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167. 마이크로 소프트
“우리 돌아간데.”
이번 전투에서 눈을 다쳐 사선으로 붕대를 칭칭 감은 이였다.
“그래?”
그 옆에는 무릎 아래부터 다리가 잘린 전우다.
“반병신이 돼서 돌아가네.”
박소영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눈을 잃은 남자, 조태석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었다.
심각한 어투가 아니다.
이 박소영 중사는 본래 이 모양이다.
“휠체어는 국가에서 공짜로 줄까?”
자신의 신세까지도 농담으로 치부하는 긍정적인 여자다.
“야, 휠체어는 욕심이지.”
“그럼?”
“목발 정도야 주겠지.”
태석도 맞장구를 친다.
그게 둘이 친한 이유다.
주변에서 둘의 농담을 듣고 낄낄거렸다.
“어디서 연애질이야?”
눈매가 사나운 상사가 딱딱한 얼굴로 말한다.
생긴 건 사납지만, 이 중 제일의 낙천가다.
“연애질이라니, 저 눈 높습니다. 상사님.”
조택석의 말에 박소영이 이마에 핏대를 세운다.
“네 다리도 잘라주랴?”
“사랑싸움이라면 관둬.”
상사가 끼어들었다.
물론 실제 싸움은 아니다.
이들이 이런 어울리지 않는 만담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딱딱한 분위기 때문이다.
승전보?
아니다.
환호를 울리기엔 잃은 사람이 너무 많다.
이들은 마지막 콴의 발악을 봤다.
그 지옥도에서 살아남게 된 이들은 이겼다는 안도보다, 더 싸워야 한다는 불안감이 더 컸다.
그런 분위기를 읽은 베테랑들이 입을 푸는 거다.
태석이 붕대에 감긴 눈을 가리키며 말한다.
“후, 제 눈이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이 년이랑 살림 차릴 생각은 없습니다.”
“오냐. 내 두 다리가 다시 돌아오면 널 휘감아서 내 마력에 빠지게 해줄게.”
태석과 소영의 말에 상사의 딱딱한 얼굴이 깨지며 피식 하고 미소가 흐른다.
“한 번 해보든가.”
“너 잘 모르나 본데, 나한테 한 번 빠지면 못 헤어 나온다?”
“어떤 의미로?”
“물론 육체적인 의미지.”
수위가 올라가는 말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화이팅! 박소영 중사님!”
여자 병장 하나가 외친다.
“조태석 중사님 보는 눈이 없으시네. 저는 안 됩니까?”
남자 하사다.
“야, 어디서 감히 새치기야. 저는 어떻습니까? 외팔이지만 휠체어 뒤에서 잘 밀어 줄 자신은 있습니다!”
같은 중사지만, 호봉이 낮은 동료다.
“넌 내 타입 아냐.”
소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다시 웃음이 터진다.
“거울부터 보십쇼!”
“중사님은 혼자 사는 게 많은 여자들의 행복일 겁니다!”
“괴물!”
“야, 괴물 누구야?”
놀림 받은 중사가 눈을 부라렸다.
치용보다는 아니지만, 보니 꽤 사납게 생기긴 했다.
잠시 웃음이 오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곳에 모인 이들의 분위기는 묵직했다.
그 와중에 뒤에서 누군가 쏙 그들 사이로 들어온다.
“야, 여기 다리병신 누구야?”
다리병신이라.
놀리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그건 친분이 있고, 같이 밥 먹고 잠자는 이들이기에 할 수 있는 농이다.
타인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모두의 시선이 날카롭다.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되는 이 앞에서 할 말이 아니다.
“얼굴 뚫어지겠다. 자식들아.”
나타난 이를 본, 박소영은 잠시 기억을 뒤졌다.
‘어디서 봤는데.’
그런데 통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연예인은 아니다.
그 정도로 잘 생긴 얼굴은 절대 아니니까.
하지만 꽤 준수하다.
“너구나.”
나타난 남자가 성큼 박소영에게 다가왔다.
“죽고 싶나본데.”
