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69화 (169/206)

# 169

169. 오닉스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누군가의 기도가 울린다.

지구 밖에서도 그들이 믿는 신은 같은 건지.

같은 믿음을 가진 이들이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신이 있다면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면 좋겠다.

세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작!

입에 문 에너지 바를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외계 인류의 오드꾸와, 그러니까 군코바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맛은 천양지차다.

아무 맛도 안 난다.

곤약 젤리가 이런 맛일까?

무미, 무향의 에너지 바는 먹는 것만으로 곤욕이었다.

‘야, 맛에도 좀 신경 쓰면 안 되냐?’

-그럴 신경이 어디 있어?

‘시파, 사는 낙중에 하나는 식도락이라는 말 못 들어봤냐?’

-당장 내일모레 기아로 죽게 되는 애들을 생각해 봐. 그 음식도 값진 거야.

말 한마디를 안 진다.

이 미친 기계 새끼가.

아니, 그건 그때고.

지금 당장은 여유가 있는 만큼 부리고 싶단 말이다.

맛이 더럽게도 없다.

차라리 군코바가 나을 정도다.

무미, 맛이 없단 게 이렇게 괴로울 줄이야.

그 사이 치용이 뒤에서 슥 다가온다.

함선은 메카니모스 행성으로 향하는 중.

짧은 여유라면 여유다.

물론 이 틈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인간들이 흔한 건 아니지만.

“뭘 혼자 드십니까.”

“먹어 볼래?”

-사람 죽일 일 있어?

프로비던스가 말하고 동시에 치용이 고개를 끄덕인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형, 전용 에너지 바라고 했잖아.

대충 아몬드에 초코렛 묻힌, 바 형태의 음식을 에너지 바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세주가 손에 든 건, 진정한 의미로 에너지 바다.

말 그대로 먹는 순간, 먹는 만큼 에너지로 치환해주는 음식이다.

“자.”

세주가 먹던 걸 내밀었다.

-이 양반이 진짜.

‘얘 안 죽어.’

한 입 갖고는 안 죽는다.

“…기왕 줄 거면 하나 주십쇼.”

“일단 먹고 말해.”

받아들이는 몸이든 맛이든, 둘 중 무엇도 감당하기 쉽진 않을 거다.

까득.

질감조차도 눅눅한 시멘트를 통째로 씹는 느낌이다.

치용이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그걸 보며 무표정하게 입으로 다시 에너지 바를 넣었다.

우적우적, 꿀꺽.

그리고 하나 더 꺼낸다.

벌써 다섯 개째다.

시간 당 하나씩 먹다가, 전투가 코앞이다.

지금은 무리해서 바짝 먹고 있었다.

“음.”

치용이 얕은 신음을 흘렸다.

세주가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치용이 한 입 먹은 에너지 바.

그건 프로비던스가 ‘만든’ 보충식이었다.

말이 보충식이지, 에너지 플랜트로 치환되는 에너지가 너무 적기에 고안해 낸 방법이다.

먹는 거로 에너지를 충당하는 거다.

인간은 본래 입을 통해 소화하며 에너지를 얻는 존재이니.

이쪽이 효율이 훨씬 높았다.

“으으으.”

치용이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한다.

“우웩!”

그리고 갑자기 구역질을 시작했다.

아직 뭔가 토한 건 없다.

세주는 그걸 지켜보다 치용의 목울대를 쥐었다.

“컥!”

“삼켜!”

치용이 놀란 눈으로 세주를 본다.

‘봐라. 얘가 얼마나 맛이 없으면 이런 눈을 하냐?’

-…과연 그게 맛이 없어서 인거냐?

“먹을 수 있다.”

세주가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함선의 내부 통로 한복판이다.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싸우나?”

“반세주 대장님 아냐?”

“곰 대령님이다.”

시선이 모인다.

“쪽팔리니까 토하지 말고.”

세주가 중얼거린다.

부들부들 떨던, 치용이 입가에 침을 흘린다.

주륵.

-더럽다.

‘동감이다.’

다 큰 남자가 침 흘리는 꼴이 가히 보기 좋지는 않다.

“구경났어?”

다른 이들에게까지 보여주기는 그렇다.

세주가 읊조리자, 시선이 흩어진다.

아무리 장난을 치며, 친근감이 있는 이라 해도.

세주의 계급은 이들이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위에 있다.

계급뿐 아니라, 위명과 명예 전부, 일반병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천상계에 있는 존재다.

“먹으라고. 김치용.”

눈에 핏발이 서고, 눈물, 콧물이 흐른다.

퍽.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치용의 코에서 핏줄기가 흐른다.

혈관이 터진 거다.

으적.

세주는 다시 에너지 바를 한 입 깨물고, 지그시 치용을 노려봤다.

