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140. 바비큐 맛?
1년.
1년 동안 침공은 없었다.
하지만 나호필은 그 사이 외계 인류라는 자들과 접촉했고,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었다.
‘침공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다.’
반세주가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몸을 숨기고 각각 상대의 행성을 부순 그 행위 덕분에 콴과 메카니모스는 전면전을 벌이고 있었다.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그래서 나호필은 처음 6개월로 잡았던 기간이 늦어진 것에 스스로를 탓하진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외계 기술을 받아들여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인류지만, 반세주가 전해 준 ‘병기’는 그 궤가 달랐다.
‘완성됐다.’
함선도 만들었고, 그가 전해 준 병기도 완성했다.
“이제는 싸울 시간이겠지.”
나호필은 어릴 때부터 간이 작았다.
열두 살 때, 처음 싸웠고 얻어맞기 직전에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나호필은 그때,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준비와 경험.
어떤 일에 대해 철두철미하게 준비하는 게 그 첫째요.
아무리 두렵고 무서운 일이라도 경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둘째였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삶을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는 비상한 머리로 다양한 걸 공부했고, 결과적으로 현 상황에서 방위사령부, 최고 지휘관에 앉아 있다.
“가는 겁니까?”
크롬 팀의 장왕이었다.
“물론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알파의 장광안과 김후경, 베타의 박태희까지 있었다.
모두 세주와 인연이 있었다.
그리고 사설 경호팀이란 이름의 무력단체 발해의 최강이라는 삼대장 까지 함께다.
나호필은 세주가 전해 준 병기보다 인간의 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전 세계가 힘을 합치는 건 무리.’
나호필은 방위군이 하나의 집합체로 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대신 머리를 여러 개 뒀다.
각 국가를 병합, 통합.
총 세 개 군으로 나눴다.
1군의 핵심 전력이 바로 이곳에 있는 이들과 미국과 멕시코, 영국의 ‘영웅’이라 불릴 만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한 명, 나호필의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가 있었다.
“나기주.”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동안 그 또한 험난한 세월을 지난 걸 증명하듯 왼쪽 눈 위, 깊은 흉터가 남았다.
이전 반세주에게 딱밤 한 대 맞고 기절 한 알파 팀의 신예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호필은 내심 1년이나 연락이 끊긴 반세주를 대신할 존재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의 전투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출전은 다음 달이다.”
작전에 앞서 모두에게 브리핑 하는 자리다.
그의 뒤로 세주가 전해 준 병기의 모습이 투영됐다.
그건 마치 로봇과 같은 모습이었다.
인간보다 배는 크다.
이족보행, 인간의 형상을 닮은 합금으로 전신을 두른 기계.
인간에게 외계의 적들과 싸울 힘이자, 병기다.
긴 테이블 끝, 어두운 회의실에 오연히 선 모습의 그 영상은 인간의 희망이었다.
사이클롭스.
외눈의 거인을 본떠서 이름을 붙였다.
그에 걸맞게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병기의 푸른 외눈이 빛났다.
*
인류의 전함이 지구를 떠나서 달 주위에 전세를 가다듬을 때였다.
[재주가 좋은 놈이야]
달리는 칼, 콴의 장군이자 최고의 전력인 가르간은 즐거운 미소를 보였다.
푸르고 갈라진 피부 위에 타원형의 눈이 부드럽게 휜다.
[누구?]
뻗는 칼, 쿠인이 그 말을 받았다.
[있다. 그런 놈]
콴은 전투민족이다.
그들은 싸우기 위해 살고, 싸움을 위해 죽는다.
콴의 최우선 가치는 여왕과 종의 존속이었으나, 개개인이 최고로 삼는 가치는 여지없이 전투였다.
적을 베고 찢고 죽이는 그 행위야말로 콴이라는 종이 여왕 다음으로 숭배하는 것이다.
가르간은 지구라는 별에서 만난 인간을 떠올렸다.
‘죽지는 않았겠지?’
그렇다면 꽤 짜증 날 거다.
콴은 놈에게서 냄새를 맡았다.
놈은 자신을 즐겁게 해 줄 거다.
그렇지 않다면, 저 미천한 인간들을 살려두는 행위도 하지 않았을 거다.
[소규모 함선은 확인했나?]
쿠인이 가르간에게 물었다.
[확인했다]
지구에서 온 놈들이다.
그것도 가르간이 유인해서 보낸 우주 해적의 함선을 개조한 거니, 못 알아볼 리 없다.
홀로그램 형상에 적 함선의 숫자가 낱낱이 보였다.
[구식 함선에 탄 건, 인간인가? 에너지 수급용으로 보던 행성 맞지?]
[맞다]
가르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군]
가르간이 끝이 동글한 손을 뻗어 쿠인의 옷깃을 잡았다.
동시에 다른 손을 들어 손가락 하나를 좌우로 흔들었다.
은하 공용 제스쳐 중 하나다.
손대지 말라는 뜻이다.
[왜?]
[내 거다]
가르간은 무욕의 전사로 유명하다.
