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80화 (180/206)

# 180

180. 팽

“오케이, 알겠다.”

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잠깐만!”

겁에 질린, 세주가 급히 외쳤다.

“실수야!”

보슬은 피식 웃고는 그를 바라봤다.

“난, 겁쟁이고 싸울 줄도 몰라!”

딱 거기까지 본, 현재의 세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게 진짜 나라고?”

-응. 정확히 말하면 형의 전생이지.

“진짜 거짓말 안 치고? 이거 리얼이냐?”

충격이다.

저런 찌질한 놈이 자신의 전생이라니!

-아, 맞다고 좀 닥치고 지켜볼래.

이 새끼, 형한테 말하는 것 보소.

하여간, 지금은 다른 데 의식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다시 의식을 집중하자, 둘의 대화가 들렸다.

“맞다. 넌 인류 최후의 영웅이 고른 후계다.”

“아니라니까!”

겁에 질린 놈이 악다구니를 쓴다.

“그럼 그냥 죽여줄까?”

“빌어먹을, 말 들어!”

보슬의 말에 바로 옆에 있던 여자가 전생의 세주를 붙들었다.

“제발!”

그녀의 눈에 비추는 감정은 뭐라고 해야 할까?

안타까움? 슬픔? 안도?

전혀 모르겠다.

다만, 저 얼굴은 알았다.

강슬이다.

“선택하게 해주랴? 후계를 포기하고 얌전히 멸망 당할 테냐? 아니면 저 무저갱의 암흑으로 떨어져 볼 테냐?”

“질문, 질문해도 됩니까?”

정신을 차린 전생의 세주가 묻는다.

“해라.”

보슬은 어느새 웃음을 잃은 채다.

그도 의문이었다.

왜 하필이면, 저런 새끼인지.

치용은 보기 드문 인간이었다.

잘 싸웠고, 강했다.

전체 9은하를 통해, 가장 강력한 인간 중 하나였다.

물론, 자신들의 부대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 이가 선택한 이다.

믿어주고 싶지만, 이모저모 뜯어봐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저기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시 덜덜 떨며 묻는다.

뭘까, 이 새끼는.

보슬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해주기로 한 일이다.

“뫼비우스의 띠다. 영원히 한 시점을 떠돌게 만든다.”

“그 시점이라는 게….”

말끝을 흐리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태어나서부터 멸망하기 직전, 바로 지금까지다.”

“그럼 저기로 들어가면 전 영원히 환생을 한다?”

“아니, 환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저 구멍에 들어가면 넌 매번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거다.”

보슬은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모든 걸 알려줄 참이었다.

“때로는 자살을, 때로는 숨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

“기억은 이어지는 겁니까?”

“모른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일이다.

어차피 지금 말하는 건, 전부 추론이다.

신경질 난다.

저런 겁쟁이는.

“들어갈 거냐! 말거냐!”

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지막에 죽은 인간의 안목은 쓰레기다.

“저기 들어가면, 다시 그 군주님을 볼 수 있습니까?”

보슬은 더 답해주기 싫었다.

상대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타입이다.

“보고 싶다면.”

동시에 구멍에서 흡입력이 일어났다.

전생의 세주의 몸이 빨려드는 게 느껴진다.

드드드드드.

사방 모든 것이 무너지고, 흩어진다.

“마지막! 하나만 더! 9은하가 흡수되면 나머지 은하는요!”

죽은 인류의 영웅에 대한 예우이자, 아량이다.

“모든 은하는 다른 시간 축에 있다.”

그 말을 끝으로 세주의 몸이 서서히 빨려 들어간다.

그는 마지막 순간, 안간힘을 써서 버텼다.

왜 저렇게 버티는 걸까?

보슬이 의문을 갖고 그를 바라보자.

떨리는 몸으로 그가 힘겹게 오른손으로 왼 팔뚝을 잡는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격하다.

동시에 왼 주먹을 내밀고 흔든다.

“이거나 처먹어라. 재수 없는 새끼.”

훙!

동시에 그의 몸이 빨려 들어간다.

그뿐만 아니다.

9은하가 통째로 뫼비우스의 띠라 이름 붙인, 블랙홀에 빠졌다.

보슬은 뒤로 물러났다.

저 보물이자, 괴물은 아귀와 같다.

놔두면 몽땅 먹어 치운다.

급히 자신의 은하로 돌아온다.

턱.

다시 땅을 밟은 그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무미한 웃음 뒤, 보슬은 진심으로 기쁨을 느꼈다.

인류 최후의 영웅은 올바른 사람을 선택했다.

또라이 중에서도 상 또라이다.

*

“이거 진짜야?”

아마추어 같은 질문을 했다.

