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86화 (186/206)

# 186

186. 후회

오닉스 에너지라는 건 이제까지 쓰던 에너지의 출력과 농도가 달라진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에너지는 도구다.

그리고 그걸 쓰는 주체는 그 에너지의 주인인 세주였다.

에너지 컨트롤 능력도, 모드 활용도.

언제나 그가 했다.

그였기에 특별한 것이었다.

쫙 펼쳐진 모드다.

신중함을 가질 만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딴 건 없었다.

-…생각은 하는 거지?

“응. 많이.”

-일단 믿기는 하겠지만.

“그럼 그냥 믿어.”

프로비던스의 우려가 타당할 정도다.

세주는 거침없이 고르고, 선택했다.

가진 모드 모든 것을 지우고 택함에도 주저함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

앞으로 사용할 것.

인간은 최우선 순위가 무엇인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즉, 신념을 따르면 그만이다.

세주는 평소 자신을 의심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선택에 주저는 없다.

프로비던스는 말없이 그의 선택을 봤고, 곧바로 모드를 업로드했다.

“음.”

순간 두통이 밀려온다.

하지만 괴로울 정도는 아니었다.

-좀 아플 거야.

“그런 건 빨리 말해.”

-미리 안다고 달라져?

“달라지지.”

-뭐가?

“내 마음가짐이.”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소년이 머리를 부여잡은 세주를 본다.

인공지능, 후회란 감정이 있을 수 없다.

“후아.”

숨을 내쉬는 세주다.

프로비던스는 태어나 처음으로 후회라는 감정을 느꼈다.

텍스트로만 알던 단어가 뇌리에 스며든다.

잠겨 있던 기억 미리 풀 수도 있었다.

만약 이 모든 걸 미리 줬다면, 전부 알려줬다면.

새로운 선택지가 있었을까?

세주는 몰라도 프로비던스는 알고 있었다.

계산은 그가 가진 가장 큰 힘이다.

그리고 그동안 수없이 삶을 겪은 세주의 기억이 프로비던스에게 있다.

거기다 최근에 김보슬을 보고, 그들의 힘도 안다.

그래서 프로비던스는 이 싸움이 절대로 유리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그래도 말할 수 없다.

전투에 나가는 병사에게 묏자리를 찾아간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그간 쇳덩이로 만들어진 기계라도 지켜야 할 예의다.

“재밌냐?”

-재밌어 보여?

자기도 모르게 심각한 표정을 한 소년 모습을 향해 세주가 눈을 부라린다.

“이 새끼, 나 아픈 거 보니까 아주 신나지?”

괜한 걱정이다.

소년은 다시 후회라는 감정을 느꼈다.

이 새끼는 걱정해봤자 남는 게 없다.

“딱 봐, 지금 내 얼굴 보고 통쾌한 얼굴이잖아.”

그니까 어디가.

미친 주인이자 형님 새끼.

-그렇다고 해두자.

“봐. 이 새끼 걸리니까 아닌 척하네.”

진짜 밉다.

누구는 걱정하는 마음에 후회라는 감정까지 깨달은 판이다.

나쁜 새끼다.

“봐봐. 저 새끼 표정 얄미운 거 봐.”

프로비던스는 전에 없이 차가운 무표정이다.

자꾸 이렇게 몰아가니, 프로비던스가 배알이 꼴렸다.

다 주인 닮은 탓이다.

소년 형상이 갑자기 손을 들어 배를 잡는다.

그리고 바닥을 굴렀다.

-까르르르르르.

그렇게 원하면 신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저 미친 기계 놈이.”

그걸 본 세주의 황당한 표정이 프로비던스의 쓸쓸한 마음을 달래줬다.

땅을 손으로 내리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자 자신의 형님이자 주인이 흡족한 얼굴로 중지를 들었다.

*

“전술 비행 시작합니다.”

“전술 비행은 무슨 그냥 가.”

“알겠습니다.”

바슬로프의 말에 부관이 답한다.

함선이 미끄러지며, 지구 대기권진입한다.

전부 은밀 기동 형태로 들어가, 아무도 이들의 침입을 알지 못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바슬로프는 보슬의 말을 떠올렸다.

별 시답잖은 요구다.

바슬로프는 욕심이 많다.

아마도 사단장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1사단이나 2사단의 연대장이나 되었을 거다.

그게 싫었다.

김산의 밑으로 가면 그 위로 갈 수가 없다.

‘힘으로는 그놈 못 이기지.’

더구나 바슬로프는 그보다 위로 가고 싶었다.

사단장보다 위.

유토피아의 모든 군단을 책임지는 그 자리다.

군단장이자, 사령관이자, 유토피아를 만든 자.

꼭대기다.

김보슬, 검은 머리의 괴물이 앉은 왕좌.

바슬로프는 그곳을 원했다.

수십 년동안 육체를 바꾸며 살아왔다.

그동안 갖고 있던 욕심을 펼칠 기회가 없었다.

