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183. 얼라이언스
새벽 2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호필은 미간을 눌렀다.
피로가 밀려온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빌어먹을 전쟁을 끝내고 싶다.
하지만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통.
“음?”
들려오는 소리에 호필이 눈을 돌렸다.
창가 쪽이다.
통.
다시 들리는 소리다.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
부스럭.
보던 서류를 뒤로하고 창가로 다가갔다.
오늘은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였다.
그런데 무슨 소리인지.
창문의 잠금쇠를 풀고 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피곤한가?’
아무래도 눈을 붙여야 할 것 같다.
날마다 강행군이지만, 지금 받는 스트레스는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갉아먹는다.
차라리 우주로 향하는 함선에 탔을 때가 더 컨디션이 좋았다.
‘쉬자.’
굳은 어깨 근육 탓에 벽돌을 짊어진 기분이다.
그 순간, 창문 밖에서 부스스하며 무언가 형상이 그려진다.
비상시를 대비한 권총 한 정이 떠올랐다.
급히 책상으로 몸을 돌렸다.
순간, 호필은 몸을 움찔하고 멈춰야 했다.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밝은 형광등에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칼의 남자가 보였다.
“안녕하쇼.”
그는 손을 들고, 사나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누구?”
호필이 묻는 타이밍에 맞춰, 그가 탕하고 신발을 책상 위에 올린다.
상대를 살핀 호필은 그가 신은 게 군화만큼이나 두꺼운 굽이 있다고 생각했다.
허리를 간신히 덮은 짧은 야상과 두꺼운 바지를 입은 것도 보였다.
한여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다.
책상에 발을 올리고 고개를 건들거리며 흔든다.
동네 양아치 같은 남자다.
그는 태연하게 책상 서랍에 손을 댔다.
드르륵.
열리는 서랍 소리에 호필은 당황했지만, 전혀 티를 내진 않았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책상이지만, 자신이 아니면 서랍 하나도 열리지 않는 고도의 시스템이 들어있는 물건이다.
“싸구려.”
남자가 그런 호필을 보고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전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그 반세주란 놈 어디서 보나?”
서랍에서 꺼낸 만년필을 돌리며 그가 말한다.
그뿐 아니라, 레이저 탄이 가득 찬 권총도 그의 손에 들렸다.
팅그르르르.
만년필 돌리는 소리가 총성보다 더 섬뜩하게 들렸다.
“어디 있냐고?”
말 없는 호필을 그가 다그쳤다.
“왜 묻는 거요?”
호필은 자신이 당황하지 않은 거로 보였으면 했다.
‘호위가 어디 있더라?’
방 하나 건너다.
크롬팀 중 하나로 꽤 능력 있는 자다.
적어도 방금까지는 호필은 그를 인정했다.
지금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이 또라이 새끼가 눈앞에 있는 이상 저 방 건너에서 쳐 자고 있는지, 비디오 게임을 쳐 하는지 모를 호위는 무능력자다.
‘장왕, 개새끼.’
대뜸 자신에게 호위를 배정한 이를 욕한 호필은 어깨에 얹은 가상의 벽돌을 내렸다.
굳은 어깨는 중요한 순간에 언제나 장애물이다.
“이유나 압시다.”
틱.
그의 손가락 위에 돌던 만년필이 멈췄다.
“죽을래?”
반세주급의 미친 새끼구나.
호필의 표정은 그대로다.
“좋아. 깡다구 좋아. 죽고 싶다 이거지?”
“날 죽여서 남는 게 뭐요?”
“기분이 풀려. 지금 이 더러운 기분이 풀려.”
“그것 말고, 날 죽이지 않으면 남는 건 또 뭘지 생각해봤소?”
“…너 입만 산 새끼지?”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듣던 얘기다.
“반세주를 찾았으니, 그를 눈앞에 데려다주지.”
호필은 속으로 긴장을 풀기 위해 숨을 몰아쉬었다.
죽음 앞에서 태연한 사람은 어디에 있는 건지.
‘그런 새끼들은 전부 소설 속에만 있는 거지.’
“정확히 80시간 뒤.”
번쩍.
빛이 눈 앞을 가린다 싶은 순간이다.
쩍.
가슴이 짜릿했다.
“음.”
짧은 신음을 흘리자, 양아치가 호필의 어깨를 잡는다.
“지금은 안 죽는다. 정확히 80시간 뒤. 가슴에 내가 박은 지뢰가 터진다. 네 살과 뼈가 피가 네 주변 모두를 죽일 것이니, 못 찾으면 혼자서 바다에라도 뛰어들라고.”
딸깍.
그 타이밍에 호위 방문이 열린다.
‘시파 새끼.’
빨리도 나온다.
아니, 차라리 나오질 말지.
흠칫.
나온 호위는 장왕이 추천할 만했다.
손을 앞으로 뻗고, 사이킥 에너지를 뿜는다.
염동력이 뿜어져 양아치를 휘감는다.
쩡.
들리지는 않지만, 공중에서 뭔가 흩어지는 건 느껴졌다.
동시에 다시금 빛이 번쩍였고.
“끄아악!”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렸다.
