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128. 끝장 볼래?
수감생활 이틀 째, 프로비던스가 돌아왔다.
꾸득.
그리고 세주가 먹는 걸 보더니 물었다.
-군코바?
‘아냐.’
오드꾸와다.
생긴 건 군코바를 빼다 박았지만, 맛이 차원이 다르다.
‘불고기 맛이라고.’
인간인 이상 먹지 않으면 죽는다.
대식가 수준을 넘어서는 세주와 일행이다.
먹는 양으로 치면, 씨름 선수 한 트럭을 데려와야 비슷할 거다.
그런 그들이 하루에 두 개, 오드꾸와라는 걸 먹으면 충분했다.
‘원리는 군코바랑 비슷한 것 같은데, 좀 가져가서 연구해 봐. 우리 군에도 보급하면 좋겠다.’
-누구는 이틀 내내 기지 뒤진다고 숨도 안 쉬고 일하는데, 엄청 편해 보이네. 형은.
거짓말이 능숙한 놈이다.
본래 숨 따위는 쉬지도 않는 놈이 무슨 말이냐.
꽈득.
한 입 더 오드꾸와를 씹어 삼킨 세주가 벽에 등을 기댔다.
‘읊어봐.’
알아낸 것들, 전부 머릿속에 박을 시간이었다.
여기 더 갇혀 있자니, 몸이 근질거린다.
아마 세주 뿐 아니라, 나머지 일행도 마찬가지 일거다.
처음에는 같은 곳에 가두더니, 곧 전부 다른 곳으로 이감했다.
그들은 기다릴 거다.
치용도, 인준도, 유진도 세주의 명령 없이는 침묵할 거다.
그들은 군인이다.
군인은 명령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법이다.
-그럼.
프로비던스가 세주에게 정보를 건네는 방식은 독특했다.
만약 사람이 컴퓨터와 교감할 수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이름과 위치 등 기억이 스며든다.
어릴 때 나비효과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로 돌아오면 뇌 속에 바뀐 기억이 자리 잡는다.
그거와 비슷하다.
USB 이동 저장 장치의 데이터를 옮기듯 차곡차곡 정보가 기억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그게 끝나는 순간.
‘너 중요한 건 먼저 말로 좀 할래?’
-이게 빨라.
게으른 기계 놈.
홀로그램 시계를 확인했다.
38시간 45분.
감옥에 갇혔던 시간이다.
‘갇혔던’ 이다.
나갈 시간이다.
얌전하게 설득해서 좋게 좋게 말로 하려 했지만.
‘무리네.’
-뭐가?
‘그냥 친해져서 꺼내주라고 하려 했는데.’
-무리야.
‘뭐가?’
-곰탱이랑 독설가 놈 인상이 상당히 더러워서 모르나 본데. 형도 얼굴만 치자면 헤비급이야.
이런 미친 기계 새끼가.
노닥거릴 틈이 없다.
“후.”
오드꾸와를 주는 이는 하루에 두 번 온다.
그리고 이들은 세주의 무기를 뺏을 수 없다.
세주의 무기는 손등에 인이 박혀 있다.
소리 없이 손에 칼이 잡힌다.
날이 두터운 정글도다.
노블 패스에 도도한 강이 흐른다.
콰아아아.
실제로 들리지 않았지만, 귓속에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다.
세주는 칼을 잡고 땅과 수평으로 그었다.
떠더더더덩!
창살이 반으로 쪼개진다.
화르륵!
전신에 노블 에너지가 불꽃처럼 타오른다.
그 상태에서 어깨로 태클 하며 밖으로 나왔다.
꽝!
가르고 부순 창살 밖이다.
“…레?”
-어라? 라고 하네.
그런 통역은 필요 없거든.
텅!
땅을 박찬 세주다.
그대로 한 방향을 향해서 질주했다.
그의 몸 뒤로 푸른빛이 잔상처럼 남았다.
