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138. 오버 클럭
“너, 졸라 재수 없다.”
17살의 반세주는 막 고등학교에 들어온 참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건 동급생을 본 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뒤질래?”
지금 누가 누구보고 재수가 없다고 한 건지.
몸집도 크고 얼굴도 무섭게 생겼다.
탤런트 정동남 아저씨를 닮았다.
“아니, 살고 싶은데.”
비아냥거릴 의도는 조금 밖에 없었다.
“나와.”
쾅.
그가 의자를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
“그럴까?”
막 밖으로 나간 놈을 본 바로 앞 친구가 손을 떨며 말한다.
“미안. 나 때문에.”
“아냐. 너 때문에.”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장면을 봤을 뿐이다.
무슨 대단한 오지랖인 건지.
그니까 괴롭힘 당하던 애 때문이 아니라, 자신 때문이다.
그냥 꼴 보기 싫어서 한마디 했을 뿐이다.
“너 어디서 좀 놀았냐?”
교사 뒤편, 짧은 풀이 나 있는 곳으로 오자 그가 물었다.
“놀기야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기차게 놀았지.”
아직 열일곱 살이라 아르바이트 한 번 한 적 없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탱자탱자 노는 중이다.
“너 이 새끼.”
격한 싸움은 없었다.
그냥 투닥거리다 턱을 잘못 맞은 상대가 쓰러졌다.
“후아.”
광대뼈를 맞았는데, 멍이 들 것 같았다.
“너 이 개새끼.”
맞고 졌으면 깔끔하게 포기하지.
꼭 친구를 불러오지.
교사 뒤편 구경하던 애들 몇 명이 나와, 신나게 세주를 두들겨 팼다.
몰매에는 장사 없는 법이다.
그날 팔이 부러졌었나, 인대가 끊어졌었나?
하여간 징하게 다치고 집에 들어갔다.
결국, 맞다가 정신을 잃었고, 세주 자신을 포함해 여러 명이 정학을 먹었다.
‘왜 그때 기억이 떠오를까?’
눈이 서서히 감기며 드는 생각이다.
졸려 뒤지겠다.
팔도 떨리고, 왜 이걸 버텨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때도 그랬다.
왜 참지 못하고 나서서 그런 꼴을 당했는지.
-정신 차려!
귀에 쩌렁쩌렁한 소음이 터졌다.
‘형, 귀 안 먹었다.’
콰과과과과!
세주는 머리 위에서 빛이 불똥처럼 떨어지는 걸 보고 질린 얼굴을 했다.
“저 새끼 스태미너 좋은 거 봐라. 장어를 잡아먹었나.”
세주가 투덜거렸다.
팔이 떨리고, 근육 일부가 박살 난 것 같다.
땅에 발목까지 파고든 채, 버티고 버티는 중이었다.
오형포를 이렇게 지속형으로 유지할 수 있구나.
‘이모탈 엔젤스.’
거기에 몸에 과부하가 걸릴 때마다 유니크 모드를 펑펑 썼다.
고리 하나당 완벽하게 상처를 치유하는 천사의 고리가 세주의 몸을 감싼다.
이것도 벌써 11개째다.
전신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 세주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이런 게 바로 엄마 젖 빨 힘까지 쓰는 거구나.’
-여유 부리다가 정말 죽겠어. 그니까 내가 피하라고 했잖아!
‘그러면 다 죽잖아. 자식아.’
-형은 살 수 있었어.
‘야, 이, 냉정한 자식아. 세상 혼자 사는 거 아니다. 넌 전쟁 끝나면 초등학교부터 다녀, 거기서 협력, 협동 좀 배워 와라.’
-미친 소리를 할 정도로 여유 있어?
없다. 이 빌어먹을 기계 놈아.
‘마지막 링 써.’
이모탈 엔젤스의 기능을 쓴 세주는 다시 전신에 활력이 솟았다.