그 소리에 호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굳게 유지하던 포커페이스가 무너질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았다.
“약속은 지키지.”
“그래야 할 거야.”
비명의 근원지에서 들리는 목소리다.
호필은 태연하게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호위였던 이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몸뚱이는 뒤로 넘어졌다.
언제 움직였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죽였다.
“안 지키면 재미없을 거다.”
훅.
그대로 바람처럼 사라진다.
아니, 그의 목소리만이 그가 떠난 자리에 남았다.
“난 8사단 특수작전부대. 장상연이다.”
그 새끼한테 전해.
라는 말이 뒤늦게 속삭이듯 들렸다.
“후아.”
호필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시신 한 구가 보인다.
“차라리 잠이나 쳐 자지.”
그는 조용히 시신을 수습했고, 전화를 돌렸다.
오늘도 자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신을 보는 건, 익숙해질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다.
그것도 자기가 아는 이의 시신을 보는 건, 언제나 괴로운 일이었고.
*
호필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짧고 명료하게 말했다.
“남은 시간은?”
“8시간.”
세주가 묻고, 호필은 담담하게 답했다.
‘해제해.’
프로비던스가 렌즈에서 빛을 뿜어 호필의 심장을 훑었다.
-무리야.
‘해.’
-불가능해.
‘방법이라도 찾아.’
“죽은 이는?”
“크롬팀의 김경태 중위.”
짜증이 치솟는다.
장상연, 8사단 직할대.
암습이나, 습격, 기습을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너무 허무하게 당했다.
그게 짜증이 났다.
“어디에 있데?”
“그게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였다. 안 알려주고 갔어.”
‘찾아.’
-이미 찾고 있어.
적이 뿜는 에너지 주파수는 아군과 다르다.
적어도 반세주를 비롯한 초인 급의 에너지 출력은 흔하지 않다.
그리고 과도한 에너지를 머금고, 얼마 전 에너지 플랜트를 개조한 프로비던스에게 지구 전체에서 특별한 누군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맵.
프로비던스의 말에 작은 네모 칸에 빛이 보인다.
“오냐, 가주마.”
웃음을 잃은 세주가 자리를 박찼다.
“비틀 쉽 가져와!”
“선별은 어떻게 합니까?”
장왕이 묻는다.
지금 세주가 하는 짓의 의미를 대충 아는 그다.
“준비는 함선에 해뒀다. 전부 거기로 때려 넣어.”
“넵!”
기합이 든 대답을 뒤로하고, 세주가 땅을 박찼다.
머리 위로 뜬 비틀 쉽을 향해서다.
[대장!]
언제나 그를 반기는 팽이다.
“북서쪽, 전속항진.”
콰우우우!
빛을 뿜으며, 비틀 쉽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에? 어디 가신데?”
위를 흘깃 본 유진이 혼잣말을 뱉는다.
그 바로 맞은 편, 수줍은 얼굴의 여자가 묻는다.
“저 합격이죠.”
“네. 합격입니다.”
유진이 빙그레 웃었다.
여자한테는 언제나 친절하게.
삶의 모토다.
*
상연은 짧은 칼 두 자루를 꺼내 손에서 돌렸다.
“오긴 오는 겁니까?”
“안 오면 말고, 그다음에는 그 새끼 가족이나 연인을 찾아가서 비슷한 짓을 하면 돼.”
그 옆에서 말을 건네는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연을 잘 아는 편이다.
특수작전부대, 8사단 직할대 중 하나다.
능력도 우수하고, 작전 수행능력도 없다.
단점은 딱 하나다.
성격이 다 지랄 맞은 이들이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장상연 하사는 상대하기 싫은 타입 중 하나다.
적을 도발하고 함정을 파는 걸 즐긴다.
더구나 군주의 명에도 아랑곳없이, 마음대로 제멋대로 일을 벌인다.
“걸리면 죽을 겁니다.”
“안 죽어.”
떠나기 전, 정보를 전해 준 부사관이 말했지만, 상연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건들지 말란 말이 없었잖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건드리라고도 안 했다.
장상연은 그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9은하는 선택받지 못한 쓰레기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 곳의 인간 하나를 자신들의 군주가 관심을 둔다.
‘지랄이지.’
그 사실을 안 순간, 상연은 결정했다.
죽인다.
깔끔하게 여기에 있는 놈들을 싹 쓸어 버린다.
그리고 말하는 거다.
군주가 관심을 주는 쓰레기보다 자신이 더 우수하다고.
‘잘 되면 다음 세대 육체를 받을 수도 있고.’
여러모로 수지맞는 장사다.
고작 9은하 인간 하나 잡는 것 치고는.
거기에 혼자 온 것도 아니다.
단체 훈련을 핑계로 자신의 소대를 데려왔다.
그는 특수작전부대의 1개 소대를 책임지는 몸이기도 했다.
“이거 진짜 해도 되는 겁니까?”
“쫄지말고, 딱 붙어 있어. 새끼야. 형이 언제 빈말하디? 내 밑에 있으면 전부 호강시켜준다고 했다.”
다른 소대원이 말하자, 상연이 눈을 부릅떴다.
