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87화 (187/206)

# 187

187. 중령 김치용

“8사단장은 왜 보낸 건지 해답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유토피아는 한 명의 군주와 열둘의 원로가 지배했다.

거기에 군주라는 김보슬은 실무에는 전혀 관심 없다.

그런 이유로 열둘의 원로는 이미 300년 동안 유토피아를 운영한 실세다.

정치는 원로에게 주고 군대에만 관심이 가득한 군주에게 원로들이 질문을 던지는 자리다.

그런 곳에서 보슬은 반바지에 상의를 탈의한 채,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

타원형의 긴 책상에 앉은 대표 원로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군주님.”

젊고 잘생긴 얼굴이다.

유토피아에 노인은 없다.

육체는 갈아치우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보슬의 뒤로 김산과 존이라 불리는 1사단, 2사단을 책임지는 둘이 부동자세로 자리를 지켰다.

“내 마음.”

보슬이 입을 열자, 원로 중 하나가 쿵 하고 원탁을 내리쳤다.

“유토피아 운영이 장난입니까?”

원로원주가 그를 향해 손바닥을 보였다.

“과도한 언사는 삼가시오.”

“하지만….”

“그만.”

원로원주가 다시 보슬을 바라봤다.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말했잖아.”

빙글빙글 돌리는 의자는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다.

원로원주는 따지고 싶었다.

“적이 없는 군대는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하지만 보슬은 여전히 장난스러운 답이다.

“왜 군대를 유지하는 겁니까?”

“내 맘.”

“군대를 해산하고, 정치에 참여하실 마음은 없으십니까?”

“없어.”

“9은하는 왜 지배하지 않으십니까?”

“내 맘.”

대화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다.

“후, 군주님. 군주의 자리를 양도하고 물러나십시오.”

뚝.

보슬의 의자가 멈췄다.

원로원주가 손을 들어 원탁을 쓸었다.

“이 원탁, 유서가 깊은 물건입니다.”

통.

가볍게 원탁을 친 원로원주가 주먹을 쥐고 말했다.

“8은하를 통일하고 이제까지 지배하신 노고를 위로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라면 군주로서 의무를 외면하는 겁니다.”

“본론만 깔끔하게.”

보슬이 다시 입을 연다.

“물러나십시오.”

“그게 전부야?”

“네.”

“뭐, 쿠테타 그런 거지?”

“안 물러나 주시면 쿠테타가 되고, 물러나 주시면 은퇴식이 됩니다.”

“이야, 준비 많이 했나 보다?”

“많이 했습니다.”

원로원주가 미소를 보였다.

긴장감이 장내를 감돈다.

다른 원로의 시선이 둘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팽팽하게 당겨진 실을 끊은 건 원로원주다.

“쉽게 물러날 거라고는 생각 안 했습니다.”

말과 동시다.

회의실 문이 양옆으로 열리며 광탄 라이플로 무장한 수십의 병사가 들어온다.

“제압해.”

원로원주가 말하고, 보슬은 웃는다.

“산.”

“네.”

“쓸어.”

꽝!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산의 모습이 사라진다.

그가 박찬 자리에 바닥이 부서져 파였다.

펑!

동시에 다시 들리는 폭음이다.

어느새 입구 쪽에 나타난 그의 주먹이 들어오는 병사의 머리를 부순다.

뇌수와 피가 튀었다.

“죽여!”

원로 중 하나가 외친다.

하지만 광탄이 빗발치는 일은 없었다.

보슬의 뒤, 눈에서 빛을 뿜는 남자다.

존이라는 이름의 2사단장이다.

그가 검지를 들어 좌우로 젓는다.

꾸득! 꾸득!

“끄아아아!”

손가락을 멈춘 것뿐 아니라, 비틀어 꺾는다.

놀라운 염동력이다.

꽝! 꽝!

산이 좌우로 주먹을 휘둘러 차분하게 하나씩 하나씩 처리한다.

“말도 안 돼!”

원로원주가 놀란 눈으로 그걸 본다.

그가 준비한 병력은 모두 일류능력을 갖춘 이들이다.

사단장 중 하나를 끌어들여 키운 사이킥 에너지 컨트롤러다.

그런 이들이 반항이라고 할 것도 없이 전부 꺾여 죽는다.

“사, 살려줘!”

결국, 뒤쪽에 자리 잡은 놈들이 그대로 줄행랑을 친다.

“쯧쯧쯧.”

보슬이 혀를 찬다.

“욕심이 과해.”

“군주! 군주! 한 번만 살려주시오!”

급한 외침이 회의실을 감싼다.

위잉.

그 사이 다시 문이 닫힌다.

“산.”

보슬은 원로들을 보지 않았다.

그대로 산이 원로를 향해 다가간다.

그들의 눈에 공포가 가득했다.

잠시 후, 시체가 가득한 곳에서 존이 물었다.

“근데 바슬로프 놈은 왜 보낸 겁니까?”

“실력 시험할 겸, 처리할 겸.”

“누구 실력 말입니까?”

“반세주.”

“지구의 인간이 이긴다고 봅니까?”

