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45화 (145/206)

#  145

145. 적의 약점을 아군의 강점으로

여왕의 부름에 가르간은 걸음을 옮겼다.

콴은 여왕을 받들고 그녀를 위해 산다.

그게 콴이라는 이들이 사는 목적이었다.

고로, 가르간은 그녀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런데 걸음이 무겁다.

싸우기 싫은 싸움에 억지로 떠밀리는 느낌이다.

‘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콴은 감정이 거세 된, 전투 종족이다.

그들은 여왕의 명령을 듣고 싸우는 것 외에 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기쁨, 슬픔 등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강한 적을 만나면 흥분하지만, 그걸 기쁘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싸우고 싶을 뿐.

그래서 지금 가르간은 당황스러웠다.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여왕을 만나기 위해 알현실로 향했다.

반투명한 휘장과 높게 자리 잡은 왕좌.

그곳에 자리 잡은 건, 그가 모시는 여왕이다.

콴의 최종명령권자이자, 군 통수권자.

정점에 선 이, 그게 바로 여왕이다.

그리고 여왕 곁에 자리 잡은 네 명의 귀족 계급.

가르간도 한 명을 제외한 얼굴을 본 적 없는 지배자들이다.

[여왕이시여]

무릎 꿇은 가르간이다.

휘장 너머, 여왕이 손을 들었다.

[일어나요. 나의 전사]

가르간이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다.

콴의 불문율 중 하나다.

여왕을 보는 건, 하루에 한 번만 가능하다.

[메카니모스와 동맹을 맺었으면 한다]

꿈틀.

싫다.

그런 감정이 솟는다.

하지만 가르간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바로 옆 귀족 계급 중 한 명의 말이다.

가르간은 순간 얼굴도 못 본 놈의 말 따위는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여왕의 뜻이라면 이유를 물을 수도 없겠지만.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가르간의 물음에 귀족 계급 중 하나가 몸을 돌렸다.

[지구에서 올라온 인간을 전부 죽일 것이다]

꿈틀.

이건 진짜 싫다.

지구는 자신의 몫이다.

그곳의 인간은 자신의 소유다.

그들은 아직 자라는 중이다.

이건 여왕의 허락도 맡은 일이다.

가르간은 말하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하루에 한 번, 여왕을 보는 건 말 대신 뜻을 피력하는 역할도 했다.

[내 뜻이기도 해요]

여왕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부할 수 없었다.

가르간은 고개를 숙였다.

대전에서 물러난 그는 쿠인을 불렀다.

자신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제너럴 중 하나다.

[지구에서 올라온 함대 위치는?]

[메카니모스 쪽이던데]

쿠인이 답했다.

[거길 친다]

[…지구? 인간?]

쿠인이 되묻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가장 큰 적은 메카니모스다.

그다음 적이라고 한다면 바이탄이다.

인간은 위협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가르간이 지구의 인간을 죽이려고 한다.

[거기 개체가 꽤 있다고 했잖아. 식민지로 삼을 거라고도 했고]

가르간은 말을 바꾸지 않는다.

쿠인으로서는 의문이 들 만한 일이다.

가르간은 젊은 전사를 보고 손을 내밀어 그의 머리에 올렸다.

은하 공용 제스쳐다.

뜻은 복합적이었다.

친애와 존중이 뒤섞인 표현이었다.

가르간은 쿠인을 마주 보고 답했다.

[여왕의 뜻이다]

[아]

가르간은 이 젊은 전사가 조금 걱정스러웠다.

전투력도, 상황 판단력도 뛰어나다.

진취적이고 활동적이다.

하지만 넓게 볼 줄은 모른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속기 쉽다.

‘괜찮겠지.’

지금은 자신이 있다.

가르간은 쿠인을 향해 말했다.

[삼류 전사를 보낸다]

[인간 상대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메카니모스와 동맹을 맺고, 인간 척살을 우선으로 한다]

[그 메카니모스가 말을 들어줄까?]

그들의 의견은 상관없다.

이건 여왕의 뜻, 지켜야만 하는 일이었다.

*

메카니모스 1계급 전투원 미라는 의회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콴이 여왕이라면 메카니모스는 의회가 전부다.

의회는 결정했다.

콴과 동맹을 맺고, 인간을 척살한다.

인간의 함대는 이미 파악했다.

하지만 절대 위협은 아니다.

가르간과 같은 판단이다.

‘어제의 적과 악수를 하라는 건가.’

휴전했지만, 동맹은 다른 문제다.

미라는 위쪽에 항의했다.

콴이 과연 동맹을 맺을 거라는 것이다.

의회는 답변을 보냈다.

길지 않은 답이었다.

의회의 결정을 따르라.

미라는 5계급 전투원 스물과 4계급 전투원 하나를 보냈다.

인간의 함대를 삼키는 걸 넘어서 그 이후 콴의 전사를 죽이려는 의도가 다분한 병력이었다.

*

스물두 척의 함선이 우주를 배경으로 떴다.

아무런 문양도 표시도 없다.

매끄러운 고래를 닮은 디자인에 부유하는 푸른 함선.