한마디만 더 하면 욕지거리라도 날릴 기세에 소대원이 금세 고개를 수그렸다.
“근데 이 새끼는 언제 오는 거야.”
80시간을 줬고, 이제 겨우 8시간 남았다.
아직 코빼기도 안 보인다.
“은폐하고 있어라. 그 새끼 올 때까지는.”
“그냥 보자마자 끝내면 되지, 왜 그럽니까?”
자신이 자유분방하다 보니, 소대원들도 비슷한 놈들만 모여있다.
애초에 꼴통 소대라는 별명의 놈들이다.
그러니 이런 미친 짓도 같이 하는 거겠지만.
“새끼야, 나 혼자만 있는 거 보고 얼씨구나 하고 덤비다가 뒤에서 소대원이 팍 튀어나오면 그 순간 그 새끼 얼마나 당황하겠냐? 그 장면을 봐야 할 거 아냐.”
“네네.”
“그만 까불고 닥치고 있지?”
“넵!”
“소대장님. 레이더에 고출력 생명체 탐지. 오, 7급 이상입니다.”
“7급?”
꽤 높다.
1~9급까지.
그들이 에너지 보유량을 필두로 나누는 단위다.
참고로 장상연이 7급, 소대원 대부분이 9급이다.
하지만 9급이라고 해도 이들은 군인.
전투에 관한 전문가들이다.
콴의 제너럴 급을 압도하진 못해도 죽일 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아니, 둘이 모이면 그냥 씹어 먹을 수도 있다.
그런 소대원이 스물.
거기에 장상연까지 스물하나.
7급 쓰레기 인간 하나 잡는 것 치고는 과하다.
콰우우우.
날아오는 비틀 쉽이 육안으로 보였다.
상연은 팔짱을 낀 채, 어디서 주어온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았다.
“이 새끼야!”
그리고 대뜸 멈춘 비틀 쉽을 향해 외쳤다.
“굼벵이를 삶아 처먹었냐? 늦게도 오네.”
비틀 쉽 위, 누군가의 머리가 삐죽 올라온다.
동시에 둥!
광선포 한 발이 날아왔다.
“장난치나.”
상연은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텅!
광선포는 그의 눈앞에서 튕겨 소멸했다.
허공에 흩어지는 빛의 입자가 둥근 막을 따라 흘렀다.
“장난까지 말고 내려와.”
그러자 이번에는 꽝 하는 굉음이 터진다.
이번에는 두 손을 앞에 모았다.
순간적으로 사이킥 에너지를 모아 염동력 방패를 펼치고, 그 위로 배리어를 씌운다.
쩌저정!
“야!”
화가 난 상연이 외쳤다.
그제야 비틀 쉽 밑으로 한 명의 인영이 훌쩍 떨어졌다.
물을 것도 없이 반세주다.
“너냐? 변태 주인의 똥개 새끼가?”
“…이 미친 새끼 보소. 패기가 아주 지려 버리네.”
상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방금 한 방은 꽤 강렬했다.
그럴 것도, 애비탄이었다.
압축된 에너지 탄을 맞은 거다.
함선을 관통하는 탄이기도 했다.
“심장에 심은 그 개 같은 지뢰 어떻게 없애니?”
“내가 알려 줄 것 같아?”
“알려줄걸.”
“나만 미친놈인 줄 알았더니, 여기 더한 놈이 있네.”
상연이 중얼거리며 뒤를 향해 손짓했다.
숨어있던 소대원이다.
“개들이 무리를 지었네.”
분분히 올라온 이들을 향한 세주의 평가다.
“소대장님. 저 미친놈이 목표 맞습니까?”
“맞아.”
저 정도 고출력 에너지를 뿜는 놈이 어디에 또 있을까.
홀로그램으로 얼굴을 살핀 상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소대장.
그 단어를 들은 세주는 그 순간 결정했다.
양아치 두목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형이다.
두두두둥!
애비탄 연사를 쏜다.
퍼버버벙!
꽈과과과광!
배리어와 부딪친 탄이 폭발하며 굉음을 일으켰다.
콰아아.
농지 위에 자리 잡은 채였는데, 땅이 파이고 고약한 냄새의 퇴비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장난치냐?”
폭음 사이로 들리는 목소리다.
-전부 가르간 급으로 봐야 해. 아니, 전투 능력은 그 이상으로 보여.
프로비던스가 부리나케 적을 파악한다.
애비탄 연발이면 함선도 씹어 먹는다.
그런데 적들은 태연하게 그 모든 걸 막았다.
“얌전히 죽여줄라 했는데, 마음이 변했다. 사지를 잘라서 개처럼 끌고 다녀주마.”
양아치 두목이 말했다.
“지랄하네.”
세주는 읊조리고, 손을 풀었다.
저 자식이 믿는 게 자신 뒤에 선 저 새끼들이라면.
아주 심한 착각을 했다는 걸 보여줄 차례다.
‘모드 열어.’
-오케이.
우주에서 전투 후, 남는 막대한 에너지는 다 쓸 수도 없었다.
어떤 상황이든 대비하기 위해, 프로비던스는 하나의 모드를 열었다.
-모드 온, 얼라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