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85화 (185/206)

# 185

185. 에브리 모드

“8사단 소대 하나가 9은하에 가서 통신이 끊겼습니다.”

“오호, 맹랑한 녀석이네.”

두두두둥!

보슬은 게임에 한참이었다.

홀로그램을 통한 가상현실 게임도 아닌 구세대 레트로 게임이다.

작은 비행체가 나와 세로로 비행하며 적기를 격추하는 장면이 보였다.

감흥 없는 표정으로 산이 재차 입을 열었다.

“사단장을 불러, 주의를 시킬까 합니다.”

“놔둬.”

“네.”

형식적인 보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주군이 그러리라는 걸 짐작했다.

“재미없어.”

보슬은 손에 쥔 조이스틱을 툭 하고 던지고 등을 쭉 폈다.

우드드득.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산아.”

“네.”

“사는 거 안 지겹냐?”

“안 지겹습니다.”

“나도.”

말하고 나서 보슬이 실실 웃는다.

“재밌는 일은 참 끊이지 않고 일어나. 그래서 인생이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건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산은 그런 생각을 했다.

8은하를 통일한 군주, 인간으로서 한계를 벗어던진 유일무이한 존재.

가히 신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8사단장 데려와 봐.”

“네.”

그의 말은 산에게 진리다.

산이 곧 뒤로 돌아 통신기를 조작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각진 턱을 가진 갈색 머리칼의 남자가 왔다.

“어, 왔어?”

보슬이 그를 반겼다.

“이름이 뭐더라?”

그리고 재차 묻는다.

8사단장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바슬로프입니다.”

“그래. 바슬로프. 너, 일 하나 해볼래?”

8은하를 지배한 보슬은 많은 군을 보유하지 않았다.

절대다수는 이들의 군주가 누군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1사단부터 8사단.

지구에 일개 국가와 비교해도 현저히 적은 숫자다.

하지만 이게 당연했다.

모든 적을 몰살한 상황에서 어떤 지도자라도 군비에 투자하지 않는 법이다.

“유토피아의 군주가 내리시는 명이시라면 무엇이든 따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바슬로프가 술술 입을 연다.

산의 미간이 좁혀졌다.

딱딱한 표정으로 강철 가면이라는 별명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방금 바슬로프의 말이 거슬렸다.

하지만 산은 곧 표정을 바로 했다.

군주의 앞이다.

나설 수 없는 자리였다.

유토피아.

8은하를 통일하고 모든 것을 하나의 국가로 귀속시킨 보슬이 지은 국가명이다.

그리고 지금 바슬로프가 언급한 말은 정식으로 명령으로 내려달라는 요청이다.

“오호, 진급하고 싶어?”

8사단은 꼴통 사단이라는 별명이다.

처음부터 그런 이름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멀쩡한 1사단부터 7사단에서 비적격자가 된 이들이 모인 곳이니.

“하고 싶습니다.”

바슬로프는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죽이고 와.”

보슬이 입을 열고 손짓하자, 허공에 홀로그램이 뜬다.

그곳에 반세주의 얼굴이 보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네?”

순간 당황한 바슬로프가 되물었다.

그제야 산이 입을 열었다.

“군주의 앞이다. 8사단장.”

“알고 있습니다.”

바슬로프가 그를 흘깃 보고 답했다.

“민간인은 건드리지 마. 그리고 전장은 여기가 좋겠다.”

다른 홀로그램이 허공에 뜬다.

레이퍼가 한국을 침공한 곳이다.

비무장지대.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라는 말입니까?”

“그럼 빈말이게? 민간인 건드리지 말고 힘으로 밀고 와.”

보슬이 가볍게 말했다.

그의 말은 언제나 나풀거린다.

그 점을 지적하는 몇몇 원로들도 있다.

하지만 말투가 가볍다고 내용도 가볍진 않았다.

“인정받고 싶어서 깝친 거 아니냐? 그럼 능력을 제대로 보여줘야지? 9은하의 지구라는 별이다. 이 정도도 못 한다고 징징대는 건 아니겠지?”

“가용 병력은 어떻게 합니까?”

“사단 병력 전부를 데려가라.”

바슬로프는 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8사단은 총 2개 연대와 4개의 직할대가 있었다.

1개 연대는 다시 네 개 대대로 나뉘었고, 그 외 직할대 4개가 전부였다.

군비를 줄이고, 병력을 줄인 사단 병력은 전부 대동소이했다.

1개 대대는 다시 4개 중대와 4개 소대, 2개 분대로 나뉜다.

그러니 전체 병력은 1개 분대 10명 기준.

여기에 직할대 4개를 합치면.

사단 병력은 근 천 명에 달했다.

일견, 적어 보이지만 유토피아 일개 사단이라면 어떤 행성의 자위대라도 보면 바로 두 손을 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다.

