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17화 (117/206)

#  117

117. 싸워야지

콴과 메카니모스는 꿈을 꾸지 않는다.

그래서 마스이는 이 순간이 현실임을 너무도 잘 알았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쩍.

그리고 부착형 통역기를 뜯겼다.

머리 뒤쪽, 오백 원짜리 납작한 기계다.

자신을 잡은 인간이 통역기를 뒤로 던졌다.

탁! 타각!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 이후부터는 생각하기 싫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쩍! 뻑!

인간이 양손을 휘둘러 얼굴을 후려쳤다.

고통? 아픔?

그것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자괴감이었다.

고작, 인간에게 당하다니.

마스이는 항복을 했을 때, 정중한 대우를 예상했다.

인간이라는 종이 멍청하지 않다면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대가를 요구하는 포로로 쓸 수 있는데도 인간은 그러지 않았다.

“트레!”

[감히!]

인간은 우주 공용어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마치 알아듣는 듯, 더 세차게 그를 팼다.

전신을 묶은 끈은 재료가 뭔지 힘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마스이는 사이킥 에너지를 다루지 못하는 타입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

묶인 몸.

그리고 일방적인 폭력.

마스이는 위기감을 느꼈다.

세주의 손에서 이 고문이 끝나야 했다.

하지만 그는 우위 종족으로서, 상처 난 자존심에 분노를 뿜었다.

“트레에에에!”

[이놈들!]

그걸 본 인간이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이마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휴, 힘들다.”

그리고 인간이 밖으로 나가고.

그다음 인간치고는 몸집이 상당한 남자가 들어왔다.

“크흐흐.”

그놈은 들어오면서 웃었다.

인간의 미소는 보는 순간 속을 뒤집는 효과가 있었다.

지잉.

에너지 블레이드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마스이의 발끝을 잘랐다.

석.

비명을 꾹 눌러 삼켰다.

“안 아픈가?”

뭐라고 하는지 모르나, 그 인간은 다시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고기를 썰듯 반듯하게 자른다.

한 번에 자르는 것이 아니라, 저민다.

총 열다섯 번.

칼날이 자른 부위는 고작 몇 cm에 불과했다.

마스이는 고통을 느끼는 통각을 자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석. 석. 석. 찌걱.

그리고 서른 번.

“끼엑!”

자기도 모르게 고통 어린 비명을 질렀다.

“아파?”

인간은 반대쪽 발에 똑같은 짓을 했다.

서른 번이다.

한 번 터진 비명은 여지없이 계속 터졌다.

고통스럽다.

그에게 눈물을 흘리는 기관이 있다면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메카니모스 종은 눈물을 흘릴 수 없다.

그들에게 눈물샘이 없다.

코도 없었고, 호흡은 목에 붙은 섬유 다발 같은 기관이 대신했다.

입은 에너지를 섭취하기 위한 기관일 뿐이다.

하지만 오늘 마스이의 입은 비명을 지르기 위해 존재했다.

“끼에엑!”

새하얀 정방형 방에 다시 비명이 울린다.

자신의 발을 잘근잘근 자른 인간이 몸을 일으켰다.

“본래 이럴 땐 곰탕이라도 한 그릇 주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건데…….”

그는 머리를 긁고 다시 블레이드를 들었다.

푹.

그 인간은 그 이후 웃으며 오십 번 넘게 몸 여기저기를 찔렀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괴롭혔다.

피부가 에너지 블레이드에 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느린 칼날이 살을 파고든다.

개조된 신체가 너덜너덜해질 때쯤.

마스이의 렌즈가 깜빡거렸다.

‘무섭다.’

저 인간이 칼을 드는 것도.

그리고 그 칼이 자신을 향하는 것도.

찌지직.

“트레이레이.”

[말하겠다. 뭐든지]

결국, 그의 입이 열렸다.

하지만 인간은 듣지 않았다.

“트레이!”

[질문하면 답하겠다고 했다!]

통역기가 없으니, 알아들을 일이 없다.

끼에에엑!

그 후로도 서른 번이 넘게 전신을 찔렸다.

이때만큼 개조된 신체가 괴로운 적이 없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다.

‘죽고 싶다.’

다시 칼날이 다가온다.

렌즈의 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마스이는 희망을 잃은 채, 고통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

-겁에 질렸어.

저놈들은 렌즈로 감정을 보인다.

프로비던스는 그 패턴을 파악했고, 스캐닝으로 상대의 감정을 가늠했다.

“놈들도 겁에 질려.”

