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173. 세 배
‘저 새끼들은 또 저러네.’
-응원이잖아.
‘좋아하지 마.’
-아닌데.
반세주 개자식이란 말이 울려 퍼진다.
“크앗!”
치용이 신나서 칼을 다시금 휘두른다.
타는 칼 한 번, 큰 칼 한 번.
쩍! 화르르륵!
한 놈은 타고, 한 놈은 갈라져 죽는다.
이 전장 누구도 이들을 막을 수 없었다.
유진과 인준도 신나 보인다.
이 와중에도 세주는 이들을 이끌어야 했다.
‘다음.’
-9시.
방향을 묻고, 가장 위험한 곳으로 달린다.
이게 지금 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퍽!
또 누군가 머리를 얻어맞고 뒤로 눕는다.
놔두면 죽는다.
치용 포메이션으로 싸우다가, 세주는 간간이 벼락을 꺼냈다.
끼릭.
준비는 1초 이내.
조준은 그보다 짧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는 건, 조준과 동시다.
둥!
벼락이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소음이 귓가를 스친다.
퍽!
그것도 세주의 에너지를 머금은 탄환 한 발이, 적의 머리를 뚫는다.
저 멀리, 한 마리의 메카니모스가 눕는다.
치용 포메이션은 위력은 좋지만, 원거리 사격이 불가하다.
파괴력과 돌파력으로 상대의 시선을 잡는 용도다.
덕분에 아군의 희생이 눈에 띄게 줄긴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없다.
전장의 판도가 변한 순간, 세주의 목표는 하나였다.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오만한 생각이야.
-하지만 불가능은 아니지.
프로비던스가 한 입으로 두말한다.
귀엽다.
불가능은 아니라고 말하는 프로비던스다.
이미 계산은 끝났다.
전장의 모든 상황은 세주의 손아귀 안이었다.
그 순간, 눈앞에 메카니모스 셋과, 바이탄 둘이 떨어진다.
힐끗.
그걸 본 세주가 외쳤다.
“정유진 포메이션!”
-일형, 아니 사형포 에너지 포착.
바이탄 한 마리가 넷을 향해 손을 겨눈다.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덩그러니 렌즈가 빛을 뿜고 있다.
“산개!”
외마디를 외친 세주가 옆으로 몸을 날렸다.
‘오닉스 개방.’
전신에 흐르는 에너지의 농도가 짙어진다.
순간적으로 개방한 에너지를 발끝에 모아 땅을 찬다.
펑!
폭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세주의 몸이 순간 사라진다.
오버 페이스 모드를 켜지 않아도, 순간 가속으로는 충분하다.
집약된 광선포의 범위를 벗어난 직후다.
-전부 피했어.
막 물으려던 찰나다.
세주가 가장 중심에 있기에, 피하기가 까다로운 위치였다.
그렇다 해도, 순간적으로 셋 다 피하다니.
평소 훈련이 빛을 본다.
사실 보지 않아도 어떻게 피했으리란 짐작이 가능했다.
묻지 않아도 대강 셋의 위치를 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다.
[버러지들이!]
메카니모스 중 하나가 외친다.
두케이, 써드 휘하 최강의 메카니모스 셋이다.
바르, 전신에 블레이드 칼날을 꽂고 돌격해 껴안는 죽음의 포옹이란 기술을 사용하는 놈.
타니스, 농축된 에너지를 적의 심장에 찔러서 내부에서부터 터트리는 걸 즐기는 근접전 스폐셜 리스트 메카니모스.
그리고 판라.
외계 인류에서 메카니모스가 된 희귀 케이스다.
그녀가 메카니모스가 된 이유는 하나였다.
신의 장난이라 불리는 그녀의 에너지 보유량 때문이다.
판라는 그 힘을 인류를 위해 쓰지 않았다.
그녀는 메카니모스로 전향했고,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바이탄 둘은 묻지 않아도 자신의 소개를 했다.
[퍼스트다. 골드 핑거, 아버지의 손가락이라 불리는 몸이다]
[세컨드다]
사형포를 쏜 놈이 세컨드다.
버러지를 부르짖은 놈이 바르였다.
물론 세주 일행은 이들의 이름도 특징도 몰랐다.
아니, 알 필요도 없었다.
에너지가 차고 넘친다.
노블 패스가 없어지면서, 세주의 몸은 변했다.
패스, 에너지가 흐르는 길이 없어진 대신 세주의 전신은 창고가 됐다.
언제 어느 때든 전신에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프로비던스는 이 상태를 ‘오버플로’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 넘치는 에너지를 붙잡아 농축시킨 것.
그게 바로 오닉스였다.
흩어지기 전, 세주는 유진 포메이션이라고 외쳤다.
그가 말한 바는 명확했다.
숨어서 죽여라.
세주는 스텔스 모드를 썼다.
