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118. 원룸 털이범
함선 개조에 6개월, 거기에 우주로 나아가는 훈련까지 필요했다.
덕분에 당장 내일이라도 우주로 날아가고 싶은 세주도 참아야 했다.
일단 참는다.
준비 없는 전투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나비와 같았다.
세주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난 참 겸손하지.’
-누가?
프로비던스 따위에게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휴식기였다.
더구나 외계인 놈들의 침공도 당장 일어나지 않았다.
아주 잠깐의 휴식이었다.
***
왜 여기서 그의 향기가 나는 거지?
알 수 없다.
꼬르르륵.
위장에서 위액이 흘러나와 뱃속이 따끔거린다.
겨우 나흘을 굶었을 뿐인데 눈앞에 헛것이 보일 정도다.
‘고기 맛 오드꾸와를 먹고 싶어.’
부스럭.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녀는 앞으로 뛰었다.
가로등을 가로질러가며 그녀의 모습이 빛 앞에 드러났다.
긴 갈색 머리칼, 얼굴을 가리는 단단한 마스크가 보인다.
그녀는 그대로 옆집 담을 넘었다.
사뿐.
고양이보다 날쌘 몸놀림이었다.
소리 없이 움직인 그녀는 벽을 기어올랐다.
불이 꺼진 어두운 방, 손을 대자 유리가 녹는다.
사람은 없었다.
5평이나 될 법한 원룸이었다.
“킁킁.”
음식 냄새가 났다.
그녀는 작은 싱크대 위, 선반이다.
우둑.
봉지째로 라면을 씹어 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어째서 이곳의 인간들은 이런 걸 먹을까?
하지만 나흘을 굶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라면을 봉지째로 입에 집어넣었다.
맛도 형편없고, 음식으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는 더 형편없었다.
***
“대장님. 경찰 쪽에서 지원 요청 들어왔습니다.”
“지원 요청?”
방위 기동 타격대를 이끄는 박민우다.
그의 앞에 선 부관 심석호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신림 원룸촌에서 벌써 오십 개가 넘는 원룸에 도둑이 들었답니다.”
“그런데?”
“외계인의 소행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박민우는 TV에서 이와 관한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음식만을 탐하는 도둑이었던가.
창문을 녹여서 들어가고 방범창도 찢어 버린다.
그리고 들어가서 음식이란 음식은 몽땅 먹는다.
“그러니까 외계인이 고작 도둑질한다는 소리지?”
“네, 그렇습니다.”
박민우는 이제까지 외계인의 타입을 규정해 봤다.
아니, 나눌 것도 없었다.
모두 미친 듯 인간을 공격하는 놈들뿐이다.
그런데 음식을 훔쳐 먹는 놈?
“왜 외계인이라고 의심하는 건지는?”
“그게, 잠복하던 순경이 봤답니다.”
“데려와.”
목격자가 있다면 일이 수월하다.
반 시간도 되지 않아, 그 순경이란 남자가 왔다.
120kg는 나갈 것 같은 거구다.
“유이레라고 합니다.”
군과 경은 다른 단체다.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들어와 이름을 말했다.
“외계인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박민우가 대뜸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게, 그 도둑이 도망가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인간의 음식은 맛이 없다고.”
“……어이, 유이레.”
박민우의 눈빛이 변했다.
이 미친 새끼는 뭐란 말인가?
아니, 경찰에서 방위 기동 타격대를 그리 반기지 않는 건 안다.
그렇다고 이런 반쯤 정신 나간 놈을 보내?
“정말입니다.”
유이레는 억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진짜라고?”
“넵!”
눈빛이 흐리지 않고 식은땀을 흘리지도 않는다.
적어도 코로 흰 가루를 빨아들이거나, 혈관에 위험한 약물을 넣고 온 놈은 아니다.
더구나 눈빛을 보니, 정신이 나간 놈 같지도 않다.
“잡고 나서 거짓이면, 장난으로 넘어가지는 않을 거다.”
“절대 아닙니다.”
그가 두툼한 볼살을 좌우로 흔들었다.
***
‘부족해.’
인간의 음식은 질량보다 얻을 수 있는 게 적다.
그래서 많이 먹어야 했다.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어쩔 수 없다.
그녀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집을 털었다.
이쪽 인간은 너무 허약했다.
사이킥 에너지는 고사하고, 노블 에너지조차 갖춘 이가 드물다.
그녀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달달한 향.’
