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130. 때리고 튄 놈
“생각보다 맛있네요.”
유진이 불고기 맛 오드꾸와를 먹고 감탄을 터트렸다.
응. 그러니까. 맛있더라고.
군코바와 비슷한 생김새와는 정반대의 맛이다.
[지구의 오드꾸와는 맛이 이상했다]
그동안 팽을 오해했다.
그녀는 군코바가 맛있어서 먹던 게 아니었다.
우리가 쌀이 익숙하듯, 그녀에게는 이 음식이야말로 주식이다.
그러니 맛은 좀 이상해도 그냥저냥 먹어줄 수 있었던 거다.
제대로 된 숙소를 배정받고 팽과 모두를 모은 자리다.
외계 인간의 구조물이라 독특한 형태의 방을 상상했지만, 벽이 파랗게 빛나는 걸 제외하고는 인간의 것과 다를 게 없다.
[이게 형광등 대신이다]
팽은 인간과 이곳의 문물을 둘 다 경험했다.
그녀가 친절하게 벽을 짚으며 설명했다.
독특하긴 하다.
벽에서 빛이 나와 방을 밝힌다.
그렇다고 눈을 괴롭힐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이곳 인간들과 지구 인간들은 오감이 조금씩 차이 나는 걸 거야.
‘무슨 소리야?’
-이곳 인간들의 밤눈이 더 밝다고.
벽의 은은한 빛은 밝지 않다.
그 정도로 주변 사물을 뚜렷이 본다는 건, D를 먹지 않고는 어렵다.
일반 지구인이라면 어둡다고 투덜 댈 정도의 밝기다.
“자, 팽.”
은은한 푸른빛을 배경으로 세주가 팽의 팔을 붙잡아 앉혔다.
“우리를 공격한 건 누구지?”
의리하면 김치용, 눈치하면 반세주다.
이곳에 오게 된 경위와 흘러가는 모양새를 따져봤을 때.
팽은 자신의 비틀 쉽을 공격한 주체를 알았다.
그러니까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이곳에 피하려고 한 거다.
목숨을 버리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녀는 죽어도 상관없다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거다.
이런 상황이 된 것 자체에 원망은 없다.
어차피 자신 앞에서 함부로 부대원을 죽도록 놔둘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짜증난다고.
“팽?”
처음이었다.
세주를 만나고 말을 주저하는 팽이다.
그녀를 다그치든 뭘 하든 들어야 했다.
퓨슉.
그 때 뒤쪽 문이 열렸다.
[인간]
젠이었다.
세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중에.”
지금은 팽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젠이 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턱.
그 앞을 두꺼운 팔이 막는다.
“대기.”
치용이다.
감정 없는 눈빛으로 젠을 막았다.
젠은 순간 짜증이 났다.
저 대장이라는 인간은 인정하지만, 감히 앞을 막다니.
꿈틀.
미간이 꿈틀거리며 사이킥 에너지를 끌어올린 순간이다.
철컥.
앞쪽 기관총을 든 남자가 보였다.
저 작은 몸뚱이 어디에 저런 기관총을 숨겨 놨는지.
“쏜다.”
근거리에서 광탄 세례를 받으면 젠이라도 죽는다.
‘콧대를 꺾어줘야 할까?’
결심한 순간이다.
스윽.
뒤에서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목덜미를 누른다.
“전에 말했을 텐데요? 움직이면 벨 겁니다.”
‘내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어떤 재주를 지녔는지, 용케도 뒤를 잡는다.
세 명에게 포위 된 젠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 사이 반세주의 입이 다시 열렸다.
“말해라. 팽.”
전처럼 부드럽지도 자상하지도 않은 목소리다.
차갑고, 날이 섰고, 날카롭다.
세주는 웃음기 하나 없이 팽을 바라봤다.
노려보는 건 아니지만, 팽은 세주와 마주한 것만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비틀 쉽을 공격한 건 뭐지?”
세주의 말에 젠이 입을 열었다.
[바이탄의 스나이퍼다]
움찔.
세주의 얼굴이 젠에게 돌아갔다.
[싸우면 안 돼. 대장]
“왜?”
뒤에서 들리는 팽의 목소리에 세주가 물었다.
[싸우면 죽어]
확신하는 팽의 목소리에 세주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을 대장이라고 부르고 따른다.
마치 종교를 믿듯 자신을 믿는다.
그런데 자신이 죽는다?
그걸 저렇게 확실하게 말해?
[그 놈으로 하지]
[아버지!]
셋에게 둘러싸인 젠에게 팽이 소리를 쳤다.
그녀를 만나고 처음 듣는 고성의 목소리다.
“데리고 나가.”
치용이 팽을 붙들었다.