세주가 입을 열어 말하자, 나호필이 되물었다.

“어떻게 확신하나? 저것들은 인간이 아냐.”

“렌즈로 감정을 표현하잖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패턴을 알 수 있다고.”

나호필은 짧게 신음을 흘렸다.

세주가 말했던 그 패턴 파악은 자신도 의심했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에 렌즈에서 뿜어지는 빛을 보고 상대의 감정을 추측한다고?

“못 믿어?”

“아니.”

어떻게 아냐고 묻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세주가 말할 답도 뻔하다.

직감이라고 할 거다.

“후. 이게 잘하는 짓인지.”

나호필은 세주의 의견에 반대했다.

지성이 있는 외계인이다.

사로잡은 건 처음이다.

고문보다는 교류를 원했다.

이전 가르간의 건이 있어 대화가 통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나호필은 세주가 잡아온 놈도 봤고, 다른 놈도 봤다.

그들은 가르간과 너무 달랐다.

기질도 공격 형태도 전부 다르다.

거기에 지원 부대를 공격한 놈, 아군의 무기를 들고 사라진 놈과의 격전.

간신히 놈을 죽인 후, 확신이 들었다.

혹시 가르간이라는 콴과는 다른 종족이 아닐까?

나호필은 가설을 세웠다.

만약, 우주에도 지구처럼 국가 개념으로 나뉘어 있다면?

서로 경쟁을 하고 전투를 하는 이들이라면?

적의 적은 아군이다.

나호필은 그 가능성을 뒤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놈을 잡아 온 세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리.”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는 거냐?”

나호필은 그렇게 물었지만, 세주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다.

그는 모르지만, 세주는 알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외계인 새끼들이 지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하등 종족.

예를 들면, 짐승이 인간을 공격한다고 해서 그들과 대화를 하지는 않는 것과 같았다.

그들과 협약을 맺지도 않는다.

인간은 인간을 해하는 종에게 가차 없는 사형 선고를 내린다.

그건 외계인이라도 다를 게 없다.

그들이 보기에 인간은 발악하는 들개 정도일 뿐이다.

세주는 그래서 결정했다.

어설픈 대화보다 확실한 폭력을.

그리고 그 폭력으로 정보를 얻고, 적을 친다.

치용이 지금 방 안의 외계인 놈의 살을 저미는 이유다.

딸깍.

밖에서 기다리는 둘이 고개를 동시에 돌렸다.

치용이 나왔다.

녹색 체액이 튀어서 지저분한 차림이다.

“전 끝.”

“그럼 이제 대화 좀 해보자고.”

나호필도 결국 세주에게 설득당했다.

그의 의견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옳았는지, 아니면 자신이 옳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까지 일방적인 침공을 당한 인류의 입장에서, 놈들을 향해 엿을 먹일 방법이 있다면 그걸 택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

-겁나?

프로비던스가 묻는다.

무섭기는.

들은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황당할 따름이다.

우주는 넓다.

1은하부터 9은하까지.

그리고 지구가 있는 곳은 9은하다.

9은하는 세 종족이 지배하고 있다.

콴.

에너지 블레이드를 쓰는 소수 정예의 종족이다.

여왕을 모시는 이들로, 중세시대 왕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메카니모스.

강력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체 개조를 즐기는 변태들이다.

레이저 포와 같은 사출 무기를 잘 사용한다.

머릿수가 가장 많으며, 다섯 위원이 종족 전체를 지배한다.

마지막 바이탄.

전신이 기계로 이뤄진 완벽한 인공지능 종족이다.

터미네이터에서 본 놈들이 가득할 것 같다.

아니면 트랜스포머나.

세 종족의 공통점이라면 하나뿐이다.

그들은 에너지를 섭취해, 삶을 영위한다는 것.

즉,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인간은 그들에게 아주 좋은 양질의 먹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미약한 에너지라 관심이 크지는 않다는 것.

가르간은 인간을 사육하길 원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콴은 인간을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하고.

메카니모스는 즉석 요리 먹듯 바로 잡아먹으려 했고.

바이탄은 아직 관심이 없다는 거다.

‘이전에 침공한 놈은 우주 해적.’

그러니까 세 종족 싸움에 패퇴한 뜨내기들이다.

그 뜨내기들을 보낸 게 콴 쪽이 아닌가 마스이는 의심했다.

고문과 고통은 그의 머리를 비상하게 만들어줬다.

지구에서 일어난 일들을 들은 그는 앞뒤 상황을 유추해 현재에 이르는 결론을 만들었다.