“응.”

바슬로프는 원로원에 붙어먹은 쓰레기다.

직접 처리하는 게 맞다.

존은 생각을 멈췄다.

그는 참모이자, 군주의 머리다.

거기에 군주의 생각을 읽고, 그의 뜻을 파악하는 업무는 없다.

“원로원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새로 뽑아.”

겨우 삼 백 년이다.

천 년의 삶에서 갈아치운 원로원만 다섯 개, 별일도 아니었다.

*

바닥에 내려선 바슬로프가 경계선 너머의 인간을 바라봤다.

“전갈.”

그가 가진 연대를 제외한 직할대는 셋.

보통 사단의 직할대는 네 개의 용도로 분류한다.

하나는 보급 및 정보를 위한 대대.

둘은 특수 작전을 위한 기동대.

그리고 하나는 각 사단의 특성에 맞는 특수대.

8사단의 특수부대는 전갈이란 별칭의 부대다.

독을 쓰는 대대다.

“나가서 죽여.”

대대장 소대장을 포함 90명에 가까운 인원이 앞으로 나간다.

백색의 전투복과 아머를 입은 이들이다.

대대장이 묻는다.

“피 한 줌 안 남을 겁니다.”

“마음대로 해.”

비 쉽이 터진 건 장난이 아니다.

“1,2 연대 출진 준비.”

직할대를 넘어서 연대 병력까지 준비한다.

바슬로프는 신중했다.

직할대로 적의 무력을 계산하고 연대 병력으로 쓸어버린다.

단순하지만, 압도적인 병력을 가진 지휘관으로서 올바른 선택이기도 했다.

“끄하하하핫!”

독으로 죽는 이의 동공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놈이, 전갈 대대장이다.

미친놈 중의 상 미친놈이다.

대대장과 적군이 뭐라 뭐라 말을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더니 큰 덩치를 가진 놈 하나가 앞으로 나선다.

“전부 죽여라! 다 우리 거다!”

미친 대대장의 외침이 터짐과 동시다.

“렌즈 위로 올려.”

대대 병력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어드바이저가 위로 떠서 밑을 비춘다.

높은 각도에서 위를 내려다보자.

잿빛 연기가 사방을 감싼다.

지독한 독 연기다.

그리고 그 연기 한 가운데, 덩치 큰 인간이 칼을 휘두른다.

퍼-억!

다섯의 대대원이 그대로 베여, 아니 터져 죽는다.

“독이 안 통합니다.”

부관 중 하나가 말한다.

“눈 똑바로 떠, 안 통하는 게 아니다. 어드바이저 활용할 줄 몰라?”

짜증을 담은 목소리다.

멍청한 부관이다.

어드바이저가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한다.

‘보유량은 8등급, 출력량은 6등급.’

“노블 패스의 에너지를 가속해서 순간 출력을 높이는 거다.”

‘어떤 미친놈이.’

어지간한 몸뚱이로는 시도도 못 할 짓이다.

유토피아에서도 저런 게 가능한 놈 손가락에 꼽을 거다.

애초에 저럴 필요도 없다.

보유 에너지를 높이면 굳이 저런 도박 같은 짓을 하지 않아도 그만이란 거다.

노블 패스를 가속해서 들어오는 독 따위는 태워버리는 거다.

하지만 얼마나 단단한 몸뚱이를 가져야 에너지를 저렇게 가속 시킬 수 있는 걸까?

“얕보지 마! 연대 병력 투입한다!”

“네!”

*

“야, 나 일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기주가 어느새 다가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낸다.

“어떻게 할까요?”

유진이 묻는다.

“넌 수고했다는 말 안하냐?”

“총 몇 발 쏜 거 가지고 그 난리야?”

“엄청 열심히 쐈는데?”

인준이 핀잔을 준다.

그렇다고 말로 질 세주는 아니었다.

실제로 꽤 에너지를 소모한 짓이기도 했다.

적의 함선이 내려오고 그중 일부가 앞으로 다가온다.

눈이 째지고, 흰 아머를 입은 놈이다.

“뱀 새끼 같이 생겼네.”

중얼거리자, 그가 앞으로 나오며 입을 연다.

“난 8사단 직할대 머레이다! 전부 다 죽여주마.”

가지가지 한다.

“난 오늘 일 다 했다.”

“무슨 소리예요?”

유진이 묻는다.

하지만 세주는 대답 대신 다른 이를 불렀다.

“치용!”

“중령 김치용!”

관등성명을 뱉으며 치용이 앞으로 성큼 나온다.

동시에 세주가 손을 들어 앞을 긋는다.

파아아악!

흙더미가 튀며 선이 그어진다.

좌우로 넓게 쭉 펼쳐진 경계선이 생긴 셈이다.

“넘기지 마라.”

“어흥!”

“대답 좋고!”

치용이 앞으로 나선다.

그가 뱃속으로 호흡을 잔뜩 끌어당기고 외친다.

“이 선 넘어오는 놈은 다 죽는다!”

“패기 좋고!”

세주가 신이 나 외친다.

