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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병사 반세주-146화 (146/206)

#  146

146. 격추해

콰가각!

사이클롭스 아머의 기본 무구는 세 개였다.

라이플, 에너지 블레이드, 그리고 배리어 쉴드.

전투 형태는 단순했다.

화려한 묘기를 가르칠 순 없었다.

막고 쏘고 벤다.

딱 세 가지, 일반병용 싸이클롭스의 무구다.

그것만으로 인간은 미지의 세계였던 우주 종족과 맞붙을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제니는 만 18세에 입대, 총 4년 동안 멕시코 국경 지역을 침공한 외계인과 싸웠다.

그녀는 목숨을 얻은 대신, 두 다리를 잃었다.

나라에서는 그녀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고.

그녀는 모든 혜택을 포기한 대신, 정보 분석 장교로 남았다.

‘싸우고 싶었어.’

제니는 그걸 간절히 바랐다.

부모, 남동생, 연인, 친척.

모든 이들이 침공한 적에게 죽었다.

침공 우주선이 떨어진 곳이, 그녀의 가족 모두가 살던 마을이었다.

그 최악의 참사에 그녀는 절망했고, 절규했다.

그리고 일어난 그녀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복수.

두 다리를 잃은 그녀는 싸이클롭스 조종사에 지원했다.

“가능하겠어?”

누군가 그녀를 비웃었다.

총 열다섯 번에 걸친 적합 테스트에서 최고점을 기록한 그녀는 첫 번째 대련에서 비웃었던 남자의 팔을 잘랐다.

싸이클롭스 아머는 팔다리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왼쪽.’

그녀의 의지가 전해지는 순간, 몸을 비튼다.

뇌파와 노블 에너지로 기동하는 최고의 로봇이다.

그녀는 쉴드 배리어, 방패 모양의 배리어 기동 장치를 들었다.

꽝!

붉은 칼날을 든 놈이었다.

무지막지한 충격이 양팔에 느껴졌다.

두렵지는 않았다.

‘내가 죽는 건 상관없어.’

그녀가 두려운 건 죽음이 아니다.

이대로 놈들을 하나라도 더 죽이지 못하고 죽는 게 두려울 뿐!

콰가가각!

안나 휴이츠 같은 초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 제니는 첫 번째 적을 벤 장교였다.

“으아아아아!”

상대는 메카니모스의 5급 전투원.

가로로 자른 놈의 몸통 사이로 그녀의 기합이 터졌다.

“가자!”

“다 죽여 버려!”

주변 사이크롭스가 적들을 덮쳐 몰살시키는 건 금방이었다.

조금씩 차이는 있어도 전부 적합 판정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이들이다.

그리고 싸이클롭스의 출력 에너지는 메카니모스의 5급 전투원을 웃돌았다.

그걸로 싸움은 끝이었다.

[오류다]

[본대에 정보를 전해]

4급 전투원 마스카가 급하게 통신을 전한 순간, 그 앞에 황금빛이 번쩍였다.

“안녕.”

차분하게 통역기를 통해 인사를 건네는 인간이다.

마스카는 심사가 뒤틀렸다.

고작 인간에게.

[뇌에 호스를 끼워서 평생을 공포에 떨게 해주마]

안나는 말이 많지 않다.

대답 대신 주먹을 들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주먹이다.

다른 사이클롭스와는 다르다.

그녀의 사이클롭스는 라이플을 제외한 무기가 없다.

그저 전신을 감싸는 외갑을 세 겹 감싸고 주먹에 너클을 박았다.

무릎, 발끝, 팔꿈치.

골드 피스트는 전신이 무기였다.

[꺄앗!]

마스카가 가진 렌즈는 셋, 눈을 대신한 그의 렌즈는 적을 포착하고 파악한다.

포착과 파악, 마스카가 가진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는 통찰력이었다.

덕분에 비슷한 고출력 메카니모스 사이 최강이라 불린 자다.

마스카가 렌즈에서 광선포를 쏘고, 주 무기인 채찍형 블레이드를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팟.

황금빛이 눈앞에서 흩어진다.

고속이동 한 안나는 왼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푸왁.

단숨에 마스카의 왼 옆구리가 터진다.

언제나 인간보다 컸던 적의 모습이지만.

오늘만큼은 한없이 작아 보인다.

실제로 사이클롭스는 5m에 달하는 거구다.

그녀의 골드 피스트는 고작 4m지만, 그래도 마스카보다는 컸다.

우드득.

안나의 오른쪽 주먹이 적의 렌즈 하나를 잡고 뜯었다.

끄아악!

뜯긴 렌즈를 따라 신경 다발처럼 전선이 뽑혀 나왔다.

사방으로 녹색 체액이 후두둑 튀었다.

지구에서처럼 바닥에 떨어지진 않고 사방에 몽글몽글 맺히더니 뻗어 나간다.

부서진 적의 잔해가 모두 그렇게 흩어진다.

다시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을 정도다.

‘비명은 같네.’

