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33화 (133/206)

#  133

133. 실패라니 택도 없다

인준은 생각했다.

‘이제 한계.’

애초에 박 터지게 싸우라고 했지만 여기에서 결사적으로 싸우라고는 안했다.

“빠지자.”

밑을 향해 말하자, 치용이 사납게 눈을 부라린다.

“혼자만 재미 보니까 좋냐?”

저런 미친 자식, 작전에 충실한 자신을 보고 어떻게 저런 말이 나올까?

“응. 재밌다.”

하지만 저렇게 덤비면 그냥 넘어갈 순 없다.

치용의 얼굴이 붉어졌다.

“한 판 붙을래?”

두두둥! 퍼버버벙!

비틀 쉽 외갑 위, 푸른 막이 적의 레이저 포를 막는다.

일형포다.

직격하면 충격이 남겠지만, 방금 배리어는 레이저 포를 사선으로 비껴 막았다.

놀라운 재주다.

그리고 그 재주를 부린 남자가 뒤를 향해 말했다.

“형님들. 싸울 시간에 좀 도와줄래요?”

은근한 박력이 느껴졌다.

인준과 치용이 다시 조종을 위해 집중했다.

유진은 평소에 부드럽고 여리여리하지만, 할 때는 하는 남자다.

더구나 이런 상황에서 싸울 만큼 멍청한 둘도 아니었다.

아니, 유진이 아니었으면 앞뒤 안보고 한 판 붙었을지도.

인준은 치용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치용은 인준처럼 성격 나쁜 놈이 용케 참는다고 생각했다.

“팽, 조종간만 잡아.”

이 부대의 대장은 반세주다.

하지만 그가 없다면 치용도 인준도 아닌 유진이 고삐를 쥔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부대장은 정유진의 몫이었다.

물론 원해서 한 건 아니었다.

치용에게 맡기면 닥치고 돌격이고, 인준은 평소에는 괜찮아도 치용과 싸우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치용 형님 방어! 인준 형님 쏴요!”

비틀 쉽에 달린 레이저 포는 일형포 만큼의 위력은 없었다.

위성 드론의 배리어를 뚫을 리 만무했지만, 도주하며 견제용으로는 충분하다.

위성드론은 어느 정도 쫓아오다가 돌아갔다.

[클리어]

팽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한숨 돌린 순간이다.

지지지지직.

비틀 쉽 내부에 이상한 전파가 잡혔다.

그리고 홀로그램이 뜬다.

무슨 상황인지 다들 촉각을 곤두세웠다.

홀로그램을 주시하는 넷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여어!”

반세주였다.

*

“놀라운데.”

지지직.

팔이 부서지거나 상체만 남은 것들도 있지만 기동하는 로봇 34기.

바이탄은 인간을 죽이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도 된 듯 산다.

그래서 모든 생각하는 기계, 즉 AI를 지닌 전투 병기는 인간의 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바이탄은 달랐다.

[우리는 인간을 위해 삽니다]

로봇이 한 말이었다.

-이 자식들, 자체 에너지 생산이 가능한 놈들인데, 딱 그 부분만 부서져 있었어.

‘알아듣기 쉽게 말해.’

-인간을 예로 들자면 모두 심장이 부서진 상태라는 거야. 일시적으로 에너지를 주입하면 움직이겠지만, 에너지가 끊기면.

위잉. 쿵.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긴 놈들이다.

그 중 하나가 머리를 땅으로 박으며 쓰러졌다.

-고철덩이나 다름없어.

세주는 쓰러 진 로봇을 살폈다.

유심히 보니, 가슴 부분이 관통되어 있다.

아니, 이 로봇 뿐만이 아니다.

전부 비슷한 부위에 유사한 상처가 보였다.

‘그럼 첫 번째 그 로봇은?’

-운이 좋았어.

프로비던스가 홀로그램을 띄운다.

투시된 것처럼 속속들이 로봇의 구조를 보여준다.

그 중 하나, 에너지 플랜트와 같은 장치를 하는 것.

인간으로 치자면 심장 부근이 반만 부서졌다.

