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26화 (126/206)

#  126

126. 철갑탄

인간은 도구를 쓰며 강해졌다.

불을 지피고, 활을 쏘며 자기보다 강한 능력을 가진 것들을 죽일 수 있었다.

칼을 들고 싸우는 것보다 총을 든 게 더 강하다는 건 분명했다.

더구나 그 무기라는 것들이 화약총도 아니고, 광탄이란 걸 뿜어대는 것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메카니모스는 항상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그 덕분이다.”

세주가 팽의 말을 받았다.

사출무기를 얼마든지 사용해도 된다.

대신 근접 전투에서 콴 만큼의 전투력을 보이는 건 안 된다.

콴을 흉내 내는 것보다야 쉽다.

단점이라면 절대 걸리면 안 된다는 것.

콴은 하급 전사라도 통찰력이 남다르다.

보는 순간 알 거다.

이게 인간인지 아니면 메카니모스인지.

그 덕분에 목표한 소행성에 도착했을 때, 세주 일행은 아무도 없는 곳을 골라서 내렸다.

-호흡 하지 마.

“숨참아.”

세주가 프로비던스의 말을 듣고 부대원에게 경고했다.

행성은 붉은 흙이 뒤덮인 곳이었다.

붉은 흙이 가득한 언덕을 엄폐물로 삼아 몸과 비틀 쉽을 숨긴 그들이다.

모래 먼지 같은 것이 날아왔다.

다섯 모두 아머의 마스크를 올려 썼다.

얇은 산소통과 더불어 불필요한 것들을 막아주는 마스크다.

-환경적으로 보자면 인간에게 최악이야.

‘산소가 없어?’

-아니, 산소는 충분한데 공기 중에 뭐가 떠다녀, 분석해볼게.

팽이 아는지 눈으로 그녀를 봤다.

그런데 자꾸 가슴에 시선이 간다.

중용의 팽,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이 참 적당하다.

[…줄까?]

응? 또 뭘 준다고?

“정신 차려. 형님 자식아.”

인준의 말투에 다시 보자 그녀의 손에 비닐로 싼 초코바가 보인다.

아니, 초코바가 아니다.

[오드꾸와 줄까?]

군코바다.

“아니.”

손을 내저어 거절했다.

“근데 그게 왜 오드꾸와야?”

“팽은 그렇게 부르던데요. 군코바라고 하니까 오드꾸와라고 반란군은 보통 저걸 먹고 산다고 하더라고요.”

세주가 묻자, 유진이 끼어들어 답한다.

끔찍한 소리다.

세상에 먹을 게 군코바 밖에 남지 않고서야,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오드꾸와는 훌륭한 음식이야. 오히려 에너지 보유량이 적은 음식을 먹는 그쪽 인간이 이해가 안 돼]

아냐. 그건 인간이 쉽게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닌데.

같은 인간이지만 미각은 전혀 다른 것 같다.

-분석완료. 공기 중에 독기가 서려 있어. 조심하는 게 좋겠어.

“마스크 쓴 채로 움직인다.”

마스크가 불필요한 독기는 걷어내 줄 거다.

‘에너지 넘치지?’

-맵 업데이트에 30분 소요.

이전 메카니모스에서 에너지를 쏠쏠하게 얻었다.

툴툴대지 않고 프로비던스가 얌전히 대규모 스캐닝을 실행했다.

“자, 그럼 우리 치용이가 문제네.”

“네?”

커다랗고 순박한 개처럼 치용이 눈을 깜빡였다.

“저격해야 되거든. 지금부터는.”

세주의 말에 치용이 빙그레 웃는다.

“후훗. 접니다. 저 김치용. 불굴의 의지를 갖춘 남자, 사나이 중의 사나이!”

인준은 진즉부터 치용을 무시한 채 언덕에서 포인트를 잡고 있었다.

유진은 배시시 웃은 뒤, 인준과 반대방향에 자리를 잡았고, 팽은 고개를 끄덕여줬다.

[치용은 훌륭한 남자야. 대장]

…이전에 팽이 세주를 향해 가장 매력적인 남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풉.

비웃는 기계 새끼의 웃음과 함께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팽이 세주를 가리키는 장면이다.

