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55화 (155/206)

#  155

155. 즐겁게

편법.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이다.

애초에 직업도 삶도 정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치용에게 편법이란 단어는 정공법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연구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궁리했다.

어떻게 하면 세주가 준 이 모드를 더 알뜰하게 쓸까?

더 빠르고, 강력하게 쓸 방법은 없을까?

시뮬레이션 모드에서 수없이 했던 고민이다.

세주는 그에게 머리를 쓰라고 했다.

치용은 단연코, 태어나 이제까지 머리를 쓴 적이 없었다.

말보다 주먹, 그게 그의 삶이었다.

그런 치용이 생각이란 걸 했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말라는 세주의 한 마디 덕이다.

그는 모드 자체보다 스킬을 파고들었다.

‘육감 스킬은 에너지가 미치는 범위부터 25cm.’

마치 피부에 솜털이 쫑긋하고 서는 것과 같은 감각이다.

치용은 일단 그 감각에 집중했다.

익숙해지는 걸 넘어서 자다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그 감각에 치중했다.

일부러 시뮬레이션 모드에서 잠도 잤다.

반쯤은 미친 짓, 그게 지금 치용이 개발한 기술의 전부였다.

콴의 전투기술은 풀 업과 번 업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의 에너지 컨트롤 기술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았다.

고로, 에너지를 더 두껍고 넓게 뻗을 수 있다면, 육감으로.

‘모든 걸 느낄 수 있다.’

치용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눈먼 칼질.’

그렇게 이름 붙였다.

드드드드.

지진이 난 것 같았다.

실제로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자신의 몸 안에서 나는 소리다.

피가 요동치고,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뛴다.

노블 에너지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기분이다.

피부 위 솜털이 곤두서고, 세포 하나하나가 혹사당한다.

그런 기술이었다.

화아아악.

치용이 뿜은 에너지가 공간을 장악한다.

엷은 푸른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벤텀은 치용이 무언갈 하는 걸 알면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 있었다.

오만이라고 해도 좋고 자만이라고 해도 좋다.

상대는 고작 인간.

아무리 피부가 질기고 단단해도 콴에 비교할 수 없다.

더구나 콴은 에너지에 담금질을 당하듯 태어난다.

공기와 맞닿는 순간, 그들의 피부는 너무 민감해서 무지막지한 고통이 뒤따랐다.

그게 싫다면 항상 전신에 에너지 막을 두를 수밖에 없다.

출산 후 생존확률 20%.

콴의 개체 수가 적은 이유다.

그리고 그 20% 안에 들어가는 순간 그들은 일당백의 전사가 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더구나 그 20% 안에서도 탑을 논하는 자신이다.

벤텀은 자신의 블레이드 그립을 쥐었다.

타는 칼, 그런 이름을 붙여 준 칼날이 그립에서 뻗어 나간다.

검붉은 빛이 줄기줄기 생겨난다.

그건 일격에 적을 멸하는 불꽃이었다.

타다다다닥.

칼날이 생기면 불똥 튀는 소리가 잠시 들리고, 그 뒤부터는 어떤 소음도 내지 않았다.

다만, 그 열기가 사방을 채울 뿐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전신이 타 죽는다.

콴의 삼대 신기 중 하나, ‘불칼’이다.

치용의 에너지가 사방을 감싼 순간, 벤텀은 앞을 볼 수 없었다.

가득 찬 적의 에너지는 그에게서 시각과 청각을 앗아갔다.

눈먼 칼이라 이름 붙인 기술의 부가적인 효과였다.

에너지가 공간을 지배하는 순간, 치용도 그 안에 있는 누구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일종의 에너지 진공상태였다.

‘남은 건 후각과 촉각.’

광선포에 탄 냄새, 자신의 불칼이 뿜는 탄내와 인간의 잡내.

위치를 알 필요도 없었다.

촉각이 살아 있으니, 일격을 막고 벤다.

살을 주고 뼈를 벤다.

아니, 살을 주고 목숨을 뺏는다.

그의 불칼은 그런 용도였다.

가르간 조차도 일격을 허용하면 죽는다.

벤텀은 그립을 양손으로 쥐었다.

자신의 숨 쉬는 소리까지 들리지 않는 건,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렇다고 당황할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일격이면 충분하다.

치용은 육감으로 상대의 위치도 기세도 전부 느꼈다.

눈먼 칼이란 건, 실제로 적을 베는 용도가 아니다.

공간을 장악하고 자신은 적을 느끼나, 적은 자신을 느끼지 못하는 기술이다.

치용은 적의 위치를 잡고, 움직였다.

“좋네. 그런데 그걸로 위치를 알면, 그다음은?”