-에너지 몇 달을 모아서 겨우 몇 분 구동하는 상태야.

겨우 10분 가량, 로봇들의 렌즈에서 빛이 사라진다.

-더 에너지를 소모하진 맙시다. 무소용이니.

그렇긴 하네.

세주는 마지막까지 눈을 빛낸 로봇을 살폈다.

위이잉.

기이한 구동음과 함께 로봇이 홀로그램 형상을 띄운다.

[제 주인입니다. 찾아줄 수 있습니까?]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이다.

아니, 애초에 바이탄이라는 종이 생긴 게 벌써 수십 년 전이라고 했으니.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외계 인류는 바이탄과의 싸움에서 대다수가 죽었다.

“아니. 무리다.”

세주는 말했다.

곧 마지막 로봇도 움직임을 멈췄다.

-무슨 생각이야?

‘그냥.’

프로비던스는 자신이 기생하는 이 인간, 형님이라고 부르는 남자를 안다.

아니, 전부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이유 없이 에너지를 낭비할 위인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가자.’

-어딜?

‘놈들 기술 훔치러.’

거기에 이 형님이 무지하게 똥고집을 지닌 것도 안다.

자신이 말하고 싶을 때가 아니면 말하지 않을 거다.

시간을 길게 끌어서 뭐하나.

세주는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폈다.

흉몽 모드는 해제했다.

주변 정보를 주는 건 좋지만, 애초에 큰 것보다 작은 것을 숨기는 게 쉬운 건 당연하다.

거기에 프로비던스의 칼큐레이팅 모드는 흉몽 모드가 아니라도 쓸 수 있다.

-전면에 적기 반응.

확인하고 숨는다.

세주는 그러면서 주변을 살폈다.

인간의 도시와 닮았지만, 그보다 단조롭다.

똑같이 생긴 건물이 반듯하게 줄을 지어 서 있다.

최초로 세주가 떨어진 곳은 폐허나 다름없었지만, 그 반대쪽은 전혀 달랐다.

깨끗하고 반듯하다.

‘누가 봐도 인간이 사는 도시라고는 못 믿겠다.’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구조네. 미적 감각이 없는 게 아쉽지만.

그렇게 보면 프로비던스라는 놈이 정말 대단하다.

똑같은 인공 지능이지만 미추를 따지고 감정을 표현하는 로봇이다.

하지만 바이탄에게는 그런 걸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폐허에서 경계선을 넘는 순간.

-오호, 스캐닝이다.

프로비던스가 흥미로운 목소리를 뱉었다.

‘뭔데?’

-나랑 비슷한 수준의 스캐닝 기술이야. 왼쪽으로 원을 그리며 전력 질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주가 달렸다.

그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프로비던스는 보인다는 거다.

무언가 세주를 쫓는 게.

달리면서 세주는 발밑에 노블 에너지를 집중했다.

눈에 띄지 않는 것만큼이나 소리를 죽이는 것도 잠입에 중요한 요소다.

여기에 적은 기계, 몸에서 퍼지는 에너지 파장까지 신경 써야 했다.

이미 프로비던스 덕분에 어느 정도 에너지를 써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노블 에너지 마이크로 컨트롤이 가능한 세주다.

이쯤은 일도 아니었다.

‘뭐에 도망가는 거냐?’

-보여줄게.

세주의 마스크 위로 렌즈 두 개가 씌워진다.

그제야 세주도 무언가가 자신을 쫓는 걸 볼 수 있었다.

빛으로 이뤄 진 파도 같았다.

쏴아아아.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바로 뒤쪽 세주를 쫓는 빛의 해일이다.

-옷깃이라도 닿으면 걸린다고 봐야 돼.

‘에에?’

지금도 꽤 빨리 뛰고 있다.

체력에 자신 있지만, 이 정도 속도로 마라톤을 할 순 없다.

주변 사물이 훅 사라질 정도로 빠르게 달리는 중이다.

-놈들에게 어떤 에너지 플랜트가 있는지 모르지만 나 솔직히 조금 감탄했다. 이 정도 규모의 스캐닝이라니 절로 손뼉을 치게 만드는 걸.