외계 인간은 미각 뿐 아니라 미적 감각도 상당히 다른 것 같다.

본인은 저렇게 예쁜데 말이다.

“팽, 너 반란군에서 인기 있었냐?”

[대장, 모두가 날 미쳤다고 했지만 나와 하룻밤을 보내려고 하는 놈들은 널렸었어]

여자를 보는 눈은 비슷한 건가.

[하지만 아직 난 처녀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말하면서 얼굴 붉히지 마.

“작전은 단순해. 보이는 모든 걸 쏜다.”

작전명, 닥치는 대로 쏴다.

세주는 업데이트 된 맵을 확인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모습을 들키면 안 된다.

정찰 드론을 통한 홀로그램이라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맞닥뜨리면 콴 놈은 통찰력으로 바로 종을 알아본다고 했다.

그럼 마주치지 않으면 그만이다.

손등 위, 허공에 홀로그램 형상이 떠오르며 총기를 만든다.

세주의 새로운 무기가 가진 형태 중 하나다.

기본형은 침묵이다.

대신, 가진 탄과 위력이 달라졌을 뿐.

“저기 나 되게 열심히 연습해서 이제 잘 쏜다고 말할 차례였는데.”

포인트를 잡고 엎드리는 세주의 뒤다.

치용이 허무하게 물었다.

그와 얘기 중인 걸, 깜빡했다.

“훈련 열심히 했구나.”

세주가 엄지를 치켜 올려줬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다.

여기서 관심을 더 주면 과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남자한테 하는 칭찬으로는 충분하다.

-11시 방향 1.2km 드론.

“11시 방향 1.2km 드론.”

프로비던스가 말한 걸 듣고 그대로 읊었다.

안 그래도 맵에서 확인한 참이다.

“프린스 확인.”

유진이 보고 겨눈다.

그들이 쥔 총은 전부 침묵을 카피한 총이다.

메이드 인 프로비던스다.

비록 세주의 무기만큼 공을 들이진 않았지만, 위에 달린 스코프에는 에임 모드처럼 붉은 점이 떠오른다.

어느 정도 훈련으로 맞추는 것 자체는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총이다.

더구나 그 탄은 광탄.

둥.

작은 소음과 함께 유진의 몸이 살짝 뒤로 밀린다.

“긴장 안 해?”

세주가 그런 유진을 나무랐다.

순간적으로 풀업을 시전 하는 속도가 늦었다.

그러니까 반탄력에 몸이 뒤로 밀리는 거다.

“시정하겠습니다.”

유진이 답했다.

그리고 세주의 눈이 그가 쏜 방향을 향했다.

저 멀리, 붉은 화염이 모래 바람에 흩날리는 게 보였다.

제대로 맞췄고, 터진 드론이다.

시야는 나쁘지만 보이지 않는 정도는 아니다.

이 모래 바람은 오히려 넷의 모습을 숨기는 데 도움이 된다.

더구나 어떤 사출무기를 사용해도 적에게 모습을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

팽은 메카니모스보다 콴을 속이는 게 더 어렵다고 했지만, 세주는 반대로 생각했다.

오히려 이쪽이 더 쉽다.

보는 족족 쏴 버리면 되니까.

*

콴은 세 종족 중 가장 자긍심이 높은 이들이다.

에너지 블레이드를 활용하는 그들의 전투술은 은하 예술이라고 불릴 정도다.

빛으로 선을 긋고 색을 칠하는 광화光畵와 비견되는 예술.

그게 콴의 전투술이다.

하지만 인간 중에서도 이레귤러가 있듯이, 콴에서도 특이한 이들은 있었다.

이플.

그게 콴으로서 그의 이름이었다.

콴은 평민과 전사, 장군, 왕가 네 개로 나뉜다.

전사 계급은 싸울 수 있는 이.

장군은 막강한 전투력을 갖춘 이.

왕가는 그런 이들을 이끄는 이들이다.

이플은 전사 계급, 그것도 꽤 상위 계급이었다.

일부 콴은 그가 쓰는 기술을 비하하지만 전투력만큼은 인정했다.

[ERZ9 섹터에 드론 파괴 확인]

[습격이냐?]

[불명입니다. 전투종을 보낼까요?]