어느새 인준도 총을 거두고 유진도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반란군은 나와 다른 둘이 전투를 총괄하고…]
“본론만 말해.”
이미 아는 일들이다.
젠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우리를 부리고 싶다면 증명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짧고 명쾌한 말이다.
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하고 한 건 아닌데. 효과가 좋네.
‘응?’
-형 솔직히 되는대로 말한 거잖아. 그런데 증명하면 밑으로 들어온다고 하는 거니까, 소 뒷발에 쥐 잡은 격이지.
‘말을 해도 인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면 되지.’
-그게 그거지.
우두둑.
세주가 옆으로 목을 꺾었다.
“그 놈으로 하자는 건, 내가 그 자식을 죽이면 인정한다는 거?”
말하며 세주가 주먹을 들었다.
젠이 그걸 보고 주먹을 부딪쳤다.
외계 공용어 중 하나다.
약속 또는 계약을 뜻하는 몸짓.
“내가 잡아오지. 그 놈이 뭔지 말이나 해봐.”
젠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만일 죽일 수만 있다면 넌 반란군의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첫 마디를 듣는 순간, 괜히 짜릿했다.
‘그 스나이퍼란 놈 죽이면, 팽만큼 예쁜 애들이 오빠 부대를 만들겠네?’
-…생각을 해도 참.
남자로 태어났으니, 여자의 환호성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
메카니모스가 연구와 기술에 목을 매면, 콴은 전투 종족이라 불릴 만큼 싸우는 기술에 목을 맨다.
바이탄은 그 둘과는 달랐다.
그들은 애초에 인간이나 유기체가 아니었다.
그들이 지닌 건, 피와 살 대신 , 오일과 금속이다.
외계 인간들의 컴퓨터에서 파생 된 이들이다.
인공지능으로 시작해서 현재 종족을 이룰 만큼 커진 놈들.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큰 차이는 아니지. 애초에 그런 게 있을 법해서 만들어 진 거잖아. 터미네이터란 영화도.
그건 맞는 말이지.
그러니까 바이탄은 인공 지능이 주축이 된 기계 로봇 군단이다.
‘니 친구들 많겠다.’
-날 그 딴 놈들이랑 비교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프로비던스는 삐지면 오뉴월에 진짜 서리를 내릴 것 같다.
속이 밴댕이 콩알만 하니, 이쯤에서 져주는 게 답이다.
-내 속이 좁다고 속으로 욕하는 거 아냐?
‘아냐.’
다시 부인해주자, 프로비던스가 3초를 침묵하고 말했다.
-웃기고 있네. 거짓말하는 거 다 보이거든? 날 진짜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형 몸의 반응 따위는 금방 알아채거든.
‘선의의 거짓말이란 것도 모르냐?’
-빌어먹을 새끼.
이 자식이 툭하면 형한테 욕이다.
‘뭐 인마?’
-아, 아무것도 아냐.
됐다. 말을 말자.
“그럼 그 스나이퍼란 놈을 잡으면 된다는 거야?”
바이탄의 스나이퍼.
그놈은 콴과도 메카니모스랑도 싸우지 않는다.
놈은 사냥꾼이며, 놈이 노리는 사냥감은 ‘인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를 떠도는 외계 인간.
하도 많은 인간이 그들에게 죽어서, 이쪽 인간 아이들은 바이탄의 저격수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
아니, 아이들뿐만 아니다.
[놈에게 죽은 인간 숫자가 만이 넘는다]
말하는 젠 조차 주먹을 쥔 채, 분노를 보였다.
모든 외계 인간의 원수이자, 이름만 들어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괴물.
그게 바이탄의 저격수다.
“그러니까 그놈을 죽이면 그만인데, 팽은 왜 그러는 거지?”
젠이 세주를 물끄러미 보며 입을 열었다.
[상대해봤으면, 알 텐데]
-보이지도 않는 저 멀리서 쏘는 레이저 포에 내 배리어마저 몇 번 못 버티게 만드는 화력. 엄청난 놈 맞잖아.
그건 그렇다.
상대는 무섭고 강하다.
모든 외계 인간들에게 공포의 주체나 다름없다.
이들은 메카니모스에게 끌려가거나 콴에게 잡혀가는 것보다, 바이탄의 스나이퍼를 더 무서워한다.
잠깐 기지 밖을 나와 정찰을 할 때도, 다른 행성에 작전을 나갈 때도.
놈을 만나면 몰살이다.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고 다시는 볼 수 없다.
놈은 가차 없으며, 보는 순간 모든 인간을 죽인다.
대화도 없고,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다.
그냥 들키면 죽고, 안 들키면 산다.
그게 바이탄의 스나이퍼였다.
[솔직히 말하면 네가 놈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젠의 말에 세주가 고개를 모로 꺾었다.
