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184. 돌아올 이유
훙
얼라이언스, 군단이다.
세주의 양옆, 에너지 덩어리가 펼쳐진다.
곧 하나하나 어설픈 인간의 형태를 만든다.
고오오오오.
전신을 노블 패스가 아닌, 에너지 저장고로 만들었음에도 순간 사라지는 에너지로 상실감이 느껴질 정도다.
“…무슨 미친 짓이냐 저건?”
맞은편 상연이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전부 에너지 덩어리입니다. 소대장님.”
상대가 수작을 부리는 걸 구경할 생각이 없는 그들이 소총을 들었다.
“작살탄.”
상연의 명령에 그들이 전부 앞쪽을 겨눈다.
견착과 동시, 방아쇠에 손을 올리는 행동에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세주 또한 주저하지 않았다.
-얼라이언스 모드 완료.
‘쏴.’
철컥!
만들어진 병사는 총 오십.
전부 손에 광탄 라이플을 들고 있다.
거기에 그들이 쏘는 탄은 전부 애비탄이다.
남는 에너지 어디다 쓰겠나.
전부 탄을 만들고 무기를 만드는 데 썼다.
“한번 해보자고?”
상연이 세주를 비웃었다.
그의 입장이라면 이해할 만도 하다.
고출력 에너지 사용자 스물하나에 9은하보다 발달한 기술.
상대가 되지 못하는 걸 아는 거다.
더구나 오면서 쏜 세주의 탄을 전부 막았다.
“얌전히 사지 잘리지 그래? 괜히 더 아프지 말고?”
“반사.”
“뭐?”
“반사라고, 새끼야.”
세주가 눈을 반개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한쪽을 가리킨다.
“저기.”
동시에 오십의 얼라이언스, 만들어진 군대가 세주가 찍은 쪽을 향해 총구를 모았다.
인간은 자아가 있어서 제각각이지만, 이건 다르다.
전부 에너지 덩어리, 완벽하게 명령을 따른다.
더구나 그 프로비던스가 조종하는 것들이다.
칼큐레이팅 모드와 에임 모드 정도 탑재했다.
“쏴.”
입을 열자, 양옆에서 빛이 쏟아진다.
두두두두두두두둥!
투박한 소음이 귀를 울린다.
“어라?”
그 표적이 된 소대원은 급히 배리어를 펼쳐 앞을 막았다.
그걸 본 세주는 고개를 돌렸다.
아까 초탄을 쏘며 배리어의 강도는 파악했다.
꽈과과과과과광!
배리어 위로 애비탄이 꽂힌다.
-정확히 38발 견디네.
곧 배리어가 깨지고.
“어어어어! 소대장님!”
그게 놈의 유언이었다.
퍼버버벅!
애비탄이 배리어를 부수고, 놈의 몸을 헤집는다.
“…이 새끼 봐라?”
상연이 그걸 보고도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다.
얕봤던 저 오십 개의 덩어리가 한 일에 놀란 거다.
더구나 죽인 놈, 관측병이다.
적을 파악하고 정보를 전하는 소대원이다.
“산개!”
그렇다 해도 싸움에 스폐셜리스트다.
상연의 말에 사방으로 소대원이 흩어졌다.
“연사.”
그걸 본 세주가 중얼거렸다.
상연은 불길한 예감이 느껴졌다.
‘이런 화력으로 연사?’
이전 전장에서 얻은 에너지는 마르지 않는 샘을 발견한 것과 같았다.
애비탄은 썩어날 만큼 많았다.
두두두두두둥!
“끄아아악!”
“소대장님!”
예상 밖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놀라서 입이 절로 벌어진다.
“야, 시바! 이건 반칙이지!”
상연이 외치자, 그 밑 어느새 세주가 바짝 쫓아와 다가와 있다.
“웃기고 있네. 니들은 처음부터 치트키 쓰고 지랄했으면서.”
레이퍼 대 인간의 싸움을 겪은 세주다.
단숨에 적의 소대원 이란 놈을 전부 죽였다.
얼라이언스의 총구가 상연을 겨눈다.
“미치네. 진짜.”
상연이 뒤로 물러났다.
그는 양손을 들고서 입을 열었다.
“거래 안 할래?”
무표정으로 세주가 물었다.
“무슨 거래?”
“너 정보 필요할 거 아냐?”
상연이 급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가 알기로 9은하는 이 인간이 평정했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은하의 존재는 모를 거다.
9은하라는 우물에서 사는 개구리다.
그가 원하는 건, 정보일 거다.
세주가 손을 드는 걸 보고 상연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8은하 군주에 대한 정보 필요하지 않아?”
다시 슬슬 말을 걸었다.
만만하게 보고 죽이러 온 놈이 생각보다 강하다.
소대가 아니라 대대급 병력을 몰고 오면 된다.
놈의 재주가 놀랍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개 인간이다.
혼자서 군대의 힘을 막을 수는 없다.