군대 자체를 축소하며, 완벽한 전투의 전문가만 남겨둔 것이 바로 현재 유토피아의 병력이다.

그리고 최근 백 년 이래, 사단 병력을 운용한 적도 없다.

“진심이십니까?”

바슬로프가 물었다.

“두 번 말하게 할래?”

“아닙니다.”

바슬로프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돌아나간 뒤다.

보슬이 웃으며 말했다.

“인간이란 족속은 어떻게 변하질 않냐? 뭐든지 경쟁하고 올라가려고 바득바득 들이대고.”

“저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산이 답하자, 보슬이 웃음을 터트렸다.

십여 초를 웃어제낀 그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말했다.

“농담도 심하네. 넌 아니야. 내가 알지.”

“그러십니까?”

“응.”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산은 지금보다 나은 삶을 바란 적이 없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적을 만나고 싶습니다.”

싸우고 싶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싸웠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 산에게 평화란 무미건조한 일상과 같았다.

“나랑 싸울래?”

“사양하겠습니다.”

“쫄았냐?”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군주랑 싸우라니, 자살과 다를 게 없다.

산은 묵묵히 서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평소의 그를 생각하면 의외의 말이었다.

그는 군주에게 물었다.

“그를 죽이려는 겁니까?”

다름 아닌 반세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보슬이 그를 대하는 태도는 많은 이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왜 죽이지 않는지.

어째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그의 삶을 지켜만 보는지.

어떤 것도 쉽게 싫증 내는 보슬이지만, 그의 삶만큼은 흥미를 잃지 않는다.

오랜 시간 그 모습을 지켜봐 온 산이다.

그래서 지금 보슬이 한 행동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사단 병력을 투입한다는 건, 그를 죽이겠다는 말과 같았다.

“아니, 안 죽을걸.”

“유토피아의 사단은 전 은하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입니다.”

“인정.”

“그 힘을 지금 9은하의 한 행성에 던지신 겁니다.”

“알아.”

보슬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산을 바라본다.

“그래서 더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이제까지 봐온 반세주랑 다르잖아. 날 기억도 못 하고, 살겠다고 발악하는 모습을 봐. 하아아.”

얕은 신음을 흘리는 보슬이다.

산은 묵묵히 물러났다.

군주의 뜻이다.

자신의 이해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

“치용!”

꽝!

시뮬레이션 센터 안이다.

가상현실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실과 흡사했다.

안나는 팔뚝에 충격을 느끼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 앞, 다른 남자의 등이 보였다.

“죽일 셈이냐? 이 새끼야?”

“집중하다 보니까, 그랬습니다.”

숨을 고른 치용이 답한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남자가 곰 같은 남자의 어깨를 툭 밀었다.

“조심하라고. 여기서 죽는다고 정말 죽는 건 아니지만, 정신적 충격이 남는다.”

“난 괜찮아.”

안나가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며 눈을 부라렸다.

미합중국의 영웅이자, 최고의 초인.

그런 안나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다니, 치욕이다.

더구나 자신이 마음에 둔 남자 앞에서!

‘여기서는 내 여자로서 매력을.’

그러니까 안나가 생각하는 매력이란, 전투력이다.

잘 싸우는 거.

그게 안나의 가장 큰 장기이자 특기니까.

“야, 곰탱이. 다시 하자.”

“금발 또라이야, 그러다 훅 간다.”

치용이 문제인 건지.

아니면 주위에 모이는 사람이 문제인 건지.

인준과 치용만큼이나 투닥거리는 둘이다.

전투 스타일이 비슷해, 그럴지도 모른다.

“죽어도 모른다.”

치용이 으르렁거렸다.

“장례식에 기도는 올려주지.”

안나도 지지 않고 말했다.

꽝!

세주를 놔두고 둘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바로 옆, 유진이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다.

“잘돼가?”

옆으로 다가가 묻자, 미간을 좁히며 유진이 입을 연다.

땀을 흘리며, 간신히 말을 하는 걸 보니 안쓰러울 정도다.

“조금만 더요.”

‘어디 깃털 같은 거 없냐?’

-창고에 그런 거 넣은 기억 있어?

없다.

막상 손에 잡히는 물건이 없다.

잠시 고민하던 세주가 입가를 동그랗게 말고 유진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귓속으로 훅하고 바람을 불어 넣었다.

“으엇!”

유진을 알고 나서 처음으로 보는 당황하는 얼굴이다.

크게 눈을 뜨고 세주를 본 그가 물었다.

“…무슨 짓이에요?”

“도와주는 거지.”

“이게요?”

“어느 순간이든, 집중력을 유지하라니까.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절대로 신나 보이는 얼굴입니다. 형님.”

“아닌데, 착각인데.”

유진이 들리지 않게 입 모양을 만들어 중얼거렸다.

-방금 욕했네.