이플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카니모스의 전투종 보다는 못하지만, 콴도 나름 연구 시설을 갖춰 전투종을 만든다.

5분도 되지 않아 부관이 다시 그를 불렀다.

[이플 님]

[왜?]

[전투종이 전부 당했습니다]

‘오호. 전투종이 다 당해?’

정찰 드론도 날아가는 족족 터졌다.

이 정도 기술력과 저격 능력이라면.

‘메카니모스?’

우주 해적일 수도 있다.

가끔 뇌를 파먹는 놈들이나 골치 아픈 해적들이 있기 마련이다.

반란군일 가능성도 있다.

이플은 생각의 한계를 두지 않았다.

함부로 적을 단정 짓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더구나 자신이 지배하는 이 행성은 콴의 은하 중에서도 외곽이다.

어떤 놈들이 습격할지 단정하기 쉽지 않았다.

이플은 버릇처럼 자신의 블레이드 그립을 손가락으로 돌렸다.

개구리를 닮은 세 개의 손가락 사이로 그립이 팽그르르 돈다.

[직접 간다]

콴의 통찰력은 9은하 최고다.

직접 본다면 쉽게 알 수 있을 거다.

[그럼 병력을 출진시킬까요?]

[전투종은 어차피 전부 당할 테니까. 견습 전사가 몇이나 있지?]

견습 전사는 평민에서 전사 계급이 되기 전, 훈련하는 이들이다.

[현재 50명이 훈련 중입니다]

[전부 오라고 해]

어떤 훈련도 실전만큼 값지지 않다.

거기에 이플은 근접 전투술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그놈 참 마음에 드는데.’

더구나 한 놈, 자신의 후계로 삼고 싶은 놈도 있다.

자신은 언젠가 장군이 될 자.

그 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인데.

훈련생 놈이 영 자신을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다.

콴은 곧 바로 적이 습격했다는 지점으로 향했다.

‘적의 비행체가 저곳에 안착할 때까지 아무도 못 찾았다는 거냐?’

이플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외곽 행성이라지만 레이더 기술 수준이 너무 조악하다.

훈련생 50명을 이끌고 이플이 보무도 당당하게 나섰다.

[1조 돌격]

이플이 입을 열었다.

전사들이 달려 나간다.

콴은 개구리 손에 회백색 피부, 그리고 세 개의 눈을 가졌다.

두 개의 눈 사이, 이마에 붙은 제 3의 눈.

그게 바로 그들에게 통찰력을 주는 눈이었다.

이플은 그 세 번째 눈에 힘을 집중했다.

전신에 푸른 에너지를 응축해서 달려가는 맞은 편.

적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퍼버버버버벅!

1조, 열 명의 견습 전사 몸이 허공에서 터진다.

‘…이건 뭐냐?’

그의 세 번째 눈에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초장거리 저격?’

[전부 엎드려]

이플은 차분하게 대응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메카니모스다.

이 정도 거리의 저격 능력과 화력.

이런 사출무기를 갖춘 이들은 메카니모스 뿐이었다.

그는 블레이드 그립을 꺼냈다.

‘너희들은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이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왔으니까.

이플의 장기는 블레이드 불릿.

그립을 잡고 에너지 블레이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커팅 날을 쏘는 거다.

‘바보들.’

그는 적이 있는 지점을 향해 몸을 낮춰 전진했다.

그의 뒤로 40명으로 준 전사 훈련생이 따라왔다.

*

눈앞에 홀로그램 문자가 적의 출현과 숫자를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프로비던스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다.

칼큐레이팅 모드가 돌아가고 세주는 넷에게 사방을 보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은 중앙에서 입만 털었다.

“팽, 네 거다.”

팽은 팔방미인이었다.

외모도 뛰어나지만, 근접전, 저격 능력 뭐 하나 빠지지 않았다.

[확인]

그녀는 금세 세주 부대의 지휘에 녹아들었고, 제 역할을 했다.

둥!

콴이다.

전투종 따위 아무리 죽여도 성에 차지 않는다.

첫 번째 놈의 머리를 터트린 팽은 감상을 토했다.

[이거 메카니모스 무기만큼이나 좋아]

-흥, 어디서 그런 변태 놈들이랑 비교를 해.

