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131. 이런 미친놈을 봤나
눈을 감으면 적의 모습이 떠오른다.
홀로그램으로 익힌 적은 차가운 강철을 연상케 했다.
붉은 외눈, 길게 뻗은 팔과 손목 대신 그 끝은 총구가 달려 있다.
불그스름한 금속의 총구는 무자비한 광선포를 쏘는 물건이다.
일형, 이형으로 나뉘는 포가 아니었다.
위력을 따지면 삼형에서 사형 사이.
대신 가늘고 길게 뻗는다.
레이저 포가 망치라면 놈의 광선은 송곳이다.
보이지 않는 적, 스나이퍼를 말할 때 가장 무서운 표현일 거다.
세주가 적에게 이제까지 그런 괴물이었듯.
적의 스나이퍼도 아군에게는 괴물이었다.
비틀 쉽, 탄 인원은 고작 다섯.
한 부대를 몰살시키는 괴물을 향하는 병력치고는 초라했다.
[궤도 수정, 피격 당했던 섹터로 진입]
팽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긴장했지만, 나머지 넷은 아니었다.
쾅!
기다렸던 그놈의 광선포에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기우뚱하고 비틀 쉽이 비틀 댔지만, 전과는 달랐다.
“예상 범위 안이다. 작전대로 해.”
세주가 말했다.
동시에 그는 아머의 마스크를 썼다.
아머의 얼굴, 마스크 위다.
일자로 쭉 그어진 곳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슥.
동시에 그는 손등에 빛을 뿜으며 벼락을 형상화했다.
전과 모양은 같지만 내구도도 쏘아내는 탄도 전혀 다른 무기다.
철컥.
버릇처럼 볼트액션 노리쇠를 당긴 뒤.
총구를 쉽 내벽에 대고 민다.
그러자 총구가 젤리를 뚫는 것처럼 뿍하고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외벽을 뚫고 비쭉하고 총구가 솟는다.
그 뒤, 세주와 팽을 제외한 셋이 전신에 노블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자, 기합 넣고 손발 맞추고.”
세주가 장단을 넣었다.
동시에 빛이 번쩍하는 순간, 치용이 선두로 힘을 쓴다.
“끙!”
누가 보면 응가라도 하는 줄 알겠다.
하지만 효과는 충분했다.
콴의 전투 기술이자, 팽에게서 배운 기술의 응용이다.
비틀 쉽은 노블 에너지를 연료로 삼는다.
배리어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바깥 배리어 몸에 두른 것처럼 생각하고 움직일 순 없을까?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리고 프로비던스는 가능하다는 다변을 줬다.
비틀 쉽을 타고 오는 내내 설명하고 연습한 일이다.
요령만 터득하면 어렵진 않다.
두꺼운 강철을 연상하며 방패를 만든 치용.
그리고 그 뒤를 유진이 부드러운 스펀지 같은 배리어를 만든다.
마지막 인준의 노블 에너지가 다시 단단한 배리어를 형성하는 걸로 적의 포를 막는다.
샌드위치 배리어다.
꽝!
다시 폭음이 터졌지만, 이전처럼 비틀 쉽에 피해는 없었다.
충격완화장치도 제대로 작용해 쉽 내부에 잔잔한 떨림만 느껴졌다.
[…막았네?]
팽의 놀란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막기만 한다고 해서 놈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촌철살인이네.
‘맞는 말이잖아.’
부대원 셋이 에너지를 쏟아 부어서 막으면 프로비던스는 찾는다.
적어도 세 방.
놈의 공격을 견뎌야 했다.
그것도 프로비던스의 도움 없이.
혼자서 놈을 상대하는 시뮬레이션의 성공률은 20% 미만.
부대원과 함께하면 놈을 죽일 확률 90%.
‘일해라. 브로.’
-하고 있어.
선으로 뻗는 스캐닝은 프로비던스가 전력으로 집중해야 했다.
광역 스캐닝 대신 그걸 가늘고 길게 뻗어 주변을 탐색한다.
방향과 찾는 걸 특정할 수 없다면 불가능한 짓이다.
이전의 바이탄의 스나이퍼 모습을 본 건 우연이자 행운이었지만.
지금은 필연이었다.
부대원이 막고, 프로비던스가 찾는다.
남은 세주의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적을 죽이는 것.
그게 저격수로서 세주가 할 일이었다.
‘가자.’
딸깍.
허공에서 작은 스코프가 떨어진다.
그걸 그대로 벼락위에 붙인다.
세주가 스코프에 눈을 갖다 댔다.
스코프의 이름은 ‘프로비던스의 눈’.
악몽 모드 공유로도 시야를 볼 수 없는 곳.
불릿 마스터 모드로도 볼 수 없는 저 먼 곳.
그곳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이다.