그렇다고 해서 노블 에너지의 절대 치가 오르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외상과 전신의 피로를 없앨 뿐이다.
콰아아아아!
옆으로 비껴내고 싶었지만, 버티는 거로도 힘겨웠다.
모든 준비를 한 뒤였다면, 이 오형포도 버틸 수 있었을 터지만.
-이게 육형포구나.
‘그래?’
-오형포 에너지에 지속형인 상태, 이게 육형포야.
차라리 에너지 입자라면 어떻게 해볼 텐데.
이 무식한 광학병기는 그야말로 살상에 특화된 ‘병기’다.
드드드드.
팔이 견디지 못 한다.
머리 위에서 세찬 폭포 소리가 계속 울렸다.
퍽, 주륵.
코 안에서 뜨거운 액체가 느껴진다 싶더니, 주르륵 하고 흘렀다.
‘젠장.’
그뿐 아니다.
팔의 혈관도 터져서 붉은 멍이 든다.
귀에도, 눈의 모세혈관도 터진다.
-진짜 죽겠어. 어쩔 수 없나. 형, 나 없이도 잘 싸울 수 있지.
‘개소리 마.’
버티고 또 버텼다.
치용이 옆으로 왔다.
“주십쇼. 제가 합니다.”
이제는 진짜 입을 열 힘도 없었지만, 간신히 말을 했다.
“어디서 비아그라나 좀 구해 와. 저 자식 장어 꼬리를 한 트럭은 먹었나 봐. 정력이 죽여 줘.”
이 상황에서도 굳이 농담을 건네야 겠다.
-…참 형답다. 현실로 남은 에너지 전부 구현한다. 그래서 폭발을 일으킬 거야. 그 방법뿐이야.
‘필요 없어.’
세주는 깔끔하게 한 팔을 포기하기로 했다.
우드드득.
왼팔 하나로 벼락을 든 채, 그대로 힘을 줘 꺾는다.
놈의 육형포가 멈추길 바랐지만, 그게 안 된다면.
‘미안하다고 안드로이드 친구들아.’
내려치는 빛의 폭포가 꺾인다.
동시에 안드로이드가 있던 곳으로 미끄러지듯 스친다.
콰가가가가가가! 퍼버버버버버벙!
그것만으로 구세대 안드로이드 병력 80%가 박살난다.
“으아아아악!”
세주는 이걸 비껴내는 대가로 몸의 왼쪽 전신이 탔다.
거기에 왼팔이 찢겨 날아갔다.
잘린 팔에서 피가 솟았다.
“형!”
유진이 다가와 나노킷의 빛을 뿜어낸다.
그리고 치용과 인준이 그 앞을 막는다.
팽은 얌전하게 세주의 곁을 지켰다.
콰아아아아!
육형포는 행성을 그대로 반으로 쪼갤 기세로 땅을 헤집으며 달렸다.
콰우우우.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화력이 약해졌다 싶더니, 그대로 굵기가 줄어들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 쉽 한 대가 내려선다.
[육형포를 비껴내?]
써틴, 바이탄의 진짜 안드로이드의 등장이었다.
‘햐, 이거 너무하네.’
-그러게.
세주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써틴, 놈은 콴의 가르간 만큼이나 에너지 보유량이 높다.
거기에 이제까지 봤던 안드로이드와 기세가 다르다.
처음 봤을 때, 가르간은 상대할 엄두가 안 났다.
그만큼 강한 바이탄의 안드로이드였다.
그는 쉽에서 뛰어내려 발바닥에서 불꽃을 분사하며 천천히 내려섰다.
거리는 고작 10m 내외.
손짓 한 번이면 다 죽을 거다.
세주는 알 수 있었다.
저건 괴물 중의 괴물이다.
곧게 뻗은 다리는 사슴을 연상케 했다.
상체는 인간과 꼭 같지만, 하체는 아니다.
다리가 네 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켄타우로스를 닮았다.