사납게 생긴 중사다.
그 옆으로 여자 병장과 하사도 붙는다.
조태석이 소영의 앞을 가로 막는다.
훅.
바람이 불었다.
아니, 모두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남자는 어느새 조태석의 뒤.
박소영의 앞이다.
그제야 그녀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했다.
아니, 그녀 뿐 아니다.
놀리던 딱딱한 얼굴의 상사도 그를 알아봤다.
“쉿.”
그가 낌새를 눈치 챘는지, 검지를 들어 코에 갖다 댄다.
“조용.”
오와 열을 맞춰 서 있는 건 아니지만, 이곳은 누군가의 연설을 위해 모인 자리다.
돌아갈 자들과, 싸울 자들이 헤어지는 자리.
그리고 그 연설의 주인공 중 하나임에 분명한 자.
그 남자가 박소영의 머리 위로 손을 뻗는다.
“어딜!”
태석이 뒤를 돌아 그를 덮치려 했다.
“멍청이!”
박소영이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급이 다른 인간이다.
우웅.
그 사이 밝은 고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 생겼다가 팡하고 터지고.
태석은 달려들다 말고 공중으로 휘릭 돌았다.
“시끄럽게 좀 굴지 마라. 다들 쳐다 보잖냐.”
인류의 영웅이라 불리던 남자다.
반세주는 그렇게 태석을 밀어내고 소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좀 아플지도 모른다. 어금니 꽉 깨물고.”
그녀는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다.
아니, 무언의 위압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리고 곧 잘린 다리부터 통증이 시작됐다.
‘환상통?’
아니다. 그렇게 치부할 고통이 아니다.
“야, 네 동료 골로 가기 전에 어깨 좀 붙들어.”
태석과 몇몇이 놀란 눈으로 세주를 보다 소영을 붙잡았다.
“끄으으으.”
비명을 지르려는 그녀를 보고 세주가 말한다.
“재갈이라도 물리자. 비명 지르기 전에.”
태석이 급한 마음에 자신의 옷을 북 찢어서 그녀의 입에 물려줬다.
몇 겹으로 겹쳐진 배리어 섬유를 그녀가 꽉 깨물었다.
파직.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따끔했을 테지만, 그런 감각을 느낄 겨를도 없을 거다.
무릎 밑, 다리가 재생 중이니까.
“끄으으으윽.”
그녀의 비명은 짧지 않았다.
치용이나 여타 다른 이들의 재생과는 다르다.
애초에 가진 에너지도 다르고, 체력도 다르니까.
그나만 단련을 거듭한 군인이니까 버티는 거다.
일반인이면 이모탈 엔젤스 고리를 버틸 수도 없다.
근 10여분 극통이 지속되자, 눈이 까뒤집히며 흰 자위를 보였다.
하지만 끝내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하아, 하아.”
지쳐서 내뱉는 호흡이 달뜬 신음 같았다.
태석이 옆에서 그녀를 부축했다.
다리가 자라났다.
주변에서 주목할 법도 했지만, 아무도 그들 사이에 일어난 소란을 보지 않았다.
소영이 고통에 시달리는 사이, 연설이 시작돼 모두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친애하는 전우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신 용기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세주가 힐끗 그를 바라봤다.
연병장이 없는 함선이다.
무기고를 치워 넓은 공간 위, 미사일이 단상이다.
이름도 못 들어 본 대령이 나와, 친애하는 전우란 개소리를 하고 있다.
쓸데없는 소리다.
물론 듣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따분하지만, 참는다.
애초에 상급자의 연설이란 그런 거다.
들을수록 잠이 오는 마력이 있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훈화랑 다를 게 없다.
“감사합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소영이 말했다.
“응. 나중에 밥 사.”
세주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리고 연설을 하는 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소리를 정말 길게도 하네.”
“풉.”
그 말에 상사가 웃음을 참지 못 했다.
아니, 황당했어야 함이 옳지만.
때마침 그도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방심이 낳은 결과다.
“웃겨?”
