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162. 여왕
유진이 위치를 찾아 전송한 직후다.
세주는 쉽을 버리고 흉몽 모드를 켠 채 날았다.
‘속전속결로.’
그리고 하늘을 날면서 밑을 향해 벼락 두 자루를 꺼내 겨눴다.
‘연사, 광편, 유지.’
끊임없이 기어 나오는 놈들을 향해서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둥!
방아쇠를 당기자 양팔이 미친 듯이 떨린다.
동시에 변형된 총구에서 빛이 폭사했다.
어른 주먹만 한 구슬이 사방으로 흩어져 퍼진다.
콴 놈을 관통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겨우 땅 50cm 높이에서 그냥 떠 있다.
-광편탄 총 98개.
프로비던스가 뿌린 탄의 개수를 알려준다.
커버링 기예 양도다.
세주가 쏜 탄 하나하나는 광탄이 아니었다.
광편이 겹겹이 쌓인 폭탄이다.
그걸 겉에 얇은 막을 씌운 형태다.
양도는 프로그래밍과 같다.
그리고 그건 응용하기에 따라 무궁무진한 기술을 만들 수 있었다.
“터져라.”
세주가 날아가며 읊조렸다.
동시에 밑에서 그가 쏜 광편탄 98개가 사방으로 흩어져 터진다.
퍼버버버버벅!
폭음 대신이다.
광편, 작은 빛의 칼날에 전신이 난자된 콴 놈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쓰러진다.
곧 바닥에 녹색 체액이 시냇물처럼 흘렀다.
단숨에 수백을 죽인 세주는 전황을 살폈다.
치용의 돌격대는 무지막지한 위용을 펼치고 있다.
“트레에!”
적의 외침이 처절하게 울린다.
한두 놈이 아니다.
열세를 보이자, 도망가는 놈들도 있다.
콴이라는 것들도 죽을 때가 되니, 저런 비명이라니.
꽝꽝!
폭음이 연이어 울리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인준이 지대공 시설을 부수고 날아온다.
세주는 벼락 대신 침묵을 꺼냈다.
그리고 도주하는 콴의 머리통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후후후훙.
퍼버버벅!
4연발, 도망가는 놈들의 머리통이 터진다.
-추호의 용서도 없구나.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당연한 말이다.
용서라니.
이들이 인간에게 한 짓은 용서받을 수 없는 종류다.
이 개 같은 새끼들 때문에 가족과 연인을 잃은 이들이 있다.
용서는 그들이 하는 것이다.
세주는 그들의 마음을 100% 공감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지금 할 일은 하나다.
공감하지 못한 감정으로 그들과 울어줄 수 없다면.
남은 건 행동뿐이다.
둥.
에너지를 뭉쳐 발판을 만들고 박찬다.
가속을 이용해 등 뒤에 달린 추진기가 빛을 뿜는다.
콰우!
그대로 한줄기 푸른빛이 돼 허공을 가로지른다.
-현재 상태에서 2시 방향.
-지하.
-정유진과 일행 발견.
-적 대공포다.
프로비던스는 숨 쉴 틈도 없이 말했다.
유진이 잠행이라면 세주는 시선을 끌어모았다.
일부러다.
앞쪽에 전력을 집중하지 말라는 경고다.
세주의 눈앞에 전투형 콴 십수 마리가 달려온다.
[여기가 어디라고!]
[이노옴!]
통역기가 그들의 말을 전한다.
트레, 트레에에 라고 염소처럼 우는 놈들이다.
세주는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차가웠다.
뜨거워진 심장이 박동하는 것과 반대로 전황이 눈에 잡힐 듯 보인다.
집중 상태가 되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은 안으로 침전되는 것과는 반대다.
섬세한 신경 다발이 사방으로 퍼져, 정보를 전해온다.
-오류 발생. 어? 형.
프로비던스가 말한다.
세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흉몽 모드를 시행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지만, 당황하진 않았다.
자연스러운 이해가 뒤따랐다.
마치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처럼.
비구름이 모이면 빗줄기가 내리는 것처럼.
세주는 현재 자신의 상태를 알았다.
동기화.
프로비던스의 눈과 일부 감각을 공유한 적은 있지만.
이번엔 다르다.
그들이 공유하는 건, 감각이 아니었다.
뇌다.
생각하는 순간, 이해하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한다.
프로비던스가 보는 세계는 인간이 보는 것과는 달랐다.
