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32화 (132/206)

#  132

132. 까라면 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인간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무뎌진다.

처음에는 긴장하며 했던 모든 것들이 반복하는 와중에 익숙해진다.

숙련도가 높아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마냥 좋게 들리겠지만, 역효과도 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해도 실수를 하고 익숙해지면 방심한다.

그게 인간이니까.

“대단한 자식들.”

세주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인간이 아닌 기계가 지키는 행성이 이렇게 완벽할 줄이야.

놈들은 빈틈이 없었다.

행성 근처까지 날아온 비틀 쉽은 전원을 끄고 먼 거리에서 바이탄의 행성을 관찰하며 부유했다.

-추적당해.

프로비던스의 한 마디 덕분이다.

인공위성을 닮은 거대 드론이 바이탄 행성 주변을 돈다.

그 위성 드론은 들어오는 모든 적을 감지한다.

고로, 거짓으로 속여서 들어갈 수 없다.

단순히 전파 탐지나 레이더를 발동시키는 게 아니다.

놈들의 드론에는 시각 장치가 달려 있고, 실시간으로 주변 모든 것을 파악해 행성 안쪽으로 전송한다.

눈에 띄면 끝이라는 소리다.

“메카 놈들이나 콴 놈들보다 더 독한 것 같지?”

“기계니까요.”

세주의 말에 유진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이 자식, 예전에는 긴장도 잘하고 빠릿빠릿했는데.

이제는 내무실 침상에 화석이 된 말년 병장을 보는 것 같다.

“어쩌게?”

인준이 물었다.

인준은 그가 하는 일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애초에 용궁 기지에서 떠나올 때, 핏대를 올리며 이 작전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지 말했을 거다.

“생각 좀 해보자.”

팽은 바이탄 스나이퍼를 잡은 뒤부터, 세주를 보는 눈빛이 더 강렬해졌다.

[대장이라면 할 수 있어]

다람쥐를 보고 코끼리라고 해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브로, 어떻게 들어갈지 머리 좀 써봐.’

-무리야. 속여서 들어갈 방법은 없어.

프로비던스는 스캐닝조차 신중하게 펼쳤다.

메카니모스와 콴의 행성과는 다르다.

이 기계 놈들은 방심하지 않는다.

정해진 궤도와 시간에 주변을 탐색, 정찰한다.

당장 내일 저 행성이 멸망한다고 해도 저 놈들은 같은 짓을 반복할 거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인간은 사과나무도 심고, 잠도 자고 백인백색일 텐데.

기계는 다르다.

그저 주어진 임무에만 전념한다.

융통성 없는 기계 놈들.

“다 부수고 갑시다. 형님.”

치용이 말했다.

“무식한 곰은 닥치고 있어.”

인준이 그의 말을 듣자마자 숨도 안 쉬고 반박했다.

“형님, 우리 몰래 들어가서 뭐 가져오는 게 목적이라고 했어요.”

치용이 불을 뿜으며 인준에게 들이 받기 전에 유진이 입을 열었다.

그는 차분하게 치용을 설득했다.

“그러니까 몰래 들어가는 게 중요하거든요. 난리를 피우면서 들어가면 시선이 집중되니까요.”

셋의 대화를 들은 세주가 빙그레 웃었다.

-재수 없고 불길한 웃음이야.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세주는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너희 셋, 박 터지게 싸워볼래?”

그의 말에 치용이 콧김을 훅하고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죠!”

인준과 유진이 무슨 생각이냐는 눈으로 세주를 바라본다.

[대장은?]

팽이 둘을 대신해 물었다.

“내 걱정은 말고.”

세주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팽이 세주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머리를 지나 볼을 비빈다.

강아지 같다.

“작전명,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

-작명 센스 최악.

“작전명은 빼고 하면 안 되나?”

프로비던스와 인준이 동시에 말했다.

이 자식들이, 중요한 작전에는 멋진 이름이 필요한 법이라고.

세주는 천천히 그들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즉흥적으로 떠오른 거지만, 흥미가 확 당기는 계획이다.

치용은 말할 것도 없이 찬성일테고, 인준과 유진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팽은.

[역시 대장!]

반세주의 빠돌이가 됐다.

인간은 심리가 있지만, 기계는 프로세스만 있다.

인간은 맞으면 `이 자식이 날 왜 때릴까` 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생각이 떠오르겠지만, 기계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때리면 피하고 반격한다.

프로세스, 반응하고 움직이는 패턴이 정해져 있다.

정찰하는 놈들을 보니,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했다.

거센 공격을 퍼 부으면, 놈들은 적을 죽이기 위해 경계보다 공격을 우선시할 거다.

쾅!

흉몽 모드로 비틀 쉽을 나온 세주의 눈에 부서지는 위성 드론이 보였다.

쿠우우!

푸른 불꽃을 점화하며 그 앞을 오르는 비틀 쉽 한 대.

둥!

