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19화 (119/206)

#  119

119. 적극적인 여자

팽은 반항하지 않았다.

그저 목을 내밀고 얌전히 세주의 처분을 기다리는 그녀다.

“죽이자.”

나호필이 그녀의 거취를 결정하는 말을 던졌다.

인간이든, 뭐든.

그녀는 외계인이고 갑자기 나타났다.

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걸 어떻게 믿을까?

“아까운데요.”

유진이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이 미친 자식은 여자라면 다 좋다는 건가?

반세주 부대의 정유진이라면 타고난 바람둥이로 불린다.

그래도 그렇지, 이쪽은 외계인이다.

아무리 여자가 좋다고 해도, 바운더리가 너무 넓다.

“여자라서?”

나호필이 눈을 부라리며 묻자, 유진이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설마요. 아군인 것 같고, 사실 그 침공 외에 다른 목적의 외계인은 처음이니까요.”

유진의 말은 이 상황을 꿰뚫는 한 마디였다.

맞다. 그녀는 달랐다.

하지만 나호필은 불안했다.

이미 마스이라는 놈을 고문하다 못해 죽여 버렸다.

이제 와, 우주 위에서 온 놈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 리 없다.

치용은 새로 온 통역기 병사 훈련한다고 자리를 비웠고.

호필의 눈이 인준에게 돌아갔다.

나호필은 눈으로 말했다.

어서 빨리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라고, 평소에도 인준은 외계인이라면 전부 죽여야 한다는 주의다.

그런 인준이 호필 대신 세주를 향해 눈을 돌린다.

“형님은?”

자신의 생각은 별도로 하고 세주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말이다.

제길!

남자라면 이럴 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란 말이다.

나호필은 속으로 외쳤지만, 그걸 겉으로 말하진 않았다.

대신 세주를 봤다.

“생각 중.”

생각 중이라니, 너무 태평하다.

나호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곧 위로 올라가서 싸워야 한다. 고민할 거리도 없어. 배제해야 해.”

말하며 어쩌다 보니 반세주와 그녀 사이에 선 그다.

그걸 보고 세주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쟤 통역기 아직 붙어 있어.”

응?

흠칫 놀란 나호필은 인준 쪽으로 움직였다.

“무슨 미친 짓이야?”

낮게 으르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잘못하면 죽을 뻔했다.

세주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쭈그려 앉아 무릎 꿇은 팽과 눈을 마주쳤다.

“팽이라고 했지?”

[네]

“넷 중에 누가 제일 매력적이지?”

[당연히]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넷을 향해 겹쳐진 두 개의 동공이 돌아간다.

나호필은 그녀의 눈을 보며 아주 조금 겁이 났다.

정작 세주를 비롯한 둘은 아무 신경도 안 쓰는 것처럼 보였다.

[대장이지]

“너 입대할래?”

쭈그려 앉은 채로 세주가 입을 열었다.

[응]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팽의 대답이다.

나호필이 그걸 보고 경기를 일으켰다.

“야 이 미친놈아!”

나호필이 화를 내고, 팽은 몸을 일으켰다.

[대장에게 모욕적인 말을 뱉은 것 같은데, 죽일까?]

“안 돼. 아군이야.”

[알았어]

팽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호필은 신을 저주했다.

반세주와 동시대에 태어나 왜 자신이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한단 말인가.

***

세주는 팽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당분간은 영락없이 한방에서 지내야 했다.

나호필은 거품을 물고 말했다.

“절대로 혼자 두지 말 것.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로 할 것.”

이미 박민우와 몇 명이 그녀를 봤지만, 얼굴을 본 적은 없다.

동공이 두 개인 것이 특징이긴 하지만.

‘브로, 콘택트렌즈 하나 만들어 봐.’

여기 만물상이 있으니, 문제없다.

“이거 끼고 다녀.”

뚝딱하고 만든 렌즈를 건네자, 그녀는 별말 없이 눈에 렌즈를 쑥 집어넣었다.

“일단, 내 방에서 같이 지내자.”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방에 들여보냈다.

혹시 몰라 감시역을 붙여둘 법도 했지만.

나호필이 알아서 할 거다.

자신보다 몇 배는 불안해하고 있으니까.

위이이잉.

주변에 있는 CCTV가 몽땅 세주의 방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나호필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감시할 거다.

-무슨 생각이야?

‘응?’

-정말 형을 매력적이라고 해서 데리고 다닐 생각이야? 애초에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대장, 대장 하니까 끌리는 거야?