‘평화는 누군가에게는 좋지만, 누군가에게는 저주지.’

특히나 욕심과 욕망이 들끓는 자에게 평화란 자신을 꽁꽁 옭아매는 오랏줄이다.

기회란 생각지도 못할 때 찾아온다고 했던가.

바슬로프는 이번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측근의 자리를 차지해야.’

뭘 해도 한다.

김산 그놈 자리를 노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자리는 어떨까?

머리를 쓰는 거라면 자신도 남 못지않다.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다.

‘참모 자리 정도라면.’

그게 시작이다.

“목표지점 도착 1분 전.”

“은밀 기동 해제합니다.”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자 빛을 반사하고, 소음을 죽이는 장치를 끈다.

쿠우우우.

비무장지대 위, 함선 세 척이 떠오른다.

바닥이 둥글어 배를 닮은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함선 옆으로 노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함포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위를 보니, 그 또한 둥글어 멀리서 보면 긴 타원 모양이다.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수송은 물론 전투 능력을 탑재한 에그 쉽이라 불리는 물건이다.

“사령관님, 목표지점 다수의 생명체 포착.”

“음?”

딴 생각을 접고 시선을 돌리자, 바깥 화면이 그대로 투영된다.

“전방 확대.”

바슬로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이 커진다.

동시에 한 명의 얼굴이 보였다.

“반세주.”

목표물이다.

어떻게 알고 왔을까?

“함선, 정지.”

날아가던 에그쉽 세척이 멈춘다.

“비 (BEE) 쉽 1개 부대 출진.”

“출진 1분 전.”

기왕 만난 거, 테스트나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비 쉽은 벌 모양을 닮은 전투선이다.

딱 1인 전투선으로 광탄을 쏘는 체인건이 달려 있다.

개별 배리어 능력과 광탄 체인건, 두 가지 기능이 전부지만 허공에서 자유롭게 선회가 가능하고 순간 속도가 사람의 눈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다.

전후좌우, 팔방을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전투선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악몽이나 다름없을 전투선이다.

“출진 3초전. 3, 2, 1. 출진.”

투두두두둥!

함선 밑, 홀로그램 빛이 뿜어지고 비 쉽 1개 부대 총 열 개의 전투선이 나왔다.

‘자, 넌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놈이 좋아하는지 구경이나 하자.’

날아드는 비 쉽이 허공에 떠서 밑으로 쇄도하기 직전이다.

빛이 번쩍였다.

퍼버버버버버버버벙!

동시에 열 척의 비 쉽이 터진다.

어느 게 먼저 터졌나 분간도 어려울 정도다.

“사령관님?”

부관 또한 당황한 얼굴이다.

바슬로프는 몸을 일으켰다.

‘이것 봐라?’

순간 번쩍이는 빛은 분명 에너지가 집약된 탄이다.

꽤 재주가 있는 컨트롤러가 아니면 제대로 쓰지도 못할 기술이다.

“착륙해.”

“함선 착륙.”

세 척의 함선이 바닥에 내려온다.

두 부대 사이에 간격이 경계선처럼 그려진다.

“구경이나 해보자. 벌레가 발악하는 짓이 얼마나 깜찍한지.”

바슬로프는 그 말과 함께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형!

어느 때와 다름없이 훈련이라 부르고 갈굼이라 부르는 과정 중이다.

‘무슨 일?’

-대기권에 적기 세 척 출현.

‘시간 하고 위치.’

-비무장지대 40분.

막 유진의 귀에 깃털을 꽂고 있던 참이다.

“제발, 그만 좀 해요.”

유진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 순간, 세주가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그만 할 참이다. 전원 주목!”

치용과 안나, 유진과 인준이 그를 돌아본다.

“유진 곧바로 나가서 팽한테 수송선 준비하라고 해. 대기하고 있던 실버도 같이 데려와.”

“네!”

분위기가 급변하자, 유진이 튀어나간다.

묶인 인준을 끌어내리고 머리 위 광편 수류탄을 회수한다.

“빌어먹을.”

인준이 욕설을 뱉었다.

“전부 무장 완료 후, 수송선에 탑승까지 5분 준다. 훈련을 마친 전 병력 모두 데려간다.”

무슨 일인지 묻는 이 하나 없다.

“실시.”

“실시!”

안나를 포함한 넷이 나간다.

나가려는 안나의 팔을 세주가 붙들었다.

“넌 빠져.”

“나도 이 부대 일원이야.”

엄밀히 말하자면 적이 침공한 건, 인류가 아니라 한국이다.

더구나 프로비던스의 스캐닝 감지에 40분 거리.

다른 국가가 반응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인류 방위 수호, 말이 그렇지. 실제로 우리는 국가로 나뉘어져 있다. 여기서 네가 죽기라도 하면 더 곤란해.”

안나가 고개를 돌렸다.

“상관없어.”

“꼭 네가 갈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난 내 곁에 있는 이들이 아시아인지, 미국 시민인지 중요하지 않아.”