비틀 쉽에 달린 레이저 포가 빛을 뿜는다.

뜻밖의 기습에 한 대의 위성드론은 반파됐지만, 그 다음 배리어를 펼친 드론이 가볍게 비틀 쉽의 레이저 포를 막는다.

그러자 비틀 쉽 위, 작은 인영이 솟아오른다.

동시에 그 작은 그림자에서 광탄이 빗발치며 날아갔다.

사방으로 뿜어지는 빛의 향연이다.

콰광! 쾅!

폭발이 일어나고 잔해가 총알처럼  비산했다.

레이저 포는 막지만, 스파이럴 광탄을 막기에는 버거운 배리어다.

세주의 눈에 비틀 쉽 위에 오롯이 선 형체가 보였다.

이인준.

아머로 전신을 감쌌지만 한 눈에 알아봤다.

애초에 셋 중 저 정도의 화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유일무이하다.

-움직인다.

세주의 예측대로다.

위성 드론 여러 대가 박살나자, 놈들의 행성 주변에서 경계와 경비를 겸하는 병력이 움직인다.

그걸 본 세주는 기다렸다.

이미 전신에 프로비던스가 변한 아머를 두른 상태다.

흉몽 모드다.

에너지 소모는 극심하지만 지금도 부순 드론의 에너지를 속속 수거하고 있다.

거기에 틈틈이 에너지 플랜트에 쌓인 에너지도 수거했다.

이 정도라면 유지는 어렵지 않다.

지금 흉몽 모드의 역할은 전투가 아니라 주변 상황 파악과 비틀 쉽을 대신한 이동 장비수단이다.

흉몽 모드로 주변 상황이 속속 머릿속에 들어온다.

바이탄 행성이 작은 홀로그램 형상으로 보이고, 그 사이사이 빈틈이 보인다.

세주는 그 빈틈 중 하나로 돌진했다.

-발각될 확률 2.8%

세상에서 제일 재수가 없는 놈이라면 걸릴지도 모를 확률이다.

물론 세주는 그보다 운이 좋았다.

주변 정보가 속속들이 뇌를 거쳐 갔다.

세주는 공중에서 방향을 꺾으며 지그재그를 그리면서 날아갔다

콰우우!

흉몽 모드의 등, 여섯 개의 사출구가 빛을 뿜었다.

-가속 시 발각될 확률 1.1%.

-왼쪽으로 기동, 발각될 확률 2.8%.

사방팔방, 탁 트인 곳에서 화려하게 빛을 뿜으며 밑으로 떨어지는 세주다.

그럼에도 바이탄 행성의 레이더와 정찰 드론의 시야를 완벽하게 피했다.

입체적인 기동 잠입이다.

프로비던스의 칼큐레이팅 모드 덕분이다.

눈에 몸이 움직여야 할 궤도가 보인다.

잠입이 특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까지 눈에 훤히 보이는 길을 가는 건 어렵지 않다.

‘역시 넌 쓸 만 해.’

프로비던스에게 당근을 주자, 그가 퉤하고 뱉었다.

-쓸 만해? 장난 해? 나 아니면 형은 그냥 허수아비야. 엉? 총 좀 쏘고, 에너지 좀 다룰 줄 아는 병사 3쯤은 됐을 걸. 아니지, 운이 좋으면 하사 나부랭이는 됐을 지도.

인간에게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지만, 기계 놈은 아닌가보다.

‘언젠가 내 너를 폐차장에서 짜부라트리고 만다.’

-TRY.

‘속옷 브랜드는 갑자기 왜?’

-…역시 형이랑은 대화가 안 돼. 노력하라고 노력. 물론 형이 무슨 짓을 해도 난 폐차장 따위에 쳐 박힐 운명은 아니겠지만.

콰우우.

그 사이 땅이 눈앞에 다가온다.

위협은 없다.

몸을 반 바퀴 회전하며 땅에 발을 디딘다.

발바닥에 사출구가 생기며, 중력을 거부한다.

큰 소리도 없이 사뿐하게 떨어진다.

머릿속에서 연상하는 건,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는 고양이다.

드드.

흉몽 모드의 거구가 떨어졌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아주 작은 소음이 들렸다.

그래도 바이탄 놈들은 기계, 작은 소리조차 위험하다.

동시에 몸을 숨길만한 곳을 파악.

-저 건물 1층, 위협 요소 없음.

아무리 욕하고 지지고 볶고 싸워도 프로비던스는 할 일은 한다.

물론 세주도 마찬가지다.

소리 없이 바닥을 밟고 부스터 불꽃을 쓰지 않은 채, 슬며시 빌딩 1층 문을 민다.

인간의 건축물과 흡사한 형태다.

아니, 애초에 인간의 기술과 문화에서 빠져 나온 놈들이라고 했던가?

비슷한 게 아니라,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

문을 여는 순간 몸을 180도 회전하여 단숨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작은 소음조차 허락하지 않은 완벽한 잠입이다.

