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74화 (174/206)

# 174

174. 싸우는 이유

안나 휴이츠는 다가오는 팔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고 시도했다.

훅.

그 순간 팔이 흔들리며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

콱하고 허공을 붙잡은 그녀다.

순간, 앞을 보며 머리로 상대를 들이받았다.

하지만 어느새 상대는 등을 뒤로 젖히며 그녀의 박치기도 피한다.

동시에 상대의 모습이 흔들리며 여러 개로 나뉘었다.

너무 빠른 움직임에 생긴 잔상이다.

후앙!

안나는 횡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풍압이 터지며, 굉장한 소리가 난다.

잔상 서너 개가 사라진다.

하지만 발에 걸리는 느낌은 없었다.

그 순간 머리에 딱 하는 소리가 났다.

딱밤이라고 부르는 거다.

그녀 평생에 처음 맞는 경험이다.

아니, 이미 수차례 맞았으니 처음은 아니다.

이 대련에서만 다섯 대째.

까득.

안나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실력 차가 명확하다.

번번이 피한 상대가 얄밉다.

쥔 주먹에 힘을 더했다.

본래 약속은 반만 힘을 쓰는 대련이다.

번쩍.

하지만 약속과 달리 그녀의 오른손에 황금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전력이다.

그녀의 노블 패스는 다른 이들과 달랐다.

모두 한 줄기 가닥만 가지고 있지만, 그녀는 다섯 줄기다.

꼬이고 엮인 노블 패스는 그녀의 에너지를 특별하게 빛나게 했다.

꽝!

폭음이 터진다.

순백의 공간에 빛의 결절이 사방으로 뿌려진다.

그녀가 내지른 주먹 앞, 투명한 푸른 막이 깨진다.

하지만 이번에도 맞추지 못했다.

“미꾸라지.”

입을 열자.

“제대로 때려줘?”

또 얄밉게 말한다.

으득.

다시 어금니를 악물었다.

때려달라고 하고 싶다.

자존심에 대못을 박는 것 같다.

“아니.”

하지만 그럴 순 없다.

반세주란 인간은 하라고 하면 진짜로 할 거다.

큰 싸움을 앞두고 그럴 순 없다.

그리고 굳이 그에게 맞고 싶지도 않다.

“유연성을 좀 길러 봐. 딱딱해.”

“내가?”

그녀는 다리를 들어 목 뒤로 감았다.

선 자세에서 하는 짓이다.

지나친 유연함이다.

“몸 말고.”

세주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한다.

머리.

치용만큼이나 돌격 일변도인 그녀다.

“머릴 쓰라고?”

그렇다고 치용처럼 아예 생각이 없는 종류의 인간은 아니다.

유연한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세주를 보며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할게.”

하루에 고작 몇 시간, 짧은 대련과 조언이다.

하지만 안나는 큰 효과를 보았다.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상태를 꿰뚫어 보고 현 상황을 말해준다.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자존심에 상처는 받지만, 이 남자라면 괜찮다.

“넌 왜 싸우냐?”

“조국의 영광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

“…누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키디?”

“아니.”

탁탁.

대련장으로 꾸민 방에서 세주가 주저앉더니, 옆을 손바닥으로 친다.

“앉으라고.”

안나가 그 옆에 앉았다.

“사람이 싸우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야.”

“그러니까 난 조국의 영광과 인류를 위해….”

“그딴 거 말고.”

갑자기 이런 걸 왜 묻는 걸까?

안나는 생각했다.

자신이 싸우는 이유를.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녀의 삶은 군인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그녀는 싸우기 위해 살았고, 살기 위해 싸웠다.

“거는 건 네 목숨이야. 그러니까 싸우는 이유도 당연히 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을 거야.”

세주의 말이 들린다.

“있어.”

있다.

중요한 것.

이유도 있다.

고민하지 않아도 떠오른다.

싸움을 즐기는 건, 그녀의 천성이다.

그래서 현재의 삶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싸우고 싶어 이 자리에 있는 건 아니다.

조국의 영광과 인류의 번영?

이제까지 배운 대로 한 답이다.

이유는 있었다.

작게 읊조리며 안나가 말했다.

세주가 용케 그걸 들었다.

“좋네.”

그가 빙그레 웃는다.

“넌?”

친구처럼 말하는 그녀를 보고 세주가 안나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렸다.

“내가 아는 사람이 죽는 게 싫어.”

“그래?”

“그렇지.”

반세주는 방심하지 않는다.

안나는 양손을 들어 그의 볼을 감쌌다.

“…뭐해?”

그리고 그대로 당겼다.

가벼운 반항이 느껴졌다.

하지만 심하진 않았다.

웅.

양손에 황금빛을 뿜으며 그의 머리를 당긴다.

몇 초뿐이지만, 자신을 죽이지 않고는 헤어 나올 순 없을 거다.

그리고 안나는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짧은 시간이 지났다.

혀와 타액을 교환한 건 아니지만.

“맛있네.”

안나는 한 마디를 남기고 갔다.

세주가 조용히 그녀가 떠나간 자리를 쓰다듬었다.

-좋아 죽네.