뒤에서 그걸 본 무영이 다급하게 묻는다.

“미친 건가?”

“말투.”

인준이 눈을 부라린다.

사기업도 아니고, 군에 들어왔다면 지킬 건 지키라는 눈이다.

정작 인준은 죽어라고 지키지 않긴 하지만.

내로남불, 본래 남의 하는 일이 더 열 받는 거다.

“적군이 어림잡아 근 백이다. 혼자서는 안 돼. 지원 간다.”

“불가.”

세주가 고개를 젓는다.

“왜입니까?”

이를 바득 갈면서 묻는다.

훈련이라 부르고, 갈굼과 괴롭힘으로 무장된 과정을 겪었으면서도 성격은 어디 안 간다.

“뒤로 물러나. 저 선 넘어가지 마라. 이 싸움은 치용 거다.”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해줄 의무는 없다.

-처음 보는 형태의 독이야. 분석한다.

파악!

앞에서 잿빛 연기가 터진다.

처음 놈들이 내려왔을 때부터 독을 가진 부대라는 걸 알았다.

프로비던스는 장식이 아니다.

그래서 치용만 내보냈다.

선을 긋고 아군과 적군의 거리를 벌린다.

프로비던스의 계산이 끝난 거리다.

“아군을 죽일 셈입니까?”

무영이 묻는다.

하지만 그 외, 안나를 비롯해 세주, 유진, 인준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

“걱정 접어도 좋다. 안 죽는다.”

인준이 딱딱하게 입을 열었다.

“일 대 백이오!”

“저 새끼는 정말 재수도 없고, 짜증 나고 무식한 새끼지만, 일당백쯤은 해.”

인준이 말하고 몸을 돌렸다.

구경할 차례였다.

*

“내가 너한테 주는 건, 경험이다.”

“무슨 경험 말입니까?”

“맞는 경험.”

세주의 말에 치용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 좋다.

그런데 대뜸 맞는 경험이라니.

“그 와중에 살길을 찾는 건 네 일이고. 실버.”

세주의 곁에 아군 안드로이드가 선다.

“죽일 각오로.”

[옛 써]

*

칼을 뽑으며 훈련 첫날을 떠올렸다.

악다구니라면 세계 제일이라고 믿은 자신이지만.

그 날부터 몇 달은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세주는 그에게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걷는 경험을 줬다.

그 또한 천재였다.

같은 수법이 두 번 통하지 않는 전투의 천재.

세주가 그에게 준 건, 밀도 높은 경험치다.

목숨을 건 훈련 속에서 치용은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는 가진 노블 패스를 돌리는 법을 깨달았고.

그걸 더 빠르게 돌리면 돌릴수록 전보다 강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한 가지만으로 세주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가르칠 게 없다.

매캐한 연기가 코를 파고든다.

심장을 옥죄고, 내장을 쥐어짜는 고통이 밀려온다.

하지만 1초도 되지 않아, 휘도는 노블 패스의 힘에 독기가 들어오기 무섭게 빠져나간다.

“어흥!”

독 따위는 기합으로 물리치는 거다.

크게 외치고 치용이 무기를 뽑았다.

왼손에 타는 칼.

오른손에 푸른 칼.

붉고 푸른빛이 전면을 가르는 순간이다.

쩌-엉!

다섯이 터지고, 다섯이 타 죽는다.

그의 손에 춤추는 두 개의 칼은 적군에게는 자비를 잊은 사신이었다.

펑! 펑! 펑!

폭음이 연속으로 터지며 적군을 그대로 쓴다.

일당백이란 말에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잿빛 연기가 사방을 채운 채다.

치용은 적을 죽이며 입을 크게 벌려 있는 힘껏 독기를 빨아들였다.

“후아아아아압!”

그리고 노블 패스를 휘도는 에너지를 가속해서 독을 정화한다.

걸어 다니는 정화기다.

주변 연기가 걷혀질 때쯤, 최초로 들어온 대대장 놈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아니, 주변에 서 있는 놈이 없었다.

매캐한 연기 뒤로, 다시 적군의 병력이 달려온다.

까마득한 숫자다.

뒤를 힐끗 봤다.

이제는 전투 중에도 생각이란 걸 한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가 본 건 세주였다.

자신의 형님이자, 대장이자, 영웅이 어깨를 으쓱한다.

다 해먹으라는 소리다.

신이 난 치용이 외쳤다.

“돌격대 앞으로!”

치용이 직접 손수 하나하나 가르친 돌격부대다.

총인원 520명.

치용의 뒤로 선다.

“쓸어!”

크게 외친 치용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이날 전투는 극적인 반전도, 새로운 것도 없었다.

세주는 치용이 날뛰는 걸 지켜봤고, 적의 사단장이란 놈이 놀라운 염동력을 보이며 치용의 팔을 붙드는 걸 봤다.

하지만 그걸 완력으로 찢은 치용의 칼에 베여 죽었고, 싸움은 그걸로 끝이었다.

사망자 제로.

경상자 열다섯.

중상자 셋.

첫 전투의 결과였다.

아니, 치용의 돌격대의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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