탄환처럼 빠르다.
눈앞 홀로그램 지도를 본 세주의 목적지는 하나였다.
재판장이자, 처형장.
반란군 주요 기지에 위험인물을 끌어들인 죄로 이틀간의 재판을 끝내고 처형을 기다리는 팽을 향해서다.
“트레!”
앞을 막는 아머를 입은 경비가 보인다.
-죽이진 마.
‘우리 브로가 변했어요?’
-아니, 죽일 필요가 없다는 거야.
애초에 실력 차가 너무 크다.
두두둥!
레이저 소총 삼점사다.
세주가 피한 벽에 파파박 하고 빛이 튀고 검은 자국이 남았다.
피한 순간, 세주는 이미 벽을 딛고 천정을 박찼다.
눈앞에서 푸른 유령이 달려오는 기분이었으리라.
쩍! 꽝!
위에서 떨어지며 꽂히는 발등에 경기병이 머리를 얻어맞고 벽과 키스한다.
그 뒤로 다시 서넛의 경비가 달려왔다.
세주가 다시 한 번 레이저 소총 총구를 보고 총격을 피하는 신기를 보이며 달렸다.
경비와 만나는 순간, 손날을 세워서 위에서 밑으로 내려 쳤다.
빠각!
쇄골을 부러뜨리고, 내려섬과 동시에 양쪽 경비병 배를 손바닥으로 민다.
웅! 쿵! 쿵!
노블 에너지를 잔뜩 머금은 손바닥에 배를 맞은 경비병 둘의 다리가 허공에 뜨더니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늦겠다.
후우우웁!
세주가 호흡을 한껏 들이켰다.
“나와아아아!”
쩌저저저저저저저정!
벽이 짜르르하고 울릴 정도의 괴성이다.
그리고 내달리자, 우지직 앞에서 벽이 뜯긴다.
“부르셨습니까?”
치용이었다.
“따라와!”
“넵!”
신난 얼굴의 치용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앞을 막는 문을 발로 걷어 찬 세주의 눈에 떨어지는 푸른 칼날이 보였다.
두꺼운 에너지 블레이드, 그리고 그 밑에 얌전히 무릎을 꿇은 팽.
달리면서 손에 벼락을 구현, 동시에 왼발을 크게 내딛으며 자세를 낮춘다.
단숨에 무릎 쏴 자세를 잡은 직후다.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오른 검지가 방아쇠를 당긴다.
꽝!
광탄이 날아가 떨어지는 에너지 블레이드를 부순다.
푸른 스테인드글라스가 깨진 것처럼 허공에 파란 조각이 점점이 흩어져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앞에서 한숨을 돌린 세주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잠깐, 얘기 좀 하자.”
*
팽은 공격을 받으며 누가 공격했는지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생각했다.
‘싸우면 이 전력으로 이길 수 있을까?’
대장은 강하다.
분명 자신이 봤던 어떤 인간보다 강하다.
하지만 가르간만큼은 아니다.
그의 청백색 칼날과 달리는 칼이라는 별명은 악몽 그 이상이었다.
그 외에도 뻗는 칼과 메카니모스의 1계급 전사도 강하다.
아직은 이길 수 없다.
팽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더구나 대장의 가장 큰 장점은 1:1 전투력이 아니다.
그는 전장을 누빌 때 가장 강하다.
‘전부 죽어.’
곰처럼 큰 덩치의 남자나 인상이 사나운 남자, 얼굴이 희고 비리비리한 남자.
셋은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하지만 팽에게는 죽이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었다.
‘대장은 안 돼.’
냉정하게 판단한 팽은 비틀 쉽을 조종해야 했다.
기지로 가자.
운이 좋았다.
근처에 반란군 기지로 향할 수 있는 게이트가 있었다.
[너 그 대장이란 작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서 만났는지도 모른다면서]
그래. 몰라.
대장을 만나면 떠오르지 않을까 했지만, 여전히 모른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하다.
