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134. 감히 여길?
“확실히 형님이랑 있으면 재밌는 일이 연속해서 일어난다고.”
치용이 입을 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딱히 좋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유진이 바글바글하게 늘어난 위성 드론과 전투 드론을 보고 말했다.
강행돌파?
이건 강행돌파가 아니라, 자살 특공대다.
돌진과 돌격, 미친 짓에 자신 있는 반세주의 수호신 부대지만.
무리는 무리였다.
“다 부술까?”
인준이 기관총을 들며 말했다.
화력으로 전부 부수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저 행성에서 계속해서 병력이 몰려나온다면?
모기치고는 무겁고 아픈 놈이 되겠지만, 행성과 비교하자면 비틀 쉽은 모기가 맞다.
강행돌파 해서 반세주가 오라고 했다.
[언제 출발해?]
팽은 언제부턴가 생각하는 걸 멈췄다.
이 여자 너무 속 편하다.
그게 또 기가 막히게 어울려서 백치미가 뿜어지니, 외모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
유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들의 대장이 불렀으니,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방금까지 싸운 덕분이다.
가시를 바짝 세운 고슴도치를 맨손으로 때릴 순 없는 법이다.
유진은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포기했다.
“자, 형님들.”
“응?”
“왜?”
“들어갈 방법이 없는데요. 이대로 가면 다 죽어요.”
유진의 말에 치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나가서 다 썰어버릴까?”
정육점 주인보다 활발한 칼질을 하는 치용이니 가능할지도 모른다.
일단 진입하는 게 문제다.
이대로 들이받는 것보다 효과가 좋을지도 모른다.
“그럴까요?”
“유진.”
인준이 유진의 어깨를 잡았다.
“네?”
“너까지 뇌를 멈추면 여긴 전멸이다.”
평소에는 머리 쓰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유진에게 맡기지만.
냉정한 상태의 인준은 누구보다 상황을 직시하는 남자다.
“어쩔 수 없지. 내 보따리 먼저 풀어야지.”
인준이 나섰다.
“야, 너 내가 싸우는 게 꼽냐? 왜 사사건건 앞길을 막아.”
치용이 인준을 보고 말했다.
시비 거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쭉 봐온 둘이다.
저 정도 어투와 말투면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다.
애초에 치용의 말투가 저따윈걸 어쩌란 말인가?
“미친놈.”
인준은 그런 치용에게 평소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비틀 쉽 밖으로 나갔다.
지지지지징.
나가는 그의 몸 위로 푸른빛을 띤 홀로그램이 뭉친다.
아머를 소환하는 과정이었다.
세주가 그들에게 선물한 아머는 필요할 때마다 입고 벗을 수 있었다.
프로비던스의 인벤토리를 카피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세주는 그걸 구동하는 장치를 아예 부대원들의 목 피부에 박아버렸다.
어떻게 보면 무식한 짓이지만, 효율성은 최고였다.
용궁 도시에 잡혔을 때도 외계 인류는 아머의 존재를 몰랐다.
“무슨 보따리?”
치용이 밑에서 집요하게 물었다.
싸움 외에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면서 인준에게는 끊임없이 말을 건다.
저걸 보면 둘이 꽤 친한 것 같기도 하고.
“짐승 새끼랑 말할 시간 없다.”
“후레자식.”
…그래도 절친한 사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유진은 비틀 쉽 외부로 눈을 돌렸다.
인준의 아머는 둘의 아머보다 배는 컸다.
애초에 저 안에 폭약과 폭탄, 탄약으로 가득 채운 아머, 일명 탄약고다.
‘난 은따, 치용이 형은 노브레인.’
그런데 유일하게 인준만 탄약고라는 그럴듯한 이름이다.
‘아니, 그럴듯한 게 아니라 대충 지은 건가?’
세주의 성격을 생각해봤을 때, 그럴 수도 있었다.
어쨌든 광탄 정도로는 눈앞을 가로막은 드론 떼를 죽일 순 없다.
인준은 아머에 달린 통신기를 통해 말했다.
“틈이 생기면 바로 돌파한다.”
[맡겨 둬]
팽이 대답했다.
조종간을 잡은 건, 그녀다.
반세주와 관련된 일이라면 가끔 이성을 잃지만, 그녀는 사실 훌륭한 전투원이자 조종사였다.
인준은 비틀 쉽 밖에서 탄환을 바꿨다.
‘여기서 이걸 쓸 줄은 몰랐네.’
용도는 대량학살용.
적을 죽이는 데 특화된 탄환이다.
악마의 무기라 불리는 백린은 어느새 인준의 대표 무기가 됐다.
철컥.
탄창을 바꾼 채, 두 자루 기관총을 손에 든다.
그리고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
앞을 빽빽하게 가로막은 드론 무리가 보인다.
“팽한테 어느 쪽으로 돌입할 건지 물어봐.”
