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137. 외쳐라
써틴은 도착 전에 높은 확률로 아군이 전부 사망할 거라고 예상했다.
‘적은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전투력은 콴의 제너럴 급 이상.
그리고 구세대 안드로이드를 고쳐 아군으로 삼는 걸 봐서는, 기술력도 메카니모스 급이다.
이런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써틴은 이런 존재를 알았다.
‘인간.’
과학과 기술이라는 이름의 두 자루 검을 마음껏 휘둘렀던 인간은 강했다.
물론 과거형이다.
지금 그 두 자루 칼날은 녹이 슬었고, 이가 빠졌다.
바이탄은 인간에게 기술을 뺏고, 죽였다.
인구수가 급감한 인간이 택한 방법은 도주뿐이었다.
‘상황은 전부 파악했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인간이다.’
돌연변이도 있을 수 있다.
바이탄은 정형화 된 기계병사를 뽑아내지만, 인간은 개인차가 발생한다.
감정, 생각, 재능 등.
인간에게만 주어진 축복들, 그 비밀을 풀기 위한 안드로이드가 바로 써틴 자신이었다.
총 열 세 대의 감정을 지닌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넘어서기 위한 연구 결과다.
만일 그렇다면 행운이다.
자신은 대인 전투와 격투에 특화된 안드로이드.
적이 만약 돌연변이라면 더 자라기 전에 싹을 잘라 버리면 된다.
‘인간이라면.’
꼭 죽일 것이다.
열 세 대의 안드로이드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존재를 증오한다.
그들이 처음 배우는 감정이 바로 증오였으며, 그 대상은 인류였다.
*
프로비던스는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하지만 말투가 사나운 이 로봇의 가장 큰 장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잘했다. 브로.’
분석력을 첫 손에 꼽을 거다.
대량의 정보를 확인하고 판독한다.
동시에 현재 세주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전해준다.
-여기야.
맵의 한 곳에 큰 붉은 점이 나타났다.
프로비던스가 하듯, 적도 재밍을 한다.
맵에 적의 숫자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이유였다.
하지만 적의 기억 장치를 탈탈 턴 프로비던스는 브레인의 행동양식을 예측했다.
-생산 플랜트를 최우선으로 지켰을 거고, 수비 병력을 모았을 거야.
거기까지는 예상한 문제다.
그 플랜트의 위치를 정확히 몰랐을 뿐이지.
그리고 지금, 프로비던스는 그 위치를 알려줬다.
“이제 싸우는 겁니까?”
콧김을 훅훅 뿜는 치용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니.”
불필요한 전투는 필요 없다고.
더구나 지금 구세대 안드로이드 부대가 오늘 내일 하고 있다.
시간은 적의 편이다.
하지만 시간을 제외한 모든 것은 아군의 것이다.
정보에 앞서고, 적의 위치를 안다.
거기에 지금 있는 곳은 적의 심장부.
“여기 다 터트려 버려.”
빼먹을 정보는 다 빼먹었다.
“오케이.”
인준이 기관총을 든다.
유진이 광편 수류탄 두 개를 양손에 나눠, 쥐었다.
“어흥!”
치용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머를 입은 채, 주먹으로 기물들을 부순다.
팽은 얌전히 그런 세주 곁에 있었다.
“너무 가까이 붙으면 다친다.”
세주가 벼락을 들어 한 곳을 겨눴다.
적의 수비 병력과 생산 플랜트가 있는 곳이다.
끼이이잉.
전신에 푸른빛 모여 뭉쳤다.
풀 업이다.
화륵, 전신을 감싼 푸른빛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변한다.
번 업.
세주는 벼락을 들어, 정신을 집중했다.
펑! 꽝!
주변을 부수는 소음이 멀어진다.
놀랄 만큼 고요하다.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압축.’
벼락의 탄창에 놓인 한 발의 광탄에 힘을 집중한다.
스파이럴도 필요 없다.
관통력 자체는 충분하다.
더구나 계산은 자신의 몫이 아니다.
-필요한 건, 압축과 폭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한 최적의 탄을 만드는 과정이다.
탄에 에너지를 압축한다.
세 번을 반복하자, 벼락이 부르르 떨렸다.
이전 버전 벼락에 비하면, 훌륭한 내구도를 자랑했다.
세 번을 압축해서 쏘는 애비탄은 총열을 박살내는 괴물 같은 탄이다.
불릿 마스터 모드를 켠 세주는 폭발의 기운을 담았다.
그저 한 발의 탄이 아니다.
지금 세주가 쏘려는 건 적을 몰살시킬 폭탄이었다.
압축을 거듭하면 겹겹이 접착성 화염 폭탄을 씌운다.
