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27화 (127/206)

#  127

127. 용궁

다음은 바이탄이다.

상대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기왕 시작한 일이라면 끝까지 한다.

두 종족이 서로를 적대하는 것보다 세 종족이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게 만드는 거다.

보이는 콴을 쓸어버리고 비틀 쉽을 타고 다시 우주라는 바다로 나갔다.

주변이 온통 검다.

저 멀리 푸른빛이 번쩍이기도 하고 가끔은 유성이라 불러야 할 것들이 날아간다.

우주는 고요하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끔찍한 검은 공간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반세주 부대원 중 그런 감수성을 지닌 이들이 없다는 게 문제지.

“나중에 우주로 데이트 오면 여자들 껌뻑 죽을 것 같네요.”

유진은 데이트 장소의 일부로 취급했고.

“싸움은 언제 합니까? 싸움은?”

치용은 투견처럼 으르렁 거렸다.

팽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세주만 졸졸 따라다녔고.

인준은 말없이 비틀 쉽 밖으로 펼쳐 진 검은 공간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해?”

세주가 묻자, 인준이 그를 돌아본다.

“형님 같은 무신경한 놈은 평생 모를 생각.”

어떻게 보면 굉장히 모욕적인 말이다.

“어이, 형님한테 말버릇이 사납다.”

치용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형님이 봐주신다고 해서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려고 하지 마라. 뒤진다.”

“누가 날 죽여?”

“내가.”

“해보든지.”

치용이 입을 다물고 인준을 본다.

이 안에서 싸우면 둘만 죽는 게 아닐 거다.

근접전과 투쟁심에서는 치용이 앞서지만.

인준은 머리를 써서 싸울 줄 안다.

더구나 그의 주력은 중화기다.

전투력 자체는 치용에게 점수를 더 줄 수 있지만, 다른 상황이라면 인준이 더 강하다고 할 수도 있다.

더구나, 인준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도 안 하는데 말이야.

“나 무신경한 거 맞는데.”

“맞다는데?”

“형님?”

인준이 피식 웃고, 치용이 세주를 본다.

“관둬. 여기서 둘이 싸우면 둘만 죽겠냐? 나도 죽고, 너도 죽어.”

팽도 죽고 유진도 죽는다.

비틀 쉽은 강력한 내구도를 가진 비행선이 아니다.

소형선이고 이동에 특화된 수송선이다.

배리어 능력 자체도 프로비던스의 쉘터 모드보다 약하다.

그런 비행선 안에서 다툼이라니.

“니들이 애냐? 툭하면 싸우게. 훈련소 때부터 지겹지도 않냐?”

결국 세주가 둘을 나무랐다.

“흥.”

인준이 고개를 팩하고 돌린다.

치용은 부들부들 떨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너, 지구에 돌아가면 그때 보자.”

“보지 마라. 네놈 관심 따위는 필요 없어.”

이 미친 것들은, 뭐라고 해도 들어 처먹질 않는다.

‘빌어먹을 프로비던스 같은 놈들!’

-…가만히 있는 나는 왜?

‘내가 아는 가장 심한 욕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싸우자.

홀로그램 소년이 나타나 무섭게 덤빈다.

그래봤자, 환영.

깔끔하게 무시한 후, 둘에게서 신경을 끊었다.

말싸움뿐이라면 말릴 기운도 없다.

정작 세주를 대신해서 저 둘을 말리던 유진이 신나서 구경 중이다.

“너 뭔가 할 일을 잊은 느낌이 들지 않냐?”

“전혀요.”

이 자식도 능글맞아졌다.

처음 봤을 때는 갓 태어난 강아지 같은 녀석이었는데.

-아닐 걸. 저 흰 피부의 애송이는 처음부터 음흉했어.

“형님, 걱정 마세요. 둘이 저래도 싸울 때는 손발이 착착 맞잖아요. 그리고 치용이 형 총 쏘는 것도 인준이 형이 옆에서 봐준 거라고요.”

…설마.

서로 머리에 총이나 안 쏘면 다행이게.

“물론 방법이 조금 괴악하긴 했지만요.”

“어떻게 했는데?”

“아머 입고, 7.6mm 탄을 서로한테 쏘더라고요.”

아무리 아머가 튼튼해도 잘못 맞으면 죽는다.

인간의 육체는 탄을 견딜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

물론 단단한 솜털을 가진 세주는 제외지만.

“맞다보니까, 치용이 형이 열 받아서 맞추기 시작했죠.”

말하고 나서 유진이 킥킥 웃는다.

이 변태 자식.

그게 재밌냐?

정작 둘의 모습을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긴 했다.

하는 짓이 웃긴 놈들이다.

꽝!

바깥에 시선을 돌린 순간이다.

비틀 쉽에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다.

-적, 습격.

한가로운 프로비던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주의 눈에 푸른빛이 머물렀다.