프로비던스가 에너지를 뿌려 모습을 숨긴다.
지이잉!
렌즈에 빛을 내며, 세컨드 놈이 양손에 붙은 포신을 겨눈다.
하지만 순간 모습을 놓쳤음이다.
아무도 찾지 못했다 싶은 순간.
[저기]
조용히 있던 판라가 한 곳을 가리킨다.
“염병.”
치용의 모습이 허공에 반쯤 드러난다.
아머에 깃든 스텔스 기능을 제대로 쓰지 못한 탓이다.
-하여간 좋을 걸 줘도 못 써요.
프로비던스가 그를 나무란다.
듣지도 못할 나무람이다.
세주는 그 사이 세컨드 뒤에 섰다.
지잉.
머릿속으로 기묘한 감각이 파고든다.
마치 누군가 손으로 뒷목을 콕 하고 찌른 느낌이다.
옆이구나.
알 수 있었다.
유진이다.
그리고 뒤는 더 강력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 뒤통수를 세 개 후린 느낌이다.
유진은 점수로 치자면 10점 만점에 9점.
인준은 7점이다.
치용은 빵점이고.
[죽여]
퍼스트가 입을 연다.
동시에 놈들이 에너지를 터트리며 치용을 향해, 광선포를 분사한다.
“아이씨! 나 죽일 셈이요!?”
설마.
우웅.
-2초.
포신에서 에너지가 모이는 시간이다.
사형포 두 발.
이건 치명적이다.
세주가 뒤에서 손을 뻗는다.
세컨드가 그제야 놀라 뒤를 돌아보려 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콰직!
목을 쥐고, 뜯는다.
검게 물든 손은 무엇이든 부수는 사신의 손짓이었다.
우드득!
목을 뜯어내자, 푸른 스파크가 튄다.
척추와 비슷하게 생긴 길고 두꺼운 전선이 뽑혀 나온다.
한 손으로 목을 뽑고, 다른 손으로 허리를 가른다.
푸르게 빛나는 블레이드가 배리어를 펼치지 못하는 세컨드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하나는 해결.
그 사이 유진이 퍼스트의 목에 대검을 박았다.
파직!
비슷한 스파크다.
하지만 얕다.
꽈과과광!
그리고 바로 옆, 메카니모스 셋이 있던 자리다.
휘파람이 절로 나올 뻔했다.
-저 새끼, 에너지 아까운 줄 모르고.
‘아니, 잘했네.’
인준의 아머가 눈에 띄게 부피가 줄어 있다.
폭탄마라는 저 아머는 전력 전개 시, 가진 폭약의 반 이상을 붓는다.
폭발을 집약, 압축해서 때려 부은 건, 인준의 기술이다.
그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티디디딩!
초원 바닥아르 태우는 거로도 부족해 커다란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메카니모스 셋이 있던 자리다.
큼직만 한 구멍을 만든 인준이 곁에 섰다.
어깨가 눈에 띌 만큼 들썩인다.
“지쳐?”
“…설마.”
지쳤을 거다.
하지만 센 척을 하는 게 인준답다.
절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지.
티디딩!
그 사이 퍼스트와 유진이 서로를 향해 무서울 정도로 칼날을 들이민다.
교차하는 칼날과 튀는 불똥이다.
세주가 끼어들려는 찰나.
뒤에서 검붉은 칼날이 허공을 가른다.
퍼스트는 말도 없이 몸을 비틀어 피했다.
그리고 그 틈, 머리 위로 커다란 푸른 칼이 떨어진다.
터더더덩!
놈은 그것도 막았다.
여섯 겹의 배리어가 간신히 치용의 큰 칼을 막는다.
퍼스트는 그사이 유진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치용은 콧김을 훅하고 내뿜으며 내달렸다.
꽝!
그의 일격은 도저히 쉽게 막을 수 없었다.
에너지 바를 나눠 먹은 힘이다.
꽝! 꽝!
폭음이 연신 터진다.
[인간 강하다]
실버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골드가 처음 만든 안드로이드는 인간성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고.
최초의 안드로이드는 전투력에 집중되어 있다는 정보도 함께다.
하지만 그 대단하다는 퍼스트도 치용과 맞수 정도.
이긴다.
그것도 피해를 최소화하며.
길게 이어질 것 같은 싸움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단번에 반전했다.
슉.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짧은 블레이드 한 자루가 나타나 퍼스트의 머리를 벤다.
파각!
깊은 상처는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 틈이면 충분했다.
“내꺼!”
욕심쟁이 치용에게는 말이다.
콰가각!
몸을 회전하며 힘껏 내지른 타는 칼.
두 자루 아니, 어디서 솟았는지 팔이 네 개로 변한 퍼스트가 네 자루 칼로 막는다.
