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178. 기자와 기사
“지금 옵니다!”
인류의 구원이자, 희망인 함선이 돌아온다.
갖가지 방송사가 모였다.
그중 일부는 이미 정부를 통해 단편적인 정보를 전해 들었다.
마지막 일전이 벌어졌고, 이겼다고!
지구에 있는 이들도 봤다.
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빛.
별의 파편과 중도에 돌아온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방송사의 집요한 인터뷰를 피해야만 했다.
월드컵이 열리면 전 세계가 집중한다.
하물며 인류의 명운을 건 싸움이라면 그 관심이 지대한 건 당연했다.
각국 유명 방송사의 일류 카메라맨들이 카메라의 각도를 꺾어 하늘을 비춘다.
콰우우우우우우!
밑에서 기다리는 이들에게 굉장한 소리가 울렸다.
함선 십여 척이 날아오는 모습이다.
누군가는 감탄하고, 누군가는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낸다.
불안한 얼굴을 하는 이들도 보였다.
저곳에 자신의 연인과 친구와 가족이 탔을 것이다.
“조상님, 부처님, 하느님. 제발.”
오십 대쯤 되는 여인이 혼잣말을 읊조렸다.
어떤 신에게라도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빌고 싶었다.
곧 함선이 밑으로 떨어진다.
이들이 이착륙하는 곳은 몽골의 대초원이다.
그 위로 함선이 하나둘 내려오자, 방위수호군 병력이 펜스를 쳤다.
“여기부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제니퍼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모든 언론을 통제한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다양한 신을 찾아 빌던 여자가 성큼 앞으로 나왔다.
“전부 무사합니까?”
그 말에 방위군 병사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고 말았다.
전부 살아 돌아와?
꿈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이전에 일부 돌아온 이들의 말에 의하면 저 위는 지옥이었다.
자신의 동기도 돌아온 이 중 하나였다.
그는 다리 힘줄이 잘렸는데, 2달이나 정양해야 예전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그가 말한, 콴과 메카니모스, 바이탄.
‘안 가길 잘했지.’
만약 자신도 저 위에 있었다면 부평초처럼 죽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반세주와 수호신 부대, 초인들의 활약도 전해 들었다.
역시 대단한 이들이다.
하지만 전쟁은 전쟁.
모두가 살아 돌아올 순 없다.
쿠우우우.
텅!
소음이 그의 의식을 일깨웠다.
“모두 물러나십시오.”
그는 명령대로 가까이 온 이들을 뒤로 물렸다.
제니퍼는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뒤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은 곳을 찾은 그녀는 전화를 들었다.
“아빠.”
기자 출신으로서 제니퍼는 사명이 있었다.
모든 인류는 이것에 대한 알 권리가 있다.
모든 언론을 통제한다는 건,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할 짓이다.
통화 건너편 남자, 방위수호군의 핵심 인력 중 하나다.
나호필과 미군의 주요 부대가 빠진 자리를 채우는 이 중 하나.
수화기 너머, 그가 말했다.
“말해뒀다.”
그리고 곧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무뚝뚝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인 통신이라니, 그녀의 아버지가 장군급 인사가 아니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다.
제니퍼가 다시 경계선 앞까지 다가갔다.
높게 솟은 철조망 앞, 병사 하나가 눈을 돌렸다.
이미 함선이 도착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펜스 앞에 무장한 병력 앞에서 함부로 달려들 이는 없었다.
혹은, 자신의 가족과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빨리 전해 듣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제니퍼가 다가가자, 병사가 다시 총을 사선으로 대고 앞을 막는다.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그녀는 기자 출입증 대신, 다른 걸 보였다.
“데이플 장군을 보러 왔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지 않도록, 조용히 말하자.
병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침, 그 병사는 미군 소속에서 차출된 자다.
대니스 데이플 장군이라면 방위수호군 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고위급 인사다.
“누구신지?”
병사가 묻고, 제니퍼는 간결하게 입을 열었다.
“딸이에요.”
다른 사람의 눈치가 보였다.
함부로 민간인을 들여보낼 순 없다.
곤란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자.
담당 장교가 무전으로 누군가 대화하며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통신 종료.”
“제나스 중위님.”
병사가 사정을 말하자.
“어이, 아가씨.”
중위가 제니퍼를 부른다.
“네?”
“언론?”
제이퍼의 안색이 급변했다.
기자라고 하면 들여보내 줄까?
고민하는 그녀를 보더니, 제나스 중위가 입을 열었다.
“사진기사 대동하고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너, 바깥쪽 각국 언론사 한 명씩 출입 허가해.”
처음에는 제니퍼에게 나머지는 병사에게 하는 말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귀를 쫑긋하던 제니퍼다.
그걸 본 중위가 말을 이었다.
“인터뷰한다는 겁니다.”
*
사망자 182명.
마지막 전투에서 들은 숫자다.
‘전부 살릴 순 없잖아.’
물론 알지만, 있는 힘껏 싸웠음에도 꽤 많은 숫자가 죽었다.