“다른 이들의 눈, 특히나 네 모국의 정치인에게는 중요하겠지.”

안나는 그래도 가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도 안 죽인다면서.”

그리고 홱 고개를 돌리고 나간다.

맞는 말이다.

아무도 죽이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같이 싸우는 이들이 눈앞에서 죽는 건,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저건 왜 저렇게 고집이 세. 누가 데려갈는지.”

-형이 데려갈 확률도 있잖아.

“시끄럽다.”

지금은 연애보다 싸움이 급할 때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자, 모든 병력이 모여 있다.

“모두 즐거운 훈련을 마치고, 싸울 시간이 왔다.”

둘러보자, 독기 어린 눈빛이 보인다.

“눈빛 좋고, 전원 탑승!”

외치자, 모두가 수송선에 오른다.

[대장, 출진 준비 완료]

팽이 조종간을 붙잡고 말한다.

모두가 타고, 마지막 세주가 발걸음을 옮긴다.

“출진.”

콰우우우우!

곧바로 발진한 함선이 비무장지대로 날아간다.

‘변한 건?’

-없어. 이 새끼들, 전술 비행도 안 하고 그냥 모습만 숨기고 들어오네.

‘멍청한 놈이 지휘관인 거냐? 아니면 그놈이 날 멍청한 놈으로 보는 거냐?’

-둘 다에 전 재산을 걸지.

비무장지대에 도착한 수송선 앞, 정병 이천이 모였다.

치용과 인준, 유진을 뒤로 한 세주가 걸어 그들의 앞에 섰다.

세주의 등을 보는 이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다.

“전원, 휴식한다.”

“휴식 말입니까?”

장왕이 앞에서 묻는다.

“그럼? 오기 전까지 빳빳하게 서 있다가 싸울 때 다리에 쥐라도 나게?”

이대로 몇 시간 서 있는 다고 컨디션에 문제가 생길 일이 없다.

그렇게 허약한 이들이 아니다.

“싸울 때를 대비해 쉬는 것도 일이다. 전원 휴식.”

물론 각 잡고 서 있는 것보다 휴식이 컨디션 조절에 더 쉬운 건 사실이다.

자세를 풀고, 무장을 점검한다.

버릇처럼 전투에 대비한다.

빠듯하게 훈련을 시킨 보람이 있다.

“잘 했네.”

“뭘요?”

유진이 옆으로 다가왔다.

“훈련.”

“저희가 구른 만큼 굴리니까요.”

“만족하는 거냐?”

인준이 무표정으로 묻는다.

“50%.”

“…50%?”

“응. 반 정도 마음에 드네. 더 굴려.”

그 말이 왠지 인준을 포함 나머지를 더 심하게 굴리겠다는 말로 들렸다.

“미친 새끼.”

인준이 중얼거리는 사이, 치용은 혼자서 한적한 곳으로 가서 몸을 푼다.

경주에 나가기 전, 육상 선수처럼 전신을 스트레칭한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시위하네.

‘그렇지? 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치용은 전신으로 말하고 있었다.

싸우고 싶다.

천천히 몸을 풀고, 무장을 점검한다.

총기를 닦고 탄환을 챙긴다.

철컥, 철컥!

샷 건을 뒤로 두 번 당긴 치용이 앞쪽을 겨눠보고.

자신이 가진 두 개의 칼을 꺼내봤다.

타는 칼과 그립 두 개를 모은 대형 블레이드 그립이다.

휘릭.

손에 돌리고 다시 잡는다.

그 사이 적 함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적기 포착. 멈췄다. 소형 전투선 나온다.

“대장님!”

[격추할까?]

장왕이 부르고, 팽이 묻는다.

“내가 해도 되고.”

의외의 인물 중 하나다.

무영이 뒤에서 중얼거린다.

“사령관님께 예우를 갖추십시오.”

바로 옆에서 나기주가 말한다.

대한민국 초인 전력의 대부분이 이곳에 있다.

“제가 해도 됩니다.”

무영이 심드렁하게 다시 말한다.

“뭘 이런 거로 너님들 손까지 빌리겠나.”

세주가 말과 함께 벼락을 꺼내 든다.

허공에서 생겨난 총기다.

그리고 그대로 나타난 적의 전투선 10척을 겨눈다.

오닉스 에너지로 만든 모드의 데뷔전이다.

위이이잉.

벼락에 스코프가 달린다.

트레이서 능력이 달린 스코프다.

세주가 다시 택한 모드의 첫 번째.

그가 가졌던 모드의 시작이다.

‘모드 온.’

에임 모드에서 스나이퍼, 불릿 마스터로 향했던 노멀, 레어, 유니크.

그리고 그 마지막.

레전드 모드다.

-적기 포착 완료.

‘에임 마스터.’

기본 능력은 에임과 트레이서, 적기 자동 포착이다.

두두두두두두둥!

열 발의 탄이 총열을 달구며 떠난다.

동시에 적기 열 척이 공중에서 폭사한다.

꽈과과광!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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