‘대장을 죽이면 안 돼.’
그녀는 판단했고 행동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내가 죽고 대장을 살린다.’
팽은 과거 대장이 해줬던 말을 가슴에 새긴 채, 그렇게 반란군의 기지로 돌아왔다.
대장과 일행이 끌려가고 팽은 얌전히 재판을 준비했다.
변호를 맡은 이는 과거 자신을 조롱했던 친구였다.
[하론]
[바보 같은 짓을 했다]
[조롱 할 거라면 꺼져]
[네 변호인이다]
팽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줬다.
은하 표준 손짓에 의거, ‘꺼지기나 하시지’ 정도로 해석되는 손짓이다.
[네가 데려 온 이중 대장이란 자가 있나?]
[알 것 없어]
[하긴 물을 필요도 없었다]
대장이 없다면 팽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일이 없다.
그녀는 순순히 모든 걸 시인했고, 목숨을 걸고 부탁했다.
그들을 살려서 ‘지구’라는 별로 보내달라고.
[꺼져, 아니면 다시 덮치기라도 할 테냐?]
팽이 천천히 손을 쥐었다 폈다.
조소다.
그걸 본 하론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손짓은 필요 없어. 우리는 인간이다. 서로 표정으로 대화 할 수 있다]
하론의 말에 팽은 무심히 그를 올려다봤다.
[내가 죽으면 비밀로 하고 그들을 지구로 보내 줘]
하론은 대답하지 않고 돌아섰다.
팽은 반시간 뒤 재판장에 섰다.
그리고 반란군의 재판장으로 나선 이를 봤다.
‘죽겠네.’
[변호인 하론입니다]
하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자식은 말은 매몰차게 해도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거다.
문제는 재판관 쪽이다.
[재판관 젠이다]
두 개의 노란 동공을 가진 남자, 뱀의 젠.
그는 반란군 수장의 오른팔이자, 그녀의 아버지였다.
성격은 강직, 딸이든 뭐든 죄를 지었다면 즉결참수를 할 남자.
재판이 시작되고 변하는 건 없었다.
예상 그대로다.
[그들은 살려주는 거죠?]
마지막 질문이었다.
팽이 물었다.
[네가 알 바 아니다]
턱을 괴 노란 눈의 젠은 턱 끝을 까닥거리며 움직였다.
반란군의 기지와 위치를 알리는 건 중죄다.
바로 옆, 장교 중 하나가 다가와 넓은 에너지 블레이드를 들었다.
팽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얌전히 보내줄 거야.’
하론은 그렇게 해줄 거다.
자신에게 평생 반해 있을 거라고 했던 남자다.
‘다행이야.’
대장과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아서.
시간과 추억은 비례한다.
그러니까 다행이었다.
블레이드를 쥔 이가 힘껏 칼을 내려치려고 자세를 잡는다.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이다.
텅!
소음과 함께, 펑하고 칼날이 터진다.
부스스스.
부서진 칼날이 푸른 유리 조각처럼 사방에 떨어진다.
팽은 자연스럽게 탄도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이곳에 있을 수 없는 남자가 여기에 있다.
반세주, 대장이다.
“트레!”
[멈춰!]
팽이 힘껏 외쳤다.
차자자작!
사방에서 레이저 소총과 갖가지 무기가 세주를 향한다.
그 뒤를 따라온 치용이 언제 가져왔는지, 블레이드를 양손에 쥐고 있었다.
“크르르.”
야수같은 얼굴의 치용 앞에 세주가 태연하게 양손을 들었다.
뭐라고 말을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통역]
재판관, 젠이 입을 연다.
팽은 주머니에 넣어둔 통역기를 목에 붙였다.
동시에 세주를 보고 물었다.
[여긴 왜?]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세주가 한결 편한 얼굴로 대답했다.
“왜긴.”
그가 말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재판장은 높은 천정을 가진 원형 무대 같은 곳이었다.