인류의 반항이자, 반격의 시초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만 배경, 우주를 캔버스로 두고 함선은 앞으로 발진했다.

학익진을 펼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정중앙, 메인 함선 안.

“최초 목표 메카니모스 전초기지다.”

나호필이 외쳤다.

세주가 한바탕 일을 벌인 곳이다.

이번 출진의 목적은 두 개였다.

하나는 전초기지의 파괴.

메카니모스와 콴이 지구를 감시하고 언제든 공략하기 위해 만든 행성형 우주선 파괴다.

둘째는 우주 종족에게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인류는 살아있는 존재며,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거라는 점을 알리는 전초전이다.

“위치 확인.”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호필의 눈앞에 뜬 홀로그램 맵을 보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이 순간을 기다렸던가?

모른다.

하지만 당하기만 하던 그들이 쏘는 첫 번째 신호탄이 되리라는 건 분명하다.

그동안 겪었던 일들과 지금의 상황이 맞물려 나호필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야.”

그 상태로 승무원 전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니, 통신기가 연결된 함선 전부다.

“첫 방은 내 거다.”

예의는 씹어 먹은 나호필이다.

나호필은 흥분한 심장에게 소곤거렸다.

‘기다려봐. 멋진 걸 보여주마.’

“칠형포 준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반세주에게 보내는 세레나데가 될 거다.

일형포는 표준 광선포.

이형포는 고속 일형포.

삼형포는 응축 광선포.

사형포부터는 위력이 다르다.

사형포, 오형포는 일형포 형태의 위력만 올린 형태다.

그리고 육형포, 행성 내부를 부술 정도로 관통력을 지녔다.

어지간한 함선이 아니라면, 탑재 자체가 어렵다.

소모하는 에너지양과 출력을 받을 수 있는 특수제조 된 포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현재 나호필이 준비한 비장의 한 수 중 하나는 칠형포다.

일곱 번째 형태의 포.

모두 반세주 덕이다.

인정할 건 인정한다.

어떻게 해서 아는지 모르지만, 그는 사이클롭스 도안과 함께 칠형포 제작 도안도 보냈다.

그 도안을 본 과학자들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이게 가능합니까?”

“말도 안 되는 기술이군요.”

“하지만 만들 수 있다면.”

전 세계에 있는 이들이 머리를 맞댔다.

그들은 칠형포를 개량하거나 축소  시킬 수 없었다.

그저 구현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인류는 우주의 놈들보다 약하다.’

그렇다고 얌전히 당할 생각은 없다.

고양이와 싸우는 쥐도, 나름의 전투법이 있다.

“충전 중, 12%.”

“화면 띄워.”

승무원의 말에 호필이 말했다.

막대그래프 같은 홀로그램 영상이 떴다.

충전하는데 만 15분이 넘게 걸린다.

칠형포는 함선 전투에서는 실패작이다.

하지만 행성을 공격하는 데는 최고의 무기였다.

충전율 88%.

“반동 대비.”

철컥.

나호필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남들이 스타워즈에 열광할 때, 나호필은 스타트랙에 열광했다.

그의 취향이 한껏 맞물린 구조의 함선 내부다.

한가운데 위치한 의자에 앉아 엑스자형 벨트를 찼다.

충격에 대비한 그의 눈에 충전율 100%로 변한 게 보였다.

“발사 준비 완료.”

“타겟 포착.”

“메카니모스 전초기지 행성, 코드명 A-1, 발포 허락해주십시오.”

나호필의 의자 우측에 붉은 버튼이 보였다.

쿵!

버튼을 주먹을 때리듯 눌렀다.

그러면서 입을 열었다.

“쏴, 다 죽여 버려.”

사심이 잔뜩 깃든 목소리다.

하지만 어떤 승무원도 기분 나쁠 리 없었다.

그들 또한 가족, 친구, 연인을 우주에서 쳐들어온 저 염병할 새끼들에게 잃은 자들이다.

“발사.”

콰우우우우!

함선이 뒤로 밀린다.

빛이 앞을 가렸다.

나호필은 순간 눈을 가렸다.

드드드드드드.

함선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주변 함선이 나호필의 함선과 거리를 벌렸다.

약속된 행동이다.

빛의 세례가 적을 몰살하는 순간이다.

인간의 무기 중에 M270 다연발 로켓이 있다.

하늘에서 사람을 죽이는 비와 같다 해서 붙은 별명이 ‘강철비’.

그리고 칠형포는 그와 유사한 무기였다.

다만, 그 범위가 작은 행성 하나를 덮을 정도였을 뿐이다.

무수히 분산되어 떨어지는 일형포의 소나기.

광우였다.

빛의 소나기가 메카니모스 전초기지를 때렸다.

*

끼에에엑!

메카니모스 전초기지에 주둔했던 7급 연구원은 비명을 들었다.

[무슨 일이냐]

연구에 매진하던 그가 밖으로 튀어나갔을 때, 그는 눈을 의심했다.

[죽음의 오로라]

칠형포의 또 다른 별명이었다.