‘티나?’

안나 휴이츠는 빼어난 미녀다.

그런 그녀와 입맞춤이라니.

싫어하는 놈은 고자다.

그리고 반세주는 아주 혈기왕성한 남성이다.

-오닉스였다면 충분히 뿌리쳤을 텐데, 우리 형 아주 굶주려서 순순히 당해주네?

‘야, 인마. 다칠 수도 있었어.’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한 1%정도.

-…까고 있네.

‘이 새끼가. 너 앞에 축약된 말 뭔데?’

-없는데. 그런 말.

빌어먹을 기계 놈이.

아니, 봐준다.

이렇게 좋은 날, 가벼운 시빗거리는 넘겨도 좋다.

세주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한 번 훔치고 일어섰다.

-닥터 강한테 메일이나 보낼까?

‘미쳤냐?’

아니, 입맞춤 한 번 한 거 가지고, 무슨 메일까지 쓰냐고.

‘우리 브로, 뭐 먹고 싶은 거 있나?’

오닉스 에너지를 깨달은 후, 이 자식이 일반 에너지를 입에도 대지 않는다.

세주는 손끝에 에너지를 모았다.

검게 물든 작은 구슬이 생긴다.

프로비던스가 밑으로 내려와 금세 렌즈로 에너지를 삼킨다.

-푸하. 좋다.

프로비던스가 만족감 어린 말을 뱉는다.

‘오냐.’

준비는 끝났다.

아군 중 안나 휴이츠의 능력은 아주 특이했다.

아니, 세주는 이와 같은 타입을 본 적이 있었다.

인간과는 다르게 에너지를 컨트롤하며 사용하는 이들이다.

흉내는 내도, 똑같이는 할 수 없다.

안나의 능력은 콴과 닮아 있었다.

*

싸우는 이유는?

갑자기 세주와의 대련이 떠올랐다.

안나 휴이츠는 전투를 즐기지만.

그녀가 싸우는 이유는 그게 아니다.

꽝!

그녀의 의지대로, 사이클롭스 아머가 땅을 밟는다.

퍽하고 사방에 흙이 흩어진다.

“전 병력, 내 뒤로.”

그녀가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계산하고,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세주가 추구하는 싸움은 이상적이다.

아무도 죽이지 않겠다니.

그녀는 그걸 오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따르고 싶은 오만이다.

이뤄졌으면 하는 망상이다.

“후압.”

그리고 그녀가 싸우는 이유는 하나다.

살고 싶다.

그녀는 삶을 갈구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받던 고된 훈련 속에서 그녀가 바라는 건 하나였다.

삶.

잘 살고 싶다.

여자 격투기 선수가 꿈인 적도 있었다.

군인으로서 삶도 나쁘지 않다.

좋은 남자를 만나서 가정도 이루고 싶다.

그녀는 바라는 게 많았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는 삶 속에 저 빌어먹을 외계인은 없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우울한 세계 또한 없다.

그러므로 그녀는 싸운다.

자신의 삶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지구를 침공하는 저 미친 외계인들과.

끼이이이잉.

다섯 줄기로 꼬인 그녀의 노블 패스가 요동친다.

지금 하려는 짓은 세주와의 대련이 가져다준 결과물이며.

그녀의 고민이 만들어 낸 힘이다.

기본 컨셉은 가르간의 고속 이동 참격에서 가져왔다.

알려준 건, 세주지만 그걸 개선하고 새롭게 만든 건 그녀의 몫이었다.

앞쪽에서 달려오는 무수히 많은 괴물이 보인다.

외계인이건, 메카니모스건, 바이탄이건.

아니, 간간이 보니 살아남은 콴도 참전한 것 같다.

어차피 저들의 이름도, 생김새도 중요하지 않았다.

저들은 괴물이며, 죽여야 하는 적이다.

꼬인 노블 패스가 뭉쳐 한 줄기 강이 된다.

사이클롭스 아머 위로 황금빛이 사그라든다.

“뭐야?”

“왜 저래?”

주변에 몰린 이들이 그녀를 보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 안나 휴이츠의 활약 덕에 살아난 자가 적지 않다.

그게 그녀가 무리한 덕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다.

주먹 한 방에 적 두세 마리가 분쇄되는 장면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런 안나가 멈췄다.

주춤한 적과 아군의 사이.

안나가 입을 연다.

“지금부터 내 뒤로 전군 후퇴한다.”

“가까이 붙지 마!”

호세르나 쿠에르보가 외쳤다.

안나의 몸에서 빛이 꺼지면 주변의 아군 병력을 물려라.

그녀는 부탁받은 대로 행동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데?’

호세르나가 눈으로 물었다.

하지만 이미 안나의 모습은 그곳에 없었다.

꽝!

그저 폭음만이 뒤늦게 귀를 때린다.

터진 땅에 그녀의 족적이 남았다.

아니, 족적이 아니라 폭탄이 떨어진 자리 같다.

그리고 적군의 한 가운데.

꽝!

다시금 폭음이 터진다.

달려들던 외계인 무리가 터져 허공 종잇장처럼 날아간다.