‘수천 명 중의 일부야.’
“닥치고 있어.”
수천 명 중의 일부가 누구에게는 가족이며 연인이다.
프로비던스가 입을 다문다.
얼마 전 나호필도 비슷한 말을 했다.
최선을 다했고, 고작 이 정도 사망자라면 대승이라고.
물론 그 이후 나타난 놈들 덕분에 승리의 기쁨을 나눌 수도 없었다.
“기자들 불렀습니다.”
“알았어.”
부관의 말에 세주의 옆에 서 있던 호필이 답한다.
“같이 가자.”
그리고는 세주에게 말했다.
사망자 숫자도 숫자지만, 세주는 전투 후 어딘가 시무룩해 보였다.
“왜?”
호필이 묻자, 세주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가야 되냐?”
“넌 인류의 영웅이야. 얼굴만 비춰도 사람들이 열광할 거다.”
맞는 말이다.
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함선 밖으로 나가자, 긴급하게 마련된 커다란 막사가 보였다.
“이쪽입니다.”
그들이 없을 때, 방위군을 책임지던 이들이다.
“이긴 겁니까?”
“대승이다.”
뒤에서 다른 이가 입을 연다.
본 조르노다.
“저도 인터뷰 가렵니다.”
그리고는 말을 덧붙였다.
“어쨌든 승리는 승리, 우리는 그 승전보를 전해야 하니까요.”
본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맞는 겁니까?”
경박해 보이는 본을 피해 호필을 향해 묻는다.
“지구를 침공한 모든 외계인을 격퇴했다.”
호필이 말했다.
와아아아!
나잇살깨나 먹은 이부터, 그렇지 않은 이까지 많은 이들이 동시에 환호를 지른다.
승리다.
기나긴 전쟁이었고, 큰 희생을 치른 일이었다.
세계대전보다 인구수를 급감한 전쟁이 끝이 났다.
“좋아하기는 일러.”
호필이 날카롭게 말하고, 준비된 천막 안으로 발을 디뎠다.
“나호필 방위군단장.”
누군가 읊조린다.
모인 이들은 각국의 언론사들이다.
그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느끼며 호필이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찰칵! 찰칵! 찰칵!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진다.
사진 촬영도 허락한 참이다.
마음껏 찍으라고 만든 자리다.
호필은 속으로 계산을 끝냈다.
‘다시 싸우라고 하면 절망할 거다. 단번에 모든 걸 밝히지 않고, 일단은 승전보만, 그 이후 재차 징병해서 다음 싸움에 대비해야 해.’
일단 지금은 승리에 기쁨에 취하자.
그런 마음을 먹고 만든 자리다.
현재는 적의 규모도 모른다.
물론 감으로 깨달은 점도 있다.
적어도 이제까지의 싸움보다는 더 살벌할 거라는 거다.
“모두 모이셨습니까?”
호필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만들어 낸 얼굴이지만, 모든 언론은 그의 얼굴을 보고 희망적인 소식이 가득하다는 걸 알았다.
“이겼습니까?”
갈색 곱슬머리의 남자가 대뜸 물었다.
기자도 아니었다.
카메라를 든 남자다.
“네.”
호필이 고개를 끄덕인다.
호우!
와우!
조금 전과 다르지 않다.
기자들도 기쁨을 표현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중 한국 기자 중 하나가 외쳤다.
“반세주 개자식!”
“…군인 출신입니까?”
호필이 김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레이퍼 침공 때 참전 후, 전역했습니다.”
꽤 훌륭한 전과를 올렸구나.
호필은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건 뭡니까?”
옆자리의 다른 기자가 묻는다.
그 타이밍에 세주가 안으로 들어섰다.
“엇!”
누군가 그걸 발견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호필 때보다 배는 많은 플래시가 터진다.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주변 장교들이 그들을 말렸다.
“그만, 지금 사진 찍으러 모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그만하고 질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호필이 옆을 보자, 세주가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고 있었다.
순간, 호필은 약간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맨 처음 카메라가 그를 잡았을 때, 세주가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랐다.
올킬.
저 미친 자식을 이곳에 데려온 게 잘한 일일까?
“왜? 질투해?”
세주가 그런 호필에게 말했다.
미친 자식.
질투는 무슨.
이 중차대한 시기에 무슨 소리냐고.
“질문받겠습니다.”
마이크 하나 없이, 호필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요!”
“여기요!”
“사망자 숫자는 어떻게 됩니까?”
“중도 귀환한 인원을 통해 들었습니다. 싸움이 어려웠다고 들었습니다!”
시장판이나 다름없다.
퉁!
호필이 군화발로 바닥을 찍었다.
하지만 너무 시끄러웠다.
짝!
세주가 손뼉을 쳤다.
기묘한 에너지 파장이 퍼졌다.
물론, 에너지를 다룰 줄 모르는 이들은 그저 강렬한 소음만 들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아니, 입을 열고 말하고 싶었지만 강렬한 위압감에 그럴 수 없었다.
