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39화 (139/206)

#  139

139. 기분 째지네

세주는 모드를 켜면서 눈을 감았다.

오감이 달라지기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프로비던스는 재차 말했다.

-제한시간을 잊지 마.

프로비던스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들렸다.

두꺼운 천막 밖에서 뭉툭한 소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왼팔의 통증이 전신에 퍼진다.

통증이 배가 될수록, 정신이 또렷해졌다.

부상당한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퉁, 퍽!

“컥!”

“끄아!”

비명과 소음이 연이어 들린다.

그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에 맞춰, 눈을 뜨지 않고서 세주는 앞의 상황을 대강 그렸다.

적의 위치와 아군의 위치.

현재 상황.

유불리를 합리적으로 계산한다.

평소, 칼큐레이팅 모드에 익숙해졌기에 할 수 있는 묘기였다.

드드드드드!

바닥에 끌려 뒤로 밀리는 인준일 것이다.

넷 중 가장 무거운 아머를 가졌으니까, 땅에 끌리면서도 저런 묵직한 소리가 들린다.

청각이 완전하게 익숙해진 싶었을 때.

손가락을 까닥였다.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구나.

촉각이 돌아오며 통증이 심해진다.

그래도 이게 낫다.

통증 덕에 적응이 빨랐다.

코끝으로 매캐한 향이 났다.

화약과는 다른 시큼한 냄새다.

인준의 백린탄이었다.

그에 맞춰, 살이 타는 냄새도 났다.

놈이 에너지 블레이드를 휘두르고 있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베인 건 치용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청각, 후각, 촉각이 돌아온다.

노블 에너지가 미친 듯이 몸을 휘돈다.

혈류가 빨라지고, 에너지 흐름이 거세지면서 천천히 전신에 기력이 차올랐다.

아니, 차오르는 정도가 아니다.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똑같은 에너지양이라도 흐름에 따라서 효율성이 달라지는구나.’

입안에 씁쓸한 피 맛이 났다.

통증 덕이다.

혈향과 피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숨 쉬어. 질식사할 작정이야?

이 요악한 기계 자식.

프로비던스가 말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세주는 자신이 모드를 켠 직후부터, 지금까지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걸 방금 깨달은 참이었다.

심장 박동이 전신에 울렸다.

두근.

순간 야릇한 쾌감이 밀려들었다.

단연코 이제까지 어떤 방식으로도 얻을 수 없었던, 극렬한 쾌감이었다.

세주는 아직도 자신이 눈을 감고 있다는 걸 알았다.

눈을 뜰 시점이었다.

서서히 빛을 본 시신경이 반응한다.

처음 본 건, 팽이다.

두 다리가 잘려서 바닥을 기고 있다.

당했구나.

지혈하지 않으면 출혈로 죽을지도 모르겠다.

“후우우우.”

숨을 뱉자, 푸른 연기가 입안에서 흘러나왔다.

동시에 입안을 휘돌던 핏기가 타서 증발되며 푸른 연기에 섞였다.

붉고 푸른 연기가 뒤엉킨다.

두 가지 연기가 코와 입에서 빠져나오고, 세주는 눈을 완전히 떴다.

호흡을 다시 들이마시기도 전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팽은 두 다리를 잃어 기는 중이고.

인준의 아머는 부서지고 흩어졌다.

유진은 한쪽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으라라라라라라!”

그리고 기합을 지르며 적을 막는 치용의 등이 보인다.

치용의 왼손에 쥔 푸른 도끼가, 적을 향해 쇄도한다.

쩡!

하지만 속도에서 너무 큰 차이가 보인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쩍하고 깨져 날아간 에너지 블레이드 조각이 치용의 몸에 박힌다.

동시에 훅하고 세주 쪽으로 치용의 몸이 날아왔다.

역시 몸집이 크다.

등이 떡하니 보이며 적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뿐 아니라 프로비던스도 적의 모습을 놓쳤는지, 입을 열었다.

-놓쳤어.

‘괜찮아.’

세주는 차분하게 프로비던스를 제지하고, 날아오는 치용을 받으려 했다.

주변 공기가 낱낱이 손에 잡힐 정도로 선명한 감각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쾌감이 여전히 전신을 휘돈다.

마치 신이 몸에 강림한 것 같은 기분이다.

세주는 지금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 같았다.

프로비던스는 오버 클럭 모드를 이레귤러 모드라고도 불렸다.

자신의 계산 하에 만들어지지 않은 기술.

이레귤러이자 오류.

프로비던스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며, 세주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인생이 단편적이면 얼마나 심심하겠냐?’

인생은 스펙터클한 편이 재밌다.

그 덕분에 남들보다 고생은 배로 해도, 그게 즐겁다.

덕분에.

“기분 째지네.”