세주가 돌아서 묻자. 상사가 굳은 얼굴로 부동자세를 취한다.
“아닙니다.”
“쳇, 못 웃겼네. 웃길 줄 알았더니.”
이 또한 신박한 개소리다.
상사가 황당해하고 있을 때, 소영은 두 다리로 일어났다.
태석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세주를 뜯어본다.
“올 킬.”
소영이 속삭이자, 그제야 태석도 그를 알아봤다.
“…왜?”
많은 것이 함축된 질문이었다.
굳이 대답해 줄 필요는 없지만, 지루한 연설을 듣는 것보다는 나았다.
“치료할 수 있는데, 딱 열두 번 가능해. 오늘의 마지막 수혜자다.”
설명 치고는 더럽게 성의 없다.
애초에 이해하라고 하는 말도 아니다.
시간 때우기다.
“오늘 연설 하시는 거 아닙니까?”
멘탈을 부여잡은 상사가 물었다.
“내 차례도 있을 거야.”
“그런데 왜 여기에…?”
말끝을 흐린다.
과거 군 생활에서 저렇게 하면 군홧발로 조인트를 까였을 거다.
그만큼 당황했다는 거겠지만.
“방금 말한 것 같은데, 불구자 치료 중이라니까.”
소영의 다리를 본 상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 마지막으로.”
미사일 단상에서 대령이 다시 입을 연다.
그걸 본 누군가 뒤에서 앞으로 나왔다.
“그만.”
오감이 발달한 세주다.
나호필이 나서서 그를 뒤로 밀며 입을 여는 게 들리고 보였다.
“이대로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려운 상황입니다.”
나호필은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다.
“앞으로 우리는 메카니모스와 바이탄을 상대로 싸울 겁니다.”
사기가 뚝뚝 떨어진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들도 보였다.
부상자로 돌아가는 이들이다.
나호필은 말재주가 좋은 놈이다.
저렇게 나오는 이유는 하나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기를 올리고 싶다는 거다.
약속하지 않아도, 저렇게 행동하면 세주가 나설 거라는 계산일 거고.
-약았네.
그걸 파악한 프로비던스가 말한다.
‘그게 쟤 장점이야.’
밉지 않게 의도를 엿보게 해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거다.
장점이다.
“야, 외눈.”
세주가 태석을 부른다.
“중사 조태석.”
멘탈은 튼튼한 지, 바로 관등성명이 나온다.
“너 쟤랑 결혼하면 나한테 양복 한 벌이다.”
“…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대화다.
“다리 생기면 너희 응응 한다면서. 못 헤어 나오면 결혼하는 거지 뭐.”
태석과 소영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나이 차서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난 개인적으로 양복보다는 소개팅이 좋다. 가슴 크고, 섹시한 여자가 내 타입이고. 착하고 돈도 잘 벌면 더 좋고.”
“그렇습니까?”
소영이 어이없는 얼굴로 되묻는다.
“응.”
세주가 말하곤, 부상자 집단 사이에서 앞으로 나간다.
“하지만, 전 다리가 생겼으니까 다시 싸울 겁니다.”
소영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죽고 싶다고 발악을 하네요.
애초에 이곳에 지원한 이들의 대부분은 저런 타입 일 거다.
지구를 침공한 개자식들을 죽이는 걸 목적으로 한.
두 팔이 남은 한 방아쇠를 당길 이들이다.
‘넌 좀 닥치고.’
프로비던스의 말을 무시하고, 세주를 뒤를 돌아봤다.
“아서라, 그게 막 다리가 자라났다고 바로 예전 그 다리가 아니야.”
그리고 말을 덧붙인다.
“이제 네 할 일은 싸움이 아니라, 저 외눈 새끼랑 응응 해서 애 낳고 잘 먹고 잘 사는 거라고.”
세주가 말하고 앞으로 나갔다.
이모탈 엔젤스는 무한이 아니다.
그나만 시간이 닿는 대로 불구자는 치료했다지만, 가뭄에 침 뱉는 수준이다.
마음이 무겁다.