적도 지르는 비명은 같고, 고통은 같다.

안나는 전투를 즐기는 여자다.

전투는 즐겁다.

이게 그녀가 가진 가치이자 명제다.

하지만 약한 적은 재미없다.

기다릴 틈도 없이 안나의 양손이 마스카의 렌즈 틈으로 들어가 놈을 세로로 쪼갰다.

비명은 없었다.

그저 흩날리는 놈의 잔해만 퍼질 뿐이었다.

다른 곳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콴 쪽에는 호세 크로나라는 멕시코의 여자가 갔다.

안나는 냉정하게 봐서, 호세가 자신의 하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전투는 대승이었다.

그녀의 예상은 맞았다.

콴 또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

살아남은 적의 잔존 병력은 도주하기 바빴다.

인류는, 최고 지휘관인 나호필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다 죽이기도 힘들뿐더러, 어차피 알 게 될 일이야.”

첫 번째 목적, 전초기지의 파괴.

그리고 두 번째 목적인 적에게 인류를 알리는 신호탄.

두 가지를 완벽하게 수행한 순간이다.

*

‘신호 찾았어?’

-물론.

세주는 아군을 찾아 헤맸다.

팽은 자신의 비틀 쉽을 찾지 못해서 아쉬워했다.

이미 바이탄이 씹어 삼켜 똥으로 나와 거름이 될 시간이 지난 참이다.

바이탄이 진짜 금속을 먹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최대한 비슷한 비틀 쉽을 찾았다.

“형님, 너무 합니다.”

입술이 댓 발 나온 치용은 툴툴거렸다.

전투에서 자신을 빼놨다고 저 모양이다.

“거, 안 그래도 박 터지게 싸울 거다.”

“언제 말입니까?”

“그만 싸우고 싶다고 할 때까지 죽도록 싸울 테니까, 그만 툴툴거려.”

“넵.”

치용을 달래고, 비틀 쉽에 오른 그들은 신호를 찾아 지구로 향했다.

-함선 전부 구축했네.

원거리 신호를 파악한 프로비던스다.

‘보여?’

세주는 기다릴 것도 없이 프로비던스의 눈이라는 스코프를 꺼냈다.

그걸 벼락에 끼우고 우주선 바깥에 몸을 내밀었다.

산소 호흡기를 달고, 조준하자마자, 빛이 쏟아지는 장면이 보였다.

‘지구까지 거리는?’

-15분.

‘장면 송출 가능해?’

-형 하나만 보는 거라면 지금도 가능하지.

“팽. 우주선 멈추고 선회한다.”

[알겠어. 대장]

시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을 잘 듣는다.

다른 놈들이 팽의 반만이라도 말을 들으면 세상 편하겠다.

밑에서 인준과 다른 이들이 왜 그러냐고 묻는 말이 들렸지만.

무시한 세주는 프로비던스가 출력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박 터지게 싸우는 모습이다.

처음 칠형포가 터지는 순간부터.

안나가 적을 가르고.

싸이클롭스가 전장에 나타나 적을 소멸하는 순간까지다.

‘아주 축포를 쏘아 올렸네.’

-생각보다 괜찮은데?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이제야 겨우 적과 싸워볼 만했다.

-안나가 죽인 녀석 4급 전투원이었어.

‘좋아.’

우주선에 내려온 세주가 부대원을 돌아보고 말했다.

“아군과 합류한다.”

“응?”

인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

“함선 구축해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

어딘가 즐거운 미소다.

세주는 진심으로 즐거웠다.

싸움도 좋고, 전투도 좋다.

싫은 건 하나뿐이다.

지는 것.

그런데 지금 맞서 싸울 힘이 생겼다.

전쟁은 혼자서 할 수 없다.

세주라고 모르는 건 아니었다.

혼자 할 수 있었으면, 뭐 하러 아군을 키우고 이 상황을 만들었을까.

“이제 제대로 싸워보자.”

남의 집 마당에 지치지도 않고 쳐들어온 개자식들의 앞마당이다.

신나는 건 당연했다.

“전툽니까?”

물론 치용이 가장 신났다.

[복수의 순간이 왔습니까?]

무슨 영향인지 실버도 흥분한 걸 숨기지 않는다.

“오라이! 다 죽여 버리자!”

물론 세주도 신났다.

*

“정말 죽었을까요?”

1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전장 중, 영웅의 실종이라면 긴 쪽이다.

반세주는 사라졌다.

인류에게 싸이클롭스 도안과 싸울 힘, 의지를 전하고 사라졌다.

“천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왕이 옆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우주에서 값비싼 브랜디라니 사치다.

하지만 스타 트렉 매니아인, 나호필로서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짓이었다.

“그런 천사라니, 사양한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을 보세요.”

“그 말에는 나도 동감합니다.”

알파 팀의 수장인, 장광안이다.

여전히 작은 눈이었다.

“살았을까? 죽었을까?”

위이잉.

자조적인 물음에 답은 말이 아니라 문이 열리는 소음이었다.