그러기를 십여 분이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코피를 줄줄 흘리던 치용이 꿀꺽 하고 삼키는 시늉을 했다.

“푸하!”

그리고 숨을 훅 내쉬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이거 뭡니까?”

“에너지 바.”

별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이렇게 말 안 해도 알 거다.

치용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웃는 시늉은 아니었다.

“불끈불끈 합니다요.”

전에 없이 진지한 얼굴로 치용이 말한다.

‘멀쩡해 보이지?’

-실험한 거야?

‘치용이 멀쩡하면 다른 애들도 먹여도 되지 않을까?’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구나.

진짜 피와 눈물도 없는 기계한테 들을 말은 아니다.

“좋아.”

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랏차차.”

코피가 말라붙은 얼굴로 치용이 기지개를 켠다.

“기운이 솟아난다.”

이 미친놈.

다시 주변 시선이 모인다.

“인준하고 유진도 불러와.”

으적으적.

다시 에너지 바를 씹는다.

치용이 묘한 얼굴로 세주를 본다.

“잘도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드십니다.”

“나야 뭐.”

설명하자면 길다.

새로운 초인프로젝트가 끝난 직후다.

세주의 몸에 노블 패스가 사라졌다.

동시에 가진 노블 에너지도 모두 동이 났다.

급하게 다시 에너지를 채워 넣어야 했다.

그 방법 중 최선이 이거였다.

먹는 거.

우적우적.

입에 도는 정말 맛없는 물질을 씹어댄다.

잠시 후, 치용이 인준과 유진을 데려왔다.

“먹어 봐.”

치용이 눈을 빛내며 말한다.

혼자만 당할 놈은 아니지.

“뭔데?”

인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유진은 킁킁 냄새를 맡는다.

우적우적.

마침 세주가 씹고 있다.

의심 없이 그들은 눈으로 물었다.

세주가 입을 열기도 전에, 치용이 입을 연다.

“남자한테 참 좋은 거.”

유진이 먼저 손을 뻗었다.

“그럼 하나만 주십쇼.”

“한입 만 먹어.”

먹던 걸 쭉 내밀자, 유진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준도 주춤하다가 손을 내밀었다.

유진이 먼저 한 입을 베어 물고, 인준도 마찬가지로 씹는다.

“둘 다, 안 보이는 데로 옮겨.”

아직 반응이 오지 않은 둘이 다시 눈으로 묻는다.

세주는 대답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음.”

인준이 먼저 짧은 신음을 흘린다.

유진이 그 뒤를 따랐다.

“삼켜.”

치용이 즐거운 얼굴로 말하며 둘을 들쳐 업었다.

“가자.”

치용이 둘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고, 세주는 함선 지휘실로 향했다.

“일반 사병 앞에서 이상한 짓 좀 하지 마라.”

나호필이 피곤한 눈으로 말한다.

“무슨?”

“곰 대령 팼다면서?”

“패긴.”

좋은 거 나눠 줬을 뿐이다.

그 사이, 우적 하고 오늘의 할당량인 마지막 에너지 바를 씹어 삼켰다.

“혼자 먹냐?”

뭐 이렇게 먹는 걸 다 탐내는지.

세주는 대충 씹어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없어.”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다.

이 에너지를 소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적은?”

메카니모스 모행성으로 날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적들도 그걸 알 테고.

몰랐다면 파이브란 놈을 보내지도 않았을 거다.

“아직.”

나호필은 여전히 피곤한 기색이다.

이 함선에 일반인은 거의 없다.

대부분 D를 먹은 병사, 하지만 그 와중에 일반 성인 정도의 육체로 버티는 이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나호필이다.

“좀 쉬어.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은 없다.”

“알지만, 마냥 쉴 수는 없는 자리다.”

“쉬어.”

세주는 두 눈을 보고 강하게 말했다.

자신이 인류의 구심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영웅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기쁘기보다는 할 일을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인류의 구심점은 이 남자다.

나호필.

이 자가 쓰러져서는 될 일도 안 된다.

세주는 옆에서 나호필을 봐왔다.

천재.

두 글자의 수식어로 대변되는 인간이다.

광화문의 위령비, 사병이 돈을 쓰게 만드는 구조.

군 내부에서 다양한 제도를 만든 남자다.

그것도 단시간 내에 최대한 효율을 뽑아내는 것들로만.

사망률이 극도로 높은 부대가 사람을 계속 받으면서도 부대를 유지한 저력은 모두 이 남자에게 있었다.

슬픔에 찬 사람들이 슬퍼하도록 위령비를 세우고.

군인에게 게임처럼 돈을 투자해서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게 한다.

평소라면 엄두도 못 낼 일들이지만, 이런 시국이었기에 빛을 낸 거다.

이 자는 위기 속에 태어나는 진짜 영웅이었다.