무기를 개발한 프로비던스 님의 한 마디시다.

세주도 침묵을 들었다.

“전부 팽 방향 총구 이동.”

거치대에 올린 총구가 방향을 튼다.

동시에 두두두둥!

광탄을 쏘자, 달려오던 콴 놈들이 일제히 허공에서 터져 죽는다.

방어를 위해 노블 에너지 막, 배리어를 펼친 놈들이지만.

소용없다.

보이는 순간 죽는다.

광탄 그 자체의 위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걸 쏘는 이들의 실력이 막강하다.

커버링 탄환에 스파이럴 까지.

적어도 일격일살이 될 정도는 훈련을 해왔다.

“진짜가 왔네.”

쌕!

탄환이 아니었다.

푸른 칼날 같은 것이 날아와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파가가각!

뒤쪽 땅을 파헤치며 지나가는 칼날이다.

위력만 보자면 그들이 쏘는 탄환과 견줄 정도다.

세주를 제외한 이들이 몸을 일으키려 할 때다.

적에게 위치가 들킨 순간, 자리를 옮기는 건 기본이다.

“대기.”

하지만 세주가 그들을 만류했다.

‘브로.’

동시에 프로비던스를 불렀다.

먹은 에너지 뒀다 뭐하겠나.

남는 에너지로 연 프로비던스의 새로운 모드다.

-모드 온 쉘터.

훙.

순간 넷을 중심으로 작은 반구가 생긴다.

푸카가가가각!

배리어로 만든 가상의 쉘터, 새로운 모드다.

거기에 넷의 총구가 있는 방향에 작은 동그라미가 생긴다.

총구를 삐죽하고 내밀 수 있게 하는 사로다.

[재주가 좋다. 대장]

칭찬 고맙다.

그리고 세주는 봤다.

달려드는 사십의 콴과 허공에 푸른 칼날을 뿜어대는 놈을.

찌지지지지직!

푸른 칼날이 허공을 찢으며 새 울음소리를 퍼트린다.

-에너지 소모, 배리어 보강.

‘해.’

둥.

그들을 둘러 싼 반구가 짙어진다.

터더더덩!

그 위로 푸른 칼날이 꽂혔다.

[이 거리라면 알아볼 거야]

팽이 경고했다.

콴들이 가진 통찰력이라면 자신들의 정체가 들킨다는 거다.

그런 적들을 보며 세주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거 약간 모자란 놈인가?’

방금 눈앞에서 장거리 저격으로 열 놈이 터져 죽었다.

그런데 접근해서 칼날을 날려?

-응. 맞네. 저거 바보야.

[어떻게 해?]

팽이 묻는다.

뭘 묻나.

적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전제가 깨지지 않아야 한다면.

자신들을 본 놈을 전부 죽이면 된다.

“전부 사살.”

세주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다.

두두두둥!

적을 향해 광탄이 빛살처럼 몰아친다.

퍼버버벅!

낮게 몸을 깔고 덤비던 놈들이 터져 죽는다.

그 와중에 푸른 칼날을 총알처럼 날리던 놈은 멀쩡했다.

칼큐레이팅 모드 덕에 놈의 배리어가 막강함을 알았다.

현재 광탄과 스파이럴 만으로 놈을 죽일 수 없다는 결론도 함께다.

‘철갑탄.’

프로비던스 버전 두 번째 탄이다.

광탄이 기본 레이저 탄이라면.

철갑탄은 레이저 탄에 폭발력과 파괴력을 담은 몬스터 불릿이다.

침묵 형태의 라이플에 두꺼운 총알을 넣는다.

동시에 조준.

스으으으으으.

순간 공기가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몰입과 집중이다.

순간 적을 보고, 자신을 잊는다.

틱.

방아쇠를 당기는 손끝의 감각만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퉁!

동시에 세주의 총구에서 푸른빛이 터졌다.

펑!

동시에 푸른 칼날을 날리며 다가오던 놈의 몸이 폭발했다.

그냥 터진 것이 아니다.

뻥하고 사방에 녹색 체액과 살점을 흩뿌린다.

어느새 남은 적을 정리한 팽이 엄지를 들었다.

외계 인간이든, 지구의 인간이든 저 표시는 같은 뜻이었다.

최고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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