“다음은 뻔한 거 아닙니까요?”

세주가 물을 때, 치용은 그리 답했다.

일격이면 충분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혼잣말이 취미인 외계의 아웃사이더에게 선물할 건, 하나뿐이다.

‘잘 드는 칼.’

적을 파악하고 일격에 죽인다.

치용이 세운 전략의 핵심이었다.

츠츠츠츠츠츠.

그립 두 개를 잇는다.

찰칵하고 끼워진 그립을 양손으로 부여잡고 치용은 생명력을 불어넣듯 에너지를 때려 박았다.

그의 손아귀 너머, 큰 칼이 생긴다.

그걸 압축했다.

픽.

코피가 터졌다.

피비린내가 감돌았다.

코안에서 차가운 액체가 주르륵 흘렀다.

흐르던 핏방울이 입술을 지나 구르며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

치용은 잘 드는 칼을 만들었다.

큰 칼을 세 번 압축한 칼이다.

그 형태는 얇은 실과 같았으나, 위력은 세주조차도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소리는 없었다.

얇게 벼린 칼날이 벤텀의 머리에 닿는다.

찌지직.

적의 몸통은 튼튼하다.

바이탄도 메카니모스도 다 튼튼했다.

그 중 콴은 바이탄의 기계 덩이보다도 단단했다.

그걸 염두에 둔 일격이었다.

쩍!

정수리가 쪼개지고, 칼날이 몸을 가른다.

그 사이 벤텀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불칼을 위로 올려쳤다.

스아악!

쯔카앙!

터어어어어엉!

쩍!

동시에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쿨럭!”

치용이 기침을 뱉자, 피가 한 바가지는 쏟아졌다.

“웩!”

목구멍이 누가 손톱으로 긁은 것처럼 따가웠다.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앞은 보였다.

눈먼 칼이 풀린 상태에서 그의 앞에 선 건, 적이 아닌 아군이었다.

[괜찮습니까?]

“너 왜 여기 있냐?”

마지막 적의 일격은 실버가 막았다.

투드득.

실버가 자신의 팔을 잡아 뜯었다.

[이 칼날은 위험합니다. 맞으면 몸 전체가 타들어 갑니다]

한칼 맞은 거로 적의 공격을 파악한 실버가 말했다.

실버의 아래, 세로로 쪼개진 벤텀이 있었다.

푸른 체액이 방울져 떠다니고, 육신이 반으로 쪼개져 둥둥 우주를 배회한다.

파아앗.

곧 한 줄기 광선이 그들을 덮치며 벤텀의 시체를 태웠다.

터더덩.

배리어로 공격을 막은 실버가 뒤를 바라봤다.

빠르게 반응했지만, 지금 치용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배리어 너머로 넘어오는 충격파는 성인 남자가 주먹으로 강하게 후려치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평소라면 치용에게는 모기가 물린 정도의 힘이다.

그의 굳건한 육체는 고작 주먹으로 어찌해 볼 수준은 넘어섰으니까.

“우웩!”

다시 피를 토한 치용이다.

실버는 치용을 상태를 보고 합당한 행동을 보여야 했다.

[긴급 산소호흡기 부착]

실버가 다가와 입가에 마스크 형태의 호흡기를 붙였다.

치용은 이미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형님한테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실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치용을 안고 안전한 장소, 즉 그들의 대장, 세주가 있는 곳으로 향하려 했다.

둥실.

적의 광선포에도 소실되지 않은 무기다.

검붉은 블레이드 그립.

실버가 손을 뻗었다.

일격을 몸으로 받아본 실버는 이 무기의 가치를 알았다.

강력한 무기는 때로는 뛰어난 전력이다.

실버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치용을 부둥켜안은 실버의 등에서 여섯 개의 불꽃이 뿜어진다.

팔 하나를 잃었지만, 이정도는 안드로이드에게 부상도 아니다.

콰우우!

단숨에 공간을 가로지르며 그는 세주가 있는 곳으로 날았다.

*

광화문 위령비를 찾은 적이 있었다.

싸움이 일단락되고, 워싱턴 사건이 있기 전이었다.

“지랄 맞네.”

누군가는 욕을 하고.

“으아아.”

누군가는 울부짖었다.

조용히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이들도 봤다.

영혼이라도 잃었는지 앉아서 조용히 고개 숙이고 멍한 눈빛이다.

“우리는 이겼습니다! 더는 전쟁은 없습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이쪽이에요! 식사하실 분 이쪽으로 오세요!”

전쟁이 끝남을 기뻐하는 이도, 봉사 활동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단체도 있었다.

“외계인은 다 정부의 거짓입니다!”