세주는 파장이 흐르는 걸 느끼며, 슬며시 호필을 향해 손짓했다.
할 말 하라는 거다.
“참혹한 전투였으니, 여기 계신 반세주 대장을 비롯한 영웅들의 분투 덕분에 대승을 거뒀습니다.”
초인 덕분에 피해가 적었다.
싸움은 길었고, 힘들었다.
모두 함께 싸운 군 장병들 덕분이다.
차분히 말한 호필은 여전히 미소 띈 얼굴이다.
세주는 묵묵히 옆에 앉아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얼굴만 비추고 나가는 역할이면 충분했다.
호필은 그렇게 긴 싸움을 짧게 얘기했다.
“그럼 다시 침공은 없습니까?”
갈림길이다.
어떻게 답해야 할까?
하지만 모든 기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네.”
호필은 조용히 답했다.
기자들은 연신 쓰고, 적고, 타이핑했다.
몇 가지 의미 없는 질의가 지나갔다.
호필은 모두 성심성의껏 답해줬다.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건, 승리의 기쁨이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아직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는 건, 막 마라톤 완주를 끝낸 마라토너에게 ‘한 번 더’라고 외치는 것과 같았다.
“정말 다행입니다.”
기자 중 하나가 눈물을 보인다.
“어떻게 사망자가 182명만 나온 겁니까?”
숫자로 보면 너무 적은 숫자다.
세주가 자기도 모르게 그를 노려봤다.
“아, 물론, 전사한 영웅들을 모독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승리를 거두게 된 과정을 알게 된다면 많은 이들이 안심하게 될 겁니다.”
안심은 무슨.
호필은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기자들은 기사를 내는 데 혈안이 된 이들이다.
걔 중 멀쩡한 이들도 있겠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런 이들은 드물었다.
억지로 그랬다.
이것저것 쓰라고.
좋은 일은 넓게 퍼트리는 게 좋다.
그 와중에 영웅화 되는 이가 있다면 더 좋고.
기자들의 눈이 세주에게 모인다.
뭐니 뭐니 해도, 인류의 구원 영웅이라 불리는 몸이다.
“뭐?”
세주가 삐딱하게 물었다.
호필이 급히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반세주 휘하 수호신 부대의 활약이 눈부셨습니다. 이들 넷이 죽인 외계 괴물의 숫자는 셀 수도 없을 정돕니다.”
“역시!”
그는 세주를 보며 눈을 빛냈다.
호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쯤 하겠습니다. 많은 영웅들이 피로에 쉬고 싶을 겁니다. 다들 집으로 돌려보내 주고 싶습니다. 그들을 붙잡는 분들은 없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 제가 여러분들과 만난 거니까요.”
“네!”
열띤 열기 속에서 인터뷰가 마무리 중이다.
멀뚱히 앉은 세주를 향해 여기자가 성큼 질문을 던졌다.
제니퍼였다.
궁금한 것도 많은 그녀지만, 반세주라는 영웅의 한 마디라면 감성을 건드린 멋진 기사가 나올 것 같다.
그녀는 그런 기대를 안고 물었다.
“영웅께서는 할 말이 없으십니까?”
나호필은 애초에 이 인터뷰를 사전 계획했다.
하지만 세주에게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또 쳐들어온대.”
그런 세주가 입을 연다.
“야.”
호필이 낮게 윽박지른다.
그걸 무시한 세주가 일어났다.
“또 온다! 놈들은!”
대뜸 말하자, 기자들이 벙찐 얼굴로 세주를 바라본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팟.
그러자 세주가 양손을 펼쳤다.
그의 손에 들린 작은 구슬에서 김보슬과 그 일행의 모습이 보인다.
“…뭡니까?”
“이 전쟁의 배후, 그리고 다시 침공을 약속한 괴물.”
세주가 입을 연다.
“…진짭니까?”
이번 질문은 호필이다.
호필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저 꼴통.
딱 그 표정이다.
기자들은 직감했다.
지금 세주가 한 말은 진짜다.
웅성웅성.
기자들이 다시 소란스러워진다.
“사망자 182명!”
그 와중에 세주가 외쳤다.
에너지 파장이 퍼진다.
“다음 싸움에서는 한 명도 죽게 두지 않을 거다.”
그리고 팩 하고 몸을 돌린다.
이틀 뒤.
기사가 나왔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세계는 군인을 필요로 합니다.
침공해 온 적이 누구인지, 어떤 이들인지, 규모도 모릅니다.
우리는 또 울고, 절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 빛이 있고, 밤이 가면 낮이 오듯.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전쟁은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영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인류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영웅, 반세주는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또 말했습니다.
“앞으로의 싸움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생기지 않게 하겠다.”
저는 기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그 자리에 있음을 감사합니다.
저는 그 말을 믿습니다.
반세주 개자식!
그녀는 한국 기자에게 배운 환호성을 적었다.
그 날, 전 세계에서 모든 이들은, 반세주 개자식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