지키지 못한 이들을 직시하는 건 괴롭다.
-형 탓 아냐.
눈치 빠른 기계 새끼가.
‘알아.’
알지만,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세주는 성큼성큼 걸었다.
요리조리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미사일 단상에 훌쩍 뛰어 올라갔다.
“어디 갔다 와요?”
뒤쪽에 도열한 간부 라인이다.
유진이 세주를 보고 물었다.
“왕진.”
“아아.”
“쓸데없는 짓이야.”
한 번 말했듯, 가뭄에 침 뱉는 격이니.
인준은 세주의 행동 자체에 딴지를 거는 거다.
불필요한 일에 심력을 쏟을 때가 아니라는 거다.
물론 세주는 그런 인준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아아.”
누군가 세주를 알아보고 입을 벌린다.
“만나서 반갑다.”
그가 나호필의 옆에 서서 입을 연다.
위태롭다.
군사들이 모인 곳에 하늘을 찌를 듯한 사기 대신, 외나무다리에 선 8살 박이 아이를 보는 기분이다.
이런 순간에 필요한 건 무엇일까?
다 살려줄 테니, 걱정 말라는 다짐?
거짓이다.
자신만 믿으라는 호언장담?
그 또한 거짓이다.
세주는 앞으로의 일을 예견하는 점술가가 아니다.
이럴 땐 필요한 건 웃음일지도.
세주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웃을 만한 얘기를 떠올렸다.
“빌 게이츠가 노래 어떻게 부르는 지 아는 사람?”
좌중에 침묵이 무섭게 퍼진다.
1분 동안 입을 다문 세주다.
“무슨 헛소리야?”
어금니를 깨문 나호필이 물었다.
그 또한 무시한 세주가 입을 열었다.
“마이크로 소프트하게.”
싸아아아아아.
순간 일대 공간이 냉동고로 변했다.
-미쳤어?
프로비던스를 선두로.
뒤에서 유진이 질린 기색으로 말했다.
“미친 거예요?”
“쏴 버릴까.”
인준이 이어서 말한다.
[대장, 유머 감각은 대단해]
팽은 뭘 해도 좋단다.
[현재의 분위기를 봤을 때, 대장이 시도한 개그는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사기에 미치는 영향 1200%]
야, 숫자로 얘기하지 마.
실버의 중얼거림 뒤다.
뒤에서 치용이 성큼 나온다.
“솔직히 말해. 너 형님 아니지?”
압권인건 역시 이 새끼다.
“나 맞어. 이 무식한 곰탱이 새끼야.”
“야이, 미친놈아. 사기 북돋으라니까, 얼려죽일 작정이냐?”
이성을 반쯤 놓은 나호필이 외쳤다.
이 모든 대화가 군 모두에게 퍼졌다.
프로비던스를 통해 퍼진 확성 기능 덕분이다.
“재미없냐?”
다시 전면, 연설을 듣기 위해 모였던 이들에게 물었다.
“네. 졸라 재미없습니다! 시파, 개자식님은 싸움이나 하세요. 개그는 우리가 할 테니!”
누군가 외쳤다.
“뭐? 개자식? 너 뒤진다.”
주먹을 들어 보인다.
위협적일 법도 하건만.
“맞습니다. 개자식님은 싸움만 좀 잘 해주십쇼! 개그는 우리 겁니다.”
“제발 전쟁 끝나고 연예인은 하지 마세요. TV에서도 그 딴 걸 하면 암살 해버릴 겁니다.”
“우우우우!!”
“입 다물어야 미남!”
마지막 입 다물어야 미남은 뭐냐.
“하여간, 미쳐 가지고. 알았다. 싸움은 내가 하께!”
세주가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뒤에 일개 군단 급의 부대원을 두고.
세주는 군을 내려다봤다.
“니들은 살아서 개그나 칩시다. 오키?”
더 없이 가벼운 삼류 양아치 말투에 어째서 이들은 열광하는지.
“와아아아아아아!”
“반세주 개자식!”
나호필은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