프로비던스가 할 일이 없다고, 이런 영상을 제작 배포할 일은 없었다.

-내가 영화감독이야? 이런 걸 만들게?

역시나다.

기억은 없다.

저게 진짜라면 기억은 이어지지 않지만, 자신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는 소리다.

“그럼 이게 2번째 삶이라는….”

-땡. 틀렸습니다.

“…응?”

-정확히 말하자면 1280번째지.

“…염병.”

무슨 헛소리인가 싶을 때다.

프로비던스가 재차 영상을 재생한다.

그 안에서 세주는 다시 자신을 봤다.

도망자다.

“살려주십쇼!”

처참하다.

목숨을 구걸하는 자신을 보는 건 퍽 즐겁진 않다.

그것도 고작 레이퍼 무리에게서다.

“쟤 왜 저러는데?”

황당해 묻자.

-저 때는 노력을 안 했어. 그냥저냥 살다가 죽었지.

그리고 세 번째.

이번에는 그럭저럭 노력했다.

적당히 잘 싸웠고, 인류 구원을 위해서 버텼다.

나쁘지 않은 삶이다.

그리고 2차 침공 때, 형태변환자에게 심장을 찔려 죽었다.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 심장을 찌른 형태변환자다.

전생의 세주는 건조한 눈으로 죽음을 맞았다.

네 번째는 다시 도주다.

다섯 번째도, 그렇게 수십 번.

도망가고 싸운다.

그러다 한순간, 들었다.

죽기 직전, 전생의 그가 외치는 소리를.

“김보슬 이 시파 새캬!”

원망이 덕지덕지 붙은, 처절한 목소리다.

밤중에 산속에서 들으면 귀곡성이라고 해도 믿겠다.

도저히 자신이라고 믿을 수 없는 모습의 종말이었다.

그 이후는 삶이라고 할 수 없었다.

언제나 목숨을 걸었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 번의 삶 끝이다.

“이 뫼비우스의 띠, 한 번 더 가면 어떻게 될까? 아니 나 말고 다른 이가 날 기억할 수 있을까?”

작은 의문이다.

아주 잠시 그는 의욕을 찾았다.

모든 걸 포기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일종의 실험이다.

의욕을 찾았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개미 눈물만큼이다.

세주는 이미 모든 걸 포기했다.

그는 수 없는 삶을 경험했고, 기억은 이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변하는 건 없었다.

그는 언제나 죽었다.

레이퍼에게 죽고.

브레인 레이퍼에게도 죽었다.

죽고, 또 죽었다.

그 삶의 반복이다.

죽음은 지겨웠으며, 결국 권태를 가져왔다.

그 와중에 든 작은 의문.

세주는 외계 인류 중 하나를 우연한 기회에 뫼비우스의 띠에 던졌다.

모든 전투를 포기하고,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살려 1은하로 잠입한 결과다.

[여기에 빠지면 됩니까? 대장?]

자신을 믿는 그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대고, 세주는 연기했다.

그녀를 사랑한다는 듯.

그녀를 위한다는 듯.

“가. 팽.”

그녀는 그대로 그 안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먼지처럼 흩어졌다.

“어떻게 된 거지?”

중얼거리는 그의 뒤로, 김 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뭘 기대한 거냐?”

지이잉.

지켜보던 세주는 의식을 집중한 나머지, 그 안에 있던 또 다른 세주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걸 느꼈다.

기대라.

이 지겨운 삶을 끝내기를 기대했다.

영원한 죽음을 바랐다.

끝내줘.

이 삶을.

이 지긋지긋한 것을 끝내길 바란다.

이미 몇 번이나 시도했던 일이다.

하지만 끝이 없었다.

스스로 뫼비우스의 띠에 몸을 던져도 항상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날 기억하는 이가 단 한 명만 있길 바란다.

뫼비우스의 띠라… 이름도 잘 지었다.

이 마라톤은 끝이 없다.

영원히 같은 시간을 반복한다.

지겹다.

너무 지겹다.

지겹고, 또 지겹다.

그렇다면 최소한 날 기억하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지겨운 것보다, 외롭다.

그런 바람이 가득했다.

-의식을 빼.

프로비던스의 경고가 들렸다.

-너무 몰입하진 마.

번뜩하고 정신을 차리고 돌아왔다.

“기억을 하는구나.”

현대의 세주가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 피골이 상접한 이가 보였다.

수많은 반복된 삶에 지친 폐인이 그곳에 있었다.

“어떻게?”

세주가 의문을 표했다.

-끝까지 보면 알아.

어쩐지 프로비던스의 목소리가 차가운 금속 같았다.

산의 얼굴이 다시 보인다.

그는 냉정한 눈으로 차분하게 손을 들었다.

“죽여줄까?”

