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191. 반난운
“분명히 존재합니다.”
확고한 의지를 담은 말이다.
지구로 치자면, 경찰청장.
이곳에서는 통일은하 치안부장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단 쥬니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찾아야 합니다.”
쥬니퍼는 이 열성적인 대원의 말에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어느 때나,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을 보는 건 즐겁다.
더구나, 진급이나 재화를 바라서가 아니라 의무를 다하기 위함이다.
그런 순수함을 보는 건, 몇백 년 만의 일이다.
‘요새도 이런 친구가 있네.’
“회생보험 한 번도 안 했지?”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순수청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회생보험, 통일은하정부의 제도 중 하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곳으로 늙은 육체를 버리고 새로운 육체를 갈아타는 것을 말했다.
“안 했습니다.”
청년은 솔직하게 답했다.
이십 대 초반의 검은 머리칼.
아시아 계열의 황인종이다.
생긴 건 깔끔했다.
피부도 맑고, 눈은 동그랗게 크다.
쥬니퍼는 오랜만에 남자에 관심이 생겼다.
“우리 안에 스파이나, 반란분자는 언제나 있었어.”
“그렇습니까?”
놀란 눈의 청년을 보니 껴안아 주고 싶어진다.
“큰일은 아니야. 하지만 찾아야 하는 것도 맞지.”
쥬니퍼가 고개를 끄덕이며 청년을 향해 손짓했다.
눈치 없이 눈을 깜빡거리는 청년이다.
다른 부하들이 이랬다면 거칠 것 없이 상스러운 욕을 뱉었겠지만.
이 아이, 마음에 든다.
“이리로.”
그제야 순수청년이 성큼 다가왔다.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기밀 임무야. 네가 팀장이 돼서 사람을 꾸려 봐. 반란분자를 찾는 임무를 줄 테니.”
말을 하며 숨결을 섞었다.
청년의 볼이 붉게 변한 게 보였다.
‘귀여워라.’
깨물어주고 싶었다.
“제가 말입니까?”
치안부의 계급은 군과 동일했다.
병사와 부사관, 장교까지.
복잡한 걸 싫어하는 군주 탓이다.
‘너무 멋이 없단 말이지.’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쥬니퍼는 8사단을 운영하는 사단장과 동급, 무계급자다.
통일은하정부에서 무계급은 특별한 이를 말함이다.
쥬니퍼는 그런 여자였다.
그리고 눈앞의 청년은 상병.
본래는 독대가 불가능한 둘이다.
하지만 긴급한 일이라며 상병은 정보를 건넸고, 그게 타고 올라가다 결국 둘을 만나게 했다.
“네가 찍은 스파이가 누구라고?”
순수청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치안 2대의 대장입니다.”
치안부는 총 다섯 개의 대와 두 개의 특별부서로 이뤄져 있다.
그중 한 대를 책임지는 자가 반란분자라니, 작은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걱정할 일은 아니다.
모든 권력은 힘에서부터 나온다.
그게 보슬의 모토다.
쥬니퍼는 놀라운 사이키커였으며, 에너지 컨트롤러다.
치안 2대를 통째로 삶아 먹을 정도의 강자다.
“팀원을 모아. 증거를 모아서 처단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시적으로 네 계급은 내 권한에 의해 대위급으로 둔다.”
“네!”
“임시 계급장 받아가라고 지시해 둘 테니 받아가고, 오늘 저녁에 뭐 해?”
“낮 밤 가리지 않고 업무에 매진할 작정입니다!”
열의가 높은 건 좋지만, 눈치가 너무 없다.
쥬니퍼의 눈썹이 씰룩였다.
여기서 화를 내면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다.
일에 목숨을 건다면, 그에 합당한 상을 주면 된다.
“저녁에 이 주소로 와.”
말과 함께 쥬니퍼가 홀로그램 위로 몇 글자를 써서 던졌다.
휙 하고 푸른빛이 넘어온다.
순수청년이 그걸 받아 확인했다.
푸른 행성 내의 주소다.
“어디냐고 물으면 화낸다. 알아서 찾아와.”
“네, 알겠습니다.”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계급의 상급자다.
청년이 부동자세로 답했다.
경례하고 돌아나가는 청년에게 쥬니퍼가 물었다.
“너 이름은 뭐니?”
청년이 다시 돌아서 답했다.
“반난운입니다.”
“이름은 네가 스파이 같다.”
“절대 아닙니다.”
당황하는 청년은 여전히 귀여웠다.
쥬니퍼가 손짓을 해 그를 돌려보냈다.
저녁에 있을 즐거운 일이 기다려졌다.
*
난운의 일과는 변하지 않았다.
쥬니퍼와 일이 있긴 했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성실했고, 충실했다.
스파이 색출 작업 덕분에 여기저기 전부 기웃거리게 된 난운은 곧 모두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몰래 일할 주변머리는 없었다.