인준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하긴 그동안 목숨 걸고 싸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동안의 전투와 비교하자면, 지금은 위기도 아니다.
부드드드.
비틀 쉽이 앞으로 천천히 부유하듯 나아갔다.
그리고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11시 방향, 그나마 정찰 드론이 밀집돼 있으니까, 거기 뚫죠.”
“접수 완료.”
인준은 조준에 힘을 들이지 않았다.
한 대당 한 발이면 충분하다.
광탄으로 뚫어내려면 몇 시간을 반동을 견디며 탄창을 비워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린탄은 다르다.
겉은 광탄으로 감쌌고, 그 안쪽에는 백린을 채웠다.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형님이라 부르는 남자이자, 이 부대의 대장, 인류의 영웅이 그들을 부른다.
인준은 가슴에 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더할 수 없는 충족감이다.
누군가 그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살면서 처음으로 존경이란 두 글자를 생각나게 하는 미친놈이다.
드드드드드드드.
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반동에 팔이 덜덜 떨리며 조준점이 엇나간다.
인준은 오버 피지컬, 아머에 내장된 기능을 개방했다.
불끈.
근육이 확장되고 힘이 넘쳐흐른다.
노블 에너지를 운용하며 기관총을 쥔 손에 힘을 준다.
무지막지한 반동을 힘으로 억누른다.
푸른빛에 감싸인 탄이 어두운 공간을 갈랐다.
검은 배경에 푸른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퍽!
무지막지하게 쏘아 낸 총탄 하나가 드론의 몸에 박힌다.
폭발은 없었다.
슈슈슈슈슈슉!
증기가 뿜어지는 것처럼 드론의 전신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악마의 무기.
그 이름에 걸맞은 탄이다.
인준의 백린은 인체보다 강력한 외계인의 갑주와 배리어를 부수기 위해 개량을 거듭한 소재다.
퓨슉, 퓨슉. 퓨슉.
폭발음은 없지만, 증기를 뿜으며 밑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드론들.
비틀 쉽 내부에서 그걸 지켜보던 유진이 읊조렸다.
“보따리가 진짜 도깨비 보따리 같네요.”
치용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야, 유진.”
“네?”
“너도 뭐 숨겨놨냐?”
물론 숨겨뒀지만,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치용은 대찬 남자지만, 삐지면 답도 없다.
[돌입한다]
팽은 감탄 대신 집중했다.
그리고 비틀 쉽이 증기를 뿜어내는 드론 사이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
잠입 대신 도주를 택한 세주는 오버페이스 모드를 켰다.
그리고 냅다 달렸다.
등을 돌려 후퇴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을 꼽으라면 역시 속도다.
흔적을 남겨봤자, 색적 시스템 자체가 인간을 초월한 기계 놈들을 따돌리는 거다.
속도만큼 중요한 것도 없었다.
퍽!
바닥을 박차고 세주의 몸이 긴 호선을 만든다.
목표점 근처에서 세주는 프로비던스에게 물었다.
‘추적은?’
-빠른 놈이 셋 있네.
프로비던스가 홀로그램을 띄운다.
덕분에 세주는 앞을 보고 뛰면서 뒤쪽을 살필 수 있었다.
‘등 뒤 왼쪽 하나 중앙에 둘.’
세주는 적을 파악하고 머릿속으로 싸움을 그렸다.
기계병과 마주친 건 잠깐이지만, 놈들에게는 약점이 분명했다.
화력도 강하고 주저함이 없다는 건 강점.
그리고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건, 약점이다.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세주는 뛰면서 양손에 무음 리볼버를 꺼냈다.
앞쪽에 휘어진 철근이 튀어나온 콘크리트 벽이 보였다.
반쯤 부서진 벽을 발로 찬 세주의 몸이 공중을 날았다.
위에서 밑으로 두 자루 리볼버를 겨눈다.
칼큐레이팅 모드로 적의 모습과 명중률이 보였다.
75%. 82%. 35%.
기계병은 세주가 멈추자마자 엄폐물을 찾아 흩어졌다.
골치 아픈 놈들이다.
인간은 보일 수 없는 반응을 보인다.
첫 번째, 놈 82%.
둥.
왼손에 든 무음 리볼버에서 광탄이 나간다.
동시에 오른손에 든 무음 리볼버는 세 발의 광탄을 쏜다.
스파이럴을 씌운 나선의 광탄이 첫 번째 놈을 관통했다.
그리고 삼점사로 쏜 광탄중, 두 발이 다시 한 놈을 부순다.
펑! 펑!
폭음 사이로 세주의 눈은 파랗게 빛났다.
적중률 12%.
둘을 부순 대신 마지막 한 놈이 기막히게 자리를 잡고 숨었다.
저걸 잡느라 술래잡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폭발.’
리볼버에 실린 탄의 성질이 변한다.
둥.
마지막 한 발의 탄환이 날아갔다.
이전에 쐈던 것보다는 한참이나 느리다.