파직.
작은 스파크가 튄다.
흉몽 모드로 칼큐레이팅 모드를 사용한다고?
그건 말 그대로 시식만 해본 거다.
본 식사는 달랐다.
상대의 움직임과 의도가 전부 보인다.
예지라고 해도 좋았다.
‘할 일이 단순해지네.’
복잡한 공격 궤도도 필요 없고, 필요 이상의 출력도 필요 없다.
프로비던스의 연산력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계산하고, 총구를 겨눠 쏠 뿐.
두두둥!
퍼버벅.
세 발의 광탄이 적 여덟을 죽인다.
머리를 관통한 탄이다.
나머지 몇 마리도 달려들어 블레이드를 휘둘러 썰었다.
고작 몇 초다.
동시에 세주는 정신이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느꼈다.
*
“그러지 마.”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어요?”
누구?
들리는 목소리가 어색하다.
“가야 해.”
이번 목소리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니까.
검고 깊은 동굴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 안으로 들어간다.
“빌어먹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마스터.
프로비던스다.
아니, 프로비던스가 맞나?
가볍고 통통 튀는 목소리가 아니다.
무겁고 진중한, 묵직한 목소리가 귀에 들린다.
“또 보자.”
자신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
“형님!”
이번 목소리는 유진이다.
눈을 떴다.
유진이 세 걸음 떨어져 세주를 보고 있다.
“괜찮은 거죠?”
눈을 깜빡이며 유진을 보자 그가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왜?
“난 언제나 괜찮지.”
“휴.”
세주는 전신이 욱신거렸다.
양손에 어느새 블레이드 그립이 쥐어져 있다.
그걸 인벤토리에 넣었다.
‘무슨 일이야?’
-…폭주했어.
폭주?
뭐가?
세주는 알 수 없는 소리였다.
‘나중에.’
일단은 여왕에게 가는 게 먼저다.
“내려가자.”
“난 제희를 데리고 복귀하겠다.”
세주의 말에 무영이 답했다.
이제희.
유진이 발견한 희귀 재능의 사이키커다.
“그래.”
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곳에 굳이 데려갈 필요는 없을 거다.
“전 따라갈 겁니다.”
장왕이다.
“그러든지. 여기지?”
마지막은 유진을 향해 묻는다.
비스듬하게 깎인 땅 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네.”
세주는 서슴없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
여왕은 현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수없이 많은 시간을 살아온 그녀다.
‘현 상황에 대한 대비는?’
[여왕님]
호위 전사단 스물이 옆으로 도열 한다.
‘힘으로 제압한다.’
그게 첫 번째 방안이다.
하지만 무리다.
가르간, 쿠인, 벤텀에 이어, 일류 전사 수십을 죽이고 온 인간들이다.
자신의 둥지를 침입한 인간은 위험하다.
그녀는 첫 번째 방안이 아닌, 다른 수단을 강구했다.
‘도주.’
도망도 한 궤다.
하지만 저 인간들이 자신들을 놓칠까?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두 가지 전부 그릇된 답이다.
도주도 결국 할 수 없다.
그녀는 콴의 여왕이다.
전투 민족임을 부르짖는 콴의 여왕이 등을 보인다면 어떤 콴이 남아 저들과 싸울까.
그건 무리다.
그녀에게 주어진 ‘책무’는 콴을 이끄는 것.
‘자폭.’
마지막 답은 그럴듯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왕의 바로 곁, 작은 빛이 흘러나온다.
휘장에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콴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이다.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가장 충실한 종복이자, 유일하게 옆자리를 허락한 존재다.
끄덕.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로 그녀의 행동방침이 정해졌다.
그녀가 할 일은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누가 오든, 이곳이 침공당하든.
그녀는 왕좌를 지킨다.
그게 콴의 여왕으로서 보일 태도다.
펑!
기묘한 문양이 아로새겨진, 문이 터진다.
그녀의 둥지, 지하에 자리 잡은 왕궁이자 알현실의 문이다.
[왔구나]
여왕이 입을 열어 말했다.
그 앞, 세 명의 인간이 유유히 걸어 들어온다.
둥!
아니, 들어오는 게 끝이 아니다.
오자마자 탄환을 뱉는다.
팅!
그 앞, 호위 중 하나가 블레이드를 들어 비껴낸다.
자이스.
호위 중 최강이다.