대신 쥬니퍼가 인정한 이다.
아무도 그를 막지 않았다.
“여긴.”
“감옥이다.”
말뿐인 계급장이다.
임시 대위.
이 일이 끝나서 특진한다고 해도 부사관급에나 들 거다.
과거 지구의 군대 계급과는 다르다.
철저한 상명하복의 조직이다.
통일은하정부는.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난운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죄수가 보였다.
방향제를 뿌리는 망고 향이 났고, 그게 피 냄새랑 섞여 역한 냄새가 났다.
“누굽니까?”
“스파이.”
난운이 하는 일이 그 반란분자를 잡는 일이다.
자신이 모르는 이가 잡혔다는 사실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에 간수가 입을 열었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1연구팀 김박사님 애인으로 위장했다고 하던데, 재주도 좋다. 그 철벽을 무너뜨리다니.”
딱딱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여자의 애인이라.
“흥미롭군요.”
난운의 시선이 죄수에게 향한다.
그러자 죄수가 고개를 들고 입을 연다.
“아파, 힘들어.”
“당연한 소릴.”
난운은 답하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저 죄수는 어떻게 됩니까?”
“나도 몰라. 그거야 윗 대가리가 알아서 하겠지. 들리는 말로는 김박사가 선처를 요구했다고 하더라. 징역을 살고 나오면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고, 캬. 그게 말이야 방구야?”
“말이죠.”
난운은 그 이후에도 이곳저곳을 찔러보며 둘러봤다.
몇몇 출입이 금지된 곳은 가볼 수가 없어서 발걸음을 돌렸지만, 수도 역할을 하는 도시 대부분을 돌았다.
그때까지 딱히 업무상 성과는 없었다.
쥬니퍼도 기대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고작 상병에게 직급과 업무를 준 건, 개인적인 관심이었다.
그녀와 치안부 관계자 대부분이 알았다.
반난운만 몰랐다.
그렇게 업무를 맡은 지 보름째 되는 날 쥬니퍼에게 명단을 제출했다.
“이게 뭔데?”
“의심되는 리스트입니다.”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쥬니퍼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다.
더는 뭘 해줄 수가 없었다.
“놔둬.”
고작 이 한 명의 눈으로 본 걸 어떻게 믿고.
“놔둡니까?”
명단을 챙긴 난운이 물었다.
“일단 대기하고 있어.”
급한 일이 없었다면 찬찬히 읽어주겠지만.
지금 당장 쥬니퍼는 들어온 보고 때문에 움직여야 했다.
“어디 가십니까?”
난운이 물었다.
“테러리스트 잡으러.”
첩보가 들어왔다.
골치가 아픈 두 명의 또라이 정신병자 테러리스트의 위치였다.
“아. 넵!”
쥬니퍼가 사라진 자리, 난운이 천천히 그녀의 집무실을 둘러봤다.
함부로 손댈 수 있는 건 없었다.
전부 1급 보안이 걸린 물품이다.
잘못 건드리면 곧 바로 터진다.
난운은 곧 발걸음을 돌렸다.
이 도시는 크게 다섯 개의 섹터로 나뉘었다.
중앙을 기점으로 동서남북.
그리고 테러리스트가 발견된 곳은.
‘북쪽.’
난운은 리스트를 들었다.
쥬니퍼가 제대로 살피지도 않은 명단이다.
그가 급하게 발을 뗐다.
지금 타이밍에 꼭 할 일이 산재해 있었다.
*
유진은 손과 발을 묶은 구속 도구를 풀 수 없었다.
처음 보는 형태였다.
밝은 보랏빛이 손목과 발목을 칭칭 감고 있는데, 천천히 움직이면 어느 정도 벌어지지만, 세게 당기면 꼼짝없이 붙들렸다.
‘곤란하네.’
혼자서 빠져나가려고 용을 쓰고 싶지만, 무리다.
톡.
작은 소리에 유진이 귀를 쫑긋 세웠다.
바닥을 유심히 살피니, 주사위 같은 정육면체 금속이 보인다.
금속을 주시하자, 흐릿한 글씨가 옆으로 나타났다.
홀로그램을 이용한 기술이다.
하지만 이 감방 내에는 모든 에너지 컨트롤이 무용지물이었다.
노블 에너지를 사용하는 이를 컨트롤러라고 부르는데, 컨트롤러 전용 감방이었다.
거기에 조금이지만 염동력도 다룰 줄 아는 유진이지만.
여긴 안티 사이킥 에너지 자기장도 겸했다.
홀로그램 글자를 읽은 유진이 그걸 입으로 물었다.
빠각, 정육면체가 깨지고 그 안에서 작은 빛이 흘렀다.
곧 그의 손목과 발목을 구속하는 빛에 스며들고.
파직.
작은 스파크가 튀며 사라진다.
따끔했지만, 유진은 입을 다물고 몸을 일으켰다.