치용은 혼신의 일격을 가한 직후, 타는 칼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양손에 길게 이어진 그립을 잡는다.
“후우우.”
호흡을 뱉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잘 드는 칼.
콴의 강적을 단숨에 베어버린 칼이다.
큰 칼을 압축하자, 주변 공기가 빨려 들어간다.
타는 칼을 놓고 그립을 바꿔 잡은 건 순간이었다.
호흡은 그사이 뱉고, 단숨에 허공을 긋는다.
그 사이에 퍼스트의 몸이 걸려 있었다.
쩍!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허리까지, 사선으로 빛이 뿜어진다.
넷은 약속이라도 한 듯 거리를 벌렸다.
퍼-엉!
폭발이 일어났다.
프로비던스는 마지막 퍼스트의 눈을 봤다.
그건 마치, 죽기 직전 살고 싶어 발악하는 인간의 눈과 닮아 있었다.
물론 느낌일 뿐이었다.
그리고 프로비던스는 느낌을 믿지 않았다.
폭발의 범위를 완벽하게 계산해 내, 메카니모스 셋을 죽인 인준.
적의 시선을 잡아끄는 역할의 치용.
애초에 유진 포메이션의 첫 번째 작전은 치용이 미끼가 되는 거다.
“잘했어.”
짧은 치하의 말이다.
여전히 전장은 치열하다.
“아군을 단 한 명도 죽이지 마라.”
세주가 읊조렸다.
“우라아!”
치용이 외친다.
“물론.”
인준이 수긍하고.
“받들겠습니다. 그 명령.”
유진이 방긋 웃는다.
꽝!
그 사이 저 멀리서 황금빛 광채가 터진다.
그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만큼.
다른 이들도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그런 이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
아무리 비정상적이고 불가능한 일이라도.
포기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세주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을 뿐이다.
파삭.
인준이 만든 크레이터 안쪽이다.
파아아아앗!
황금빛 광채가 터져 나온다.
위잉!
그리고 허공에 뜬 여덟 개의 작은 구슬.
곧 구슬에서 레이저 포가 뿜어져 나왔다.
두두두두두두둥!
여덟 발, 아니 연사다.
수십 발이다.
모두 세주를 노렸다.
“흥.”
우습다.
이전까지 강대한 적이라 생각했던 가르간도 이제는 한참 밑이다.
적어도 오닉스를 사용하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배리어.’
-이미 쳤어.
검은 막이 허공에 생긴다.
프로비던스가 세주라는 창고에서 퍼 올린 한 줌의 에너지로 만든 방패다.
꽈과과과과과과광!
폭음이 터졌지만, 배리어는 멀쩡했다.
“이제야 행차하셨나? 애들 다 죽고 오다니, 아비로서 실격이다.”
세주의 말에 공중에 뜬 바이탄이 주변을 둘러본다.
골드.
이전 외계 인류를 몰아치듯 죽이고, 현재 콴과 메카니모스의 배후 조종자의 등장이었다.
부스스스.
그리고 땅 밑에서 한 명이 더 기어나왔다.
“…살았다고?”
인준이 놀라 말한다.
판라다.
그녀는 말없이 몸의 먼지를 털었다.
[승부를 겨뤄보자. 인간, 안드로이드와 인간 중 누가 우위인지 결정하자]
골드가 말한다.
“뭐, 마음대로.”
말은 그리 했지만, 혼자서 저놈과 싸워?
여긴 전장이고.
그가 지켜야 할 사람은 많다.
고로, 단숨에 쳐낼 생각이다.
치사한 게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틈 판라가 끼어든다.
[셋은 여기]
그녀가 읊조린다.
세주는 골드를 향해 시선을 두면서 셋이 금방 따라붙을 거라 생각했다.
그 정도 저력은 있으니까.
방금 증명도 했고.
하지만 오산이었다.
터더더덩!
치용, 유진, 인준.
셋의 발이 묶인다.
“…얼레?”
실력을 숨겼다고?
프로비던스가 스캐닝을 돌린다.
[관둬라. 인간]
골드가 어느새 눈앞에 있다.
[넌 증명해야 할 것이다. 안드로이드가 9은하 최강이자 가장 합리적인 생명체라는 걸]
기계 새끼는 대대로 싸가지가 없나 보다.
‘니 친구냐?’
-저런 저급한 놈과 날 비교해?
한껏 토라진 프로비던스를 향해 세주는 픽하고 비웃음을 날려줬다.
‘오냐. 그럼 잘난 브로 능력 좀 보자.’
모드 온 인파이터.
-계산기 돌린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다. 이제.
판라는 잠시 잊자.
골드라는 안드로이드의 전신에 에너지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시파, 이거 좀 심한데?’
적어도 가르간이 가진 에너지에 세 배가 넘는다.
단순 계산으로 가르간의 세 배 전력이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