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79화 (179/206)

# 179

179. 뫼비우스의 띠

한 명도 죽이지 않겠다.

“무슨 짓이냐?”

호필이 세주를 노려봤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양손을 뻗어 그의 멱살을 쥐려 했다.

그러자 탁하고 누군가 옆에서 손을 쳐 낸다.

“다칩니다.”

치용이다.

옆에서 눈을 부라리는 곰 같은 남자다.

아니, 이런 상황이면 멱살 정도는 잡혀줘도 되는 거 아닌가?

호필은 자기도 모르게 흥분이 가라앉아 그런 생각을 했다.

“뭐.”

그 앞, 다시 자신을 차분하지 못하게 만드는 남자가 입을 연다.

“야!”

호필이 외쳤다.

애초에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런 말을 왜 한단 말인가?

세주는 심드렁하게 신문을 읽었다.

“역시 방송은 편집, 신문은 글빨이야.”

그가 중얼거렸다.

호필은 두통이 밀려왔다.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나 짓고 싶었다.

침공 당하든 말든, 나중에 광선포에 맞아 죽든 말든!

“반세주.”

호필이 낮게 으르렁거리자, 세주가 신문을 치우고 그를 바라본다.

“자꾸 왜 부르냐.”

“무슨 짓이냐.”

똑같은 질문이다.

벌써 수차례 했던 질문이고.

“말한 그대로.”

세주가 차갑게 말했다.

호필은 그의 진지한 모습에 순간 그에게 무슨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놈은 미친놈이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영웅이기도 했다.

무슨 수가 있을 거다.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자, 난 준비 됐으니까 이제 말해 봐.” .

착각한 호필이 입을 열었다.

세주가 눈을 끔벅거렸다.

무슨 말을 하라는 건지.

“뭘?”

“한 명도 죽이지 않겠다면서.”

“그랬지.”

“그 방법을 말해보라고.”

“…열심히?”

빠직.

호필은 인내심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걱정하지 마라. 진짜 한 명도 죽이지 않을 거다.”

세주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더 말할 건 없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다.

“후.”

호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세주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치용이 따랐다.

“좀 쉬자.”

세주가 입을 열었다.

그는 생각이 많았다.

그렇게 말하고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우주를 다녀온 뒤, 소독과 갖가지 절차가 기다렸다.

세주는 모두 프리패스였다.

누가 감히 그를 막을까.

그는 간단한 소독 분무만 받았다.

쏴아아아.

흰색의 안개가 전신에 뿌려진다.

-단순한 소독 액체, 인체에 무해.

버릇처럼 프로비던스가 말한다.

‘알아.’

그리고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아들!”

일부러 몽골까지 부르지도 않았다.

전용 비틀 쉽 한 대를 타고 냅다 온 길이다.

“밥이요.”

세주는 오자마자, 입을 열었다.

오드꾸와도 좋고, 에너지 축적을 위한 에너지 바도 좋다.

하지만 뼛속까지 한국인인 세주에게 집에서 끓여주는 된장찌개만 한 것은 없다.

“안 그래도 차려 놨다.”

어머니가 세주의 손을 잡았다.

“네.”

삼십 대 중반이 넘었고, 범지구적 영웅이라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아직 애다.

그게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거다.

어머니의 손에 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부터인지, 집안 형편이 확 펴서 넓은 거실이 보였다.

둥글게 마감된 아일랜드 식탁 위 음식이 한가득하다.

보쌈에, 된장찌개, 겉절이 김치, 간장게장, 양념게장.

어머니가 정말 오랜만에 솜씨를 제대로 발휘했다.

“와우.”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뱉자, 어머니가 웃는다.

“먹자.”

아버지도 나쁘지 않은 얼굴로 아들을 맞았다.

도란도란 앉아서 숟가락을 들었다.

우적우적, 아그작!

-잘도 먹네.

‘맛있어. 너도 나중에 인간으로 환생하면 꼭 먹어봐라.’

-흥.

프로비던스의 질투를 한 귀로 흘리며 단숨에 식사를 끝냈다.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

매일 청소했는지, 방 안은 깔끔했다.

부모님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셨지만, 말해 줄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기밀의 문제가 아니라, 듣고 마음 불편해할 그들을 볼 자신이 없다.

눈을 감고, 세주는 테크룸에 들어갔다.

기술의 회랑이다.

넓게 펼쳐진 복도는 그사이 다시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졌다.

부웅.

등 뒤로 푹신한 소파가 날아온다.

뒤로 눕자, 그대로 몸이 파묻혔다.

-왔어?

프로비던스가 작은 소년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

“그래.”

작은 소년의 모습.

“왜 꼭 그 모습이냐?”

대뜸 물었다.

-뭐가?

이제까지 의문을 갖지 않았다.

아니, 가질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세주는 오랫동안 가슴에 묻은 일을 꺼냈다.

“왜 죽은 내 동생이 자란 것 같은 얼굴이냐고 묻는 거다.”