간수는 감방 안을 지키지 않았다.
이곳은 안티 에너지 자기장이 있는 곳이다.
오래 있기에는 부담스러운 곳이다.
통통.
철창을 쳐 보니, 꽤 단단했다.
‘치용이 형이라면 모를까 내 힘으로는 택도 없겠는데.’
순수한 완력으로는 무리다.
대신 유진은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 내 배!”
상투적인 수법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먹힌다.
“뭐야?”
간수가 급히 밑으로 내려왔다.
“야! 왜 그러는데?”
간수는 급했다.
저자는 1연구팀 김박사가 자신의 커리어를 걸고 살리려던 자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이거 내 책임인가?’
하필 자신이 있는 시간에 이 사달이 난단 말인가.
“야! 야!”
급히 유진을 부른다.
하지만 바닥을 구르던 유진은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쓰러진 자리는 홀로그램 글자와 자신이 입으로 깐 정육면체가 있었다.
철컹!
간수가 문을 따고 들어온다.
유진은 소리만으로 그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대충 이쯤인가.’
자기장 안쪽이라면 조건은 같다.
아니, 상대가 유리하다.
유진은 이곳에서 적어도 며칠을 지낸 덕에 몸에 기력이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훈련받은 군인.
그가 다가와 손을 대는 순간.
팍! 휘리릭!
유진의 손목이 그의 발목을 감는다.
“엇!”
놀란 간수가 발목을 빼냈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빠각!
세주의 훈련은 가혹했고, 철저했으며, 지랄 맞았다.
EMP 쇼크라는 게 있는 걸 안 이상.
에너지가 없을 때 훈련법도 그 안에 있었다.
유진은 그 훈련을 받으며 열두 번도 넘게 지옥을 오갔다.
그가 세주에게 배우고 익힌 건, 관절기였다.
발목이 탈구되자 간수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
어떤 훈련을 받은 이라도 고통에 익숙해질 수 없다.
더구나 이 통일은하정부라는 놈들은 김보슬의 비호 아래 긴 시간 동안 전투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다.
그 반면, 지구의 정유진은 아수라장을 빠져나온 이였고.
손이 뱀처럼 타고 올라가 무릎을 잡았다.
“이익!”
간수가 급히 몸을 비틀었다.
완력이 따라주지 않아 무릎이 허망하게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동안, 근력도 쇠퇴한 듯했다.
간수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간다.
훈련은 똑바로 받은 건지, 이 순간에도 무기에 손을 댄다.
핸드건이다.
광탄을 쏠 거고, 저걸 간수가 드는 순간 유진은 죽거나 다칠 것이다.
앞뒤 가릴 때가 아니었다.
“우아아아!”
유진이 기합을 지르며 간수를 몸으로 들이받았다.
“컥! 이 새끼가!”
간수가 주먹을 들어 유진의 등을 내리쳤다.
발목이 나간 덕에 뒤로 밀리자, 격통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급히 무기를 잡아채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퍽!
목울대를 후려친 유진이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간수가 목을 부여잡고 바닥으로 허물어진다.
숨이 막히자, 하늘이 노래졌다.
그런 간수의 머리를 유진이 세차게 걷어찼다.
뻑!
우드득.
목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운 좋아야 식물인간일 것이다.
유진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약속된 시간, 약속된 일을 위해서였다.
밖으로 나간 유진의 눈에 사람들이 보였다.
간수 옷이라도 입고 올 걸 그랬나 보다.
유진은 건물 틈새로 몸을 숨겼다.
이쪽 감방은 3급 죄인을 가둔 곳이다.
경범죄자를 구금하기 위한 곳이다.
본래라면 2급 범죄로 취급받아야 했지만, 김박사 덕분이었다.
유진은 그늘에 몸을 숨기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감옥을 빠져나오자, 급격하게 활력이 돈다.
노블 에너지와 사이킥 에너지가 천천히 차올랐다.
‘너무 오래 걸리는데.’
그래도 시간이 필요하다.
엉망이 된 몸이 회복하려면 적어도 1시간은.
여유가 없는 유진은 기다리는 대신 뛰려고 했다.
‘걸릴 것 같은데.’
걸리면 답도 없는 상황이다.
그 순간.
꽈-앙!
굉음이 울렸다.
가까운 곳은 아니었다.
눈을 돌리자, 도시의 서쪽이다.
높게 솟은 탑 쪽에 불길이 이는 게 보였다.
“뭐야?”
“야, 저기 플랜트 쪽인데.”
에너지 플랜트가 모인 곳, 서쪽의 높은 첨탑은 이 도시의 랜드마크 중 하나였다.
“습격이다!”
“최소 인원 놔두고! 전부 지원! 테러다!”
무장 병력이 부리나케 움직인다.
그 틈에 유진은 몸을 뺐다.
그리고 그대로 1연구소로 향했다.
그가 바라고 원하는 게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