손도 없는 기계 놈이, 무슨 박수를 치겠다고 난리냐.

‘이 다급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나 생각하는 게 어떠냐?’

-버텨.

‘뭐?’

-몰래 들어갈 생각이라면 버텨. 이건 지구력 싸움이야.

‘…예상외인데.’

찾는 쪽과 숨는 쪽이다.

숨바꼭질을 생각하고 왔더니, 술래잡기를 하게 생겼다.

슥.

그 와중에도 땅을 밟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노블 에너지를 말랑하게 만들어 솜뭉치처럼 해뒀다.

-전방 적기.

거기에 눈과 귀가 달린 경계병까지 있다.

‘엄청 곤란하네.’

프로비던스가 씌워 준 렌즈에 안전한 공간이 보인다.

사기에 가까운 능력이지만, 적들도 마찬가지다.

틈이 작고 좁다.

프로비던스의 기술과 적의 색적 기술은 막상막하.

하지만 이쪽은 그 프로비던스와 견줄만한 존재가 또 있다는 말씀.

어느새 발밑이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변했다.

아스팔트도 아니고, 전부 금속으로 도로를 만들다니, 낭비다.

세주의 눈에 보이는 틈은 공중이다.

달리면서 왼 무릎을 굽힌다.

-적, 조우 3초전.

부드럽게 땅을 밀며, 하늘로 솟는 세주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세주의 손등이 빛난다.

그의 손에 긴 줄이 잡혔다.

그걸 양쪽으로 던진 세주다.

송전탑처럼 생긴 건물에 끈을 감은 채다.

세주의 몸이 공중에서 덜컥 멈췄다.

-6초 유지.

타이머가 뜬다.

그걸 보고 정확하게 바닥으로 떨어진다.

부드럽게 손, 어깨, 등순으로 바닥을 구른다.

완벽한 낙법이다.

구르며 일어나 달리는 세주다.

‘어디에 있을까?’

-주요한 연구 자료일 테니, 무조건 중앙 처리 장치까지 가야지.

빛의 파도를 피하며 적 경계병의 눈길도 피한다.

묘기도 이런 묘기가 없다.

보는 사람 하나 없는 서커스다.

공중을 날고, 바닥을 기고, 제자리에 멈췄다가 걷고, 뛰고.

이러다 프로비던스의 인공 뇌가 타오르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밀한 계산이다.

그 덕분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는 속도를 유지하며 저 안쪽으로 파고들 순 없다.

-지구력 싸움이라니까.

그럼 세주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기계와 버티기 대결이라니.

프로비던스는 항상 최선의 방책을 말한다.

그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길을 안내한다.

‘언제까지 달려야 하냐?’

-저 스캐닝 20시간 이상 유지할 수 없어.

‘확신하는 이유는?’

-불세출의 오버테크놀러지인 이 몸께서도 20시간 이상 불가능하거든.

‘…재수 없는 새끼.’

-하지만 형도 스무 시간 이렇게 피할 순 없지. 고로, 기술 탈취는 실패라고 봐야지. 물론 도주는 가능하니까 도망가는 걸 권해. 아니, 선택지가 없다고 봐야지.

실패라니, 여기까지 온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

세주는 달리면서 생각했다.

아마도 프로비던스의 말은 정답일 거다.

자세하게 설명을 하는 게 귀찮았을 거다.

디테일한 설명을 세주가 알아들을 리도 없고.

숨어서 기술을 훔쳐서 돌아간다.

그게 목표였다.

그런데 그게 영 힘들다는 소리를 들었다.

‘브로.’

-왜?

‘옆 도시 바이탄은 누구한테 당한 걸까?’

-기계 사회는 본래 인간이 만든 인공 지능, 그 와중에 인간에게 충성하는 프로세스를 지닌 기계들도 있었을 테고. 다수이자 강자가 된 한쪽 기계가 남은 쪽을 버린 거지.

기계니까,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프로비던스가 매일 그러듯.

놈들도 그럴 거다.

‘넌 참 차가운 놈이야.’

만약 세주가 눈앞에서 시신의 산을 봤다면 분노든 슬픔이든 감정이 폭발했을 거다.