그 안, 나기주가 들어왔다.

차세대 영웅, 반세주를 이을 한국의 구세주다.

“살았습니다. 죽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 영웅의 실체는 반세주 빠돌이지만.

그래도 그가 강력한 전투원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 나도 그 녀석이 쉽게 죽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안나 휴이츠도, 타국의 초인 중 세주를 본 이들도.

모두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적어도 지휘하는 입장에서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지 않을 순 없었다.

반세주는 죽었다.

나호필은 가슴이 아릿했다.

그와 친구라고 할 순 없었다.

그가 없다고 얌전히 우주에서 온 침략자들에게 죽을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왜 가슴이 허전한지, 본인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에게 의지했던 지난날과 그가 이룩한 업적 때문일지도.

“미친놈이었지.”

“그렇죠.”

이곳은 작지만 반세주를 추모하는 장소였다.

시기는 첫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위치는 우주 내 함선.

그들이 정했다.

반세주가 전해 준 것으로 적을 물리쳤을 때, 그를 추모하자고.

지구에 있는 인간들에게 영웅의 죽음을 알릴 순 없다.

여전히 반세주는 대형 전광판 메인에 뜰 만큼, 화려한 존재로 남아있다.

올 킬.

영상에서 그가 엄지를 세운 채 한 말은 갖가지 패러디 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영웅이었고, 스타였다.

인류는 반세주란 존재를 보고 의지하고 믿었다.

그런 존재의 부고를 알릴 순 없다.

공식적으로 반세주는 아직도 우주에서 싸우는 중이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수뇌부는 그의 죽음을 인정했다.

“죽었을 리가 없습니다.”

나기주는 여전히 그의 죽음을 부인했다.

‘죽은 건 죽은 거지.’

나호필은 속내를 꺼내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 인간이 나기주와 비슷한 마음이 될 거다.

괜한 절망을 심어줄 필요는 없다.

“미친 사람이기는 했죠?”

베타 팀의 박태희다.

“말이라고.”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남자다.

애꾸눈을 가진 발해 팀의 대장 중 하나, 이무영이다.

“말조심하지.”

나기주가 이무영을 보고 눈을 부라렸다.

“너나 조심해라. 애송이.”

파지직.

둘 사이에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았다.

“아군끼리 싸움은 금물이야.”

나호필이 둘을 말렸다.

산 자는 살고, 죽은 자는 죽은 거다.

“술은 그만.”

많이 마실 순 없다.

이곳은 전장의 한복판.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살얼음판을 걷는 길이다.

“다음 콴의 전초기지를 부순다.”

추모식이 작전 지휘실로 변하는 건 금방이다.

‘나중에 추모하마.’

그때는 가슴 뜨겁게 울어줄 수도 있으리라.

장광안도, 박태희도, 장왕도.

모두 울어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메카니모스와 콴은 더 강하게 공격해 올 거예요.”

박태희의 말이다.

나호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한 바야. 우리는 기동력을 살린다.”

지구에 피해가 가도록 둘 순 없다.

“준비한 전력을 전부 공개하면 붙어볼 만하겠죠?”

“그게 반세주의 예상이었지.”

그게 아니라도 싸울 수밖에 없고.

나호필은 주변을 둘러봤다.

인류 최후의 결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콴의 전초기지 이후다. 칠형포는 아까워.”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 크다.

“백병전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광안의 말이다.

사이클롭스라는 희대의 병기를 만든 이상 그것도 맞는 말이다.

외눈의 거인, 반세주의 선물이 인류에게 힘을 줬다.

“그것도 좋지.”

띠딕.

대답과 동시다.

통신기가 울렸다.

“뭐야?”

적의 습격이 아니라면 방해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참이다.

통신기에 대고 물은 나호필은 긴장감을 느꼈다.

벌써 습격을?

“미확인 비행체 접근합니다. 격추할까요?”

“몇 기?”

“한 기, 비틀 쉽입니다.”

“통신 시도해봤어?”

“지금 시도 중인데, 본인이 반세주라고 합니다.”

최고 지휘부가 아니면 반세주의 죽음을 모른다.

그러니까, 다른 아군은 그가 다른 곳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중인 걸 안다.

나호필도 모르게 이곳에 오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통신 연결해.”

진짜일까?

아니면 형태변환자?

지지직.

작은 노이즈와 함께 홀로그램이 뜬다.

나호필은 깜짝 놀랐다.

웬 은색의 대머리 괴물이다.

아니, 자세히 보니 로봇에 가깝다.

[연결 완료]

그의 목소리 뒤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야! 나호필이!”

신난 얼굴로 인사한다.

형태변환자일까? 진짜일까?

이 한 수로, 모든 게 결정된다.

나호필은 모두를 등지고 명령했다.

진짜라면.

“반세주.”

“문 열어줘.”

“진짜라면 안 죽겠지? 나중에 한 턱 쏘마.”

“…뭐?”

통신을 끊고, 나호필은 명령했다.

“격추해. 일형포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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