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157. 아, 재밌었는데
원투.
펑! 펑!
얼굴 대신 렌즈가 달린 괴물 놈이다.
시원은 배운 대로 주먹을 날렸다.
일단 공격할 부위는 렌즈.
메카니모스라는 괴물 종족과 싸우는 법이다.
“트레에!”
괴성을 지르는 놈의 복부에 샷건 총구를 붙였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펑!
녹색 체액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열둘.’
경쟁은 아니지만, 시원은 숫자를 셌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목숨을 걸고 걷는 길이다.
전황을 파악할 눈도 위치도 아니었다.
그저 앞에 다가오는 놈을 부수고 죽인다.
그게 자신이 할 일이었다.
콰가각!
숨을 쉬고, 싸운다.
방아쇠를 당기고 주먹을 내지르고, 발을 휘두른다.
덤벼드는 적들은 끝이 없었다.
잡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수없이 받았던 훈련만이 시원을 살릴 수단이었다.
두두두둥!
배리어로 막는 건 최악의 선택이다.
노블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쓴다 해도 수십 시간을 싸울 순 없다.
에너지는 최대한 아낀다.
몸을 비틀어 레이저 포를 피한 시원은 몸을 날렸다.
같은 의미로 원거리 저격은 자신의 몫이 아니다.
자신의 병과는 어디까지나 돌격병이다.
비무장지대 전투처럼 이곳도 병과는 네 개 그대로다.
돌격, 의무, 저격, 척탄.
시원은 그중에 돌격병과 훈련을 받았다.
콰각!
적의 머리를 발로 밟고 샷건을 겨눈다.
땅! 꽝!
광탄이 빗발치며 적을 부수고.
어느새 뽑아 든 블레이드는 뒤에서 날아오는 적의 목을 자른다.
그사이에 생긴 빈틈으로 노란 칼날을 든 놈이 시원의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이건 못 피해.’
순간적인 판단이다.
피하지 못하면 배리어다.
배리어는 탄을 막는 데 효율적이지만 블레이드를 막을 때는 최악의 선택이다.
머리 위로 배리어를 펼치려는 순간.
꽝!
적의 머리가 날아간다.
‘저격병.’
앞에서 날뛰며 싸우는 사이 뒤쪽 어딘가 에서는 돌격병을 지키기 위한 이들이 있었다.
간신히 한숨을 돌린 시원은 숨을 몰아쉬었다.
“후아, 후아, 후우우우.”
긴장감이 전신을 찌르는 시간은 지났다.
지금은 쏟아지는 아드레날린 덕분에 지친 기색도 못 느낀다.
하지만 이 전투가 끝나고 나면 근육통에 노블 패스까지 욱신거릴거다.
꽉.
아직은 전투 중, 나중은 살아남았을 때나 생각할 때다.
고통이란 산 자의 전유물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시원이 다시 적을 찾을 때였다.
[날뛰는 인간]
개인 통역기를 달지 않았으니, 적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런 경우는 하나뿐이다.
적이 말을 전하고 싶어 개인적으로 통역기를 사용한 경우.
일반 메카니모스나 콴의 병사는 아니다.
시원은 긴장하며 블레이드를 세우고, 배리어를 펼쳤다.
동시에 샷건을 앞으로 겨눈다.
반사적이었다.
아니, 그게 끝이 아니다.
목소리가 들린 순간, 꽝하고 저격병의 광탄이 날아와 적을 때렸다.
시원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절대로 방심하지 않았지만.
슈걱.
뭔가 번쩍인다 싶었을 뿐이었다.
‘왜?’
몸이 붕 뜬다.
중력 제어 장치가 망가졌나?
통증보다 의아함이 앞섰다.
불붙은 채찍으로 허리를 감싼 것 같은 격통은 그다음이다.
‘아아.’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상, 하체가 분리된 인간이 살아남을 순 없었다.
스코프로 그걸 지켜본, 시원의 파트너 종호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뭐가 움직이긴 한 거야?’
붉은빛이 그냥 번쩍였다.
그러더니, 수십의 적을 유린하던 시원의 사이클롭스가 박살났다.
그리고 그 적의 렌즈가 다시 빛났다.
번쩍!
빛이다.
붉은빛이 종호의 눈앞을 가득 채웠다.
“끄아아아아.”
그는 시원과 다르게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
이제까지 싸우던 적과는 다른 형태의 레이저 포다.
그게 종호를 휩쓸고 가자, 사이클롭스가 조각조각 분해된다.
사이클롭스 하나를 통째로 삼킨 붉은 빛이다.