그는 어떤 것도 탐하지 않는다.
싸움을 좋아하는 전투민족인 콴에서도 특출 난 게 가르간이었다.
그가 탐하는 건 하나뿐이다.
호적수.
쿠인은 인상을 썼다.
동시에 손을 들어 손가락 두 개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알았다는 뜻이다.
[벤텀이 사절로 A섹터 행성으로 갔다]
[들었다]
1년의 전면전, 메카니모스도, 콴도, 피해를 봤다.
바이탄은 무슨 일인지 조용했기에, 둘이 더 피 터지게 싸웠는지도 모른다.
[재미없군]
가르간이 읊조렸다.
쿠인도 그 뜻에는 동조했다.
전면전이라지만, 각자 보유한 전력을 숨긴 싸움이다.
더구나 두 종의 우두머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야 정말로 속았다 치더라도, 이런 일을 벌인 것이 ‘인간’이라는 정도는 금세 알아챘다.
그리고 새롭게 장군급이 된 벤텀이 지금 종전을 위해 메카니모스와 회담 중이다.
가르간과 쿠인은 전쟁이 끝나는 게 아쉬웠다.
소심한 메카니모스의 전사들은 결국 전면에 한 번도 나서지 않았다.
‘약은 놈들.’
가르간과 쿠인은 바이탄 쪽에 정찰을 나간 드론을 확인했다.
벌써 수십 차례 보낸 드론이지만, 반응은 같았다.
마치 문이라도 걸어 잠근 것처럼, 바이탄은 침묵했다.
드론의 신호가 끊긴다.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지만.
‘바이탄의 목적은 명확하니까.’
그들은 외계 인류를 멸망시키길 원한다.
콴과 메카니모스와는 달랐다.
둘은 우주의 패자가 되길 원했다.
*
지구에서 함선이 출항하기 7개월 전.
따뜻한 품에 안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세주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날이 있었다.
늦게 잔 것도 아니지만, 포근함이 전신을 감싸기에 눈을 뜨고 싶지 않은 그런 아침.
좀 더 뒤척거리고 싶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5분만 더 자자.’
그럼 어머니가 와서 깨울 거다.
-……!
누군가 자신을 깨웠지만, 무시했다.
졸려 뒤지겠는데, 시끄럽다.
모기 한 마리가 귀 옆에서 윙윙거린다.
울렁.
세주는 꿈을 꿨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다.
재입대 순간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스폰으로 변한 훈련병.
저격수로 비무장지대에서 치른 전투.
반세주 개자식이라 외치는 아군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죽은 줄 알았던 이무영이라는 남자가 발해 팀으로 온 날이 지나치고, 형태변환자를 죽이기 위해 미국을 간 날들도 지나간다.
그리고 우주로 나온 순간도.
‘싸우는 중이었지.’
-이 게으름뱅이야!
번쩍.
그 순간 세주는 눈을 떴다.
“후아.”
참았던 숨을 뱉었다.
오버 클럭 모드를 켠 순간부터 마지막 쓰러지기 직전, 골골대는 부대원까지, 모든 기억이 한순간에 돌아온다.
‘여긴?’
어둡다.
주변에 보이는 게 없었다.
중력은 느껴진다.
적어도 우주 밖을 떠돌고 있지는 않았다.
-아직 거기야.
‘바이탄 행성?’
-응.
용케 여기에 남아있었다.
‘내가 기절한 시간은?’
-3개월.
짧게 프로비던스가 답한다.
‘…3개월?’
-응. 3개월, 너무 크게 다친 상태에서 오버 클럭 모드를 운용했어. 난 형이 그대로 저승으로 가는 열차를 타는 줄 알았다고.
‘응. 나도 잠깐 요단강에 세수하고 온 기분이다.’
진짜다.
오버 클럭 모드가 끝났을 때, 죽는 줄 알았다.
꿈에서 할아버지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돌아가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후아아아.”
호흡을 길게 들이마시고 쉬었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앙상하게 마른 팔이 보였다.
‘야, 이 쓸모없는 기계 새끼야. 내 몸 관리 안 하냐?’
돈도 안내고 기생하는 기계 놈이 몸을 방치했다.
-…관리해서 그 정도야 제대로 음식물 섭취도 못 한 상태에 내가 먹고 기동하기 위한 에너지도 최저 상태라고.
썩을, 곧 죽어도 에너지 타령하는 건 그대로다.
‘다른 애들은?’
-사냥하고 먹을 거 찾고 그러고 있어.
전부 치명상이었다.
하물며 자신의 왼쪽 팔부터 그을린 상처 그대로다.
-형이 깨어나기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이모탈 엔절스고 뭐고, 쓸 수 있는 건 모두 형이 주체니까.
프로비던스의 설명을 들은 세주는 물었다.
‘왜 지구로 안 가고?’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지.
어두워서 답답하다.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은데, 영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하긴 3개월을 누워 있다가 일어났으니, 멀쩡한 게 이상한 일이다.