프로비던스는 기계지만 감정이 있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차갑다.

동족일지도 모르는 이들이 망가져 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분해한다고 했던가.

바이탄은 기계 종족이다.

기계를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생명체가 아니다.

살려주세요.

하지만 살려달라고 한다.

생명체가 아닌 이들이 삶을 바라는 거다.

인공 지능, 인간이 만든 생각하는 기계는 과연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만일 저 기계를 전부 녹슨 쇳덩이 로 취급 한다면.

‘브로.’

-바쁘다. 자꾸 왜 불러?

‘넌 참 재수 없고, 얍삽하고, 꼴 보기 싫은 놈이지만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엉?

프로비던스는 세주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잘 달리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그리고 세주가 걸음을 멈췄다.

-어이, 여기서 멈추면 죽어. 2초 남았어. 뛰어.

뒤에서 빛의 파도가 다가온다.

2초, 세주는 뛰는 대신 손을 들었다.

두툼한 기둥이라도 어깨에 얻은 듯한 자세다.

동시에 손등에서 빛이 뿜어진다.

구현하는 건, 십육 연발 고속 유탄 발사기.

그 안에 들어차 있는 건, 탄 하나당 에너지 10,000 짜리 화염 폭탄이다.

빛의 해일은 공격력이 없었다.

대신 닿는 순간, 사방에서 기계병들이 달려오게 만드는 효과는 있었다.

[침입자 발견]

[섹터 467-R]

[인간으로 판명, 격멸]

사방에서 쏟아지는 놈들 사이로 세주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이거나 처먹어라.”

투두두두두두둥!

동시에 열여섯 발, 고속 유탄이 불꽃을 뿜으며 날아간다.

노리는 곳은 놈들의 도시 정중앙이다.

높게 솟은 탑과 같은 빌딩이다.

누가 봐도 메인 타워다.

첫 번째 유탄이 터지는 순간, 배리어 전체에 화염이 퍼진다.

유탄은 총 세 종류였다.

첫 번째는 배리어 파괴 전용이다.

갈아먹는 화염.

배리어 에너지를 태우는 화염을 머금은 유탄이다.

쾅!

엷어진 배리어 위로 두 번째 유탄이 떨어진다.

두 번째는 작렬하는 화염.

꽈과과과광!

연쇄 폭발이다.

배리어 따위는 단숨에 부서진다.

그리고 세 번째, 쇄도하는 화염.

쿵.

건물 벽에 유탄이 박힌다.

곧바로 터지는 대신이다.

띠디디디디.

이상한 소리를 낸 유탄이 통하고 분리 되며 불길을 뿜는다.

콰아아아아아아!

사방에 넘실거리는 불꽃과 폭발이다.

펑펑! 터지는 소리가 어떤 폭죽보다 경쾌하게 들렸다.

-자살도 참 신명나게 하는 구나.

‘자살이라니, 비틀 쉽에 연락 넣어봐.’

-동반 자살이라도 하게?

‘연락이나 넣어!’

두두두둥!

사방에서 세주를 노리고 기계병들이 레이저를 쐈다.

세주는 깔끔하게 몸을 돌렸다.

동시에 연결 된 통신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여어!”

황당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부대원들이 보였다.

“아직 안 갔지? 강행돌파해서 여기 좀 와라.”

세주가 도주하며 외쳤다.

아무리 그가 지닌 능력이 대단하고 일인군단 정도로 강력하다지만.

바이탄 행성을 상대로 싸우는 건 무리다.

부대원과 다른 힘이 있다면 모를까.

-형, 저 모지리들 와도 상황은 최악이거든.

‘아니, 아닐 걸.’

세주는 생각했다.

그들의 부대는 일당백의 부대원이다.

받쳐주는 사람들만 있다면 이들과 싸울 만도 했다.

그리고 세주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봤다.

함께 싸울 병력을.

그리고 싸우는 와중이라면 잠입도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실패라니 택도 없지.’

-대체 무슨 생각이야?

프로비던스는 속으로 한탄했다.

이 인간과 같이 있다가는 기계인 자신도 수명이 깎이는 기분이 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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