소년으로 변한 프로비던스가 멀뚱히 본다.

왜냐.

넌 왜 동생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고, 날 돕는 거냐.

-나도 몰라.

고개를 흔드는 소년의 얼굴이 보인다.

세주는 눈을 부릅떴다.

오늘은 기필코 묻고 답을 들어야겠다.

적이 어드바이저라 부르는 존재다.

가르간이 살아 돌아온 것도.

적이 한국말을 쓰는 것도.

다 수용 가능한 범위 내의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프로비던스의 존재는?

이제까지 의심 없이 믿었다.

그런데 적의 어깨에도 이들과 똑같은 이들이 떠다닌다.

세주는 그들과 프로비던스가 같지 않음을 알았다.

그렇다고 모든 의문을 접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네가 온 곳은 어디냐?”

프로비던스, 약자 하나씩 따서 만든 오버 테크놀로지의 결정체.

그의 이름에 그를 만든 이들의 이름이 있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

세주는 느꼈고, 인지했다.

프로비던스는 자신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자신과 관련이 없을 수 있었다.

-알고 싶은 게 뭔데?

홀로그램 형상의 소년이 우뚝 섰다.

지지직.

등 뒤, 작은 파장이 흘러 노이즈를 만든다.

노이즈는 흔들리는 프로비던스의 마음을 나타내는 걸까?

이제까지와는 다른 진지한 둘이다.

세주는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소년의 눈을 바라봤다.

“말해. 네가 아는 모든 걸.”

이제는 알고 싶다.

아니, 알아야 했다.

-인간은 가끔 잊고 싶은 기억을 꺼내길 원한다지? 모든 걸 안 인간은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무슨 개소리야?”

-아침 드라마 한 번도 안 봤어? 사랑하던 여자가 남매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의 비극을 직접 겪고 싶은 거야?

세주는 빙그레 웃었다.

“야 이, 미친 기계 새끼야. 닥치고 아는 거 다 불어.”

이 상황에서도 농담 따먹기 할 소냐.

지이이잉.

홀로그램 소년이 사라진다.

그 앞, 처음 봤을 때부터 변치 않더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기계가 보였다.

렌즈의 빛이 번쩍였다.

세주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마스터의 요청에 의거, 모든 LOCK을 해제합니다. 동의합니까?

“물론.”

-후회하지 않길 바랍니다.

“안 해.”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

세주는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눈을 빛냈다.

파앙.

작은 소음이 귓가에 울렸다.

동시에 주변 풍광이 변한다.

꽈과과광!

폭음이 터졌다.

“음.”

작은 신음을 흘렸다.

순간 머리가 저릴 정도의 굉음이다.

옆을 보니, 부서지고 흩어지는 함선이 보인다.

눈에 익은 모습이다.

수없이 타기도 했으며, 격추했던 형태의 스탠다드 형태의 함선이다.

그 앞, 끔찍한 전장의 한복판이 보였다.

“으아아아아!”

작은 병사 하나가 절규하는 게 보였다.

-어차피 LOCK을 해제하지 않고서는 그놈을 이길 수 없을 거야.

읊조리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그럴 수밖에.

세주의 눈에 치용이 보였다.

양손에 커다란 칼을 휘두르며 전장을 호령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그는 치용이었지만 치용이 아니었다.

겉모습과 생긴 건 흡사했지만, 닮은 다른 사람이다.

-최초의 교전. 형의 첫 생애.

전장의 한복판, 치용은 부르짖었다.

“으아아아아아!”

절규다.

듣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외침 그 후다.

치용이 앞으로 내달린다.

카가가각!

그 앞을 막은 건, 한 기의 안드로이드다.

[인간, 말살한다]

딱딱한 외계 언어와 함께다.

둘은 검은 공간을 배경으로 싸우고, 또 싸웠다.

피가 터지고, 팔이 날아간다.

치용은 졌다.

아니, 인류가 진 거다.

지금 보여주는 건 뭘까?

그런 의문이 들기 무섭게 세주는 눈을 크게 떴다.

한쪽에 서서 벌벌 떠는 사람이 보인다.

-잘 찾았네.

의식을 집중하자, 그의 모습이 확대 되서 보인다.

자신이다.

그의 모습이 투영된 다른 인간이 그곳에 있었다.

겁에 질려 벌벌 떤다.

딱딱딱딱!

겁에 질려 턱을 떨며 치아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들 지경이다.

‘이거 구라지?’

-끝까지 봐.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런 상태로 전장까지는 어떻게 온 거냐고.

팔과 다리 하나만 남은 치용은 품에서 주사기를 꺼내 몸통에 꽂았다.

쭈우욱!

기묘한 액체가 몸에 빨려 들어간다.

“하아아아.”

숨을 뱉자, 푸른 연기가 스며 나온다.

“어이어이, 그 정도로 인류가 지킬 가치가 있는 거야?”

그 앞, 또 아는 얼굴이다.