전생의 세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퓽.

작은 소음과 함께, 다시 암전이다.

몇 번이나 겪은 죽음이다.

하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지독하게, 속내를 전부 보였다.

처참하게 부서진 장난감을 보는 것 같다.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는 조각 난 종잇조각 같다.

이번에는 의식을 집중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마음이 흘러들어온다.

기억이 아니다.

다시 태어난 세주의 마음에는 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애초에 무리였어.’

‘개자식, 왜 나를 데려와서.’

‘개자식, 개자식, 개자식!’

자신을 선택한 놈을 수없이 욕했다.

세주는 그의 유지를 이을 자격이 없었다.

곰 같은 덩치, 그 머저리 같은 영웅.

모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결국 잘못된 선택을 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지만, 자신은 알았다.

“형! 형!”

또다.

아주 어릴 때는 기억이 없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떠오른다.

이번에는 열한 살, 싱그러운 봄이다.

따뜻한 공기가 볼을 스치는 그런 날이었다.

“형! 형!”

동생인가?

지겹다.

전생의 세주는 그를 도로로 밀었다.

툭.

작은 손짓에도 아이가 뒤로 밀려 나간다.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작지만 맑은 눈이 보인다.

끼이이익!

그 앞, 차량이 요동치며 멈췄다.

“아우!”

아이 앞에서 가까스로 멈춘 차다.

운전자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렸다.

“야! 미쳤어?”

아무리 아이라도 인생 조질 뻔한 운전자는 거침없이 말했다.

전생의 세주는 그걸 마른 눈으로 지켜봤다.

동생은 무릎을 탁탁 털고 일어났다.

의연하다.

아니, 저 나이에 저럴 수 있나?

“죄송해요. 넘어졌어요.”

“아우씨, 너 엄마 어디 있냐?”

막 마흔이나 된 것 같은 남자다.

싸구려 승용차의 범퍼가 낡고 긁힌 게 보였다.

“아우, 얘!”

놀란 어머니가 멀리서 뛰어온다.

얼추, 상황이 수습되고.

어머니가 동생에게 묻는다.

“어쩌다 그랬어!”

“실수.”

그제야 동생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게 보였다.

전생의 세주는 그조차 마른 눈으로 봤다.

어머니조차 그런 세주를 멀리했다.

“괜찮아?”

동생이 전생의 세주에게 다가와서 묻는 게 들렸다.

현재의 세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망가진 폐인의 삶이다.

“형!”

외면하고 돌아서는 전생의 세주를 보고 동생이 외쳤다.

프로비던스는 재생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가 홀로그램으로 만든 소년의 모습이 노이즈를 만들며 형상이 흐릿해졌다.

“괜찮냐?”

그걸 보고 묻자, 프로비던스가 냉담히 답했다.

-지금 내 걱정할 때야?

걱정은 무슨.

흔들리는 노이즈를 무시하고 다시 밑을 봤다.

전생의 세주가 목을 매다는 모습이다.

에라이.

아무리 그래도 자신과 똑 닮은 얼굴이 혀 내밀고, 구멍이랑 구멍이 다 열리고 죽는 걸 보는 건 그리 보기 좋지 않다.

그 이후 자살이 잦아졌다.

하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대장!”

몇 번째 삶인지, 자살이 아니라 삶을 택한 세주다.

이유는 모른다.

그곳에서 세주는 희열을 느꼈다.

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뫼비우스의 띠에 던졌던 여자다.

팽.

외계 인류.

우연이었다.

우주로 나와 콴과 싸우던 중, 팽은 갑자기 나타났고.

세주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고 더없이 반가워했다.

물론 세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희망도 잠시, 절망이 곧 그를 덮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는 세주가 대장이란 것과.

그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사람이라는 것만 기억했다.

그녀는 그에게 의지했다.

세주에게 필요한 건, 시간을 함께 보내고 기억을 나눌 친구이자 연인이지.

자신에게 의지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것도 반쪽짜리 기억의 외계 인류라니.

더구나.

[대장은 할 수 있어]

무조건적으로 믿는 그녀의 말은 상처를 송곳으로 후비는 것 같았다.

세주는 차마 그녀를 죽일 수 없었다.

할 수 있다라.

그건 그가 연기하고 만든 모습이다.

팽이 그를 철저하게 믿도록 만든 개수작이다.

괴로웠다.

세주는 또 삶이 끝나길 바랐다.

“지겹다.”

막 죽기 직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다.

아니, 잊을 수 없는 목소리다.

김보슬.

그 새끼다.

하지만 이미 반항할 기운도 없다.

세주는 가까스로 가운뎃손가락만 들어줬다.

무슨 짓을 해도 저 새끼한테는 지기 싫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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