더구나 오면서 스캐닝을 돌린 그는 이곳에 이 반세주란 남자를 제외하면 위협이 될 적은 없다는 걸 알았다.
일단 살아나기만 하면 된다.
‘근데 시파, 어떻게 7급짜리가 저런 짓을 하는 거냐?’
호기심이 들었지만, 지금은 궁금증을 풀 때가 아니었다.
“어떠냐?”
상연이 웃으며 말하자, 세주가 손을 내렸다.
“어?”
그걸 본 상연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곧 빛무리가 그를 덮었다.
애비탄 오십 발이다.
상연이 가까스로 배리어를 펼치며 막았다.
그는 소대장, 이 정도로 죽을 생각은 없었다.
‘일단 튀자.’
폭음이 울리는 틈에 몸을 빼고, 타고 온 쉽으로 향하는 거다.
군화에 에너지를 있는 힘껏 불어넣었다.
비상용 장비다.
순간 발밑으로 에너지가 분출되며 몸을 위로 밀어낸다.
그 순간, 싸한 느낌이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밑으로 숙이자 검은 칼날이 보였다.
스걱.
검은 칼날이 발목 부근을 스친다.
“어?”
통증을 느낄 새도 없는 은밀한 칼질이었다.
덜렁하고 발목이 붕 뜬다.
에너지가 주입된 군화가 허공을 뱅뱅 돈다.
그제야 고통이 느껴졌다.
“읍!”
신음을 삼킨, 상연은 몸을 비틀어 검은 칼날을 피하려고 했다.
스걱! 스걱!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피하자마자다.
‘아차!’
얇아진 배리어 위로 애비탄 세례가 쏟아진다.
작은 실수였다.
꽈과광!
몸 반쪽이 찢기는 고통에 상연은 눈이 돌아갔다.
그의 어드바이저가 급히 마약과 지혈제를 투여했다.
“끄억.”
그럼에도 극렬한 고통의 잔재가 남았다.
그 뒤를 유유히 세주가 뒤따라왔다.
“아프냐?”
묻는 그의 입을 짓뭉개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힘도 능력도 없음이다.
“그러길래 왜 깝쳐.”
세주가 그의 머리통을 쥐고 말했다.
“날 죽이면, 군주께서 화내실 거다.”
상연이 중얼거렸다.
“퍽이나 그러겠다.”
정작 그 군주란 놈, 세주는 기억하지 못 하는 전생에서 수없이 봤다.
그걸 토대로 놈의 성향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밖에 모르는 변태 새끼.
그게 김보슬이란 놈이다.
부하, 그것도 하사 하나 죽인다고 잘도 쫓아오겠다.
“희망 사항 그만 읊고 가자. 고문받아야지.”
“뭐?”
“정보 토설할 때까지 죽어라고 고문받을 시간이시라고요. 군주의 똥개 새끼님.”
펑!
그와 함께 검게 물든 손이 상연의 어드바이저를 부순다.
“…이 미친 자식! 어드바이저를 부수는 건 8은하 전쟁법 위반이다!”
더할 수 없는 양아치인 상연이지만, 어드바이저는 부수지 않는다.
저건 일종의 영혼을 교류하는 파트너 같은 거다.
그걸 부수는 건, 죽음만큼이나 가혹한 짓이었다.
“아이고, 내가 몰랐네요. 시파 새캬.”
물론 세주는 그딴 걸 신경도 쓰지 않았다.
*
6개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세주의 일상은 단순했다.
오전에는 선별한 인원 훈련에 참여, 오후에는 개인 훈련.
그리고 저녁에는 치용, 인준, 유진, 실버를 데려와 훈련했다.
일주일 중 5일을 훈련에 매진했고, 이틀은 꼬박꼬박 쉬었다.
그걸 본 호필은 간도 크다며 그를 욕했지만, 세주는 당연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주 5일제는 기본이잖아.”
“목숨 걸린 일에 주 5일제가 어디 있어!”
“여기.”
그때 호필은 외계 침공보다 고혈압으로 죽는 게 먼저가 아닐까 의심했다.
그 이후로도 훈련병을 포함 자신의 휘하 모두에게 주5일 외에는 휴식을 명했다.
호필도 어쩔 수 없었다.
“야, 쉬어. 나도 몰라. 다 뒤지든지 말든지.”
처음에는 불안해하던 이들도 6개월이 지나자 대수롭지 않게 적응했다.
훈련이 끝난 주말, 세주는 뜨거운 햇살을 느끼며 밖으로 나섰다.
장만한 자가용을 타고 움직인 곳은 고급 빌라 앞이다.
주차장에 들어가기 전 차를 대자, 기다리던 사람이 얼굴을 보였다.
똑똑.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열렸어요.”
“차 문 열어주는 매너도 없어요?”
“요새 같이 평등을 외치는 시대에 그런 구시대적 매너가 필요합니까?”