제너럴 급에서 가르간과 동수를 이루는 콴이다.
그의 별명은 비스듬한 칼.
블레이드 한 자루로 완벽한 방어를 하는 자이스는 그야말로 여왕의 호위에 걸맞는 콴이었다.
*
유진은 눈치를 봤다.
장왕은 숨도 쉴 수 없었다.
세주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나풀나풀 가벼운 어투와 어떤 일이든 웃으며 해결하는 남자.
그게 반세주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 세주의 얼굴은 보는 것만으로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호위단 출격]
맞은편 콴의 입이 열린다.
동시에 유진과 장왕도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괜찮다.”
세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어둡고 무거운 에너지가 뻗어 나왔다.
에너지는 질량이 없다.
무게가 없는 에너지가 무겁다고 느껴진다.
아니, 이건 위압감이었다.
투두둥!
세 발의 탄환이 날았다.
퍼버벙!
호위단 중 셋의 머리통이 깨진다.
[배리어가 소용없다. 회피 기동]
자이스는 차분하게 본 후,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패착이었다.
세주의 벼락이 다시 울었다.
투두두두두둥!
전면을 탄환이 가득 채운다.
그 탄환은 보기만 해도 불길한 칠흑의 검정이었다.
퍼버버버버벅!
녹색 체액이 튀고, 그 앞 블레이드를 휘돌려 간신히 살아남은 자이스가 입을 열었다.
[이게 뭐냐?]
그는 진정으로 궁금했다.
전 우주를 통틀어 에너지를 가장 잘 다루는 건 콴이다.
자이스는 그중에서도 결을 읽어 적의 공격을 비껴내고 튕겨내는 걸 장기로 삼는다.
그런 그의 눈에 절망이 깃든다.
“오닉스.”
세주가 입을 연다.
그리고 벼락의 총구를 자이스의 머리에 겨눈다.
퉁.
한 발의 탄환이 날고, 그대로 자이스의 머리통이 터진다.
쨍.
발악하듯 든 블레이드 날이 뒤늦게 깨진다.
산산이 부서진 에너지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입자로 흩어진다.
넓게 펴진 휘장을 향해 세주가 총구의 방향을 바꾼다.
“죽고 싶지 않다면, 말하라.”
쩌릿쩌릿.
어깨를 짓누르는 위압감이다.
유진은 이 감각을 기억했다.
방금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온 세주가 보여줬던 그 기운이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교관님.”
장왕이 미간을 찌푸린 채 유진을 불렀다.
“가만히 있어.”
그를 제지한 유진이다.
세주는 여전히 벼락을 든 채, 휘장을 겨누고 있다.
[대단하구나. 인간]
휘장 안쪽이다.
버릇없는 자식을 키운 어미의 목소리다.
평소 같았으면, 욕을 한 바가지 해줬을 텐데.
그럴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아니,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분노가 끓어오른다.
-정신 차려. 모자란 형님아.
팟.
그의 눈앞에 홀로그램 형상이 나타난다.
작고 어린아이다.
프로비던스가 곧잘 보이던 모습이다.
사실 세주는 저 모습을 보는 것이 싫었다.
어릴 때 잃은 동생과 똑 닮은 저 얼굴.
목소리.
눈을 감았다가 뜬 세주는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알았다면.
“후우우우우.”
숨을 크게 들이마신 세주는 태세를 바꿨다.
이런 건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다.
“자, 아줌마. 굳이 인류에게 시비를 건 이유를 100자 이내로 서술해봐. 적당히 들어준다 싶으면 봐줄 수도 있어.”
[봐줘?]
“이유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미없을 거다.”
세주가 웃으며 답했다.
“진심이니까, 오해하지 말고.”
여왕은 태어날 때부터 감정이 없었다.
그녀는 휘장을 걷으라 손짓했다.
[걱정 마십시오]
바로 옆, 언제나 믿는 그가 말했다.
휘장이 걷어지고.
세주는 여왕을 올려다봤다.
눈썹이 자기도 모르게 꿈틀하고 움직인다.
“이봐, 장난하지 마.”
세주가 입을 연다.
유진도 미간을 찌푸리고, 장왕도 자기도 모르고 삿대질을 했다.
“어어어.”
놀랄 법도 했다.
이곳은 콴의 전당.
그리고 그 전당의 가장 높은 곳, 콴의 여왕이 있어야 할 곳에 전혀 다른 존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