‘뭐라고?’

세주의 눈은 피했지만, 전방위를 감시하는 프로비던스의 눈은 피하지 못했다.

-진짜 얘기해 줘? 속상할걸?

듣지 말자.

“야, 집중하라고 말했잖아. 방해할 거라고.”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와서 유진에게 말을 걸고 귀에 바람을 불고 간지럼을 태운다.

“네네.”

유진이 다시 제자리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눈을 감았다.

그가 지금 보는 건, 가상의 전장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상처 입고 아픈 자를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 거다.

그것도 단시간에 재빠르게.

전투보다 서포트에 훨씬 충만한 재능을 갖췄다.

진심으로 그의 재능이 개화하기를 바라며 돕는데.

욕을 한다.

“하, 진짜 형의 진심을 이렇게 몰라주니.”

“네네.”

유진이 껄렁한 대답을 한다.

한 대 쥐어박고서 인준에게 향했다.

“너 변태지?”

거기에 전신이 꽁꽁 묶인 인준이 있었다.

“이 새끼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건데. 뭐가 어째?”

“6개월 내내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칭칭 묶어 놓고?”

“그게 전부 다 널 위한 일이다.”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다.”

“야, 이 새끼야! 형님의 배려를 그따위로 받아들일래!”

안나와 싸우면서 치용이 외친다.

여유가 넘치는구나.

그걸 본 안나가 더 사납게 치용을 몰아친다.

둘은 죽기 직전까지 대련이다.

그것도 최근에 시작한 거다.

그 이전 치용은 그냥 맞았다.

그리고 안나는 그냥 피했고.

그 와중에 다양한 훈련과 피나는 갈굼이 있었다.

모든 주체는 세주였다.

그가 인준을 빤히 바라본다.

“하, 진짜 내 마음 이렇게 몰라주고, 형 삐진다?”

“하지 마.”

“아니, 그러니까.”

“하지 마라. 경고다.”

인준이 눈을 사납게 부라렸다.

세주의 눈이 묶인 팔다리로 향한다.

마치 네가 어쩔래? 라고 묻는 것 같다.

“이 새끼야!”

인준이 외쳤다.

그렇다고 해서 세주의 손길을 막을 순 없다.

“야! 야!”

“거참, 시끄럽네.”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고 인준의 코앞까지 다가간다.

6개월간 반복적으로 했던 일 중 하나다.

“형님!”

애절한 외침이 들렸다.

물론 세주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묵직한 쇠공을 들고, 그의 머리 위로 올린다.

“떨어뜨리면 터진다.”

광편 수류탄을 머리 위에 올린 거다.

“미친 새끼.”

간신히 입을 열고 읊조린다.

인준은 놀라운 평형감각으로 간신히 수류탄을 안 떨어뜨렸다.

기둥에 사지에 묶인 채, 양팔과 다리에는 묵직한 주머니를 차고 있다.

거기에 머리 위, 수류탄까지.

두 번이나 이걸 터트려 본 인준이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터지는 순간,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후빈다.

“떨어뜨리면 알지?”

찡긋하고 윙크하는 세주다.

그걸 본 인준은 진심으로, 자신이 죽더라도 이 새끼 낯짝에 주먹을 꽂고 싶었다.

짝!

세주가 손뼉을 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넷 모두 단련에 열심히다.

세주는 유진을 발로 툭 차는 거로, 그를 방해하고 자신의 공간을 따로 열어 들어갔다.

훙.

순간 주변 풍경이 변한다.

다른 이들에게 준 과제만큼이나 세주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웅웅.

몸 안의 오닉스 에너지는 에너지의 진화판이다.

하지만 이 오닉스 에너지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모드다.

‘준비됐지?’

-언제든.

세주는 가진 모드 전부를 개편하기로 작심했다.

에임모드와 스나이퍼 모드를 포함, 모든 걸 전부 삭제한다.

-다 지운다?

‘지워.’

모든 모드를 지우고 주춧돌부터 새롭게 세운다.

강적을 맞이하기 위해, 세주는 최선을 다할 참이다.

그리고 자신이 한 말을 지킬 생각이었다.

한 명도 죽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건, 처음과 같았다.

스케일이 달라졌을 뿐.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모드가 전부 지워진다.

마치 지갑을 잊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이 가슴 한쪽을 채웠다.

아주 잠시만 이 허전함을 견디면 그만이었다.

이제부터 새로운 걸 잔뜩 채울 셈이었다.

‘에너지는?’

-물어 뭐해? 남아돌아.

“좋아.”

입을 열고 세주는 양손을 펼쳤다.

촤라라락!

그의 눈앞, 백도어로 연 프로비던스의 기억 장치 일부가 펼쳐진다.

푸른 홀로그램이 눈앞을 가득 채운다.

이 깜찍한 오버 테크놀로지가 가진 모든 모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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