‘무슨 헛소리야?’

-그게 아니라면, 설마……. 형 그렇게 안 봤는데, 밤 시중이라도 들게 하려고?

‘에라이. 이 미친 기계 놈아.’

그 사이 유진이 옆으로 다가왔다.

“형님, 어쩌시려고요?”

아깝다고 했지만, 유진도 그녀를 이렇게 자유롭게 풀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 가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방이라니.

“마스이 놈이 말했지, 콴과 메카니모스, 바이탄 세 종족이 우주를 삼분하는 놈들이라고.”

“네. 그랬죠.”

“그럼 저 여자는 뭘까?”

얌전히 목을 내놓고 자신의 처분을 기다리기 전, 팽은 자신의 처지를 십분 설명했다.

우주에는 세 종족 외에도 소수종족이 있다.

물론, 제대로 명맥을 잇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전부 콴, 메카니모스, 바이탄에게 식민지로 전락하거나, 노예가 됐다.

그런 상황에서 전투 기술을 배운 다른 형태의 인간이 나타난 거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소속이 ‘반란군’이라고 했다.

“우주란 곳도 사람 사는 곳과 크게 다를 바 없다면.”

그런 전제가 깔린다면, 전략이 통할 거다.

예부터 전쟁은 포탄과 총탄만으로 하는 게 아닌 법이다.

제일 필요한 건, 정보.

그리고 정보를 토대로 내분을 일으킬 수 있다면 최고다.

하지만 적은 지구의 인간들을 벌레 정도로 취급했다.

마스이는 모진 고문을 겪으며 확답을 줬다.

[인간은 절대로 진다]

개미가 발악한다고 인간을 이길 순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개미가 아니라, 인간에게 피해를 줄 동맹을 찾는 거다.

그리고 그 동맹에 시선을 뺏겼을 때.

개미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들의 몸 안으로 들어가 내장을 뜯어 먹는다.

“아군을 만든다.”

메카니모스는 안 된다.

콴과 바이탄도 무리다.

마스이의 정보와 팽이 전해 준 정보를 토대로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반란군이라 이름 붙은 이들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아군이요?”

유진은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세주를 바라봤다.

“그렇다는 거다.”

세주는 그런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호필을 찾아갔다.

“동맹이냐?”

대뜸 보자마자 그가 물었다.

역시나 머리 돌아가는 거라면 자신보다 낫다.

고개를 끄덕이자.

“내가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상황이 달라.”

“다 좋다. 정보를 토대로 그런 결론을 맺었다면 나도 동의한다. 죽이자고 했지만, 만약 정말로 우주에 있는 반란군과 동맹을 맺을 수 있다면.”

나호필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세주를 봤다.

세주가 그의 말을 받아서 답했다.

“놈들 항문에 똥침 한 번 넣어줄 수 있겠지.”

적이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다.

불의의 일격을 먹일 준비였다.

***

세주는 테크룸에 있었다.

눈앞에 뜬 홀로그램 막대 그래프다.

“레이저 탄은?”

-80% 완료까지 256시간.

빠르진 않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다.

팽이 전해 준 정보 덕에 마음이 편해졌다.

반란군이 바이탄 보급 행성 하나에 잠입, 에너지 플랜트를 태웠다.

그리고 그걸 콴이 한 것처럼 꾸며놓았다.

덕분에 세 종족이 지금 전쟁 발발 일보 직전 상황이라고 했다.

국지전을 넘어 비상계엄령을 선언하고 국가의 힘을 모으고 있단다.

주먹을 들고 싸우다 총을 들고 겨눈 격이다.

누구라도 방아쇠를 당기면 그때부터는 가혹한 전장이 펼쳐지는 거다.

[하지만 절대로 대규모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

그게 팽의 의견이다.

이제까지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있었지만, 전부 협상 끝에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은 벌었다.

팽이 전해 준 정보는 가치가 있었다.

마스이를 지지고 볶고 얻은 것과 팽이 전해준 것들.

세주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고, 그걸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새겼다.

“빨리빨리 좀 하자.”

일단 프로비던스에게 채찍질하기.

-꼬우면 직접 하던가.

“넌 왜 말하면 곱게 처먹질 않니?”

-그건 날 만든 놈한테 따지고.

그래. 혹시라도 그놈 만나면 일단 악수 대신 주먹이다.

이런 빌어먹을 기계를 발명한 그에게 찬사를 보내며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패주마.

-팽 왔다.

세주는 그 말을 듣고 테크룸에서 나왔다.