“왜 한국만 침공하는데?”

마스이에게 외계인 놈들이 왜 이 작은 땅덩이를 노리냐고 물었다.

[여기에 농축된 에너지가 있으니까]

‘그 에너지는 아마도 나겠지?’

-물어 뭐해?

자신이 있어서 침공을 받았다는 거다.

놈들의 목적은 에너지.

그리고 그 에너지를 이제까지 왕창 몸에 축적한 세주와 프로비던스의 존재.

먹음직스럽게 구운 고기를 들고 유혹한 꼴이다.

우두둑.

목을 풀었다.

한참 생각에 잠겼더니, 전신이 뻐근하다.

-어쩌게?

‘어쩌긴.’

변한 건 없다.

“올라갈 거다.”

이제부터는 판을 새로 짠다.

무대를 바꾸는 거다.

우리 집 앞마당이 아니라, 남의 집 앞마당을 싸움터로 바꾼다.

나포한 함선 다섯 척.

각국에서 모은 함선 25척.

함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그리고 연합 총사령관 나호필.

그 휘하 특별한 부대원들.

인간이 가진 힘을 몽땅 모아 위를 친다.

이제까지 침공만 당한 이들이 놈들을 향해 칼을 들이밀 차례였다.

***

쿠우우우우!

두두두둥!

앞쪽에 다연발 레이저 포가 날아온다.

“배리어!”

나호필의 목소리에 승무원 둘이 손을 하늘로 치켜든다.

함선은 ‘행동’으로 조종한다.

그들의 움직임에 바깥에 육각형 패널 막이 넓게 펴져 함선을 감싼다.

터더더더덩!

두두두두두두두둥!

하지만 쉬지 않고 레이저 포가 날아왔다.

나호필은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강행돌파냐, 아니면 회군인가.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전군 회피 기동한다.”

콰우우.

함선이 옆으로 기운다.

평행 유지 장치로 함장과 승무원 전부는 작은 흔들림조차 느끼지 못했다.

회피 기동하는 함선을 따라 레이저 포와 적의 전투기가 따라온다.

멋진 스페이스 뷰를 가득 채우는 놈들의 전투기다.

“후방 이형포 발사!”

외계인 놈들의 기술은 아주 특별하고 뛰어났다.

그걸 그대로 인간에게 맞게 바꾼 게 지금, 나호필이 모는 백두산 호다.

두두두둥!

열두 개의 포신이 레이저 포를 퍼붓는다.

그래도 적이 너무 많다.

쩌저적!

결국, 배리어가 깨지고 적에게 함선이 당하고야 만다.

깨진 외벽으로 놈들이 들어온다.

양손에 에너지 블레이드를 뽑아내는 콴 놈들이다.

핏.

나호필의 눈앞이 어두워지며 글자가 떠올랐다.

YOU DIE.

함선 내부에 있는 조종 시뮬레이션, 아니 다중 영상 재생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전투 시뮬레이션이었다.

얼마나 실감 나는지, 끝나고 나니 어깨 근육이 뭉칠 정도다.

나호필은 어깨를 주무르며 몸을 뒤로했다.

퓨슉.

미끈한 의자가 몸을 받쳤다.

몸이 푹 파고들며 전신이 노곤해진다.

피로가 단숨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안마 의자를 만든다면 단숨에 억만장자가 될 거다.

여러모로 놀라운 기술이었다.

“함장 양반, 이대로라면 놈들 앞마당에 가기도 전에 다 터지겠어.”

전신에 느껴지는 편안함을 만끽하는 중 끼어드는 목소리, 반세주였다.

“겨우 하루 다뤄봤어. 아직 고칠 것들이 많아.”

어떻게 이걸 혼자서 그렇게 움직였을까?

동해에서는 배리어를 펼쳐 해일을 막았다고 했다.

역시, 이 반세주란 놈은 비밀이 있다.

나호필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승무원을 늘려야겠다. 적어도 이 함선이라면 천 명까지는 태우겠지?”

총 세 개 층으로 이뤄진 함선이다.

인간은 어떻게 보면 불편한 동물이다.

먹고, 싸고, 자고, 씻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비롯해 다양한 것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함선은 탈락이다.

이대로 한 달만 여행도 심심해 죽는 사람이 생기겠다.

‘훈련소와 시청각실, 침실과 샤워실.’

나호필의 머리에 함선을 개조할 생각이 가득 찼다.

“천 명이나 태워서 뭐하게?”

무식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다.

나호필은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해줬다.

“싸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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