펑! 꽝! 꽝!

한 번이 아니다.

사방에 황금빛이 솟구칠 때마다, 적의 무리가 분쇄되고 부서진다.

고속 이동은 그대로 가져오고, 참격 대신 다른 기술을 붙였다.

가르고 베는 것이 아니라, 부딪치고 으깬다.

고속 이동 타격, 안나 버전이다.

꽝!

호데르나는 그걸 보고 혀를 내둘렀다.

‘독한 년.’

자신도 강하다.

멕시코의 여신이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저 안나의 강함은 뭔가.

‘그보다 더한 놈들도 있지.’

현재 안나가 보여준 힘을 아무렇지 않게 보이며 적군을 헤집은 놈들.

한국의 사인조다.

그중 하나는 꽤 유명하기도 하다.

반세주.

인류의 영웅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

폭음과 황금빛은 세주의 눈에도 보였다.

-문제없어.

지금부터 사망자는 없을 거다.

그들이 빠져도, 구멍을 메울 이들이 있다는 거다.

프로비던스의 말은 그런 의미였다.

세주는 몸을 위로 뻗어 올렸다.

골드가 그 뒤를 바짝 쫓아온다.

초원을 감싼 단단한 벽을 만나기 전, 밑을 내려다본다.

마치 지렁이가 땅을 파먹은 것처럼 적군의 중추가 되는 곳들이 전부 박살나 있다.

인준이 만든 크레이터도 보인다.

그리고 안나 휴이츠의 활약도.

다른 쪽도 대단했다.

이무영인지, 아니면 크롬팀인지.

염력으로 적을 찢어발긴다.

광선포가 날아드는 살벌한 전장이지만.

이미 승패는 갈렸다.

아니, 모른다.

이 골드라는 괴물 안드로이드가 세주를 죽이고, 아군을 몰살시킬 수도 있다.

‘아, 오줌 마려.’

-쫄았어?

‘아니, 진짜 갑자기 오줌 마렵네.’

쌩!

그 사이 무언가 얼굴을 향해 날아온다.

고개를 옆으로 홱하고 돌렸다.

칼날이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자, 그 칼날이 하늘을 날아 등 뒤를 노린다.

유도탄이다.

세주는 등에 에너지를 모았다.

쩡!

배리어에 칼날이 맞고 튕긴다.

동시에 벼락을 들어 탄을 쐈다.

꽝!

겨누고 쐈지만, 이미 그 자리에 적은 없다.

위쪽, 세주는 느끼자마자 위를 향해 이연사를 했다.

꽝! 꽝!

검은 탄이 아니다.

스파이럴, 한 가지 기예만 쓴 광탄이다.

적은 또다시 손쉽게 피했다.

그러면서도 세주는 밑을 신경 썼다.

저 밑.

외계 인류에서 메카니모스가 된 여자가 셋의 공격을 피하는 거로도 모자라 역공을 한다.

등 뒤로 숨은 유진의 칼날을 피하고, 치용의 턱을 걷어찬다.

그러면서 인준이 만든 탄막을 피한다.

‘와.’

-감탄할 때야?

팅!

이번엔 칼날이 아니라, 긴 선이다.

골드가 만든 얇고 날카로운 선이 사방에 깔린다.

[여유를 부리나? 인간]

“아닌데.”

말하면서도 골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인간!]

분노는 자아를 가진 이가 표현하는 가장 극적인 감정 중 하나다.

세주는 그래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물었다.

“너 쟤 알아?”

세주가 묻는다.

골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재차 달려든다.

에너지 보유량도 훌륭하고 싸우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교과서적인 방식이다.

‘주입식 교육을 오지게 받았나보다.’

-그렇지?

하지만 위기감이 없다.

연애를 책으로 배우고 여자를 만나면 망한다.

그게 지금의 골드다.

“너 실제로 직접 싸워 본 적이 있냐?”

골드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없다.

처음 인류를 위해 반기를 들었을 때?

그때도 가진 에너지를 뿜어 인간의 플랜트를 전부 박살 냈을 뿐이다.

나머지는 그가 준비한 안배대로, 안드로이드의 습격이 일어났다.

그게 끝이었다.

인류가 믿은 기술은 손쉽게 안드로이드의 손으로 들어왔다.

“쯧쯧.”

세주가 혀를 찬다.

몇 번 손을 섞어보니 알겠다.

골드라는 이 안드로이드는 끝판왕이라고 하기에 너무 허약한 상대였다.

그 순간, 푹!

무언가 옆구리를 찌른다.

세주의 배리어를 뚫고, 경질화 된 단단한 솜털조차 가볍게 가른다.

옆구리에 빛나는 칼이 꽂혔다.

아니, 그대로 다시 빠진다.

푸왁!

피가 솟았다.

-긴급 지혈 시스템

프로비던스가 급히 피를 막는다.

등 뒤.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개구리를 닮은 외계인이자, 우주 최강의 전투 민족 중 최강을 논하는 놈이다.

“갑툭튀하고 지랄이야. 깜짝 놀랐네.”

옆구리를 부여잡고 세주가 입을 열었다.

가르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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