이름이 깜찍한 놈.

8은하의 군주라던 개자식이다.

김보슬.

“미친 자식.”

반쯤 풀린 눈으로 치용이 말한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너 그 약물 쓰면 살아남아도 반병신이야.”

“네 앞가림이나 해라, 이 변태 새끼야.”

“걱정을 해줘도 저러네.”

보슬이 웃으며 뒤로 물러나자 안드로이드가 다시 앞으로 붙는다.

치용이 투여한 약이 뭔지는 몰라도, 그의 전신에서 에너지가 다시 뿜어져 나왔다.

드드드드드.

주변에 떠다니던 잔해가 밀려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이 느껴질 정도다.

그냥 보는 것뿐인데도,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꽈광!

다시 안드로이드와 맞붙는다.

적은 무서웠다.

냉정했고, 에너지 출력 자체도 이전에 싸웠던 골드라는 안드로이드보다 훌륭했다.

더구나 전투의 방식은 실버보다 유연하고 능숙하다.

‘졌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그런데도 그는 마지막 힘을 비틀어 짜냈다.

가까스로 적의 머리를 쳐낸다.

남은 다리를 희생해서 만든 결과였다.

몸통과 팔 하나만 남은 치용의 모습은 끔찍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보기만 해도 토악질을 해댈 것이다.

아까 꽂은 약물의 효과 중 하나인지, 피를 뿌리지는 않았다.

그저 끊어질 듯 한 숨소리만이 들렸다.

치용이 다시 앞을 본다.

“대단한데.”

김보슬이 감탄하며 손뼉을 친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방금 부순 것과 같은 안드로이드 다섯이 더 나온다.

“네가 부순 게, 음. 그러니까 일병쯤 되나.”

보슬이 중얼거렸다.

“맞네. 우리 부대 일병급의 전투력이다. 자, 어때? 그런 놈이 다섯 더 있는데.”

보슬이 웃으며 몸을 부르르 떤다.

“난 이런 순간이 좋더라.”

“변태 새끼.”

치용은 눈꺼풀이 무거운지, 감길 듯 말 듯 했다.

그는 억지로 눈을 부릅떴다.

한 마디 뱉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덤벼.”

그리고 적을 향해 말했다.

보슬은 그 모습을 보고, 주먹을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 뒤다.

익숙한 얼굴 두 번째다.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턱이 뾰족한 놈이다.

칼날 턱 놈이 뒤에서 슬그머니 나타났다.

“기다려 봐.”

보슬이 흥미로운 얼굴로 치용을 본다.

“너, 혹시 나한테 복수하고 싶어?”

“사령관님. 9은하 통일이 코앞입니다.”

보슬은 뒤에서 들리는 말을 말끔하게 무시했다.

“말이라고 하냐.”

치용이 그를 향해 입을 연다.

“사령관님.”

금발의 남자가 다시 보슬을 재촉한다.

“기회를 줄까?”

재차 무시하자, 그 남자가 보슬의 곁으로 다가왔다.

“사령관님!”

퍽!

짧게 외친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칼날 턱의 팔 한쪽이 날아간다.

“닥치고 꺼져 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지켜보는 세주도, 이 활극의 주인공인 치용도 모르는 눈치다.

붉은 피가 허공에서 흩뿌려지다 멈췄다.

그 앞, 금발의 남자가 무릎을 꿇었다.

“용서를.”

“꺼져.”

그 말과 함께 그가 뒤로 물러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자, 다시 말해보자.”

그가 치용의 앞에 섰다.

“복수하고 싶냐?”

“물론.”

흐린 눈동자로 보기에 치용은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좋아.”

보슬은 그 말과 함께 한쪽 손을 폈다.

그의 어깨에 놓인 어드바이저가 빛을 뿜는다.

그러자 허공에 뻥하니 구멍이 뚫렸다.

어둠 속에서도 더 짙은 어둠을 품은 구멍이다.

“1은하 구석에서 발견한 보물이다. 어드바이저의 분석을 토대로 뫼비우스의 띠라고 이름 붙였다.”

그가 입을 연다.

치용이 흐릿한 눈으로 뚫린 구멍을 바라봤다.

“어쩌라고?”

“넌 안 돼. 한 명을 골라라. 그럼 그놈을 매개체로 9은하를 통째로 구멍에 넣을 거다.”

흐릿해진 치용의 눈은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 골라라.”

사실 보슬도 이후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탐구다.

이 보물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추론이 실제가 될 것인지.

치용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는 이 싸움을 이어나갈 후계를 골라야 했다.

손가락이 앞을 가리킨다.

덜덜 떠는 소년을 가리켰다.

반세주다.

그 바로 옆에 있던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저겠죠?”

그녀는 치용의 부관이었다.

“아냐.”

그게 치용의 유언이었다.

약 기운으로 버틴 치용의 호흡이 끊긴다.

죽어가는 그의 손가락은 정확히 세주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라고?”

세주가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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