인간처럼 고운 살결을 가진, 반인반마.
그게 써틴의 모습이었다.
“나 죽으면 묘비에는 인류 최고의 미남이라고 적어줘요.”
유진이 입을 열었다.
“재수 없다.”
인준이 흥하고 웃으며 말했다.
“죽긴 누가 죽어?”
치용이 말을 받았다.
-단체 자살이네. 묘비에는 또라이 여기 잠들다 정도가 적당하겠는데?
‘난 빼 줘. 여기서 죽다니, 난 아직 강슬이랑 키스도 못 해 봤다고.’
-살아도 한다는 보장은 없잖아?
‘꺼져. 이 비관적인 기계 자식아.’
사람은 긍정적이어야지.
살아나면 미녀랑 키스도 하고, 다른 것도 하고, 엉? 당연한 거 아냐?
[인간들]
탁한 기계음 대신, 맑은 목소리다.
[전부 죽이겠다]
저렇게 자신의 뜻을 일방적이고, 확고하게 표현하는 기계라니.
‘너만큼이나 매력적인데?’
-어디다 날 비교해?
쾅!
놈이 바닥을 박찬 순간, 잔상이 남았다.
펑!
그리고 앞을 막던 치용이 뒤로 날아간다.
‘죽은 거 아니지?’
-막았어. 힘이 워낙 차이 나서 날아간 거야.
드르르륵!
인준의 기관총이 광탄을 뿜었다.
그러나 놈은 몇 번 땅을 박차는 것만으로 탄을 전부 피했다.
팽이 세주를 안았다.
[대장, 도망간다]
하여간 생존 본능만큼은 투철하다.
여기서 싸우면 전멸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틈에 유진의 아머가 사라졌다.
-안 통할 거야.
프로비던스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왜?’
-은따는 눈속임이지, 실제로 사람을 다른 공간에 숨기는 게 아냐.
프로비던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도 날아간다.
그 사이 다시 치용이 달려왔다.
“어흥!”
언제 들어도 참 개성 넘치는 기합 소리다.
그런 치용을 일견하고 세주는 프로비던스에게 물었다.
‘우리 튈 수는 있냐?’
-생존확률 2%.
암울하네.
왼팔이 날아갔다.
통증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통각 일부 차단할게.
‘아니, 그러지 마.’
감각이 둔해지면, 전투에 불리하다.
-싸우게?
‘얌전히 죽어줄 순 없잖아?’
-2%를 20%로 생존확률을 올릴 순 있어.
‘뭔데?’
-다 버리고 혼자 튀어.
‘기각.’
이 썩을 기계 새끼는 안 들을 걸 뻔히 알면서 저리 말한다.
-싸울 거면, 시간을 벌어야 해.
이모탈 엔젤스의 치료에 기댈 수도 없다.
아무리 자체 치유력이 높아지고, 나노킷을 뿌린다고 해도 없던 팔이 생겨나진 않는다.
적은 빨랐다.
인간을 진즉에 뛰어넘은 동체 시력으로도 모습을 잡아챌 수 없었다.
펑!
“윽!”
인준이 배를 잡고 허공에 둥실 몸을 띄운다.
“컥!”
치용이 목이 돌아가며 한쪽으로 나가떨어지고.
신음 소리 없이 유진이 놈의 주먹에 얹어 맞아 땅에 처박힌다.
-승률 3%.
‘도망가는 것보다는 높네?’
팽이 옆으로 다가왔다.
[대장]
“넌 얌전히 튀어라.”
팽이 피식 웃는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내가 잘도 가겠다]
약간 건방지게 말하는 포인트가 정말 뇌쇄적이다.
-놈, 에너지 블레이드도 안 쓰고 있어. 그냥 노블 에너지를 뭉쳐서 휘둘러 때리는 건데.
치용의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가 깨졌다.
인준도 복부가 터졌고, 유진도 머리가 깨져 피가 흘렀다.