“네. 전 필요해요.”
“…숙지하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마음이 따뜻하고 넓은 여자, 강슬이다.
“데이트 신청은 질리지도 않고 하네요?”
“칠전팔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그게 제 인생의 좌우명이거든요.”
“…왠지 능글맞아졌네요.”
강슬의 말에 세주가 웃으며 운전대를 꺾었다.
“어쩌다 보니, 인생 경험이 수백 년으로 늘어나서요.”
“네?”
“그냥 그렇다고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프로비던스가 그를 나무랐다.
“저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그러더니.”
“에이, 설마요. 제 생에 닥터 강처럼 마음 넓은 여자는 본 적이 없어요.”
“가슴 큰 여자가 이상형이에요?”
“네.”
“솔직해서 재수 없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피식.
강슬의 얼굴에서 결국 웃음이 떠올랐다.
둘은 한동안 말을 나누고 데이트를 즐겼다.
하루를 꽉 채운, 건전한 데이트다.
“또 싸울 거죠?”
“싸워야죠.”
인류의 영웅이라 불리는 몸이다.
자신이 이대로 도망가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
그럴 생각도 없다.
그 빌어먹을 자식이 자신의 주변 모든 사람을 죽이는 걸 구경할 만큼 머저리는 아니다.
6개월 동안 생각보다 사이가 깊어진 둘이다.
강슬은 여전히 까칠했지만, 이제는 세주가 그걸 능숙하게 받아낸다.
“궁금했어요. 왜 굳이 지금 절 이렇게 만날까요? 사실 바빠서 만날 시간도 없을 줄 알았는데.”
강슬이 중얼거렸다.
투둑투둑.
빗줄기가 하나둘 떨어졌다.
신호등 불빛이 뿌옇게 보였다.
와이퍼가 움직이며 앞 유리창을 닦았다.
“만약 모든 게 끝나면, 누가 절 보고 막 울면서 반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강슬이 세주를 빤히 본다.
“돌아올 이유가 필요하니까요.”
그 말과 함께 세주가 강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가 애에요?”
“내가 연상 맞는데.”
“늙어서 좋겠네요.”
“아니, 좋지는 않은데.”
딸깍.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오자 그녀가 차 문을 열었다.
“잘 가.”
*
집으로 돌아온 강슬은 화장을 지우고 샤워를 끝내고 누웠다.
오프 날에 누군가를 만나는 건 꽤 피곤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 남자가 자신의 애인인 것도 아니다.
6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그 시간 동안 구애를 한 것도 아니고 연애를 한 것도 아니다.
인간관계로 치자면 적당한 선 밖이다.
만나고 영화 보고 밥 먹고, 가끔 술 한 잔.
그게 전부다.
‘왜 만나는 걸까?’
잊을만하면 나타난다.
물론 이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이래 봬도 인류의 영웅이자, 유명인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인 거다.
이상하게 싫지 않다.
강슬이 가진 감정은 그게 전부다.
‘만약 만나게 된다면….’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강슬은 눈을 감았다.
전쟁 한복판에 서 있지는 않아도 그녀의 삶 또한 전쟁과 다름없다.
피로가 몰려왔다.
그대로 잠이 든 그녀는 세주에 대해 고민하는 건 나중으로 미뤘다.
*
강슬을 데려다주고 돌아온 세주는 함선으로 돌아왔다.
집이 무슨 필요랴.
그의 생활은 전부 이곳에 있는 것을.
“이제 와?”
반듯한 자세로 그를 기다린 이가 있었다.
“나 기다렸어?”
안나 휴이츠다.
형광등에 반짝이는 금발을 뒤로 질끈 묶은 채다.
땀이 흘러 끈적한 목덜미가 보였다.
-섹시하네.
‘기계 주제에 연심을 품었냐?’
-…헛소리도 그 정도면 병이야.
‘응.’
시답잖은 대화를 뒤로하고 그녀를 보자, 안나가 성큼 다가왔다.
“모든 일이 끝나면.”
“끝나면?”
“나랑 결혼하자.”
이 여자, 너무 직설적이다.
“어이어이.”
“싫어?”
무조건 직진,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6개월 동안 같이 먹고 자다시피 했으니, 안나 휴이츠란 여자의 성격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결혼이라니.
“아서.”
“왜? 다른 여자 있어?”
세주는 피식 웃었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그때 생각해보자고.”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세주 또한 감정이란 게 있었다.
프로비던스가 보여 준 영상에서 몇 번이나 자신의 곁을 지켜준 여자.
그게 강슬이었다.
이유 없는 끌림의 원인이 거기에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지금 뭘 할 생각은 없었다.
안나도 싫진 않지만.
역시나 지금 와서 뭘 하겠나.
“그럼 끝나고 말해.”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그때 얘기하자.
세주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다들 모이라고 해.”
6개월 동안 철을 두드리는 심정으로 부대원을 갈궜다.
그 성과를 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