보다 더 멀리, 주변을 훑는다.

방금까지 으르렁 거리던 둘을 포함 모두가 주변을 살폈다.

-적 파악 불가.

안 보였다.

동시에 저 멀리 번쩍하는 빛이 보인 순간.

꽝!

두 번째 충격이 비틀 쉽을 때렸다.

훅하고 몸이 뒤로 밀려나며 내장이 밑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력원 손상. 수평 유지 장치 이상.

몸이 휘릭 하고 돌았다.

머리가 빙글빙글 하고 돈다.

현기증?

아니다. 몸 자체가 뱅글뱅글 도는 거다.

바로 옆, 벽이 보인다.

이대로라면 비틀 쉽 내부에서 핀 볼처럼 튕겨날 것이다.

세주는 길게 뻗은 송곳을 상상했다.

손등에 박힌 문신에 빛이 흐르고 세주의 노블 에너지에 반응한다.

슝!

동시에 손에서 감각이 느껴졌다.

칼의 손잡이 같은 거다.

거칠 것 없이 한쪽 벽을 향해 쑤셨다.

파각!

두 번째 충격이 일어나고 허공에서 몸이 두 바퀴 돈 동안.

세주는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다른 이를 위해 손을 뻗으려 주변을 보자.

“토할 것 같네.”

인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벽에 손가락을 박은 치용의 다리를 붙든 그다.

둘 뿐 아니다.

유진은 한 손에 짧은 군용 대검을 벽에 박고 다른 손으로 팽을 붙들고 있다.

콰드드드.

-한 방 더 맞으면 추락이야.

주변에 불시착할 행성은 없다.

불시착한다고 해서 그 행성에 산소가 있을 거라고 확답할 수 없다.

아니, 산소 공급 장치가 파손 되지 않은 걸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만약 수평 유지 장치가 아니라 산소 공급 장치가 무너졌다면, 더 곤란했을 거다.

아머에 내장 된 산소통은 3일을 견디게 해준다.

긴 시간은 아니다.

지구에서 메카니모스 전초기지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으니까.

그리고 그 전초기지에서 콴의 행성까지 나흘.

다시 콴의 행성에서 바이탄 놈들의 행성까지 이틀 째 운항 중이었다.

세주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적은 불명.

공격 형태는 원거리 저격포.

이곳에서 지구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비틀 쉽의 보호다.

‘브로!’

-피할 수 없어.

프로비던스가 암울한 말을 뱉었다.

세주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주제에 어떻게든 해.’

프로비던스에게 떠넘기기다.

-빌어먹을 형님이네.

프로비던스는 불만을 표하면서도 행동했다.

-모드에 에너지 붓는다.

‘다 써도 돼.’

쉘터 모드를 켠 프로비던스다.

세주는 비틀 쉽 외부에 푸른 막이 생기는 걸 봤다.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짙다.

아니, 거기서 끝이 아니다.

삼중이다.

-모드 쉘터 스킬, 레이퍼 스킨.

레이퍼 괴물의 외갑 같은 세 겹의 배리어다.

피하지 못하면 막으면 되는 거다.

꽝!

이번 충격도 강렬했고, 비틀 쉽이 흔들렸지만.

부서지진 않았다.

-공격 루트를 봤을 때, 적 방향은 현재 형 위치를 중심으로 7시 방향.

세주가 천천히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보이는 건 여전히 없다.

-견딘다고 해도 최대 네 방이 끝이야.

비틀 쉽이 전속력으로 적을 향해 질주한다면 어떨까?

네 방을 맞기 전에 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불확실하다.

[근처에 반란군 기지가 있어]

팽이 입을 열었다.

애초에 그녀의 비틀 쉽이다.

프렌드란 이름을 붙일 정도로 아낀 쉽이다.

[…거기에 가면 피신할 수 있어]

이제 통역기를 통해 대화하는 것도 익숙했다.

세주는 그녀가 주저하는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유를 물을 틈이 없다.

꽝!

굶주린 짐승처럼 다시 비틀 쉽을 때리는 공격이다.

꽤 거슬린다.

어떤 놈인지 알면 죽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팽이 ‘친구’라고 이름 붙인 비틀 쉽을 버릴 수도 없고, 허무하게 이런 공격에 무너질 수도 없다.

“안내해.”

세주가 팽에게 주도권을 넘겼다.

[그럼]

팽이 비틀 쉽을 움직였다.

쌔앵!

적 공격을 피해 밑으로 향했다.

검은 공간 한 가운데, 세로로 길게 찢어 진 ‘문’이 보였다.

쑥하고 비틀 쉽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갔다.

동시에 팽을 제외한 넷은 놀랐다.

주변 풍광이 변했다.

촤아아악!

사방이 물로 가득하다.

출렁이는 파도.