‘솔리드 스네이크가 본다면 10점 만점에 8점 정도는 줄 듯.’

세주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니, 빵점이다. 뒤.

프로비던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돌렸다.

기척도 없이 바이탄이 분명한 로봇 한 대가 서 있었다.

다리 대신 바퀴가 달린 110cm 정도 신장의 로봇이다.

팔은 부드럽게 휘어지는 구리 전선 뭉치 같았다.

가슴 앞에 손을 모은 그 로봇은 반구형태의 목 없는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생각은 짧았고, 실행은 빨랐다.

‘소음기 리볼버.’

연상하고 손에서 무기를 구현한다.

손등에서 살짝 빛이 새어나오며 리볼버 총구가 어느새 로봇의 머리통에 닿아있다.

머리 가운데 달린 작은 렌즈가 녹색 빛을 뿜자, 로봇이 반응했다.

반격전에 죽인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이다.

[살려주세요]

정확하게 귀에 꽂히는 언어다.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 간절함에 세주의 손이 멈췄다.

-적의는 없어.

로봇 마음은 로봇이 안다고, 프로비던스가 편을 든다.

-무엇보다 여기서 무기를 쓰는 순간, 발각되는 건 피할 수 없어.

소음기를 달아도 에너지 파장은 생길 거고, 그거라면 이 편집증 덩어리 같은 바이탄 놈들은 자신을 찾는다.

주저했고, 그걸 본 로봇이 다시 입을 연다.

[전 쓸모없지 않아요. 살려주세요]

빌어먹을 로봇 같으니라고.

만약 이게 바이탄 놈의 연극이라면 지금 이놈은 남우주연상 감이다.

어떻게 이런 간절함을 표현하는지, 발로 연기하는 배우들을 줄 세워 가르쳐도 되겠다.

끼기긱.

그 사이 그 로봇의 몸통에서 갈색 액체가 흘렀다.

오일이었다.

[전 아직 쓸모가 있…]

동시에 놈의 눈, 렌즈의 빛이 꺼진다.

-에너지 소진으로 작동 정지.

‘죽었단 소리지?’

-아니, 잔다는 거야.

프로비던스가 스캐닝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 살짝 놀랐다.

‘왜?’

-생각보다 이 자식 고퀄리티 로봇이야. 분해할까?

이 자식은 같은 로봇이면서 정도 없나?

살려달라고 했다.

그렇다면 누군가 죽인다는 건가?

주변을 둘러봤다.

폐허나 다름없었다.

반쯤 부서진 간판이 흔들거리는 카페였다.

멀쩡한 의자와 테이블을 찾기 힘든 곳이었고.

‘위쪽 스캐닝 해봐.’

-광역 스캐닝은 에너지 파장을 만들어.

‘그럼 안 걸릴 정도로 적당히 해.’

-귀찮게.

이 자식은 점점 기어오른다.

세주는 언제 날 잡고 프로비던스 교육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위층 클리어.

-그 위층도 클리어.

-적의는 없지만, 이 `살려주세요` 처럼 작동하지 않는 로봇이 총 서른 대 있어.

프로비던스의 말을 들은 세주는 자신 앞에 놓인 로봇을 들고 올라갔다.

적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이놈은 바이탄이다.

외계 인류를 말살하기 위해 존재하는 놈들이란 건데.

예상 밖이다.

이런 약해빠진 행동을 하는 놈들이라니.

위로 올라가니, 비슷한 모양새의 로봇이 몇 있었다.

되는대로 모아서 한쪽 방에 넣었다.

회의실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이 건물은 예전에 인간이 쓰던 것이 맞았다.

아니라면, 이런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을 리 없다.

-다 분해할까?

‘기다려.’

발정 난 강아지처럼 덤비는 구나.

제 동족 같은 놈을 분해하는 데 왜 이렇게 주저함이 없냐.

‘이거 가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싫어.

답도 없이 대뜸 싫어냐?

‘브로, 실시하자. 형 화낸다?’

-그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

아니겠지.

이 정도는 위협이 안 된다.

‘그럼 이제부터 먹는 에너지는 전부 스위처에 넣어.’

-뭐?

‘1도 남기지 마라.’

프로비던스는 사치스럽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업그레이드 된 뒤로 사랑에 빠진 스무 살 청년처럼 에너지를 탐한다.

그에게 에너지는 연인이자, 음식이요, 사랑이자, 잠이자, 섹스 한 마디로 모든 것이었다.

-치사하다.

‘명령에는 복종해야 지, 세 들어 사는 브로.’

-염병!

‘그래. 좋아 해보자 이거지?’

-일반 에너지를 전이해주면 돼.

하여간 이렇게 길을 들이지 않으면 말을 안 들어요.

‘해.’

-쓸데없는 시간 낭비 같습니다. 형님.

진지해진 프로비던스를 보며 세주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육성으로 말했다.

“까라면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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