벽을 따라 원형의 회랑에 삼보마다 하나씩은 무기를 든 경비나 선풍기처럼 생긴 무기가 벽에 붙어 있다.
[대장, 이대로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팽은 차분하게 말했다.
어렵게 대장을 만났지만, 그를 희생시킬 순 없다.
‘상성이 안 좋아.’
그에게 자신을 따르는 병력이라도 있다면 모르겠지만.
혈혈단신이라면 무리다.
반란군에게는 콴과 형태의 괴물을 잡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세주에게도 먹힌다.
“치용.”
세주가 입을 연다.
그러자 뒤에 선 그의 부대원이 성큼성큼 걷는다.
젠이 손바닥을 보였다.
그걸 본 팽이 급하게 외쳤다.
[더 다가오면 쏜다는 거야. 멈춰]
“난 형님이 명령하면 수행한다.”
치용은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그걸 본 세주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레이저 빛줄기가 그들을 향해 다발로 쏟아진다.
두두두두두두둥!
팽은 눈을 가리고 싶었다.
빛이 굴절 되, 눈이 부셔 뜰 수 없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앞을 보자, 세주가 태연하게 서있다.
그 주변에 푸른 막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그는 걸었다.
쏟아지는 레이저 포를 무시했고, 치용까지 안전하게 보호했다.
배리어가 쪼개지면 그는 다시 반구 형태의 방어막을 만들어냈다.
[콴의 대인 배리어인가?]
젠이 흥미롭다는 듯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안 돼요!]
팽이 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레이저 소나기 사이로 주먹만 한 덩어리가 날아온다.
EMP (Energy Pulse effect).
파지지지지지직!
허공에 푸른 스파크가 튄다.
세주가 만든 배리어가 사라진다.
동시에 치용이 든 블레이드의 날도 전부 푹하고 꺼져 버린다.
에너지 펄스 이펙트.
신체를 흐르는 노블 에너지를 포함해 일정 구역을 무에너지 상태로 만드는 무기다.
“놀라라.”
그 와중에도 세주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걸었다.
어느새 팽의 앞이었다.
“내 부대원이다.”
그리고 입을 연다.
왜 왔냐고 묻는 팽의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그가 팽의 눈을 보고 물었다.
“죽고 싶어?”
도리도리.
고개를 저은 팽이다.
“그럼 말해.”
그가 재판관을 가리켰다.
가장 상석에 위치한 그를 보고 세주가 말한다.
“팽을 건드리면 여기 다 죽여 버린다고.”
듣는 이는 몇 없지만, 그 기세만으로 공기가 변한다.
그리고 달궈 진 쇠 같은 열기와 차가운 얼음장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젠이 입을 열었다.
[해봐라]
어느새 팽과 별개로 통역기를 붙인 그다.
아직도 소총은 세주를 겨누고 있었다.
삐죽거리는 미소를 지은 세주가 입을 연다.
“후회할 텐데?”
노블 에너지를 쓸 수 없는 세주는 연약한 인간이다.
그런데도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이 남자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절대 여기서 얌전히 죽을 인간이 아니다.
팽은 깨달았다.
노블 에너지가 없어도 대장이다.
젠은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종류의 인간이다.
그는 이제까지 자신을 그렇게 평가했다.
물론 다른 이들도 그를 뱀의 젠이라고 부를 정도로 냉혈인간이라 했다.
그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했다.
그러니까 지금 저런 기세를 뿜어낸다고 해도 레이저 포 한 발에 먼지로 화할 거라는 걸 잘 알았다.
오른손을 들었다.
이걸 내리면 저 인간은 끝이다.
젠은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을 내릴 수 없었다.
언제 왔는지, 목에 푸른 에너지 블레이드가 닿아 있다.
동시에 반세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끝장 볼래?”
젠의 눈은 세주에게 떠나지 않았다.
딸이 대장이라 부르는 인간이 얄미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