“야, 잘못하면 우리 여기서 다 죽겠다.”
[당연한 말을]
치용을 비롯한 부대원에게 한 말을 적이 받았다.
‘싸가지가 너만큼이나 없네. 어디서 말을 받아치고 있어.’
-자꾸 날 저기다 비교할래?
자, 방법을 찾아보자.
저 자식은 어디서 뚝 떨어져가지고 이렇게 사람을 괴롭게 하는지.
[포기해라. 고통은 없을 것이다]
치용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크흐흐흐.”
…저기, 진짜 죽게 생겼다니까?
“어쩔 거야? 저거 놔둘 거야?”
인준이 옆으로 와서 말했다.
마스크 덕에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리라.
“그럴 리가요. 후, 형님. 이제 보여주세요. 힘들어 죽겠어요.”
기대감 어린 시선이 모인다.
이런 상황이지만, 반세주라면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저기, 나도 딱히 방법은 없거든.”
팔은 날아갔고, 적은 막강하다.
“없다고요?”
유진이 인상을 찌푸린다.
그의 무기는 분류하자면 ‘화학’ 무기 쪽이다.
적이 기계 안드로이드인 순간, 유진은 자신의 숨겨둔 한 수가 크게 유리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백린탄 안 먹혀.”
인준도 마찬가지다.
그도 자신이 가진 무기를 이미 썼다.
적은 놀라운 움직임으로 인준의 탄을 피했다.
“없다기보다는….”
“그럼요?”
“이 상태로는 무리라는 거지.”
팔이 날아갔다.
제대로 저격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젠장, 그럼 어떻게 해요?”
“시간 좀 벌어줘.”
세주가 말했다.
-하지 마.
무슨 짓을 할 건지 눈치 챈,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방법이 없거든.’
“제가 갑니다! 사나이 김치용!”
치용이 앞으로 튀어 나간다.
인준과 유진도 함께다.
“너도 가.”
팽도 보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선다.
콴의 전투법을 숙지한 그녀는 가장 밸런스가 좋은 전투원이다.
그리고 세주는 뒤로 물러났다.
꽝! 꽝!
다시 폭음이 터지고 적과 부대원의 싸움이 시작됐다.
-죽을 거야. 전부.
‘그렇게 안 둘 거니까, 걱정하지 마.’
-쟤네를 살리다가 형이 죽어. 난 그걸 용납할 수 없어.
‘그러니까 네가 잘 컨트롤 해야지.’
호흡을 고르고 모드를 선택할 시점이다.
콴의 행성과 메카니모스의 행성, 거기에 이곳 바이탄 행성까지.
세 개의 행성에서 모인 에너지 수치가 백만 단위를 훌쩍 넘어서 천만에 가까워졌을 때다.
프로비던스는 말했다.
-모드 성장 시켜 볼래?
‘그게 가능해?’
-응.
업그레이드 된 프로비던스는 정말 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해야지.’
-균등하게 올린다.
개방한 모드만 해도 한 두 개가 아니다.
에임 모드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흉몽 모드까지.
‘기다려.’
세주는 프로비던스가 에너지를 쓰려는 걸 막았다.
그리고 하나의 모드를 가리켰다.
‘올 인.’
멋지게 한 마디를 뱉자.
-미쳤어?
‘하라면 해.’
프로비던스는 반신반의한 심정으로 하나의 모드에 에너지를 투자.
동시에 세주는 기술의 회랑에서 새로운 모드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쓰려는 모드였다.
‘모드 온, 오버 클럭.’
조용히 속으로 읊조린 순간, 세주의 전신에 흐르는 에너지가 가속했다.
오버 페이스 모드를 강제로 성장, 각성해서 연 레어 모드다.
이름은 오버 클럭, 능력은 단순 명쾌했다.
전신에 신진대사를 비롯한 모든 기능을 평소보다 배 이상으로 끌어 올리는 모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