그걸 뿜은 이가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도 날뛰는 인간이 많다.
‘바이탄 새끼들.’
2급 전투원 세타필은 바이탄을 싫어했다.
놈들은 결국 인간이 만든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사이클롭스를 보는 순간 알았다.
저건 바이탄의 아머 기능을 가져온 것들이라고.
‘인간도 바이탄도 전부 먹이일 뿐이다.’
세타필은 다시 몸을 움직였다.
바이탄의 껍질을 쓰고 날뛰는 인간을 모두 쓸어버릴 셈이었다.
*
인류는 하나가 됐지만, 분류는 필요했다.
그들은 스물두 척의 함선을 대륙별로 나눴다.
그중 일부는 유럽 함대 쪽이었다.
다섯 척이 한 몸처럼 적을 유린하는 곳이었다.
나호필의 전략을 받아들여, 다른 형태로 사용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다섯 척의 함선을 하나처럼 썼다.
그걸 지휘하는 건, 이탈리아의 본 조르노였다.
그도 초인이다.
그것도 외계 기술이 인간의 육체에 머문, 반세주와 안나에 버금가는 초인이다.
본 조르노는 둘과는 능력이 다르다.
그는 자신의 초능력을 위너라고 불렀다.
힘이 세지도, 프로비던스와 같은 사기적인 능력도 아니다.
그가 가진 건 하나뿐이었다.
승부 감각.
어느 순간이든, 어떤 전투든, 이길 수 있는 가장 빠른 루트를 찾는 것.
그게 그의 능력이다.
유럽 각국의 초인이 그에게 함대의 지휘를 맡긴 이유다.
“일호, 이호, 30도 선회!”
기준은 항상 조르노가 탄 함선이다.
두 척이 옆으로 비틀어진다.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조르노는 그 사실에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고작 외계 괴물 몇을 상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전투다.
카르페디엠.
현실을 즐기라는 다섯 자를 자신의 인생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조르노다.
그는 애초에 제대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함대가 구성되고 우주로 나아간다는 소리에 가슴이 뜀을 느끼고 자원했고.
그제야 자신의 능력을 선보였다.
“전 함선, 전속 전진.”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의 연속이다.
“후방 이형포 연사.”
두두두둥!
하지만 이들은 조르노와 같이 훈련을 받은 승무원이다.
훈련 중 받은, 도망 다니는 본 조르노를 잡으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는 건 숨겨진 비화다.
그래서 그들은 알았다.
본 조르노의 말을 따르면, 이긴다.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발생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전속 전진 후, 뒤로 이형포를 쏘자, 적의 함선 십여 척이 피격당해 터진다.
꽈과광!
퍼버버버벙!
“야호!”
철없는 함장이자, 정상인은 아니지만.
이 전투에서는 가장 필요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나호필에게 이 자를 함장으로 세우자고 한 유럽 연합이다.
하지만 나호필은 거절했다.
‘후회할걸.’
‘분명 후회하지.’
‘우리에게는 본 조르노가 있다.’
소규모 전투라면 반세주가 최고일 수도 있다.
그는 인류를 구한 영웅인 것도 맞다.
하지만 이제는 아닐 것이다.
이탈리아의 본 조르노는 이 전쟁을 끝낼 남자였다.
그들의 믿음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나호필은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말하는 의도를 알았고, 의미도 깨달았다.
하지만 무시했다.
천둥벌거숭이 하나로 전쟁이 끝날 거였으면, 진즉에 끝났다.
나호필이 본 반세주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섰다.
그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적을 몇 차례나 괴멸했지만, 결국 지금까지 왔다.
이 전쟁은 고작 하나의 힘으로 끝낼 수 없을 거다.
나호필의 결론이다.
거기에 본 조르노의 움직임은 도박성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항상 좋은 측에 있지만,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이 무너 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나호필은 그 실수가 아니더라도, 본 조르노의 능력을 그리 신용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적이 나타나면 무의미한 힘이다.
그의 결론이다.
정작 본 조르노는 그런 걱정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좋아! 사호 본 함선을 향해 일형포 발사! 정밀 사격으로 내 쪽을 향해서!
이런 미친 명령도 수행해야 한다.
그게 본 조르노의 지휘였다.
둥!
레이저 포가 날아온다.
본 조르노가 탄 함선이다.
아니, 그게 타 있는 자리를 향해서다.
꽝!
함선과 함선 사이에 끼어든 메카니모스의 비틀 쉽이었다.
그게 공중에서 요격당해 박살났다.