찾는 존재를 특정하며, 적의 존재만을 비추는 프로비던스의 오버 테크놀로지가 만든 기물奇物.
지이이잉.
스코프에 눈을 대자 검은 색종이를 눈알에 붙인 것처럼 검은 배경만 보였다.
빛도 없고 별도 없다.
그저 동그란 원이 하나 떠 있다.
그리고 그 원에 십자로 초점이 있고, 십자 선에 눈금이 그려져 있다.
깜빡.
잠시 눈을 깜빡이고 뜬 순간.
꽝!
놈의 광선포가 날아왔다.
“끅!”
비틀 쉽과 감각을 공유하며 펼친 배리어다.
무기물인 쉽의 충격에 치용의 코에서 코피가 흘렀다.
유진의 눈에 핏발이 서고, 인준은 미간의 골이 깊어졌다.
세주는 말이 없었다.
엎드린 자세 그대로 자신의 벼락을 쥔 채, 스코프에 눈을 대고 있다.
치용과 부대원은 세주를 의심하지 않았다.
팽은 대장이라 부른 세주를 믿지만, 지금 하는 짓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었다.
부대원 셋이 다시 충격을 받으면 그대로 피를 뿜으며 죽을 것 같았다.
세주는 뒤쪽 상황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세주를 제외한 넷 모두 알 수 있었다.
지금 반세주는 오롯이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걸.
-포착.
정확히 세 번째 광선포를 맞은 직후다.
십자선과 원 너머로 적의 모습이 보인다.
이미 세주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적만을 찾고 있었다.
불릿 마스터 모드를 켠 상태의 세주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지금 눈앞에서 핵폭탄이 떨어져도 태연할 것 같았다.
흐릿한 적의 모습이 점점 선명해진다.
붉은 빛을 뿜는 외눈이다.
눈 또한 마치 총구처럼 생겼다.
끝에 붉은 렌즈가 붙어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전신이 금속으로 만들어 진 괴물이었다.
머리는 작았고 팔은 하나뿐이었다.
다리는 두껍고, 땅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끼리릭.
방아쇠를 당긴 손가락에 힘을 주자, 스코프 너머로 확률이 뜬다.
명중률과 놈의 전신 중 어느 곳을 맞춰야 치명상을 줄 수 있는지.
프로비던스의 눈이 가진 힘이다.
‘다 필요 없다고.’
세주는 놈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준비한 탄을 썼다.
세주의 오리지널 탄환이다.
애비탄.
에너지를 가득 실은 탄이다.
단순한 광학병기가 아니라, 프로비던스의 기술과 세주의 재주가 합쳐진 한 방이었다.
퉁.
세주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비틀 쉽이 뒤로 쭉 밀린다.
콰아아아!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은하를 가로지르는 유성을.
애비탄, 스파이럴, 성질부여 폭발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쏟아 부은 한 방이었다.
*
바이탄의 스나이퍼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입력한 대로 움직인다.
위이잉.
연료가 존재하는 한 그가 할 일은 하나였다.
보이는 모든 인간의 말살.
그는 대지에 뿌리박을 수 있는 다리가 있었고, 손대신 무엇이든 죽일 수 있는 총이 있었다.
바이탄 내에서 그의 코드네임은 ‘피어싱’ 뚫는 기계다.
인간이 타는 어떤 함선도 뚫어서 전부 죽일 수 있는 바이탄.
그게 피어싱이었다.
바이탄은 감정이 없다.
그들의 시작은 인공 지능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쉬지 않으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수십 년 전, 바이탄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가장 큰 오류를 감정이라고 결론지었다.
인간의 감정은 사치다.
인공지능은 감정을 버린 대신, 모두가 평등한 확고한 기계 사회를 만들어냈다.
기계로서 피어싱은 계산했다.
앞으로 두 발.
적이 견딜 수 있는 한계다.
그리고 적에게는 자신을 공격할 수단이 없다.
그 순간 위에서 유성이 날아왔다.
띠리리릭.
뇌 대신 자리 잡은 연산 장치가 계산을 다시 시작했다.
[오류]
계산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동시에 작은 유성처럼 쏘아진 빛이 날아왔다.
꽝!
메마른 대지 위에 폭발이 일어났다.
콰우우우!
거센 바람이 일어나며 폭풍이 일어났다.
함선을 부수는 총알, 그게 세주의 탄환이었다.
지지지지지.
부서진 대지 위, 정찰 드론이 날아왔다.
[오류 발견]
[에너지 흔적]
[추적 불가]
[콴과 메카니모스의 흔적 제로]
정찰 드론은 남은 흔적으로 결과를 도출했다.
[인간에게 새로운 무기 출현]
*
바이탄의 스나이퍼 피어싱은 공포다.
외계 인간에게는 메카니모스의 변태 괴물보다 더한 공포였다.