“그럼 왜 나한테 그걸 요구 하냐?”
[기대와 도박]
기대를 하면서도 이게 도박이라는 건 안다.
팽의 아버지라고 들었다.
성격은 전혀 안 닮았다.
얼굴도 안 닮았고.
하지만 재밌는 인간이다.
“기다려라. 놈을 죽이고 돌아오마.”
[우리 군 최강의 부대도 실패한 일이다]
반란군 최강이라 불리는 부대, 리버스 불릿.
십 오년 전, 놈과 싸워 부대원 90%를 잃었다.
그 때 부대원 중 하나였던 젠이다.
지금은 다시 사람을 채워 넣었지만, 젠은 확신했다.
지금 다시 붙어도 전과 다르진 않을 거라고.
“응. 걱정하지 마. 우리 부대가 더 강해.”
세주가 젠의 어깨를 툭 치고 나섰다.
그 뒤를 치용과 인준, 유진이 따라 나섰다.
젠은 이게 잘하는 짓인가 스스로 되뇌어 봤다.
그리고 곧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자신의 손은 떠났다.
‘모 아니면 도.’
처음부터 그랬다.
상황이 고착 된 후 10년이 지났다.
젠은 수없이 많은 이들의 죽음을 봤으며, 또 자신의 손으로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반년 전, 반란군 수장 회의에서 그들의 위치를 자각했다.
지금 상황을 유지한다면 평생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인간도 이런 삶을 원하지 않으리라.
젠은 결심했다.
반란군 반은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고 싶어 했고.
나머지 반은 싸우기를 갈망했다.
젠은 지는 싸움이 싫었다.
더구나 종족의 멸망으로 이어질 게 뻔 한 싸움이라면.
‘최악이지.’
지고 싶지도 않고, 지금 상황도 싫다.
젠은 밖으로 나갔다.
심해에 세운 이 도시는 반란군의 치욕이었다.
그들은 숨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
팽이 세주의 부대를 따라 나섰다.
[함선을 지원 받을까?]
죽으라고 가지 말라더니, 이렇게 따라나선다.
“죽는다고 말렸잖아.”
[내가 말리면 안 갈 거야?]
팽이 물었다.
그럴 일 없다.
강슬이 와서 나체로 유혹해도 할 건 한다.
‘나 그런 남자라고.’
-구라는.
프로비던스의 피쳐링을 무시하고 팽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가지.”
-그래서 같이 죽으면 되니까.
‘얘는 머리가 어떻게 됐나? 왜 무조건 내가 죽는다고 이 난리냐?’
-들었잖아. 반란군 인간에게 그 놈이 어떤 존재인지.
그래도 도가 지나치다.
상큼하게 무시하고 나섰다.
[함선은 어떤 게 필요하십니까?]
젠이 붙인 부관이었다.
필요한 어떤 거라도 보급해주겠다고 했다.
세주는 깔끔하게 그를 무시했다.
“필요 없어.”
그리고 팽에게 말했다.
“비틀 쉽 가져와.”
[대장?]
“비틀 쉽 한 대, 그리고 우리 부대 이걸로 충분하다.”
세주가 말했다.
팽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그녀는 반항하지 않았다.
애초에 세주가 자신의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형, 정말 팽 처음 만난 거 맞아?
‘맞아. 그때 처음 본 애.’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뭐가?’
-형의 지랄 맞은 고집을 쟤는 겪어보지도 않고 있잖아. 나도 몇 번이나 데이고 나서야 깨달은 건데.
‘뭐 이 새끼야?’
-이 지랄 맞고 염병 맞을 성격을 한 눈에 알아보다니, 저 아이 설마.
‘또 뭐?’
-미래가 보이는 게 아닐까?
이 기계 새끼를 오늘 재활용센터에 보내야 겠다.
아니, 일단 그 스나이퍼 놈은 잡은 뒤다.
그놈을 잡기 위해서는 프로비던스라는 놈 없이는 불가능했다.
용궁 기지에 들어오기 전.
보지 않고 얻어맞기만 했던 건 아니다.
세주는 못 봤지만, 프로비던스는 적의 위치와 모습을 파악했다.
마지막 피격 때 방향을 파악해 그쪽으로 스트레이트 스캐닝을 뿌렸다.
광역 스캐닝에 모이는 에너지를 직선으로 뻗어, 프로비던스는 봤다.
적의 모습을.
그리고 세주는 감옥에 갇힌 이틀 동안, 그리고 이곳에 지내는 하루.
삼일 내내 잠만 들면 테크룸에 들어가 시뮬레이션 모드를 돌렸다.
상대는 그 빌어먹을 바이탄 스나이퍼 놈이다.
물론 반란군을 위해서 싸우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먹튀보다 짜증나는, 때리고 튄 놈을 잡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