그녀가 노리는 곳, 제과점이었다.
맛은 형편없지만, 어쨌든 먹어야 했다.
그녀는 밤을 기다렸다.
해가 떨어지면, 인간들은 전부 바삐 움직인다.
그리고 더 깊은 밤이 되면 그런 인간들이 현저히 적어진다.
그때, 들어가서 먹어치우면 된다.
그렇게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시점, 그녀가 움직이는 순간이다.
둥! 펑!
앞으로 달리다가 땅을 발로 찍으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바닥에 검은 탄 자국이 보였다.
‘레이저?’
아니, 그녀가 보던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순간 주변에 에너지를 보유한 이들이 느껴졌다.
“트레에!”
그녀는 외치며 앞으로 달렸다.
두두두두둥!
그녀가 달리는 길을 따라 레이저 포가 바닥을 때렸다.
‘대피? 아니면 대응?’
일대 다수다.
하지만 적은 자신보다 에너지 보유량이 적다.
그녀는 사이킥 에너지를 일으켰다.
우지지직!
길가에 세워진 가로수가 뽑힌다.
그리고 그대로 우측 건물 창문으로 창처럼 던졌다.
콰우! 꽝!
벽에 나무가 반쯤 꽂혔다.
건물 벽이 허물어지고, 바닥으로 시멘트 덩어리를 떨어뜨렸다.
건물 창문에 꽂힌 나무가 달빛을 받아 그로테스크한 광경처럼 보였다.
그 바로 밑, 인간이 보였다.
이제까지 봤던 인간과는 달랐다.
‘노블 에너지.’
에너지를 보유한 인간이다.
그 인간이 자신을 향해 총구를 들이민다.
두둥!
눈을 부릅뜬 그녀는 고개를 흔들어 피했다.
텅!
그리고 앞으로 내달렸다.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른 그녀다.
그대로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촤악!
위에서 밑으로 그물이 떨어졌다.
‘칫!’
역시 굶은 탓이다.
순간적으로 판단이 흐려졌다.
대응이 아니라, 대피를 했어야 했다.
아니, 대응하기로 했다면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였어야 했다.
눈에 보인다고 그대로 내달리는 꼴이라니!
그녀는 자신의 멍청함에 탄식을 뱉었다.
파지지직!
그물 전체에 스파크가 튀었다.
“끄그그그극!”
그녀는 몸을 웅크렸다.
툭.
그리고 머리에 총구가 닿았다.
“트레이.”
[살려줘]
당당히 요구했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쪽 인간과 자신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저기, 대장님. 살려달라고 합니다.”
그 뒤, 에너지 보유량과 반비례로 살집이 두툼한 인간이 보였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인간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트레에에.”
[내 말 알아들어?]
남자가 눈을 끔뻑거렸다.
저 멍청한 인간이 정말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걸까?
알 수 없었다.
“뭐라고 했지?”
다시 총구를 들이민 남자의 말이다.
어느새 사방이 포위된 상태다.
“자기 말 알아듣냐고 합니다.”
이상하다.
왜 저 인간의 말은 들리는 걸까?
박민우는 유이레를 유심히 지켜봤다.
장난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스캐너.”
심석호가 옆에서 유이레를 향해 스캐너의 렌즈를 들이댔다.
“엇!”
푸른빛에 손을 앞으로 가리는 그다.
심석호는 웃으며 화면에 뜬 글자를 읽었다.
“사이키커입니다. 이 자식.”
D도 먹지 않고, 잠재 능력을 깨우쳤다는 소리다.
박민우는 그런 인간을 처음 봤다.
“대기.”
그리고 곧 위로 보고를 올렸다.
뒤로 물러나 보고를 끝내고 그가 돌아와 유이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외계인 생포 이송한다.”
“어디로 갑니까?”
부하가 묻는다.
“동해.”
연합군 총본부다.
그리고 유이레의 어깨에 올린 손으로 그를 툭툭 두드렸다.
“축하한다. 너 입대다.”
“……네?”
군과 경은 다른 계통의 단체다.
현시대에 경찰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무슨 소리일까?
“가보면 알아.”
유이레는 곧바로 상관에게 보고했다.
대답은 짧고 굵었다.
“따라가. 넌 이제부터 군 소속이다.”
***
-진짜야.
“너 무진장 신기하다.”
프로비던스가 유이레의 능력을 확인해줬다.
유이레의 능력은 하나다.