기계병은 피하는 대신 엄폐물에 몸을 숙이고 라이플을 들었다.
바이탄의 표준 무기라도 되는 듯, 다들 비슷한 라이플을 들었다.
위력은 일형포 만큼이나 대단하다.
아니, 이전 바이탄 스나이퍼가 썼던 것만큼 작게 변한 대신 레이저 포의 화력이 집중됐다.
놈이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이다.
세주가 쏜 탄이 놈이 숨은 건물 잔해를 때렸다.
꽝!
폭음이 터지며 놈이 뒤로 펑 하고 날아간다.
세주는 어느새 침묵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반파돼 날아가는 놈의 머리통을 향해 선 채로 방아쇠를 당겼다.
둥.
광탄이 날아가 적의 머리를 부쉈다.
얌전히 쫓길 생각도 없고, 쫓는 놈들을 보낼 생각도 없다.
-더 온다.
그리고 이제는 숨을 시간이다.
‘재밍.’
-하고 있어.
세주는 땅 밑에 바짝 붙은 채, 달렸다.
그리고 맨홀을 발견하자마자 뚜껑을 들고 안으로 쏙 들어갔다.
-형, 지하에 무슨 애착 있어? 워싱턴에서도 지하도에서 버티더니.
‘시끄러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고.
세주는 지하도에 떨어지자마자 달렸다.
목적지는 폐허로 변한 도시.
그리고 에너지 플랜트가 망가진 버려진 바이탄이 있는 곳이다.
프로비던스가 위치를 파악해 준 걸 확인하고 세주는 위로 올라갔다.
추적을 따돌리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내가 본래 재활용을 사랑하는 남자거든.”
-무슨 소리야?
불이 꺼져 시체처럼 널브러진 로봇 사이다.
세주는 그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이 자식들 고치자.’
-…왜? 설마 얘네 병력으로 쓰자고?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잡는 법이다.
이번에는 기계인 프로비던스를 잡았다.
‘우리 브로, 고생 좀 하자.’
더구나 고치는 건 세주가 하는 것도 아니다.
전부 프로비던스의 몫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얘네 고치는 거는 나도 꽤 힘든 일이거든.
‘응. 그럼 열심히 해라.’
-아, 진짜 욕 나오려고 하네. 형, 여기 이 폐급 로봇들은 전투형이 아니에요.
‘대신 학습은 가능하겠지?’
세주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프로비던스는 대답하기 싫었다.
-내 할 일만 늘어나는 것 같은데?
‘내가 도와줄게.’
일은 세주가 벌리고 수습은 프로비던스가 전부 하게 생겼다.
-진짜 하라고?
‘아, 좀 해라. 명령이라고 해야 되냐? 적당히 툴툴대. 이 소심한 기계 놈아.’
-이 빌어먹을 형님 새끼가, 누가 소심해?
‘그래. 그럼 대범한 브로, 일 좀 하자.’
-쳇.
프로비던스는 명령하면 들을 위치다.
그래도 반항은 어쩔 수 없다.
가끔 프로비던스는 세주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병력은 되겠지만, 과연 방금 싸웠던 기계병과 싸움이 될까?
프로비던스는 계산했다.
무리다.
뭘 들려줘도 무리라는 결과다.
-에너지 소모한다.
‘응. 다 해.’
아깝다.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프로비던스는 곧 작업에 착수했다.
형님이자, 주인의 명령이다.
듣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
바이탄은 행성에 숫자를 매겼다.
그중 다섯 개, 일부터 오까지가 바이탄의 핵심 행성이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두 자루 숫자 대 전투 행성과 세 자리대 일반 행성이 있었다.
세주가 침투한 행성은 넘버 883.
전투력이 뛰어나지 않은 행성이다.
그렇다 해도 외계 인류나 다른 두 종족이 함부로 쳐들어올 정도는 아니다.
바이탄은 평균 전투력이 콴을 비롯한 세 종족 중 가장 높다.
그래서 세 자릿수 행성이라고 해도 지구 정도는 씹어 먹을 병력과 화력이 있었다.
지지직.
행성 내부,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행성 중앙 연산 장치가 적의 습격을 감지했다.
아니, 적은 행성 바깥에서부터 있었다.
문제는 내부에서 병력의 움직임을 본 거다.
브레인은 파악하고 적을 특정 지을 수 있었다.
이전 시대에 인간의 노예처럼 살던 기계들이다.
바이탄이란 이름이 아까운 것들.
감정 대신 실리를 택한 기계답게, 쉽게 결론을 내렸다.
몰살.
브레인은 곧 행성 전체에 비상을 울렸다.
동시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다.
최소 경비 병력만을 남겨둔 채였다.
브레인이 만약 인간이었다면.
감히 여길?
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미약한 병력이었고, 허약한 적들이었다.
브레인의 판단은 정확했다.
다만, 그들 사이에 무지막지한 이들이 있다는 것만 몰랐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