그리고 눈을 들자, 적의 송곳 같은 에너지 블레이드가 세주를 향해 꽂히고 있었다.

왼 손바닥으로 치용을 받으려 했다.

손이 잘린 걸 깜빡 잊었다.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잊는 건지.

자신이 그렇게 멍청했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 자식 언제 찌르려고 하는 거지?

놈의 송곳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보였다.

세주는 왼발을 들어 치용의 등을 발바닥으로 밀었다.

퉁.

묵직한 쇠공을 미는 것 같았다.

치용이 밀리는 걸 보며 오른손을 뻗었다.

손등에서 빛이 뿜어진다.

적은 동체가 크다.

세주는 되도록 일격에 끝내고 싶었다.

이 상태가 그리 오래 지속 되지 않을 거라는 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날카로운 칼날을 연상함과 동시에 손에 잡히는 블레이드 그립이다.

콰가가가가각!

그리고 굉음이 적과 세주 사이에서 터졌다.

*

유진은 깨진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다.

‘어떻게 맞은 거지?’

순간 빛이 번쩍였고, 가까스로 머리를 틀었다.

1cm만 덜 틀었어도, 1초만 늦게 반응했어도.

‘죽었다.’

특별히 오금이 저리진 않았다.

이제까지 수없이 사선을 넘었다.

‘겨우 이 정도에 쪼그라들 정도로 내 건 작지 않다고.’

눈을 뜨고 앞을 보자 바닥을 기는 팽이 보였다.

쩡!

그리고 나가떨어진 자신과 인준을 대신해 혼자서 적을 막는 치용도.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하지만, 치용도 한계다.

‘이 빌어먹을 형님이.’

지금 늦장 부릴 때냐고.

땅이 출렁이며 머리가 핑 돈다.

시야를 가까스로 조절해서 세주를 찾았다.

“후우우우.”

마침 숨을 뱉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후두두둑.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뭐가 변한 건지는 몰랐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유진은 느꼈다.

탁월한 에너지 컨트롤 능력과 예민한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선 반세주란 인간은 뭔가 궤를 달리한 존재라고.

‘무슨 짓을 한 거지?’

유진은 이성의 끈을 가까스로 붙들었다.

반세주는 아군이자,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다.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살았다.

억지로 안도감을 느끼는 유진의 뒤로 인준이 있었다.

그도 유진과 다를 바 없었다.

대신 느끼는 건 달랐다.

인준은 죽음을 예감했었다.

가까스로 살았지만,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난 왜 약한 거냐?’

인준은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훈련소 때부터 지금까지, 반세주란 남자의 그늘에 보호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군 입대를 결심하게 된 동기다.

‘그때보다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어.’

여전히 자신은 약하다.

그리고 인준은 그게 가장 싫었다.

정신을 잃은 치용을 제외한 셋은 세주를 볼 수 있었다.

붉고 푸른 연기 같은 것을 뿜은 세주는 훅하고 날아오는 치용을 쳐 냈다.

카가가각!

바닥을 긁으며 치용이 한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말의 몸과 인간의 상체를 가진 켄타우로스 안드로이드가 세주에게 쇄도했다.

아니, 그들은 자세히 볼 수 없었다.

그저 빛이 번쩍이는 걸 봤을 뿐이다.

콰가가가가가가각!

굉음이 둘 사이에 터졌다.

후웅!

충격파가 동심원처럼 퍼지며 그들을 덮쳤다.

“우웩!”

유진은 구역질이 나서 속에 있는 걸 게웠다.

이전에 이미 머리가 흔들려서 이걸 참는 것보다 차라리 속을 비우는 게 나았다.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앞을 보자 오연히 선 세주의 모습이 보였다.

바이탄 행성의 낮게 깔리는 햇빛이 세주를 비췄다.

그의 오른손에 묵직한 정글도 형태의 에너지 블레이드가 들려 있었다.

그것도 잠시 칼날의 빛이 흐려지더니, 사라진다.

세주의 등 뒤, 유진은 볼 수 있었다.

세로로 쪼개진 써틴의 모습을.

“정말 죽였군.”

인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웅웅거리며 들리며, 두통이 찾아왔다.

저 빌어먹을 형님은 정말 대단하다.

“이번에 정말 죽을 뻔했네요.”

웃으며 유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게.”

인준이 말을 하면서도 몸을 일으키지 않는다.

“형님?”

“척추가 나갔나 보다.”

‘아이고.’

유진은 피식 웃고 팽을 봤다.

[지혈대를]

잘린 다리에서 아직도 피가 흐른다.

냉정하기도 하다.

‘나도 기절해야겠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아무래도 뇌출혈이라도 일어난 것 같다.

하루, 24시간이면 세주의 이모탈 엔젤스가 부활한다.