자신이 누워 있었으니, 식량부터 시작해서 문제가 산재했을 거다.
‘치료부터 해.’
깨어나자마자 천사의 고리가 파삭하고 깨지며 전신에 가루를 들이 붓는다.
외상이 깨끗하게 나았다.
“후아.”
그제야 살 만하다.
허기와 답답함은 남았지만, 전신이 따갑던 상처는 없다.
‘현재 위치는?’
-지하.
팟.
어두운 곳에 푸른빛의 홀로그램 맵이 뜬다.
위치를 파악한 세주는 밝은 흰 빛 네 개를 확인했다.
치용, 인준, 유진, 팽이다.
넷 모두 멀쩡하게 살아있다.
살아만 있으면 문제는 없다.
마침 그 네 개의 빛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왔다.
-…뭐해?
도로 침대에 눕는 세주를 보며 프로비던스가 묻는다.
‘서프라이즈.’
기왕 깨어난 거, 극적인 효과가 필요하지 않냐?
인생은 스펙터클하고 즐겁게 사는 게 장땡이다.
판타지 소설처럼 두 번씩 사는 거 아니잖아.
-이런 미친 또라이.
‘낭만 없는 기계 놈은 이해 못 하겠지.’
도로 침대에 눕자, 일행이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드드득.
바퀴가 끌리는 소리도 들린다.
“후, 이 형님이란 자식은 언제 눈을 뜨는 거냐?”
“뜬다. 걱정하지 마라. 입 더러운 놈아.”
치용과 인준의 목소리가 들린다.
“싸우지 마세요. 환자와 미녀를 앞에 두고 매너 없는 행윕니다.”
유진의 목소리도.
[대장은 일어날 거야]
팽도 멀쩡하네.
세주는 호흡을 가다듬다가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헉!”
세주가 눈을 떴다.
“형님!”
“형!”
[대장]
“늦어!”
모두가 반가움을 표현하고 다가온다.
세주는 멍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되물었다.
“누구?”
“…형님?”
유진이 놀란 눈으로 세주를 보고 말을 이었다.
“저 유진이에요. 정유진.”
“난 김치용인데.”
“누구세요? 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대장]
팽이 눈물을 글썽였다.
마음이 약해질 뻔 했다.
-…쓸데없는 장난질 좀 관둬.
‘있어 봐라. 이 자식들 표정 녹화 좀 해라. 명작이다. 이거.’
몰래카메라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그래서 이경규 아저씨가 그렇게 신나는 표정이었나 싶을 정도다.
“기억 상실?”
드르륵
인준이 혼잣말하듯 되묻고,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닙니다. 뇌에 이상은 없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지금 반세주 님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응? 이건 또 뭐야?
수레라고 착각했다.
낮은 동체를 가진 안드로이드 한 대가 보였다.
-실버야.
프로비던스가 곧바로 소개했다.
아, 얘도 살았구나.
“…응?”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하하, 서프라이즈?”
배시시 웃자, 치용이 주먹을 꽉 쥔다.
야, 너 한 대 치겠다.
“미친 새끼.”
인준이 고개를 젓고, 팽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유진은 웃었다.
“하하하하.”
허탈함이 가득 담긴 웃음이다.
“나 집에 갈래.”
그리고 한마디를 던진다.
자식들이 예능을 다큐로 받고 그러냐.
‘모드 온 이모탈 엔젤스.’
다들 사지 하나씩 잃은 그들이다.
보니까 팽은 두 다리를 잃고 실버에 올라타서 움직인 것 같다.
‘치료부터.’
파아아앗.
천사의 고리가 빛 가루를 뿌린다.
동시에 세주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허공에 빛이 생긴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에너지를 머금은 라이트 볼이다.
전등 대신 쓰는 걸 용궁에서 봤는데, 꽤 쓸 만해 들고 왔다.
붕 하고 공중에서 뜨는 기능까지 있어 빛이 없는 곳에서 안성맞춤이다.
“고생했다.”
제대로 못 먹어서 수척해진 그들이다.
치용의 덩치가 작아진 거로 보일 정도로 말랐다.
“그 장난은 지나쳤어요.”
정신을 차린 유진의 말에 세주가 피식 웃었다.
“일단 먹자.”
세주는 프로비던스의 인벤토리에 오드꾸와를 잔뜩 담아왔었다.
용궁 도시에서 먹고 나서 반한 맛이다.
“불고기 맛? 바비큐 맛?”
“피자 맛이요.”
우르르.
3개월간, 제대로 식사도 못 한 이들 앞에 먹을 것들이 잔뜩 떨어졌다.
“자, 일단 먹고 생각하자고.”
세주가 말하자, 몰래카메라에 당한 허탈함을 잊은 부대원이 달려들었다.
우걱우걱.
잘도 먹네.
꼬르륵.
그걸 본 세주의 위장도 아우성쳤다.
3개월 만에 일어난 위장이 미친 듯이 먹을 걸 요구하고 있었다.
“나도 같이 먹자!”
세주도 금세 산더미처럼 쌓인 오드꾸와에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