언어를 무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그는 동물이든 외계인이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키커다.
“네?”
유이레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세주를 바라봤다.
누군지는 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이 사람을 모르면 외계인 취급일 거다.
반세주, 올킬 중령.
구국의 영웅이자 인류의 희망.
갖가지 이름이 붙은 사람이다.
사인을 받아야 하나 고민하는 그를 향해 세주가 말했다.
“너 혹시 어릴 때 꿈이 우주비행사 이런 건 아냐?”
이레의 어릴 때 꿈은 공무원이었다.
현실적이었고, 지금의 위치에 만족했다.
“아닙니다.”
“경찰이 됐다는 건, 인류를 위해 공헌하고 싶다는 숭고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겠지?”
인류의 영웅이 하는 말이다.
이레는 침을 꿀꺽 삼키고 신중하게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좋아. 합격. 얘 훈련 시켜. 함선에 태운다.”
“……네?”
함선? 왠 함선?
이레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보자, 세주가 웃으며 물었다.
“사인 해줘?”
아니, 지금 사인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훅. 번쩍.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뒷덜미를 잡더니 들어 올린다.
“제가 데려가도 됩니까?”
대롱대롱 매달린 이레는 언제 이렇게 애기처럼 들려봤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이후로 110kg 이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는 그다.
“죽이면 안 돼.”
“훈련병이 들으면 오해합니다.”
곰 같은 덩치의 남자다.
들어 본 기억이 있다.
무식의 대명사, 곰 새끼 김치용.
세주의 부대원 중 하나다.
“훈련병이 누굽니까?”
이레가 물었다.
치용이 그를 보며 치아가 드러나도록 웃었다.
“너.”
그리고 그대로 그를 데리고 갔다.
유이레는 반항하지 못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송장이 될 것 같았다.
세주가 죽이면 안 되라고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치용이 특이 능력자를 데려가는 걸 본 세주는 자신 앞에 끈에 돌돌 묶인 외계인을 바라봤다.
긴 머리칼과 딱딱한 가면이 보인다.
몸매는 강슬 만큼은 아니지만, 훌륭하다.
적어도 지나가는 남자들이 침을 흘릴 정도는 된다.
-몸매 감상할 때야?
‘음. 이건 남자의 본능이다.’
-퍽이나.
세주는 발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 외계인의 머리를 걷어찼다.
뻑!
몸이 옆으로 넘어간다.
전의 심문실이다.
“끄으으윽!”
외계인이 깨어난다.
근데 굉장히 인간과 닮았다.
탄탄하고 얇은 아머가 전신을 덮은 형태다.
벗기려 해도 벗겨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녀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전신이 꽁꽁 묶인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염동력을 일으켰다.
세주의 전신에 푸른빛이 머무른다.
펑!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폭음이 터졌다.
염동력도 기본적으로 물리력을 발휘하는 행위다.
그리고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없듯, 그녀의 염동력은 세주에게 위협이 될 수 없었다.
툭.
세주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당겼다.
“끽!”
애초에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통역기를 그녀의 이마에 붙였다.
“자, 만나서 반갑다.”
그리고 세주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트레!”
[대장!]
-응?
‘응?’
프로비던스와 세주가 동시에 당황했다.
-어디서 숨겨 둔 자식 있어?
‘아빠라고 안 했고, 대장이라고 했거든.’
[나야, 팽!]
자, 이 외계인은 극도로 반가움을 표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주를 보고 아는 척을 해온다.
‘여기서 고문을 하는 건 이상한 일이겠지?’
-일단 상황파악이 먼저지.
[역시 살아있었구나!]
가면 위로 물기가 흐른다.
눈물이다.
이잉.
외계인의 가면 위로 푸른선이 종횡으로 생겨난다.
마치 홀로그램이 흩어질 때와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어?”
세주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얼굴이 인간과 꼭 닮았다.
하지만 다른 부분은 있었다.
눈이다.
동공이 두 개다.
그리고 세주는 이와 똑 닮은 걸 본 적이 있었다.
아마존, 녹색 에메랄드 우주선 안에서 다중 영상재생에서다.
가르간에게 죽었던 인간, 그것과 꼭 같은 모습이었다.
[대장!]
그와 닮은 여자가 눈앞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세주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동공은 두 개지만, 오렌지색의 눈이 참 예쁘게 생겼다고.
-이 순간에도, 에휴. 진짜. 발정 난 강아지도 아니고.
‘이건 본능이라고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