의 불꽃이 더 맹렬히 타올랐다.
“맹랑한 새끼, 죽었다고 복창해라.”
에너지가 없다고 반세주의 경험치가 사라진 건 아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 거다.
“그냥 뒈져라.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나도 뒷 목 잡게 생겼으니까.”
부관이 앞으로 내달린다.
세 번을 피하며 얻은 정보를 정리한다.
프로비던스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쯤은 일도 아니다.
직선적인 성격, 그에 맞는 단순한 공격.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면, 짓눌러 죽이는 타입.
그러므로 이번 공격도 직선 일변도다.
그리고 에너지가 없지, 가진 물품이 다 사라진 건 아니다.
머릿속에 몇 가지 물품을 떠올렸고, 그걸 그대로 프로비던스에게 요구했다.
‘꺼내.’
하나는 발밑에 꺼내자마자, 앞으로 툭 밀어 넣는다.
펑!
연막탄이 터지며 연기가 앞을 가린다.
평소라면 에너지 탐지 정도로 존재가 들키겠지만, 지금은 그 에너지를 미약하게 봉인해 둔 상태다.
시각에 의지해야 한다는 거다.
그다음 건 오른손으로 쥐고 앞으로 던졌다.
팡!
“악! 이 새끼가!”
섬광탄이다.
던지기 직전 목을 돌리고, 자신의 섬광 피해를 피했다.
툭.
그리고 코앞에 시간차를 맞춰 하나둘, 블레이드 그립이 떨어진다.
잡고 켠다.
플랜트가 가동하며 푸른 칼날을 꺼낸다.
손에 잡히는 대로 몇 개는 앞으로 던졌다.
티디디딩!
상대가 놀라운 반사 속도로 칼날을 쳐냈다.
“오냐! 오냐!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마!”
말 많은 놈이다.
싸움에 혀가 길면, 때로는 치명타가 되기도 한다.
연막 속, 놈의 위치를 가늠한 세주가 그립을 바닥에 세우고 발로 찼다.
발로 참과 동시에 가동한 그립의 칼날이 솟는다.
놈을 향해 찬 게 아니다.
놈과 세주의 사이 바닥이다.
작은 줄을 꺼내, 앞으로 던지자 그립을 휘감는 줄이다.
단단하게 감긴 줄이 그립을 잡고, 칼날을 고정한다.
“여기!”
세주가 외쳤다.
훅!
놈이 연막을 뚫고 나왔다.
퍼버버벅!
맨몸으로 급조한 칼날 트랩을 뚫고 들어온다.
“우악!”
에너지 블레이드는 어떤 이에게도 공평하다.
광탄보다 블레이드가 배리어를 뚫는 데 유리하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배리어라는 건, 넓은 면적에 동일한 충격을 주는 게 유리하니까.
달려든 쥬니퍼의 부관의 전신이 찢긴다.
죽을 정돈 아니다.
세주도 알고 있었다.
놈이 분노에 가득 차 달려들었다.
-피하지
‘피하면 못 잡아.’
길게 끌 싸움이 아니다.
여기서 시간을 끌었다가 원군이 오는 게 더 골치 아프다.
속으로 신호를 센 세주가 앞으로 뛰었다.
동시에 손에 든 그립을 앞으로 쭉 뻗었다.
‘모드 온 카운터.’
동시에 새로운 모드를 켰다.
노블 에너지는 미약하나, 모드를 켜지 못할 정돈 아니다.
카운터 모드는 프로비던스의 칼큐레이팅 모드와 오버 페이스 모드의 합성이다.
단 일격을 위한 것, 그게 바로 지금 켠 모드의 존재 이유였다.
세주의 눈에 빛이 머문다.
적의 공격 루트가 보이고, 놈의 의도를 읽는다.
동시에 아주 잠시, 가진 에너지를 넘어 몸이 한계를 넘는다.
그립을 쥐고 앞으로 찔러 넣자, 푹 하는 파열음이 들렸다.
“컥!”
이들은 메카니모스도 콴도 아니다.
인간, 심장도 하나 뇌도 하나.
급소도 같다.
“끄르륵!”
피거품을 문 놈이 무섭게 노려봤다.
“꿈에 나올까 무섭다. 새끼야.”
세주가 발로 놈을 걷어찼다.
“후아.”
피로가 밀려온다.
노블 에너지의 부재가 꽤 크게 느껴졌다.
-온다.
‘응 ’
프로비던스가 켜 준 맵에 커다란 흰 점이 세주를 향해 달려왔다.
‘염병.’
쥬니퍼다.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피하고 싶은 여자.
“너였냐-!”
‘많이 화난 것 같은데 ’
-남은 시간 1분 25초.
저 여자 손에 1분 25초를 살아남아야 한다는 소리로 들렸다.
세주가 급히 그녀를 향해 외쳤다.
“말로 하자!”
-…진심이야
‘완전!’
지금 싸우면 죽는다.
100%.
그러니 완전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