우주 바깥에서 쏟아진 빛이 여러 가지 빛깔로 빛난다.

그게 행성 안쪽에서 흩어지기 직전, 그 행성에 거주하는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로라를 본다.

신이 직접 짠 커튼과도 같은 환상의 아름다움.

모르는 이에게는 미적 가치를 충족시켜주는 그 화려함이 아는 이에게는 절망으로 다가오는 속삭임이었다.

7급 연구원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통신을 연결 할 엄두도 내지 못 했다.

죽음의 오로라는 적을 분쇄하는 최고의 무기다.

쏘는 즉시 막대한 에너지파가 주변 통신 장비를 무력화한다.

그리고 행성에 남은 이들을 몰살한다.

유도 기능을 탑재하지 않아도, 몸에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품은 생명체는 저 빛의 소나기에 안전할 수 없었다.

[배리어를 펼쳐!]

연구원은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은 참이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흩어지는 오로라를 봤고, 곧 행성 전체에 빛이 쏟아져 내렸다.

[행성 기지 전군 소멸]

[통신 연결해]

4계급 전투원 마스카, 인간으로 치자면 장성급의 메카니모스다.

그는 단 세 개의 렌즈만 가진 특이종중 하나였다.

흥분하는 법 없이 보고를 기다리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상황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이었다.

[통신 두절]

[행성 기지 내, 생체 신호 전멸]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연구와 실험으로 불사를 꿈꾸는 메카니모스다.

그런 종족 특성이 가장 잘 배인 개체 중 하나가 바로 마스카였다.

[칠형포]

그는 머리를 굴렸고, 결론을 내렸다.

[전원 기동 준비]

조금 더 빨리 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을 조금 바꿨다.

이번 전투의 적은 인간이 아니라 콴이라고 봤다.

하지만 아니다.

인간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콰우우!

메카니모스의 함선이 우주로 나와 인간의 함선과 마주했을 때, 콴의 함선도 나와 있었다.

둘은 이미 암묵적인 동맹 상태다.

‘칠형포까지 쓸 정도라면.’

배리어와 화력은 현재 병력으로 압도하기 힘들다.

적의 약점을 아군의 강점으로 부딪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대인 기동 전술]

마스카는 명령했다.

이곳에는 5계급 전투원만 스물이다.

인간 따위는 혼자서 천 단위로 쓸어버릴 수 있었다.

거기에 우주에 특화된 전투 실험체까지.

콴이 나설 것도 없는 전투다.

콴 쪽 함대에도 비슷한 형태의 움직임을 보였다.

아니, 애초에 대인 기동 전술은 콴이라는 종족의 특기다.

쿠우! 쿠우! 쿠우!

함선 밑으로 거대한 외갑을 두른 전투원이 내렸다.

그리고 요격기 150기도 출격했다.

5급 전투원 스물, 요격기 150, 무호흡 전투와 비행이 가능한 실험체 500.

‘과한 편이지만.’

끝나고 바로 콴을 덮치면 그만이다.

우스운 건, 콴의 전사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거다.

콴의 제너럴 밑으로는 일반 전사와 견습 전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급을 나누는 것이 일류, 이류, 삼류.

일반 삼류 전사 열다섯.

이번 전장에 투입된 숫자다.

우주를 유영하며 놈들이 인간의 함선으로 달려들었다.

둥!

그러자 인간의 함선에서 일형포와 이형포가 불을 뿜는다.

하지만 무소용이다.

메카니모스와 콴, 둘 다 이 정도 광선포는 직격당해도 배리어가 뚫리지 않았다.

그들은 적의 함선 내부에 잠입한 순간 끝나는 전투라고 생각했다.

맨 앞쪽, 적의 함선에 메카니모스의 5급 전투원 하나가 도착했을 때.

두 종족의 지휘자 모두, 인간을 몰살한 후 다음 전투를 그렸다.

꽝!

소리가 먼저 들렸고, 시야는 그다음이었다.

황금빛이 번쩍였다.

선두의 함선 밑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밑.

한 기의 로봇이 떠올랐다.

‘바이탄?’

그걸 본 마스카는 바이탄을 떠올렸다.

그들이 가진 아머와 형태가 비슷했다.

하지만 달랐다.

스캐닝 시스템을 돌린 마스카는 바로 적을 파악했다.

‘인간이 타고 있다.’

*

안나 휴이츠.

그녀는 군인이었고, 인류를 지킬 의무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싸움을 좋아했다.

‘좋아. 쓸만해.’

반세주가 전해 준 도안으로 제작된 사이클롭스다.

거기에 안나 휴이츠, 커스터마이징 제작.

이름은 골드 피스트라고 지었다.

“하앗!”

그녀는 기합을 내질렀다.

그녀를 태운 사이클롭스 아머, 골드 피스트가 황금빛을 뿜으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녀의 뒤로 사이클롭스 수백 대가 뿜어져 나왔다.

적의 약점을 강점으로 부딪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인류가 준비한 최강의 창은 칠형포가 아니었다.

지금, 긴 시간 안배로 편성된 최강의 전력.

사이클롭스 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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