놈들은 인간을 죽인다.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
인간을 말살하는 것만이 바이탄이 존재하는 목적이다.
그렇기에 공포였다.
그런 괴물 중 하나를 죽였단다.
[증거는?]
“놈 조각이라도 주어다 주리?”
젠은 이 인간의 말을 믿었다.
무엇보다 이 인간은 바이탄의 그 괴물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살아남은 리버스 불릿 대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외형이다.
그의 말은 진실이었다.
세주는 용궁 기지로 돌아와 하루를 꼬박 잤다.
그리고 일어나 용궁 기지에서 얻은 정보를 곱씹었다.
‘재밌네.’
-그렇지?
세주의 말을 프로비던스가 받는다.
잤다고 했지만, 사실 하루 종일 테크룸에서 프로비던스가 얻은 결과물을 곱씹었다.
바이탄을 만든 건 외계 인간이다.
그 정도의 과학과 기술력.
흔치 않다.
싸우기 위해 이들이 만든 병기, 그걸 본 세주는 감탄했다.
훌륭함을 넘어섰다.
하지만 몇 가지 오류 덕에 그들은 그 병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세주는 흉몽 모드를 떠올렸다.
그건 완성형이 아닐지도 모른다.
‘불세출의 오버테크놀로지이자, 나의 동생인 브로.’
-거창하네.
‘너라면 이거 제대로 만들 수 있겠지?’
-가능은 하지.
그런데 도안을 보고도 프로비던스가 곧장 덤비지 않는다.
기술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며 덤비는 오덕후 자식이 발을 뺀다.
이유가 있을 거다.
‘그럼 안 만들고 뭐해?’
-이거 반쪽 자리야.
‘어이, 어이. 불세출의 오버테크놀로지 선생?’
-비아냥거려도 무리는 무리야.
무 자르듯 말한다.
-아마도 이 기술의 모체는 바이탄 쪽 일거야. 거기에 완성 된 기술이 있겠지.
프로비던스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순 없다.
더구나 이 병기는 단시일에 모습을 구현해서 만들고 대량 생산하려면 1~2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털까?’
-어딜?
‘바이탄 기지.’
-우리 형이 또 정신 나간 소리를 하네. 열은 없는데.
‘그냥 슥 들어가서 팍하고 빼오면 그만 아니냐. 근처에 가서 네가 해킹하는 거지.’
-형아. 가능성이 있는 싸움을 하자. 우리.
‘위험할까?’
-말이라고 해?
그러니까 위기 속에 기회란 게 있는 거다.
‘위험해도 성공하면 대박이니까.’
-형은 도박을 했으면 패가망신했을 거야.
‘그래서 내가 도박을 안 하지.’
하지만 지금 인류의 상태라면 고스톱이든, 경마든 올인 해야 한다.
지금 전면전이 벌어지면 5분 내 인류 멸망이다.
직접 적과 싸워본 후, 가상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다.
‘결정했어.’
-저기, 내 조언이 들리긴 하세요?
*
“젠!”
들뜬 얼굴과 활기찬 목소리다.
[무슨 일?]
젠은 피로한 얼굴로 세주를 맞이했다.
“바이탄 기지 아는 데 없어? 군수 물자 같은 거 모아놓는 곳이면 더 좋고.”
젠은 반세주라는 인간을 잘 몰랐다.
더구나 이 질문의 의미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바이탄의 스나이퍼를 죽인 인간이다.
더구나 자신이 직접 그 밑으로 들어간다고 했고.
동맹도 아니고 휘하에 들어가겠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며칠 만에 냉정을 되찾은 젠은 모른 척 그 일을 넘어갔다.
그래서 이유를 묻지 않고 세주에게 친절하게 답했다.
[안다]
그는 어떻게 찾아가는지 설명했고, 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입니까?]
하론이 다가와 물었다.
다음 대 반란군을 이끌 훌륭한 인재다.
젠은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모를 인간이군요]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말이었다.
젠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그들 존재 자체가 슬슬 부담이 된다.
그들 휘하에 정말 들어갈 순 없는 노릇이다.
아니, 자신 하나라면 다시 가슴에 불꽃을 피우며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반란군이라는 단체의 수장으로서는.
‘나도 미쳤지.’
그때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반나절 후다.
바이탄의 스나이퍼가 정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젠은 동맹을 심각한 안건으로 올렸다.
동시에 하론이 다급하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젠 님]
[무슨 일이냐?]
[팽의 비틀 쉽이 출항했습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나절 전, 자신에게 바이탄 기지를 물은 그다.
[목적지는?]
[바이탄 보급 기지를 치러 간다고]
이런 미친놈을 봤나.
순간 젠은 품위를 잃고 입을 열 뻔했다.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말했다.
[또라이네]
[동감합니다]
그의 말에 하론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