‘아니, 죽은 이 모두, 영웅이라 불러 마땅하겠지.’

세주는 속으로 그렇게 자조했다.

죽은 이를 잊는 건 싫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아직 인류를 구석에 몰아넣은 개자식들은 버젓이 행성 하나씩 차지하고 배 깔고 누워서 TV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자식들 배때기에 총알을 박아넣듯, 칼날을 들이밀 듯.

복수는 심플하고 간단하게 할 작정이다.

“그러니까 쉬어.”

다시 입을 연 세주를 향해 나호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자긴 해야겠다.”

그가 빈자리다.

나기주가 슬그머니 들어섰다.

“필승!”

세주를 보고 터지는 경례다.

어린아이가 우상을 바라보듯, 기주는 그렇게 세주를 본다.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많이 컸다.”

세주는 그저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줄뿐이다.

호필에게 휴식을 권고한 세주는 방으로 향했다.

치용이야 몸뚱이가 워낙 튼튼하니, 강렬한 에너지를 먹고도 버티는 거다.

정작 지금도 속이 부글부글 끓고, 내장이 곤죽이 된 기분일 거다.

세주도 잘 안다.

처음 노블 패스를 잃고, 에너지 바를 먹었을 때 똑같은 걸 경험했으니까.

-근데 팽한테는 안 줘?

‘응. 걔는 못 버텨.’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르겠다.

프로비던스는 치용과 인준, 유진을 보고 분석했다.

에너지 바를 먹고 버틸 수 있는 확률을 50%로 봤다.

세주는 고개를 저었다.

100%.

전부 버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럼 팽은?

모르겠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죽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프로비던스도 그 의견에는 동의했다.

그가 이해 못 하는 건 하나다.

-아니, 쟤네도 죽을 확률이 50% 라니까? 근데 쟤네는 먹이고 팽은 놔둔다고?

나머지 50% 확률의 근거를 궁금해하는 거다.

기계로서는 이해 못 하는 부분이다.

-무슨 근거야? 그건?

세주는 속으로 웃으며 답했다.

‘감.’

팽은 그 감이 말한다.

애초에 그릇이 다르다고.

팽이 떠오르자, 기주의 눈빛이 같이 떠오른다.

팽은 자신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준다.

연인 간의 사랑은 아니다.

그녀가 세주를 보는 눈은 연인이기보다는 존경의 눈빛이다.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라면 세주는 그녀의 눈이 정말로 자신을 비추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준비는?

이번 초인프로젝트는 2단계로 나뉘었다.

첫 번째 단계는 소멸.

전신의 노블 패스가 말끔하게 사라지는 과정이다.

그다음 단계는 지금이다.

“후아.”

숨을 내쉰다.

적군이 마중을 나온다고 해도, 프로비던스는 지금부터 2시간은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세주의 에너지 컨트롤 능력을 봤을 때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세주는 눈을 감고, 이제까지 먹은 에너지를 꾸역꾸역 끄집어냈다.

전신에 차돌처럼 뭉친 에너지를 살살 건드려 부드럽게 만든다.

동시에 실타래처럼 풀린 에너지를 전신에 퍼트린다.

노블 패스는 없다.

애초에 이러기 위해서 없앤 거다.

전신에 에너지를 가득 채우기 위해서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마치 콴의 몸이 에너지로 이루어진 것처럼.

그렇게 만들 작정이었다.

진정한 초인.

인간을 벗어나기 위한 단계다.

드드드드.

전신이 떨렸다.

아니, 실제로는 가만히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세주는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전신에 에너지가 퍼진다.

먹어서 소화한 에너지는 이전의 다섯 배다.

전신을 채우는 데, 그 에너지의 십분의 일이 들었다.

-이제 시작이야.

두 번째 단계는 에너지 컨트롤 능력 중 하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중첩.

쌓고 또 쌓는다.

그 색이 진해져 검어질 때까지.

그게 바로 커버링 기예의 궁극.

오닉스였다.

쌓인 에너지를 찍어 누른다.

교묘하게 생긴 틈으로 다시 새로운 에너지가 쌓인다.

쌓이고 또 쌓인다.

단순 작업이지만, 잠깐의 실수로 혈관이 터지고, 내장이 박살 난다.

알고 있다.

하지만 세주는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다.

-누가 괴물인지.

집중하고 있는 세주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프로비던스가 중얼거린다.

우주의 어떤 종족도 이리 유연하게 노블 에너지를 다루지 못할 거다.

그 콴조차 오닉스를 다루지 못해 다른 힘을 섞어 은청색의 에너지를 썼으니.

2시간을 예상했으나, 30분이 채 안 걸렸다.

때마침, 다시 눈을 뜬 세주의 귀에 웨에에에엥하고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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