태평양 한 가운데에 조난이라도 당한 것 같다.

[환영해. 반란군의 피난처 용궁이야]

…무슨 궁?

-이름 한 번 기가 막히군.

프로비던스가 해수면을 향해 푸른빛을 쏘아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들의 도시는 바다 밑이야. 해상도시가 아니라, 심해도시라고 해야 하나?

프로비던스가 홀로그램을 띄웠다.

바다 속, 진짜다.

심해에 도시가 있다.

긴 관을 통해 연결되는 도시다.

[들어간다]

팽이 말하며 비틀 쉽을 조종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콰아아아!

그들 위로 큰 파도가 쳤다.

검정의 구멍이 보인 순간, 비틀 쉽이 안으로 들어갔다.

콰아아아!

물살이 기둥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홀로그램을 통해 본 긴 관이다.

심해 도시 용궁과 그 위쪽을 연결하는 입구다.

콰아아!

물살이 치는 와중에 뒤쪽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해치가 닫혔다.

동시에 밑 해치가 열리고, 비틀 쉽이 천천히 하강했다.

쿠우우우.

근 10분이 넘게 밑으로 내려온 비틀 쉽이다.

[도착]

팽의 목소리가 떨린다고 느껴졌다.

“팽.”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참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트레이.”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함께.

철컥.

손에 소총과 기다란 작대기 형태의 무기를 든 인간 서른 명이 보였다.

지구의 인간은 아니었다.

전부 두건을 뒤집어썼지만, 전면에 나선 한 명만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두 개의 동공, 팽과 같다.

외계 인간, 반란군의 한 명이었다.

“대뜸 무기를 들이대네?”

치용이 입 꼬리를 올린다.

“기다려.”

세주가 손바닥을 보이며 치용을 말렸다.

치지직!

그와 동시에 이상한 막대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트레!”

[움직이면 쏜답니다.]

-위협이 아냐. 저 놈 진짜 쏠 거다.

팽이 통역하고 프로비던스가 확답했다.

세주는 양손을 들었다.

은하 공용어는 배워뒀다.

양손바닥을 보이는 건, 항복의 표시다.

“항복.”

세주가 얌전하게 말했다.

“에?”

인준이 인상을 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대장이다. 그의 뜻이 바로 부대가 나갈 방향이다.

설마 아무 생각 없이 항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치용, 유진까지 양손을 들자.

전면에 나섰던 이가 입을 연다.

“트레레레이트.”-무슨 짓이냐? 팽? 이 자들은 누구지? 이 피난처에 반란군이 아닌 자를 데려왔을 때의 처벌은 알고 있겠지?

프로비던스가 감정 없이 부지런히 말을 실어 날랐다.

‘처벌이 있다는 건가?’

-그래 보이네.

그 강인한 팽이 얌전이 고개를 숙인다.

[어떤 벌이라도 받겠어. 하지만 이들은 본래의 행성으로 보내줘]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있던 행성은 Z-91 이야]

팽은 상대의 말을 무시하고 얌전히 할 말을 했다.

-결정은 대장이 할 거다.

팽이 세주를 돌아봤다.

그리고 몸을 돌려 걸었다.

나머지도 전방에 총구로 환영을 받으며 걸었다.

척 봐도 쇠창살에 창문 하나 없는 방.

그들이 향한 곳은 감옥이었다.

-깽판 칠거야?

프로비던스가 묻는다.

치용, 인준, 유진을 돌아보자 그들의 눈도 초롱초롱 하다.

다들 세주가 뭐라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잠깐 쉰다고 생각해.”

정작 세주는 그들에게 움직이지 말 것을 지시했다.

“예상왼데.”

인준이 그렇게 말하고 방 하나를 골라서 들어갔다.

무기는 걸리지 않았다.

이들은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는 방법을 모른다.

팽은 헤어지기 직전, 세주에게 말했다.

[기다리면 돌아갈 수 있어. 대장]

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혼자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이들을 포함, 팽도 함께 돌아갈 거다.

아니, 그보다 세주는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브로.’

-왜?

‘반란군이 생각보다 무장 상태도 좋고 규모도 꽤 되는 것 같지?’

-그래 보여. 좀 둘러볼까?

‘응. 샅샅이 뒤져. 여기 구조, 명령권자, 운영되는 방식 전부 알아야겠어.’

-오케이.

프로비던스가 어깨에서 떨어져 날아간다.

쉘터 모드와 더불어 업그레이드 된 프로비던스의 능력이다.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세주와 떨어져 원거리에서 활동이 가능하다.

남은 에너지는 17,654.

풍족하지는 않지만, 이곳 전부를 둘러보는 데 부족함은 없었다.

프로비던스가 어깨에서 떨어져 날아가고.

홀로그램 숫자의 에너지가 줄기 시작하는 걸 본 세주는 눈을 감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푹 잠이나 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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