유진이 세주를 보며 다리를 질질 끌며 걸었다.

쓰러지기 직전, 세주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쿨럭.”

그런데 갑자기 세주가 피를 왈칵 토한다.

“뒤 좀 부탁한다.”

그리고 생긋 웃더니, 앞으로 벽에 얼굴을 박았다.

“…에?”

세주가 졸도했다.

눈을 깜빡거린 유진이 주변을 둘러봤다.

진즉에 나가떨어진 치용은 살아있는지 몸을 꿈틀거린다.

바닥에 몸을 박은 것처럼 보이는 거로 봐서는 치명상이다.

인준도 마찬가지다.

척추인지, 경추인지 하여간 그는 목 아래가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대장, 내가 부축할 게]

두 다리를 잃은 걸 잊었는지, 팽이 세주에게 기어온다.

‘나도 기절하고 싶은데.’

“에효.”

어쩌다 보니 자신 외에 다 반병신이다.

“팽, 스탑.”

유진은 세주에게 향했다.

한 걸음 내디딘 순간, 땅이 갑자기 눈앞에 확 다가왔다.

쿵!

‘아.’

유진도 가까스로 버틸 뿐이었다.

그도 도저히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네. 적은 죽였지만, 여기서 그냥 죽게 생겼어.”

인준이 말했다.

‘저 형님은 왜 저렇게 냉정해.’

아니, 냉정한 게 아니라 저 사람은 말투가 원래 저렇다.

유진은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내가 구하겠습니다]

그때 투박한 기계음이 들렸다.

지지직.

[내가 구합니다. 전 인간을 구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

지지직.

용케 살아남았구나.

실버라고 이름 붙인 구세대 안드로이드다.

정작 자신의 몸도 개박살 난 상태이긴 하지만.

‘미안하지만.’

죽을지 살지는 모르지만, 유진도 더는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툭 하고 고개를 꺾으며 유진까지 정신을 잃고.

몸의 자유를 잃은 둘과 정신을 잃은 셋 사이로.

지지직.

하반신을 잃은 로봇이 땅을 기는 소리만 들렸다.

*

“후.”

나호필은 위성을 통해 들어 온 대량의 파일을 보며 짜릿한 감각을 느꼈다.

그도 한때는 과학을 탐구하던 학자였다.

지금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을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은 있다.

그래서 분명 세주가 보내온 도안과 알고리즘, 공정 프로세스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탁’ 칠 뻔했다.

“아머 공장 쪽 사람하고 최고 기술자 전부 소집해.”

나호필은 주저하지 않았다.

평소의 미친 짓을 일삼는 세주의 의견에 토를 달 생각도 없었다.

나호필은 다시 세주가 남긴 마지막 한 문장을 살폈다.

그거 못 만들면 오지 마.

‘저 위는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소리겠지.’

고작 한 문장이지만, 나호필은 천재 중의 천재란 소리를 듣던 이다.

그는 세주가 남긴 말과 정보를 토대로 상황을 눈에 보듯이 파악했다.

‘적은 강하고 무섭다.’

‘지금의 병력으로 올라가면 전멸이다.’

‘미친놈이 보낸 도안을 연구해서 병기화 시키면, 붙어볼 만하다.’

“가장 우선해야 할 건, 연구.”

생각을 정리한 나호필이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가자 부관이 옆으로 붙는다.

“전부 모이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아머 사업 쪽으로 최고 기술자를 보유한 회사가 불참 의사를 보냈습니다.”

기술을 개방하고 국가에서 사기업을 밀어주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긴다.

부르면 냉큼 올 것이지.

“핑계는?”

“하루라도 빨리 전함을 개조하고, 적의 침입을 대비한 방공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웃기고 자빠졌네.”

나호필은 피식 웃고는 걸음을 멈췄다.

“이 쌍놈의 새끼들이.”

웃음기를 지운 나호필이 눈에서 불을 뿜었다.

오라면 올 것이지!

“야, 크롬 팀 불러, 다 들고 오라고 해. 싫으면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버려.”

“…진짜로 합니까? 국방부 장관 지시라고 했습니다.”

딱.

나호필은 부관의 정강이를 때렸다.

“윽.”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시간 아깝다. 그 장관이란 새끼도 말리면 죽여 버려. 오케이?”

“네!”

“알아들었으면 뛰어. 새끼야.”

“넵!”

부관이 꼬리에 불이 붙은 듯, 뛰었다.

나중에 암살자를 보내든, 아니꼬워서 주먹을 날리든 상관없었다.

나호필은 그 한 줄의 문장에서 ‘위기’를 읽었다.

‘시바, 하루라도 빨리 위로 가야 한다고.’

만일 반세주와 그 부대원을 잃는다면 이 싸움, 이길 수 있을까?

나호필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빠른 합류야말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