‘확장.’
지잉.
총구가 푸른빛에 흐려지며 확하고 늘어난다.
사람 머리통도 들어갈 정도로 늘어난 총구다.
티딕, 티딕.
벼락의 안에서 전기가 튀는 소리가 났다.
퉁, 쾅!
몸이 뒤로 밀리기 직전, 세주는 발을 들어 바닥을 찍었다.
뒤로 날아간 것도 한 두 번이다.
이제는 요령이 붙을 만큼 불렀다.
압축 폭탄이 벽을 꿰뚫고 날아간다.
콰광!
주변을 때려 부수던 부대원들이 흘깃 세주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다시 할 일에 집중했다.
‘눈.’
프로비던스의 스코프를 달고 앞을 봤다.
평소보다 배는 선명한 시야다.
그리고 세주는 자신이 날린 탄의 결과를 확인했다.
“귀찮은 자식들이네.”
타임워치의 초가 아직도 흐르고 있었다.
-어쩌게?
“전 부대, 이동.”
“부대라고 해봤자, 고작 넷이 전분데요.”
유진이 초를 치듯 말했다.
“잔말 말고 따라와!”
세주는 말을 끝내고 땅을 박찼다.
*
터지고 부서진다.
브레인은 반쯤 부서진 몸의 기능을 확인했다.
[거동 불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메모리 볼과 생체 신호는 멀쩡하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에너지는 충분하지 않았다.
고작 한 방.
날아온 폭탄이 플랜트를 반파하고 자신까지 쓸어버렸다.
적은 강했다.
브레인은 기계답게 냉정했다.
이곳의 병력으로는 적을 죽일 수 없다.
써틴이 이곳에 온다.
기지를 습격한 적은 그의 몫으로 남긴다.
브레인은 최선의 선택을 했다.
신호는 단순했다.
내부의 적이 아닌, 외부.
구세대 안드로이드를 전멸시키라는 명령이었다.
남은 전투형 안드로이드 전부가 내달렸다.
*
실버는 구세대 안드로이드를 이끌었다.
자신의 메모리 볼에 담긴 건, 바이탄의 수장과 맞먹는 양질의 전투 메모리다.
약세의 병력으로 그는 가까스로 적을 물리쳤다.
[이겼다]
마지막 남은 안드로이드의 대가리를 부순 실버가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너머에 다시 새로운 놈들이 다가오는 신호가 잡혔다.
실버의 렌즈가 작아지며 먼 곳을 바라본다.
지이이잉.
실버는 메모리를 뒤졌다.
현 상황을 타파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적의 숫자는 전보다 많다.
전투형 안드로이드가 몰려오는 광경이다.
[끝]
그는 판단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적의 안드로이드가 레이저 포를 쏜다.
라이플에서 쏟아진 빛이 앞을 덮쳤다.
적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구세대 안드로이드 수십 기가 단숨에 부서지며 몸체가 터진다.
부서진 금속 조각이 뒤로 날아왔다.
실버가 인간이었다면, 절망에 빠졌을 그런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꽝!
폭음이 다시 울렸다.
실버의 렌즈가 새로운 개체를 파악했다.
하늘에서 날아온 커다란 덩치의 인간이다.
자신을 이끌었던 인간이 아니다.
그는 적의 한가운데에 떨어져 양손으로 에너지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아니, 칼이 아니라 도끼다.
태풍이 몰아치는 듯 사방에 적들이 후두둑 찢기고, 베이고, 부서진다.
그게 끝이 아니다.
그의 뒤를 따라서, 빛으로 만든 우박이 쏟아진다.
광탄 세례가 적의 머리 위를 때린다.
그 옆으로 날쌘 그림자가 하나 훅 떨어지더니, 그대로 달려, 실버 쪽으로 왔다.
[누구십니까?]
“와, 이게 안드로이구나. 신기하네.”
얼굴이 하얀 인간이었다.
“아군.”
유진이 말하고 눈을 가볍게 찡긋하며 윙크를 한다.
실버는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간은 아군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작 넷으로 적을 몰살하는 이들이 보였다.
남자 셋과 여자 하나.
실버는 로봇이면서 감정을 지녔다.
그는 외계 인류 기술의 집약체로, 그의 메모리가 감정을 로드한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제 기쁨을 표현할 수 있습니까?]
실버가 물었다.
유진은 그런 실버를 보며 피식 웃었다.
“반세주 개자식.”
자신을 구한 인간의 이름, 그게 반세주였다.
그건 기억한다.
실버는 동시에 이곳에 자리 잡은 전 안드로이드에게 명령했다.
[외쳐라]
끼이이잉.