[대장]

그녀의 뒤로 전신에 장비를 찬 두 명이 소총을 등에 대고 따라온다.

“가 봐.”

“괜찮겠습니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호필이 시켰지?”

“넵!”

“그럴 필요 없다니까.”

세주 자신도 모른다.

팽은 자신을 대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세주는 그녀를 모르지만.

적이 아니다.

그런 직감이 들었다.

직감 반, 그리고 실리 반.

그게 그녀를 살린 이유다.

“전투력 측정 좀 해보자.”

말하고 세주가 목을 좌우로 꺾었다.

[대장과?]

그녀가 묻는다.

렌즈 덕에 그냥 사람 같다.

트레거리지만 않으면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겠다.

“응. 일단 덤벼 봐. 실력이나 보자.”

가볍게 50% 정도로 상대해 줄 생각이었다.

모드를 켤 필요도 없을 거고.

그녀는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장비 없이?]

저 통역기 좀 업그레이드할 수 없나?

뜻이야 통하지만, 불편한 감이 있다.

사람의 언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짧게 뜻만 전하는 판이니.

그나저나 그 유이레라는 자식 훈련 잘하고 있나 싶었다.

아주 특이한 사이키커다.

인간 통역기라니, 그리고 그를 본 순간 세주는 박민우에게 별도 명령을 내렸다.

D를 복용하지 않고, 이상한 힘을 발휘하는 인간을 찾으라는 거다.

[그럼 간다]

잡생각 하는 와중에 그녀가 몸을 다 풀었는지, 세주를 보고 입을 연다.

“응. 와.”

무협지에서 나온 것처럼 왼손만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을 매력적이라고 하니, 압도적인 강력함을 보여주는 거다.

여자는 강한 남자에게 끌리는 법!

훅.

그리고 팽이 달려와 주먹을 휘둘렀다.

아머도 칼 한 자루도 없이 주먹이 오가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8분 33초 걸렸네.

[괜찮아?]

오롯이 서 있는 팽이 묻는다.

“하하하.”

부러진 왼쪽 팔, 그리고 깨진 이마.

코뼈도 나간 것 같다.

‘이거 뭐냐?’

-뭐긴 뭐야?

무지막지하게 강하다.

아니, 근력이 탁월한 것도 아니고 민첩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강력함은 뭘까?

‘모드 온 레스큐 액트.’

동시에 치유 드론을 불렀다.

전신에 치유 광선을 쬔다.

삭신이 쑤신다.

“너 잘 싸우네?”

[콴의 전투법이야. 대장에게 배운 적도 있었어]

그러니까 언제?

“난 사실 너 기억 안 나.”

[상관없어]

강하고 쿨하고, 어째 세주의 이상형과 가깝다.

[내가 대장을 기억하니까]

“……적극적이네.”

-고백인가? 오늘 밤 거사를 치를 작정이라면 내가 잠깐 자줄 의향도 있어.

너 이 기계 새끼. 센스 봐라.

‘어쩐 일로?’

-형도 스트레스 풀어야지. 여자한테 죽어라 얻어터진 날을 기념할 겸?

얄미운 말투로 따지면, 프로비던스가 세계 제일이다.

[가르쳐 줄까? 싸우는 법?]

팽이 말했다.

하, 참. 기가 막혀서.

“내가 봐준 거야.”

[아니, 대장 모드 켜도 안 돼]

팽의 말에 세주가 고개를 들었다.

모드를 알아?

유진을 비롯해 아무도 모른다.

세주의 눈빛이 변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이게 다야. 대장의 모드는 프로그램 중 일부라고 했어. 다른 이에게 전해줄 수 있다고]

거짓은 아니다. 세주의 직감이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정말 자신이 팽이라는 저 여자를 안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세주는 자신이 태어나 지금까지 겪어 온 인생을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다.

그사이에 저런 존재는 없다.

자신의 직감을 속일 정도의 거짓말쟁이.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다.

-고민한다고 나올 문제가 아냐.

프로비던스의 말이다.

‘그건 그렇지.’

언제부터 고민거리를 안고 살았다고.

자신의 신변에 관련된 일이지만, 나중에 팽의 동료를 만나보고 물어보면 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세주는 눈을 부릅떴다.

그 모습에 팽이 수줍게 볼을 붉힌다.

그럴 타이밍이 아닌 것 같지만, 나름 귀엽다.

-오늘 자줘?

‘지금부터 영원히 쳐 자라.’

악담을 퍼부어주고 팽을 향해 세주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싸우는 법 좀 알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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