이 와중에 음모론이라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진을 치는 곳, 예전의 광화문 따위는 이미 없다.

이곳은 죽은 이를 잃고 넋을 위로하는 곳일 뿐이었다.

“내 아들 살려내!”

머리가 산발한 백발의 할머니였다.

저렇게 소리 지르다가는 아들을 금세 만나겠다.

“엄마, 그만해!”

옆에서 딸인 듯한 여자가 할머니를 부둥켜안는다.

이날, 세주는 결심 했다.

이 지랄 맞은 상황을 만든 새끼를 만난다면 꼭 물어보리라고.

말보다 주먹이 앞서야 맞지만, 원통한 이들을 위해서다.

그들을 대신해서 응징한다는 생각은 없다.

그들 대신 싸운다고 해서 죽은 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요.

남은 자의 허전한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날 즐겁게 해줄 테냐?]

[우리 둘을 상대로 여유라니]

가르간과 쿠인이 번갈아 가며 말했다.

흉몽 모드 안에서 세주는 터지는 웃음을 참았다.

즐겁게라.

아주 매우, 즐겁게 해줄 생각은 있었다.

당하는 이가 어떻게 생각하든 세주는 이 상황을 즐길 거다.

그러니까, 추모하는 모두 유가족을 대신할 수 없었다.

쳐 죽이는 건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거창한 이유 따위는 붙이고 싶지 않다.

가르간과 쿠인을 보며 세주가 입을 열었다.

유가족을 대신해서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왜 그랬냐?”

[뭐?]

다가오던 가르간이 고개를 모로 꺾는다.

싸우기 전에 말을 나누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가르간도 반세주도 둘 다 말 대신 주먹으로 대화를 나눈다.

아니, 세주는 총탄으로 묻는 편이다.

물론 맞은 상대가 대답할 여유 따위는 없는 탄환이지만.

“왜 지구에 그 빌어먹을 해적들을 보냈냐?”

[그게 중요한가?]

그렇지.

저 개구리 닮은 새끼들에게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옆집에서 죽은 바퀴벌레 가족의 아픔을 고려할 일은 없다.

그들에게 인간은 벌레다.

“괜히 물었구나.”

세주의 반응에 가르간은 흥미가 동했다.

[키워서 잡아먹을 생각이었다]

“…너희들 인간을 먹냐?”

[아니, 우리는 에너지를 먹는다]

말과 함께 가르간이 앞으로 손을 펼치자 홀로그램 화면이 뜬다.

마치 커다란 인큐베이터였다.

한두 개가 아니라 빽빽하게 공간을 가득 채운 타원형 원룸 수족관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인간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건 아니겠지.”

[잔인해]

뒤에서 팽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팽은 눈에 독기를 품으며 가르간과 쿠인을 노려봤다.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긴 한다]

손을 쥐었다 펴며 가르간이 답했다.

세주의 대답이 재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대신 그들에게 에너지를 뽑지]

전부 눈을 감은 채다.

마치 잠든 것 같은 얼굴이지만, 잠이 아니라 실신이 맞는 거겠지.

그것도 반강제적인 식물인간 상태다.

그러니까 식물인간을 만들고 영양소를 공급하며, 에너지를 뽑아낸다.

인간의 가축화다.

콴은 에너지를 먹는다.

인간은 노블 패스를 통해 체내에 에너지를 생성한다.

그 에너지를 뽑아내는 광경이었다.

[에너지 양식장이라고 한다]

가르간이 말을 덧붙였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돼지랑 소가 엄청 불쌍하네.”

[필요에 의해서 키우는 인간들이다. 하지만 양식장에 들어오면 에너지 생성률이 점점 줄어든다. 그러니까 애초에 너 같은 고순도의 에너지 체는 아주 드물기에 높은 가치를 지닌다]

가르간의 로브 안쪽에서 슈륵하고 뱀의 혀와 같은 것이 나왔다 사라졌다.

혀에 침이라도 적신 거냐?

세주는 주먹을 쥐었다.

그래. 고민해서 뭐하나.

이 새끼들은 그냥 죽도록 쥐어패라고 이 지랄인 거다.

팟.

그때, 홀로그램 뒤에서 다시 얇은 칼날이 날아온다.

쿠인의 뻗는 칼이다.

[답지 않게 혀가 길어]

파캉!

칼날을 막는 순간, 쿠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랄을 하세요!”

세주가 외치며 힘을 개방했다.

‘모드 온.’

흉몽 모드와 오버 클럭 모드는 에너지 소모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꺼내든 두 번째 카드다.

‘핵 & 슬래위.’

흉몽과 근접 최강 모드의 콜라보레이션 가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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