모든 안드로이드가 스피커의 볼륨을 키운다.
동시에 외쳤다.
[반세주 개자식!]
쩌렁쩌렁한 울림이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반세주는 비틀 쉽 위에서 발을 헛디딜 뻔 했다.
“정유진 이 새끼가.”
가서 안드로이드 상태를 살펴보라니까 무슨 짓을 한 건지.
“풉.”
옆에서 인준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저건 참는 게 아니라 일부러 들리라고 비웃는 거다.
저 새끼가.
“병신 이인준도 외치라고 해줘?”
“싸우자고?”
그가 기관총 총구 하나를 세주 쪽으로 돌린다.
“아니.”
세주는 고개를 저었다.
농담을 할 정도로 여유 있었다.
브레인이 박살 난 놈들은 단순했고, 이게 과연 인간의 기술이 집약된 안드로이드인지 궁금할 정도다.
“크헝!”
저 밑에서 괴성을 지르는 치용의 일격을 받아내는 안드로이드가 없다.
정형화 된 병력, 단순한 전술.
상성이 안 좋았다.
생각 없는 부대는 이들의 밥이나 다름없었다.
작살내고 부순다.
적을 전멸시키는 것도 금방이었다.
검은 연기와 불길, 그 사이로 세주가 섰다.
이 행성을 부수겠다고 했고, 그걸 실현했다.
[역시 대장]
팽이 엄지를 치켜든다.
구세대 안드로이드가 우르르 몰려왔다.
세주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뒤로 감췄다.
-무리했지?
아머를 입고 반탄력을 커버링 기술로 받아내도.
폭탄을 맨몸으로 쏘아냈다.
그리고 냅다 달려서 적을 박살냈고.
당연히 무리했다.
세주는 인간이고, 인간의 체력은 무한이 아니다.
쉬운 싸움이라고 했지만, 적은 개인 배리어를 갖춘 안드로이드였다.
스파이럴 없는 광탄으로 부술 수 있는 건 단 한 개도 없었다.
“노블 패스가 찌릿찌릿 하다.”
인준이 입을 열어 말했다.
당연하게도 세주를 제외한 이들 또한 피로를 느꼈다.
“이제 지구로 돌아가자고.”
세주는 말했다.
얻을 건 얻었다.
-형.
그 때였다.
프로비던스가 세주를 불렀고, 세주는 그걸 듣는 순간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브로?’
-염병. 온다.
콰우우우우!
하늘 위에서 커다란 광선이 쏟아진다.
-오형포다!
“피해!”
세주는 순간 노블 에너지를 있는 힘껏 끌어올렸다.
배리어로 버틸 수 있을까?
무리다.
자신 혼자라면 모를까, 부대원이 전부 죽는다.
치용, 유진, 인준, 팽.
이 넷은 잃을 수 없다.
-전부 구할 순 없어. 빠져 나가자.
냉정한 새끼야.
그렇게 놔둘 수가 없다고.
‘모드 온 흉몽!’
프로비던스의 뜻을 무시한 채 전신에 아머를 입는다.
불릿 마스터에 이어 흉몽 모드다.
유니크 모드는 남발할 수준의 무기가 아니다.
세주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모드라고.
대신 쓰면 쓸수록 몸에 부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받아낸다.’
-미쳤어? 2초 남았어!
빛줄기를 본 세주가 양손에 힘을 집중했다.
거대한 포신을 만들어 위로 뻗는다.
오형포의 위력까지 쏟아내려면 얼마나 에너지를 부어야 하나?
프로비던스는 생각했다.
여기서 자신의 주인을 죽일 순 없다고.
-플랜트를 포신에 붙인다. 에너지를 전부 끌어 모아서 출력 높일 거야!
허락 받을 겨를도 없었다.
끼이이이잉!
세주의 손에 든 포신 끝, 빛이 모인 순간 위로 광선포를 쏘아낸다.
퍼어어어어엉!
끔찍한 소음이 났다.
동시에 세주는 의식을 잃을 뻔했다.
어깨와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에 그대로 짜부 될 것 같다.
“버티십쇼.”
그 바로 옆이다.
치용이었다.
“당연한 말을.”
“형, 전 여기서 죽기 싫어요.”
인준과 유진도 옆이다.
[대장]
팽도 함께다.
어느새 넷이 곁에 붙어 있었다.
이 멍청한 것들.
자신이 버티는 동안 도망가면 살 수 있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건지.
-밀어낸다. 버텨.
프로비던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냐.’
세주는 속으로 답하고 이를 악물었다.
아까부터 전신 근육이 전부 찢긴 것 같았다.
그래도 여기서 죽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