그 모습을 본, 승무원과 다른 유럽의 초인들은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긴다.’
‘이 전쟁의 패자는 우리다.’
‘영웅은 이제 우리에게 있다.’
“완전 짜릿해. 재밌어. 신나.”
본 조르노의 정신상태가 정상은 아닌 것 같지만, 상관없다.
그렇게 따지면 엄지를 치켜들고 올킬이나 외치는 반세주는 또라이 중에 상 또라이다.
한참 그렇게 적을 유린하던 그들이다.
사이클롭스 부대가 아닌 함선의 화력이 오히려 적을 압도한다.
그 순간, 본 조르노가 갑자기 의자에 앉았다.
“어?”
“왜 그러십니까?”
그의 호위이자 보모인 부관이다.
“어어어?”
“사령관 님.”
“안 보이네?”
“뭐가 말씀입니까?”
본 조르노는 갑자기 눈을 감고 집중했다.
부관은 불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본은 1분여를 보냈고, 부관은 그사이 보고를 받았다.
“전방에 특이 개체 발견!”
“메카니모스의 전사로 보입니다!”
붉은 로브를 두른, 세 개의 렌즈를 지닌 괴물이다.
홀로그램으로 투사된 놈의 눈은 정확히 함선의 안쪽, 부관이 있는 곳을 향해 있었다.
조르노가 잠시 넋이 빠져 있는 사이다.
두 대의 사이클롭스가 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쩍! 쩍!
부관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하나는 세로로 잘리고, 하나는 다섯 조각이 났다.
이제까지의 전투에 희생이 없지는 않았다.
우주에서 펼치는 대규모 전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은 아니다.
압도적인 무력이다.
“본!”
부관이 급하게 외쳤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형제이자, 형이다.
급한 마음에 외치자, 본이 눈을 떴다.
그들의 희망이다.
부관뿐 아니라 급한 마음에 다른 함선의 사령관들도 홀로그램 통신을 연결했다.
눈을 뜬 조르노는 그들을 바라봤다.
“와.”
그리고 짧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우리 다 죽네.”
“…뭐?”
부관이 놀라서 되묻자.
“수백, 수천의 결과를 봤는데, 죽어. 우리 전부.”
말이 끝나기 무서웠다.
두두두두둥!
놈의 렌즈가 빛을 뿜는다.
퍼버버버버벙!
한 대의 함선에 수십 개의 구멍이 뚫린다.
이형포? 아니다.
붉은빛의 레이저 포는 처음 보는 형태의 힘이었다.
그게 거침없이 아군의 함선에 구멍을 냈다.
팟.
통신이 연결된 홀로그램 중 하나가 꺼진다.
방금 터진 함선 오호의 함장이다.
“조르노! 사령관! 당장 명령을 내려!”
“어떻게 할 셈이냐? 얌전히 죽으라고?”
시장판처럼 시끄러워진다.
“아니, 전부 죽는다니까.”
조르노가 말했다.
“장난하는 건가!”
2호, 프랑스의 군인이 외친다.
“장난 아닌데.”
조르노는 고개를 저었다.
장난이라니.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움직이려고 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언제나 그림처럼 떠올랐고.
그걸 실행하는 건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만큼 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천의 방법이 떠오르고, 마지막의 한 장면이 보인다.
방법은 전부 다르나,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같다.
풍화된 시체.
자신은 오늘 여기서 죽는다.
이곳 함선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승리는커녕, 목숨도 구하기 어렵다.
두두두둥!
그 사이 놈이 두 번째 함선을 터트린다.
일호선이다.
급히 선회 명령을 내리던, 독일의 장군이다.
그의 홀로그램이 꺼진다.
그걸 본 프랑스의 장군이 외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사령관이잖아!”
“아니, 다 죽는다니까.”
그에 맞서 조르노가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아, 재밌었는데.”
재미를 위해서는 목숨을 건다.
그게 본 조르노다.
애초에 유럽 연합은 말고삐를 미친놈에게 쥐여준 격이었다.
세 번째 함선이 터진 직후였다.
허공에 황금빛이 날아와 붉은빛을 뿜는 이에게 부딪친다.
꽝!
폭음이 사방에 울린다.
“오오!”
프랑스의 장군이 신이 나 외쳤다.
황금빛 서광, 안나 휴이츠다.
그녀라면.
“무리, 무리.”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승패를 예측하는.
토토를 한다면 금세 세계적이 부호가 될 본 조르노가 고개를 젓는다.
여전히 그가 본 장면은 죽음이다.
변한 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